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팔에 꽂고 있어야하는 닝겔주사바늘..
딱딱하게 굳어 있는 다리의 깁스..
후줄근한 환자복..갑갑한 병실..
삼일전 오토바이와 부딪히는 사고로 다리가 부러진 선영은 병원에 입원을
했고 갑갑하기 짝이 없는 병실에 갇혀있는 신세가 되었다.
입원한 이틀정도는 학교에 가지 않고 편안하게 늦잠을 늘어져 자는게 좋
았었지만 삼일째가 되니까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태어나 처음 짚어보는 목발질도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고..
특히나 엄마가 잠시 병실을 비웠을땐 닝겔병을 들고 목발도 짚고 화장실
까지 가는건 정말 죽을맛이었다.
슬슬 학교에서 쉬는시간에 도시락 까먹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눈치보며
자는 잠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엄마..나 그냥 목발 짚고 학교가면 안될까?"
"얘가..무슨 소리야!! 한달간은 입원해야지 뼈가 완전히 붙는다는데..
계속 움직이면 붙을 뼈도 안붙는다고 했어..학교 안간다고 좋아할땐 언제
고.."
엄마의 잔소리에 선영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사고날때 내리막길이었고 뒤에서 달려오던 무면허 중학생 신문배달이 서툰
운전으로 선영을 들이 받았기 때문에 덕분에 아주 보기 좋게 오토바이와
내리막길을 뛰굴뛰굴 굴러야 했던 선영이었다.
오토바이가 선영의 다리를 뭉개버렸고 뼈는 심하게 갈라졌기 때문에 적어도
한달간은 많이 움직이지 않는게 좋다는게 의사의 말이었다.
병실은..503호실이였고..2인실이었지만 옆 침대가 비어있는 관계로 선영은
독실아닌 독실에 입원을 한셈이었다.
"엄마 집에가서 좀 씻고 자다가 올게..그때까지 혼자 있을수 있지?"
"알았어~!!"
씩씩하게 대답하긴 했으나 솔직히 닝겔병들고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까지
목발을 짚고 가야 할 생각을 하니 좀 걱정되기도 했다.
엄마가 병실을 나가고 혼자 남은 선영은 썰렁한 병실 침대에 비스듬하게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아~~~오늘 야자때문에 친구들 놀러 오지도 못할껀데..."
심심하고 지루한 선영은 뒤척뒤척 거리며 책장을 넘기다가 깜박 잠이 들
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차가운 기운이 선영의 뺨을 훑고 지나갔다. 스륵 눈을 뜬 선영은 깜깜해진
병실을 둘러봤다. -지금이..몇시야..?-
시계를 보려고 휴대폰 플립을 열어보니 시간은 벌써 밤 11시를 지나고 있
었다. -이상하네..엄마 왜 안오지..?-
선영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일 병원에서 고생을 한 탓인지 잠이 깊게 들은 모양이었다.
아빠는 지금 출장중이었기 때문에 집에 혼자 남은 엄마가 걱정되었다.
낮잠을 너무 잔 탓일까..선영은 다시 자려고 자리에 누웠지만 말똥말똥한
눈은 감기질 않았다. 그저 어두운 천장을 보고 있었을뿐..
-화장실이나 가야겠다..-
어영부영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난 선영은 침대 옆 세워진 목발을 집어
들었다. 다행히 닝겔이 없어서 그나마 편했다.
그리고 선영이 병실 문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흐윽...흑...."
온 몸에 찬물을 끼얹은듯 오싹하게 들리는 흐느낌소리..
선영은 그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 나가고 싶었지만 어느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대로 문을 열면 누군가 문 앞에 서서 주인공을
노려보고 있는....
"흐으으윽....흑......흑..."
흐느낌 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다.
선영은 그 소리가 바로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 오는 소리임을 알았다.
-뭐...뭐지...?-
지금 선영이 할 수 있는건 두가지였다. 이대로 병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느냐..아니면 뒤를 돌아 볼것이냐..
선영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천천히 뒤로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제껏 17년을 살아오면서 귀신을 본적이 없었던 선영이
었기에 정말 귀신을 맞닥뜨리면 그대로 기절해 버릴꺼라는 자신의 예상과
는 달리 등뒤는 여전히 잩은 어둠만이 깔려 있었고 보이는건 아무것도 없
었다. 자신이 금방 헝크러 놓은 침대의 이불과..그리고 비어있는 침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을뿐...
-뭐야..괜히 쫄았잖아...아까 그 소린 잘못 들었나보네..-
선영은 조금 무서운 마음을 덜고 병실 문을 열었다. 공포 영화에서 본
것처럼 문앞에 누가 서있거나 하지도 않았다.
병원 복도는 조용했고 희미한 불빛만이 있었다.
그리고 복도 끝에 보이는 환한 화장실을 향해 선영은 열심히 서툰 목발
질을 해대며 가고 있었다.
싸늘한 기분...차가운 무언가가 선영의 등뒤에 업혀 있다는 느낌..
그 기분이 상당히 깨름칙 했지만 조금전 그 일 때문이라 생각하고 화장실
로 향했다. -아직 가을인데..좀 쌀쌀하네..-
어느새 화장실까지 다다른 선영은 볼일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 나려 할때
였다. 파밧 소리를 내며 화장실 불이 나가버린것이었다.
"엄마야~!! 깜짝이야...이래서 병원은 싫다니까..."
병원이라는것 자체가 공포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제한된 공간에 있는..공
포..선영은 서둘러 화장실 문을 열고 목발을 짚고 나왔다. 그 컴컴한 공간
에 더 있다간 없는 귀신도 나타날것 같았기에..
다급한 마음에 목발을 휘익휘익 저어대던 선영은 급기야 복도에서 업
어져 버렸고 빈복도는 잠시동안 선영이 넘어지면서 낸 굉음이 점차 사라
지듯 울리고 있었다.
"아야...!!! 병원 있다간 내 다리뼈 더 부러지겠다.."
선영이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을때였다. 분명 아까까진 닫혀있던 자신의
병실 문이 열려 있었다.
"뭐지..? 열린건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천천히 목발을 짚으며 자신의 병실까지 온 선
영이 병실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정말 거짓말처럼 병실 문이 쾅 하며 닫
혀 버렸다. 선영은 놀란 눈을 뜨며 그자리에 잠시 서있다가 천천히 병실
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잠긴듯이 열리지 않는 병실 문...
그런 병실 문 너머로 아까 들었던 여자의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흐으윽.....흑...흐윽..."
정말 슬픔에 복 받친듯 느껴지는 흐느낌 소리..
-뭐야...? 정말 귀신 아냐...?-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컴컴한 복
도에 서있는 것도 꽤나 무서웠다.
선영은 다시 한번 힘주어 병실문을 열었고 병실문은 언제 그랬냐는듯 쉽
게 열렸다. 여전히 컴컴한 병실 안엔 아무도 없었다.
열려진 창문때문에 하얀 커튼이 휘날리듯 나부껴 대고 있었다.
선영은 천천히 다가가 창문을 조심스럽게 닫으려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선영의 어깨를 짚었고..그 느낌은..상당히..오싹했다.
선영은 창문에 가져갔던 손을 부들부들 떨며 내려 놓고는 뒤를 돌아 봤다.
"아....아악...꺄아아아아악........."
선영은 바닥에 주저 앉은채 뒤로 물러 났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여자를
쳐다보며 정신없이 소리를 질러댔다.
핏물이 베인 하늘거리는 소매가 없는 여름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검은 머리카락은 머리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핏물에 의해
붉게 젖어 있었다. 여자의 눈이 차갑게 선영을 노려 보고 있었다.
여자는 환자복을 입은 7~8살쯤 되는 남자아이를 안고 있었고 아이는 힘
없이 축 늘어져 입가에 피를 흘리며 선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저리가.........싫어...저리가!!!!"
선영은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제발..누구든 저 병실 문을 열고 들어
와 주길 간절히 바라면서..
여자는 다리가 부러진듯 절뚝 거리면서 선영에게 한걸음 다가왔고 구석
까지 몰린 선영은 이제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저 소리를 지르며 울부 짖을 수 밖에..
"흐....흐으윽....사...살려내.....우...우리...아기...살려내......"
여자느 흐느끼면서 말했고 선영은 눈을 감고 귀를 막은채 소리쳤다.
"아아악...."
잠시 정적이 흘렀다..그러나 선영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누군가 그런 선영의 어깨를 흔들며 소리쳤지만 선영은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선영이 눈을 떴을땐 걱정스런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 보는 엄마와
아빠가 보였다. 출장 갔던 아빠도 선영의 기절소식을 듣고 돌아온 모양이
었다.
"선영아..괜찮아?"
엄마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다.
희미한 시선에 촛점이 맞춰졌고 이윽고 엄마랑 아빠..그리고 의사의 얼굴
이 보였다.
"그냥..잠시 기절을 한거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겁니다.."
"엄...마...나..지금 어디..누워 있는거야..?"
"어디긴..병실 침대지.."
"몇...호실..?"
"얘가..왜 이래..? 몇호긴..503호실이지..!!"
선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병실을 나갔다.
선영의 눈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선영아!!선영아!!"
놀란 엄마와 아빠가 뛰어나와 선영을 붙들었고 선영은 울면서 자신이 있
었던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니가 아프고 그래서 헛걸 본거야.."
아빠의 말도 위로가 되진 못했다.
"아니야...정말이야...정말로..봤단 말야!!"
그때였다..옆에서 조용히 선영과 선영의 부모님을 지켜보던 앞병실 할
머니가 입을 열었다.
"아이고...또 그런 일이 있었나벼...전에 저 병실에 입원했던 총각도
그래서 병실을 옮겼었는디...아마..그 여자일껴.."
"할머니....저 병실에서..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할머니에게 묻는 선영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흠...그러니까..그게..내가 작년에 수술할 당시였제...그때 내가 허리
가 좋지 않아..수술을 받았는데..여름이었을꺼야..저 병실에 6살인가 7살
먹은 아이가 심장이 좋지 않아 입원을 해 있었을꺼야..아빠도 없이 엄마
혼자 그 아이를 키우나 보던데..그런데..아이가 수술을 받는 도중 죽어
버렸고 자기 아이 살려내라고 실성한것 처럼 소리치던 그 아이 엄마가
저 병실 창문에서 뛰어내렸제..급하게 의사들하고 사람들이 쫓아가봤는디
떨어지믄서 머리를 다쳤는가 그대로 죽어뿌고 말았제..그리고 나서 내가
퇴원을 하고..올해 또 이 망할 허리가 재발하는 바람에 다시 입원했는데..
학생 입원하기 전에 입원해 있던 총각도 여자랑 남자아이 귀신을 봤다믄서
호들갑을 떨더니 다른 병실로 옮겼제..에휴..그만..잊어버리고..편히
갈것이제...왜 사람들을 놀래키고 있는지..."
할머니의 낮은 한숨소리..
선영은 그 날 이후 퇴원수속을 밟고 집근처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그 뒤로도..503호 병실에서 그 여자와 아이 귀신을 봤다는 사람들이 속
출했고 그 병실은 결국 간호실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병원에선 깊게 사죄하는 뜻으로 그들의 제사와 명복을 빌어줬다고
한다...그러나.......
그 뒤로도 당직 간호사들은 그 여자와 아이를 몇차례 목격했다고 한다.
세상에 대한 미련이었을까...아니면...아이를 살리지 못했다는 엄마의
죄책감이었을까...
어쨌든 선영은..마음속으로 나마 그 모자지간의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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