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이 고향인 그는 1.4후퇴 때 피난을 와 여기저기 떠돌다가, 조금이라도 고향 가까운 곳에서 살겠다고 이곳에 이발소를 차린 지도 벌써 20년이 된다. 같은 장소에서 가게를 오래 하다 보니, 이발소 손님 중에 손님이라기보다 친구 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람들도 생겼다.
그 중에서도 성우 씨와 인복 씨는 가장 각별한 사이다.
그들은 고향이 모두 이북인 관계로 서로의 외로운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세 사람 모두 낚시광들이어서 형제간처럼 다정하게 지냈다.
그들은 평소에도 일이 끝나면 가벼운 술자리를 마련했다. 소줏잔을 부딧치며 외로움을 나누는 실향민들이었지만, 이들은 경조사가 있으면 내 일처럼 생각하고 발벗고 나섰다.
동네 사람들은 이 세 사람의 우정을 모두 부러워했다.
성우 씨와 인북 씨는 이발 외에도 틈만 나면 나란히 이발소에 찾아왔다. 이들은 만나기만 하면 낚시를 화제로 삼았다. 다른 목적으로 모였어도 결국 화제는 낚시로 귀결되기 십상이었다.
이발소에서 낚시 얘기를 하다보면 다른 손님까지 가세해서 이발이 중단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일 관계상 휴일에는 좀처럼 같이 행동할 수가 없지만 서로 단합한 끝에 셋이 나란히 낚시를 가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그날도 여는 때처럼 이발소에 모여 2박 3일의 낚시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발소가 왁자지껄했다.
"야, 이번에는 집사람들도 함께 가는 게 어때?
"거 좋지. 근데 애들은 어떻게 하고..."
"아, 애들 학교가 문제구먼."
"그래. 마누라한테는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우리끼리 다녀와야겠어."
"그나저나 이번에는 인복이 자네 텐트를 가져가야겠어. 나는 코펠하고 버너를 준비할께."
그때였다. 한참 신나게 낚시 계획을 짜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기태 씨 부인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세상에... 언젭니까? 네, 알았습니다. 남편한테 전하겠어요.
그 분이 설마. 연락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발소 안에 있는 사람들은 통화 내용으로 봐서 분명히 아는 사람에게 불행이 생겼음을 알아챘다.
기태 씨도 잠시 일손을 멈추었고 가게 안도 조용해졌다.
기태 씨 부인이 기태 씨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전화 내용을 알렸다.
"여보, 숙부님께서 돌아가셨대요. 빨리 떠날 채비를 하셔야겠어요."
전화는 기태 씨의 숙부가 갑작스런 사고로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은 듣는 순간 기태 씨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숙부라 하지만,
어디 그냥 숙부인가? 부모를 북한에 두고 온 기태 씨에게 있어서 숙부는 아버지나 다름 없었다.
피난 시절 친자식처럼 돌봐주던 숙부의 얼굴이 잠시 떠올라 기태 씨는 이내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성우 씨와 인복 씨가 기태 씨를 위로했다.
결국 이번 낚시는 두 사람만 떠나기로 했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긴 장마의 시작이었다.
어쨌든 기태 씨는 숙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으로 떠나고,
성우 씨와 인복 씨는 비옷과 낚시도구를 챙겨들고 청평으로 향했다.
기태 씨는 일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데 몰려왔다. 아내가 그를 반겼다.
"고생하셨어요. 애들만 아니었으면 저도 가봐야 도리인데, 숙모님은 좀 어떠세요?"
"낙심이 크셔. 그래도 조카들이 다 컸으니 망정이지 아무튼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일이야."
"그렇게 정정하시던 분이..."
"그러게 말야. 너무 건강해서 건강 진단도 전혀 받지 않았대.
몸이란 너무 자신을 가지면 오히려 안 좋은 것 같아."
기태 씨 부부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성우 씨와 인복 씨는 이렇게 비가 내리ㅣ는데 낚시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아마, 이 정도라면 물도 탁해지고 강우량도 많아 큰 성과는 올리지 못했을 거야."
"그럼, 지금쯤은 어디 술집이나 들어가 있겠네요."
다음 날 아침은 거짓말처럼 날씨가 쾌청했다.
장마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마치 가을 하늘을 보는 것 같았다.
이발소 앞 거리를 비질하다 말고 부인이 기태 씨에게 말했다.
"당신, 어제가 오를이라도 낚시할 절호의 기회였겠는데요."
"어제가 오늘이라면 장례식과 겹쳐져서 어차피 나는 갈 수 없었을 거야."
기태 씨는 이발소 손님 맞을 준비를 끝내고 잠깐 쉬기 위해 손님들이 앉는 서파에 걸터앉았다.
그때 갑자기 이발소 문이 열렸다.
"어서 오십시오!"
그날의 첫손님이었다. 기태 씨는 재빨리 일어나 솜씨좋게 이발을 시작했다.
변함없이 손님과 얘기를 하면서 부지런히 가위를 놀렸다.
종업원은 어제 휴일을 맞아 파주에 있는 자기 집에가서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
휴일 다음날은 평소 같으면 아침부터 손님의 발길이 많은데,
그날은 첫손님이 돌아간 후에는 가게 안이 보기 드물게 한산했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들 소식이 없네? 돌아왔으면 벌써 여기로 왔을 텐데."
손님을 보내고 난 기태 씨는 조간신문을 펼치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순간,
손에 든 신문이 희미하게 바람에 날리는가 싶더니 인기척이 느껴졌다.
기태 씨는 출입문이 열려 누군가 왔다고 생각되어 거울을 봤다.
그랬더니 방금 떠올리고 있던 성우 씨와 인복 씨 두 사람이 비쳤다.
"어, 왜 벌써 왔어? 그래 고기는 얼마나 잡았어?"
기태 씨는 반가운 마음에 낚시대를 잡는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그런데도 왠일인지 두 사람은 그다지 즐겁지 못한 표정으로 묵묵히 서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비가 온다고 해도 그렇지. 꾼이라는 사람들이 너무 일찍 온 거 아냐?"
기태 씨의 말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전히 입을 열려 하지 않고 평소와 다른 사람처럼 생기가 없었다.
"왔으면 좀 앉지 그래."
기태 씨가 권하자 두 사람은 가게 안으로 들어와 이발용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어떻게 된거야? 낚시 잘 다녀와서...거기 앉지 말고 이쪽 소파로 와."
기태 씨의 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동시에 의자에서 일어섰다. 여전히 말이 없었다.
"아니, 다 큰 사람들이 싸우기라도 한 거야? 손님들 오기 전에 두 사람 화해라도 시켜야겠네!"
"아내게게 커피를 끓이라고 할테니 우선 기분들 좀 가라앉혀. 곧 나올테니 잠깐만 기다려!"
기태 씨는 말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보. 낚시 다녀 온 저 두 사람 어째 좀 이상한데."
"어머, 벌써 돌아왔어요? 빨리 오셨네요."
"그런데 저 두 사람 조금 이상해. 여보, 미안하지만 그 커피를 가게 쪽으로 가져다 줘요."
"두 사람이 왜요?"
"아무래도 다툰 것 같아. 뭘 물어도 대답도 안하고 두 사람도 서로 말을 안해."
"두 사람 서로 스스럼 없는 사이잖아요. 괜찮아질 거예요. 필시 낚시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 거예요."
"게다가 내가 인사를 하는데도 인사 한 마디도 하지 않으니 뭔가 화난 게 있는 것 같아."
기태 씨는 두 사람이 싸웠다고 단정하고 어떻게 하면 화해시킬 수 있을까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별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대책을 세워 어떻게든 해 보기로 했다.
그 사이 아내가 커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여보, 커피 내왔어요."
아내는 화장실에 있는 남편에게 말하면서 가게 쪽으로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어지로 가 버린 것일까.
4개가 나란히 있는 이발의자에도, 손님 접대용 소파에도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커피를 쟁반에 얹은 채 부인은 멍하니 서 있었다.
"어머, 말도 없이 가버렸네."
출입문을 열고 도로의 좌우를 살펴보았지만 두 사람의 모습은 역시 보이지 않았다.
불만스런 얼굴로 가게 안으로 돌아오자 기태 씨가 나와 있었다.
"그 친구들은?"
"아무데도 없어요."
"무슨 말이야! 조금 기다려 달라고 말했는데... 아마 이 주변에 있을 거야."
"밖에도 없어요."
"쳇, 그만 둬. 굳어진 얼굴로 들어와서는 말도 없이 가버리다니. 이거 해도 너무하잖아!"
두 사람의 예의없는 행동에 다소 불쾌해진 부부는 완전히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면서 기분이 상해 있었다. 얼마 안 지나 손님도 계속해서 들어오고 종업원도 출근해서 가게 안은 평소대로 바쁘게 돌아갔다.
아침 사건이 마음에 걸렸지만 일에 쫒겨 생각할 틈이 없었다.
기태 씨는 겨우 평소의 명랑함을 되찾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리며 부인이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이발소입니다. 아, 오인복 씨...네! 세상에 그런 일이!"
수화기를 든 부인의 몸이 심하게 떨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글쎄, 인복 씨와 성우 씨가 죽었대요."
"죽어? 그런 일이! 좀 전까지 여기에 있었잖아!"
부인은 거기에는 대답하지 못하고 수화기를 귀에 댄 채 사색이 되어 그대로 서 있었다.
"뭔가 잘못됐을 거야. 당신이 잘못 들은 거 아야? 다시 한 번 잘 들어봐!"
부인은 말없이 고개를 흔들더니 약간 정신을 되찾아,
"오인복 씨 부인의 전화예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믿을 수 없어!"
"오늘 아침 9시가 지나서."
"뭐라고? 그럼 오늘 아침 여기에 있던 두 사람은 누구야!"
부부는 말을 잃고 서 있었다. 가게 안에는 형용하기 힘든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두 사람의 얼굴은 핏기를 잃고 창백해져 있었다.
오인복과 김성우는 그날 아침 청평 낚시터에서 9시가 지난 시각에 사망했다.
즉시 청평에 전화를 걸어 본 결과 기태 씨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이 그 곳으로 간 토요일은 큰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낚시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기태 씨도 오지 않고 게다가 다음날도 쉴 수 있었기에 첫날은 그냥 술이나 마시며 보내기로 했다. 일기예보에는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했지만,
다음날 아침 하늘은 가을 하늘처럼 맑았다. 두 사람은 이른 아침부터 신이 나서 서둘렀다.
전날 비로 강물은 많이 불어 있었다.
일행은 그 곳에서 마난 낚시용품 가게 주인과 친해져서 함께 낚시를 하기로 했다.
강물이 불어나 있었지만 세 사람은 `꾼`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었다.
적당히 발디딜 곳을 찾으면서 함께 포인트를 찾았다.
마침 알맞은 크기의 평평한 바위를 발견하고 그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단단해서 삐걱거리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바위가 물살에 휩쓸리고 말았다.
기우뚱하고 흔들린 순간 낚시가게 주인이 손을 뻗칠틈도 없이 두 사람은 급류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던 것이다. 낚시점 주인은 가까스로 구조되었다.
낚시점 주인의 연락에 따라 마을 사람들이 성우 씨의 시체를 발견한 것은 9시가 넘어서였다.
그리고 잠시 후 인복 씨의 시체도 강 하류에서 말견되었다.
그러니까 인복 씨 부인이 전화를 받은 것은 아홉시 30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설명할 것까지도 없이 아침에 이발소에 나타난 두 사람은 인복 씨와 성우 씨의 망령이었던 것이다.
기태 씨는 한탄했다.
"친구들의 망령이 나를 찾아온 것은 아마 유가족들은 보살펴 달라는 뜻일 거야.
비록 친구들은 고인이 왰어도 내가 장례를 치러주고 유족들을 보살펴야겠어."
기태 씨는 두 사람의 장례를 치러주었다. 그 후 기태 씨는 그렇게 좋아하던 낚시도 그만두고 이발소 일에만 몰두했다. 말수도 부쩍 줄었다.
그리고 친구들의 사십구제가 있는 어느 날 밤 두 친구가 다시 찾아왔다.
그날도 기태 씨는 일을 마치고 혼자 우두커니 불꺼진 이발소에 앉아 있었다.
인생이 너무도 허망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희미한 바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발거울 안에 두 친구의 모습이 나타났다.
기태 씨는 얼른 뒤를 돌아다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다시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분명해 친구들이 보였다. 기태 씨는 반가운 마음 보다는 두려움이 업습해 옴을 느꼈다.
"자네를 놀라게 할 생각은 아니었네. 자네가 뒷일을 처리해 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러 왔네.
자네 덕분에 우리는 영혼의 안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어. 잘 있게나.
그리고 우리 몫까지 낚시를 즐겨주게. 자네가 낚시를 할 때 우리도 자네 곁에 머물겠네."
"....."
기태 씨는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거울 속의 영상도 소리없이 사라져 버렸다.
기태 씨는 다시 낚시를 시작했다. 지금도 낚시를 최고의 취미로 생각하고 있으며,
손님들과도 낚시를 화제로 삼고 있다. 기태 씨가 쓰는 낚시대는 생전의 인복 씨와 성우 씨의 것이다
그 낚싯대를 드리우고 강 수면을 보고 있으면 두 번이나 자신을 찾아와 준 두 사람의 영혼을 만나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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