저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나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이곳에 녹음합니다.

그간 저를 잘 아는분들조차도
제 주위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들에 대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간의 일들로 거의 미쳐갈 지경이었습니다.

두달전의 일이었지요.

회사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달도 없는 캄캄한 밤이라 기분도 으슥으슥했는데 그날따라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는거예요.

물론 새벽 2시가 다 된 시간이었으니 그럴만 하다고 생각은 들었지만...

혹.. 귀신을 보신적이 있나요?

전 그날 처음으로 귀신을 보았답니다.

귀신... 어릴때는 호기심으로 귀신의 존재를 믿었었죠.

커가면서 바쁜일상에 귀신의 존재를 망각하고 살아왔지만...

후.... 그날 전 보고야 말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본 귀신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제가 일년전에 죽인...바로 그녀였어요.

그래요.
제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죄를 지은 것이 있다면 단한가지
바로 그 일뿐일거예요.

하지만 아마도 제가 일년 전에 그녀를 사귀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겁니다.

일부러 숨겼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

왜냐하면 그녀는 나이가 겨우 열여덟살이었고 ,
저는 30살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는 유부남 이었으니까요.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을 잊지 못합니다.

제가 한창 방황하고 있던 그시절.
어느 골목길에서 술에 취해 토물을 쏟아내고 있을 때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났죠.

그녀는 그 당시 누구에게 두드려 맞은것처럼
얼굴에 온통 피멍이 들어 있었는데...

속이 아파 괴로워하는 제 앞에 살며시 앉더니 저에게 물었죠.

"술..많이 드셨나봐요? 제가 등을 두드려 드릴까요?"

전 희미한 정신 가운데에서도
그런 그녀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졌답니다.

결국 그날 이후로 그녀와 사귀게 되었고...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녀는 이혼한 부모들의 등쌀에 못 견디고
집을 뛰쳐 나와 여기저기 술집에서 몸을 팔며 일을 하고 있었다더군요..

흔히 말하는 거리의 여자...

저를 처음 만난날도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손님에게 맞은 모양이였는데..

어쨌든 저는 그녀가 그 생활을 청산하고
평범한 여자로 돌아 오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제 얘기를 듣지 않았죠.

결국 몇달간 저와 사귀다가 제게서 떠나 버렸는데..

물론 그녀는 아무것도 꺼릴것이 없었겠죠.

부담없이 저와 사귀다가 싫증이 나면
떠날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제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처음 만날때 저는 두살짜리 아기의 아버지였고
명문대를 졸업한 한 여자의 남편이었습니다.

결국 둘의 사이를 눈치를 챈 집사람은 저와 이혼을 요구했고..
아니 그 보다는 제가 먼저 이혼을 원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때는 한창 그녀에게 빠져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녀를 위해 이혼까지 감수했는데...

그녀가 저를 버리고 떠나가버린 겁니다.

다시 거리의 여자가 됐거나...

그녀와 헤어진 후 한동안 저는 그녀를 찾기 위해 모든 거리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녀가 저를 만나기 전에 다녔다던 그 칙칙한 뒷골목의 술집들도....

그러나 그녀는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마치 제산의 흔적을 감쪽같이 없애버린 것처럼요...

어느날이었습니다.

그날은 회사일도 하루종일 꼬이고 해서 초저녁부터 술에 취해있었죠.

사실 그즈음에는 내 곁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녀도 저를 버렸고 저의 아이도, 집사람도 이미 떠나버리고 없었죠.

너무나 외로웠습니다.

그녀가 미치도록 생각났죠.

저는 그걸 보상이라도 받을 생각으로 무작정 아무 술집에나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들어온 여자가 누구였는지 아십니까?

그래요... 바로 그녀였습니다.

저는 진한 화장을 한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숨이 멎는줄알았죠.

그렇게 찾아도 없던 그녀를 이런 곳에서...만나게 되다니...

아니 그것보다도 추측은 했지만 아니길 그렇게 바랬는데
다시 예전의 그모습으로 돌아간 그녀를 직접 확인했다는 충격에...

전 알 수 없는 서글픔과 울분에 무작정 그녀를 끌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차피 전 그녀의 손님이었고,
그녀는 손님의 말을 들어야하는 일개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근처 포장마차에서 몇잔을 더 들이킨 것 같습니다.

그녀는 그런 나를 아무말도 안하고 물끄러미 바라만 보더군요.

전 상관없었습니다.

그녀가 말은 안해도 속으로는 무척이나 울고 있을거라는걸 믿기때문에....

결국 술에 만신창이가 되어 그뒤로는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한 것은 기억에 없었습니다.

다만 스산한 가을 바람에 한기가 느껴져 눈을 떴을때....

아직 해는 뜨지 않았지만 희미하게 울창한 나무들이 보이고
산새 소리가 들리는것을 봐서는....

그래요  어느 한적한 산속이었어요.

그런데..제 곁에는..그녀가 눈을 부릅뜨고 죽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목에는 선명한 칼자욱이 있었고...
제 바지주머니에는 피묻은 단도가 들어있었지요.

저는 한숨을 '푹' 쉬고 골똘히 생각을 해봤죠.

전날... 바로 전날 일을...어렴풋이 기억이 나더군요.

술에 취해 정신없는 저를 그녀가
자신의 승용차로 집에 데려다 주려고 했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평소 우리들이 자주 들리던 그 산으로 가자고 우겨댔고...
결국 그녀는 나의 말을 따랐죠.

어디까지나 저는 그녀의 손님이었으니까요...

그리고는 제가 산속으로 자꾸 걸어들어 간 것 같습니다.

물론 그녀도 따라 왔겠죠.

제 생각엔 아마도 조용한 곳에서 그녀의 확답을 받으려고 했을겁니다.

다시 내게로 돌아오라는...
그러나 그녀는 앙칼진 목소리로 그걸 거부했고...

결국 포장마차에서 몰래 숨겨 온 칼을 꺼내 단숨에..
단숨에 라고 하니 기분이 더 묘해지는군요.

전 그녀를 사랑했는데... 단숨에는 아니었겠지요.

단도가 허공을 가르는 순간 무척이나 망설였을 겁니다.

그 짧은 순간이라도 그녀가 제게 돌아온다는 말을 바랬을 테니까요.

그러나 그녀는 멍청히 서서 제 칼을 몸으로 받아냈고..
주위는 온통 사랑스런 그녀의 피로 얼룩이 졌겠죠.

하지만 그건 이미 지난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사랑했다 하더라도 그녀는 이미 죽었으니...
저라도 살아야겠다는 비겁한 생각에...
누가 볼세라 그녀를 암매장 했습니다.

마침 근처에 자그마한 굴이 하나 보였는데 거기로 그녀를 끌고가..
잘 들어가지 않더군요.

죽은지 세 , 네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을텐데
그녀의 몸은 굳을대로 굳어 있었고

결국 저는 그녀의 몸뚱아리
부피를 줄이기 위해 뼈를 부러뜨리기 시작했습니다.

팔과 다리를 발로 밟아 으스러 뜨리는데...

묘한 감정이 들더군요.

하루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그녀의 몸을 원했는데...

이미 식어 차디 차게 굳은 다음에는 하나의 고깃덩어리 이상으로는
느껴지지 않았으니까요.

어쨌든 십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녀의 몸뚱아리는 꺾여지고 으스러져
자그마한 굴에 쑤셔 박혔습니다.

저는 주위에서 나뭇가지와 풀들을 뽑아 그 위에 덮었죠.

그것들이 바람에 날려가도 시신이 보이지 않도록 커다란 돌로 입구를
막는 것도 잊지 않고요...

휴......

이것이 그녀와 마지막 이별할 당시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정신없이 일년이 지나갔죠.

그런데 두달전 바로 그 어두운 길거리에서 그녀가 제게 나타난 것입니다.

얼굴은 소름끼칠 정도로 창백하였고
온 몸은 제가 마지막으로 굴속에 쑤셔 넣었을때와 같이
온 통 꺾여지고 뒤틀려 있더군요.

전 아무말도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죠...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날에 제가 그녀를 그렇게 죽인지
꼭 일년이 되던 날이더군요.. 바로.. 그녀의 제사날인 거였죠.

저는 그녀가 하는 대로 내맡길 참이었습니다.

귀신이라도 저의 목숨을 원한다면 순순히 따를 참이었고..
만약 용서를 한다면 제 죄를 세상에 밝힐까도 생각을 했죠.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그저 제 눈을 바라만 볼 뿐이었죠.

그날은 그렇게 그녀가 사라져 갔습니다.

전 한편으로는 안도감에 한숨을 쉬었지만...

마음속에 남는 건... 미련과 후회였습니다.

내가 왜 그날 그리 성급하게 죽였던가 하는..

어쨌든 그 후로 그녀는 매일 같은 시간에 제 앞에 나타나곤 했습니다.

잠을 잘때는 제 곁에 반듯이 누워 거친 숨소리를 내며 있었고
혼자 욕탕에서 샤워라도 할 때면 뒤에서 말없이 지켜보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처음에 무척 놀랐었죠.

말이 쉬워 '조용히' 란 표현을 쓴것이지
사실 누군가가 항상 자신의 주위에서 서성인다는건....
그리고 그 누군가가 사람이 아니라면...

한번은 이런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직업상 아는 여자를 만나 저녁을 하고 있었죠.

분명히 그곳은 사람도 많고 또 이른 저녁이었는데도...

저와 같이 식사를 하는 여자 옆에 그녀가 말없이 다가와 앉는 것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나 혼자 있을때만 나타나곤 했는데..
그날은 여럿이 있는데도 그녀가 나타나더군요.

물론 저는 깜짝 놀라 같이 식사를 하는 여자에게 물었죠.

옆에 누가 보이지 않느냐고...

그러나 그 여자는
옆을 두리번 거리더니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제 눈에는 그녀가 분명히 앉아 있는 것이 보이는데...

그녀는 여자가 저녁을 하는 동안 내내 옆에 앉아 턱을 괴고는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간혹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가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을때마다 여자는 재채기를 하곤 했는데...

그런데 그날 이후로 그녀는 아예 제 곁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제가 어디를 가든 따라다니며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었고...

도대체 제게 무엇을 바라는 건지 한동안 몰랐지만..

그러나 저는 점점 그녀의 의도가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예.... 바로 저의 목숨이었죠.

그녀는 제가 아는 그어떤 악랄한 것들보다도 더욱 집요했어요.

아무말도 없이 , 아무 행동도 하진 않았지만 은연 중에
저를 조금씩 미쳐가게 만드는 것이었죠.

그리고는 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자신의 곁으로 오기를 바라는것같더군요.

두달이 지난 지금... 저는 제가 생각해도 꽤나 미쳐있습니다.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고 밤에 잠도 자질 못해
파리하게 말라가고 있는 거죠.

아마도....그녀가 지금 제게 복수를 하고 있는 이 방법은
그 어떤 잔인한 방법보다도 훌륭하다고 생각됩니다.

결국 저는 굴복하고야 말았습니다.

지금 이 육성 유언을 마지막으로
전 저의 조그만 이 방에서 목을 메달 예정이니까요.

훗... 지금 이 말을 하는 것을 듣고 그녀가 처음으로 미소를 짓는군요.

지금 제 곁에서....

소름끼칩니다.

너무도 흡족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니...
정말 인생이 허무하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이제 저의 얘기는 이것으로 끝마칩니다.

제가 천장에 걸어놓은 밧줄 밑에 그녀가 서서 저를 기다리고 있군요.

이제 전 , 제가 지은 죄에 대해 스스로 교수형을 집행해야겠습니다.

제가 발견이 되면.. 아마 싸늘히 식어버린 몸뚱아리 뿐이겠지만....

듣기로는 목을 메달아 죽으면 무척이나 끔찍하다고 합니다.

온통 얼굴에 피가 몰려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팅팅 불어있고
혓바닥은 처참하리만치 튀어나온다는....

그리고 죽음의 순간,
온몸이 경직되어 모든 분비물들이 밖으로 흘러 나온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제가 카세트의 녹음을 끝내는 순간 저는 제방 천장에서
목에 밧줄을 맨채 그네를 타고 있겠군요.

이제..이제는...정말로 끝낼 시간인가 봅니다.

그녀가 제 뒤에서 무척이나 초조하게 손짓을 하고 있거든요.

갈시간이....가야만하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그럼...이만.....

"좋아. 상규..아주 잘하는데? 진짜로 유언을 녹음하는 것 같아?"

"그래요, 형민선배?
그러면 저의 삼류 성우 인생이 이제부터는 활짝 필 수 있는겁니까?
형민형은 PD시면서...저 좀 많이 도와주세요 그런데...
이 데모테잎은 어디다가 들려주시는 거예요? 영화사에요?
아까 제가 처음에 녹음할때...."

"그렇지. 이 대본만 실제처럼 녹음할 수 있다면 내가 좋은 자리를
마련해 준다고 했지. 지겨운 삼류 성우 인생을 끝낼 수 있게"

"헤헤. 고마워요 그런데 이대본은 어디서 났어요? 신기하네요?
제가 살인했다는 이야긴빼고 전부 제상황하고 똑같네요.
이혼한 것도 그렇고 두살짜리 아이가 있다는 것도..."

"그렇겠지. 내가 쓴거니까..."

"그래요? 어쩐지...참 , 그런데 녹음을 하다보니까 갑자기 생각났는데..
1년전인가? 저와 같이 갔던 술집에서 제파트너가 됐던...맞다
그애도 열여덟살이라고 했는데....윤미라고 했던가? 그여자애 어떻게
됐어요? 선배를 한동안 쫓아다녀 귀찮다고 하더니만..아직도 만나요? 어?

선....배 ! 왜...갑자기...어? 허..헉................."

딸깍.

형민은 녹음된 테이프를 다시 한번 돌려 듣고는
정지 버튼을 누르며 중얼 거렸다.

"아무리 들어봐도 삼류 성우 치고는 진짜 같이 녹음했다니까?
누가 들어도 실제 유언처럼 완벽하게...
그나저나 둘의 대화가 들어간 뒷부분은 지워야겠네."

형민은 천천히 뒤로 돌아 천장에 혀를 길게 빼고
대롱대롱 메달려 죽어있는 상규에게 다가가 히죽거렸다.

"훗...미안하다. 상규야. 윤미가 하도 쫓아다니는 바람에 죽여버렸는데...
재수없게 며칠전에...그년 시체가 , 내가 묻어놓은 산속에서
발견이 됐다더구나. 조사가 시작되면 언젠가 나한테까지 의심이 올텐데...
내 대신 네가 누명 좀써라.
너야 뭐 어차피 삼류 성우에 삼류 인생이니...
미친놈 소리 들으며 몇십년 일찍 죽는다고 억울하겠냐?
아 , 일을 확실하게 해두기 위해
윤미가 있던 술집 명함하고 몇가지 그녀의 물건들을 여기에 두고 갈께...
그럼.... 잘있고...후후후..."

형민은 말을 마치고 방을 나섰고
상규의 축 처진 싸늘한 몸뚱아리만이 방 천장에 매달려 흔들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