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명씩..혹은 수십명씩 사람의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곳..

그리고 그 곳에 떠도는...영혼들...

억울한 죽음과..이승에 대한 미련으로 떠도는..영혼들...




병원식당에서 벌써 7년간 일하고 있는 김씨아주머니는 자정이 넘어갈 무렵

문을 닫고 집으로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휴...하늘이 희뿌연게..내일은 날씨가 별로 안좋겠네.."

창을 닫던 김씨아주머니는 창 밖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을 했다.

그때였다. 창문을 잠그고 뒤를 돌아서던 김씨아주머니는 놀란 눈을 떴다.

"에그머니나..사람이 들어온 줄 몰랐네요...근데 어쩌죠? 벌써 마쳤는데.."

김씨 아주머니 앞에 서있는 검은색 치마 정장을 입은 중년의 부인은 대략

40대후반정도로 보였다. 깔끔하고 단아한 모습이었으며 어딘가 모르게 귀

부인같아 보이기도 했다.

김씨아주머니의 말에 부인은 슬핏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기..죄송하지만..너무 배가 고파서 그러니..라면 한그릇만 주시면 안될

까요?"

부인의 차림새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고급 음식만 상대할것 같아 보

였기 때문이었다.

원래 인정이 많던 김씨 아주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꺼진 주방의 불을 켰다.

"그러지요..잠시만 앉아 계세요.."

"감사합니다..정말..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말한 부인은 식당의 중간쯤 앉았다.

-저런 사람도..이런곳에서 라면을 사먹는구나...-

주방으로 들어가려던 김씨 아주머니는 희미하게 후각을 자극하는 소독약

냄새에 잠시 주위를 둘러봤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병원이란 곳이 식당이든 어디든 소독약 냄새로 베어있는 곳이기 때문에..

10분정도 흘렀을까..

김씨 아주머니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라면 한그릇을 쟁반에 담아

부인의 앞에 내려놓았다.

"천천히 잡수고 가세요..."

온화한 미소를 짓는 김씨 아주머니를 향해 부인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김씨 아주머니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고 부인은 젓가락을 들어 라면을

먹는듯 했다.

그리고..대략..15분정도가 흘렀을때였다.

"여기..얼마죠?"

"그냥가세요..오늘은 제가 서비스 해드린거예요..다음에 와서 또 잡수시

라고..."

주방에서 얼굴을 내밀며 김씨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고 부인은 그런 아

주머니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 보였다.

"정말...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부인의 정중한 감사의 말이 김씨 아주머니는 웬지 쑥쓰러웠다.

-라면 한그릇에도..저렇게 감사하다는걸 보면..참..겸손하네..-

"그럼..이만 가보겠습니다.."

나가기 전에도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는 부인은 또각또각 구두의

소리를 남기며 식당을 나갔다.

주방정리를 마친 김씨 아주머니는 방금전 부인이 먹은 라면 그릇을 치우기

위해 쟁반을 들고 부인이 앉아 있던 자리로 갔다.

"아니...!!!"

라면 그릇을 본 김씨 아주머니는 깜짝 놀란채 서 있었다.

배가 고프다던 부인은 라면을 한젓가락도 먹지 않은듯 라면은 퉁퉁 불어

라면 그릇에 담겨 있었고 젓가락은 처음 김씨 아주머니가 놓아준 그대로

가지런하고 깨끗하게 놓여 있었다.

"거참..별일이네...배고프다더니.."

퉁퉁불은 라면을 쓰레기통에 쏟아 부으며 김씨 아주머니는 의아해했다.


그리고 다음날..

시장을 갔다 오던 김씨 아주머니는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 놓고 우연찮게

지하의 장례식장을 지나쳐갈때였다.

간밤에 누가 죽었는지 사람들의 통곡소리가 들려왔고 그냥 지나치려다

빼꼼히 장례식장을 들여다 보던 김씨 아주머니는 대경실색했다.

검은 액자속에 방긋 웃음을 짓고 있는 영정사진..

분명...어젯밤 라면을 달라던 그 부인이었다.

김씨 아주머니는 장례식장 앞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상주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저 부인...언제 돌아 가신거죠?"

"네?"

어리둥절하게 묻는 상주에게 김씨 아주머니는 간밤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눈시울이 붉어진 상주가 굵은 눈물 방울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아이고..누님.....잡수고 싶은 음식...맘껏 드시지도 못하고..돌아가셨으

니...얼마나..한이 됐을까...흑흑.."

김씨 아주머니는 그런 상주를 보며 덩달아 눈시울을 붉혔다.

"저분은..제 누님인데..어제..11시쯤..돌아갔셨습니다..흑...위암으로

고생고생하시면서..음식한번 변변히 드시지 못하고..먹는 족족 속을 개워

내야했기때문에......누님이..돌아가시기 전에...따뜻한 라면 한그릇만

드셔보시고 싶다고.....흐윽...흑..."

상주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댔다..

"이런....그럼...어제..그 분이...."


김씨 아주머니는 내심 다행이라 여겼다.

만약 어젯밤 그 분을 그대로 돌려 보냈다면 가슴에 크나큰 짐이 남았을

텐데...


상주는 계속 손을 내저으며 받지 않겠다는 김씨 아주머니의 손에 끝끝내

라면값을 쥐어주었다.

"우리..누님도..그걸 바라실겁니다...흑...감사합니다..아주머니...

정말로..감사합니다..."

김씨 아주머니는 손등으로 눈가의 눈물을 닦으며 마음속으로 그분의

명복을 빌었다...


어젯밤 감사하다며 몇번이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던 그 부인의 모습이..

생각난 김씨 아주머니는..이제부터라도..밤늦은 시간에 찾아오는 손님을

그냥 돌려 보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