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이름:이름없음 :2010/09/22(수) 23:03:41.58 ID:+7FgBnMxZLY 어느날은 양녕대군이 중이 된 효녕대군의 절 앞에서 기생을 부르고 고기파티를 벌였다고 합니다.

효녕을 그걸 보고 웃으며 "형님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부처님이 노하셔요."

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양녕대군 또한 웃으며 "살아서는 왕(王)형(兄)이오

죽어서는 불(佛)형(兄)이니 무엇이 두렵겠느냐." 라고 하며

세종을 불러 함께 회포를 자주 나누었다 전해집니다.

172 이름:이름없음 :2010/09/22(수) 23:08:09.59 ID:+7FgBnMxZLY -24

숙종조 분영과 권음겸의 사랑

조선 숙중때의 일로 순창 출신의 분영이라는 기생이 있었습니다..
분영은 얼굴도 예쁘거니와 노래와 춤에도 능하여
많은 세도가들이 관심을 샀는데
당시 정읍 현감인 권음겸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당시 분영은 17살이지만 권음겸은 52세가 넘었으니
그때의 관점으로 봐도 어울릴것 같지는 않았지만
둘은 금술이 좋았고 사랑이 깊어 하루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디만 권음겸은 2년뒤 죽었고 분영은 권음겸의 시신을 모시기 위해
같이 한양으로 향했습니다..
권음겸의 가족들은 나이 먹은 사람이 젊은 기생을 끼고 산걸
용납하고 싶지가 않았고 그녀를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고 쫓아 냈습니다..
분영은 울며 집밖에서 권음겸의 명복을 빌고 있었죠,,
그런데 그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갑자기 바람이 불더니 장례식장을 뒤엎은 것이 였습니다..
사람들은 놀라서 혼란에 빠졌고
이윽고 바람은 멎었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는데
그순간 권음겸의 둘째 아들이 갑자기
상여 앞에 서더니 노한 목소리로 분영이를 불러 오라고 하는 거였습니다..


173 이름:이름없음 :2010/09/22(수) 23:09:35.96 ID:+7FgBnMxZLY 가족들은 놀라서 둘째 아들을
말렸지만
아들은 뻣뻣하게 굳은 상태로 서서
계속 분영을 데려 오라고 하는 것이 였죠..
가족들이 문밖에 있던
분영을 데려오자
둘째 아들은
마치 자신이 권음겸 인것 처럼 말하며
"네가 어찌 어여 쁘지 않다 하겠느냐?
내가 평생 술을 즐긴 줄을 알면서 어찌 내게 술 한잔을 권하지 않느냐"
하였습니다.
분영이 말없이 울며
술을 따라서 둘째 아들에게 건네주자
아들은 술 한잔을 마시고는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으며 권공의 말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174 이름:이름없음 :2010/09/22(수) 23:10:37.94 ID:+7FgBnMxZLY 진짜 생전의 권음겸과 똑같은
행동과 말투를 하는 것이 였습니다..
분영은 울면서권음겸과 인사를 나눴고
권음겸의 둘째 아들은 갑자기 쓰러졌고
잠시후 정신을 차리자 본래대로행동 하는 것이 였습니다.. 이후 분영은 고향에 돌아 왔는데
점점 신기가 생겨 났다고 합니다..그녀는 주변의 대소사를 신통하게 알아 맞췄는데
그녀의 말로는 밤마다 권음겸의 혼이 찾아와 그녀에게 여려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이 였습니다..
권음겸은 밤에 모관(毛冠)에 헤어진 도포를 입고 큰 신을 끌고 문을 열고 들어오며
분영을 위로 했고 분영은 권음겸을 생시와 다름 없이 혼연히 대했습니다..
한번은 권음겸이 "이제 너를 만나 옛정을 폈으나 나는 이미 사람이 아닌지라 혹시 내가 두렵지 않느냐" 하며 묻자 분영은 웃으며 말하기를 “마음이 기쁜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라고 대답 했다고 합니다.. 권음겸의 혼은 늘 밤마다 분영을 찾아와
닭이 울며 사라 졌는데 3년이 지나자 나타나는 일이 없어 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분영의 신기는 계속 남아서
그녀는 당시 내노라 하는 무당이 됬는데
신내림도 받지 않고 전문적인 굿을 하지도 않았지만
그녀의 신통한 능력에 대해 많이 알려 졌다고 합니다..
이후 분영은 52세에 죽었는데그때 까지도 용모가 아름답고 피부가 윤택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고 합니다..


175 이름:이름없음 :2010/09/22(수) 23:13:36.81 ID:+7FgBnMxZLY 오늘은 여기까지 즐거운 밤 되세요


176 이름:이름없음 :2010/09/24(금) 01:34:35.17 ID:+z1+c0k4xqA ㄳ

177 이름:이름없음 :2010/09/24(금) 10:48:13.87 ID:m-tWjgd4dbyPc 갱신

178 이름:이름없음 :2010/09/26(일) 22:02:33.85 ID:v2WxWJ7WTOQ 안녕 나 스레주 어휴 이거 괴담판으로 옮겨야 하는건가..

이젠 현대 편을 해볼까해..

179 이름:이름없음 :2010/09/26(일) 22:03:09.30 ID:v2WxWJ7WTOQ -25 중학생 유재승의 이야기

1973년, 한국의 유재승이라는 중학생은, 자신이 화성의 왕자라고 믿게 됩니다. 이 사람은 밤마다 반복해서 외계 공주를 만나는 꿈을 꾸게 되는데, 이 외계 공주와 결혼하면 우주선이 와서 자신을 데려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때 학교를 그만두고, 외계 공주가 지구의 어딘가에 있을 경우를 대비 세계 각국 언어를 연마했다고 합니다. 이름은 화성식 이름 "유리마"로 바꿉니다.



180 이름:이름없음 :2010/09/26(일) 22:03:20.39 ID:v2WxWJ7WTOQ 7년후인 1980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 중계에서 꿈속의 외계 공주와 똑같이 닮은 사람을 발견한 그는 그녀가 미스 프랑스, 브리짓 쇼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결국 그는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는가하면, 프랑스까지 가서 그녀에게 구애했고, 2년 후인 1982년.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그는 부부를 화성 왕자, 금성 공주라고 칭했고, 중세 유럽풍의 왕자 복장을 하고 다녀서 꽤 언론에도 주목 받았습니다.


181 이름:이름없음 :2010/09/26(일) 22:04:29.59 ID:v2WxWJ7WTOQ 그후 금성 공주님은 화성 왕자가 자신에게 사기를 쳤다며 이혼한 걸로 알려짐

182 이름:이름없음 :2010/09/26(일) 22:06:30.32 ID:v2WxWJ7WTOQ -26 많이 짧은 이야기.

옛날에 고종황제가 은밀하게 독립자금을 대려고 돈을 마련했고
그 돈은 모두 스위스은행에 들어있었다. 일본인들이 그후 그 돈을 빼갈려고
했으나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그돈은 지금 어디에있을까?

183 이름:이름없음 :2010/10/01(금) 00:51:05.69 ID:QMmxW+DCeCM 이거 이게 끝인가?

184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20:41.60 ID:Fs1bJ+NIsI+ 안녕하세요 스레주입니다. 좀 늦었네요 괴담판으로 가야겠지만 역시

귀찮달까 계속 이어보겠습니다.

185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21:32.74 ID:Fs1bJ+NIsI+ -27 뱀모양의 기생충

1431년. 함길도에서 일종의 기생충에 대한 목격담으로 보이는 기괴한 사건이 보고 되었다.한 여자가 남자를 저주하기 위해, 뱀 모양의 그림을 넣어 놓은 이상한 음식을 남자에게 먹였다. 이후 남자는 갑자기 복통을 느끼며 괴로워 했다. 남자의 복통을 치료하기 위해 약재로 사용하는 곰취 뿌리를 남자에게 먹였더니, 남자의 배에서 뱀과 꼭 닮은 모양의 이상한 것이 세 마리가 나왔다. 이 뱀들 중에 두 마리를 죽이고 한 마리를 개에게 먹여 보았는데, 그러자 개는 3일만에 죽어 버렸다. 정황을 살펴보기 위해 개를 해부해 보았더니, 뱀은 개의 뱃속에서 그때까지도 살아 남아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사 건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몰라서, 관청에서는 상황을 정확히 조사하기 위해 모든 관련된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사를 아무리 진행해도 알 수 없는 일 투성이어서 마냥 사람들을 감옥에 가둬 놓고 긴 시간 동안 방치하게 된다. 결국 사람들은 의미 없이 감옥에 끝도 없이 갇혀 있으면서 조사 당하는 것에 고통을 느꼈는지 대부분 감옥에서 목을 매어 자살해버린다.



186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22:44.04 ID:Fs1bJ+NIsI+ -28 자백을 위하여
조선 시대에는 범죄를 수사한 후 그 범죄를 증명할 때에 범인의 "자백"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때문에 자백을 받기 위해 범인을 고문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기본적인 고문 방법 나무 몽둥이로 때리는 것과 채찍으로 치는 것이었다. 비위생적이고 몸을 가누기 어려운 감옥에 몇날 며칠이고 가두어 놓으면서 사람을 치게 되면, 고통이 커서 거짓 자백하게 되는 일이 많았고, 고문 중에 사람이죽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시대 내내 고문을 심하게 하는 것의 위험함을 지적하는 의견이 조정에 계속 제시되었다. 그리고 고문 방법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에 대한 논의도 많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실상은 얼굴에 문신을 새기거나, 뜨거운 쇠로 피부를 지지거나 하는 도가 지나친 고문 방법도 자주 사용되었으며, 주리를 틀거나, 무거운 돌로 짓눌러 다리 뼈를 부수는 고문도 종종 이루어졌다

187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23:19.91 ID:Fs1bJ+NIsI+ 1608년. 온양의 8, 9개 마을에서 10여명의 사람들이 난데 없이 군인들에게 붙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잡혀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잡혀온 이유가 곧 반란을 꾸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잡혀온 사람들은 반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평범한 주민들이었으므로 크게 당황하게 된다. 사연인즉슨, 당시 온양의 군수였던 이질수(李質粹)가 우연히 활을 제조하는 기술자로부터 항간에 떠도는 헛소문을 들은 것이 발단이었다. 온양에서 반란을 도모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은 막연하게 넘겨 짚는 생각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질수는 반란을 하는 무리들을 체포하면 큰 공을 세우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도취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질수는 정확히 사실을 파악하기도 전에 충청도 감사 이용순(李用淳)에게, 자신이 반란을 꾸미고 있는 무리들을 잡을 것이라고 보고해 버린다.

상부에 보고를 하고 대충 짚히는 사람 10여명을 붙잡아 감옥에 가두었지만, 이질수는 그제서야 자신이 허무맹랑한 뜬소문을 잘못 넘겨 짚고 일을 벌인 것임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이미 "반란을 꾸미는 무리들이 있다"는 엄청난 보고를 올린 마당에 자신이 헛소리 한 것이라고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반란이라는 엄청난 사건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가 부주의하게 잘못된 사실을 퍼뜨리고 무고한 사람을 체포한 일이 되어 버리면 안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승진하는데 큰 얼룩으로 남을 일일 뿐만 아니라, 그 때문에 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컸다. 이질수는 결국 어떻게든 체포된 사람들이 정말로 반역을 꾸민 범죄자로 꾸며야 했다. 이질수는 붙잡은 사람들이 진짜 범인이기를 간곡하게 바랬기에 스스로 자신이 체포한 사람들이 반역자임에 틀림없다고 자꾸만 스스로 되뇌이면서 믿었던 듯 하다.



188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23:31.11 ID:Fs1bJ+NIsI+ 그러나, 잡혀 있는 사람들로서도 없는 사실을 실토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반란을 꾸민 죄는 처벌이 사형 밖에 없으며 그 처형 방식도 매우 잔인했기 때문에 보통의 고문 방법으로는 범죄에 대한 인정을 하기 어려웠다. 이때문에 이질수는 새로운 고문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이질수는 잡혀온 사람들을 감옥에서 꺼낸 뒤 철로 되어있는 기묘한 크기의 솥 앞에 앉혀 놓았다. 그리고 그 솥에 불을 지펴 벌겋게 솥을 달구면서, 잡힌 사람들에게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달군 솥을 머리통에 뒤집어 씌우겠다고 한 것이다. 죄가 없는 사람들이 만족할만한 답을 하지는 않았고, 이질수는 달군 솥을 머리에 씌워 버렸다. 사람은 고통스럽게 죽어나갔다. 이런 방법으로 이질수는 사람들을 차례로 죽여나갔다.

이질수는 반쯤 미쳐서 고문을 계속 진행해나갔다. 그런데, 고문을 진행하던 도중 맑은 대낮에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면서 비가 쏟아졌고, 불이 꺼지고 솥이 빗물에 식게 되어 고문을 계속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그제서야 이질수는 크게 겁을 먹고 허겁지겁 고문을 중단했다.


189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23:43.13 ID:Fs1bJ+NIsI+ 상황이 무시무시하게 돌아가자, 이질수는 당황한다. 당시 이질수는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고 신분을 위조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닥치는대로 마을들을 헤집고 다니기도 했다. 이질수는 신분을 위조한 사람들을 쫓아다니다가 조사하게 되는 민가의 주민들을 심하게 괴롭혔고, 나중에는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는지, 이질수 스스로 애꿎은 민가의 재물을 범죄와 연루된 것이라고 몰아 붙이며 약탈하며 다니게 된다. 결국 나중에는 온양 인근 사람들이 짐을 싸서 피난을 떠날 준비를 하기에 이른다.

이질수가 가두어 두고 고문했던 사람들 중에 살아 남았던 사람들은, 이 사건을 서울 조정에서 직접 관할하게 되면서 대부분 죄가 없는 것으로 풀려나게 된다. 이후 조정에서는 온양 일대의 민심이 흉흉해진것을 바로 잡기 위해 특별히 승지를 파견하여 상황을 추스리게 하였다. 한편 모든 사건의 중심이었던 이질수는 1609년 1월 3일 지평이었던 한찬남(韓纘男)의 건의로, 파직되어 자리에서 쫓겨 나게 된다.



190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26:16.59 ID:Fs1bJ+NIsI+ 상황이 무시무시하게 돌아가자, 이질수는 당황한다. 당시 이질수는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고 신분을 위조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닥치는대로 마을들을 헤집고 다니기도 했다. 이질수는 신분을 위조한 사람들을 쫓아다니다가 조사하게 되는 민가의 주민들을 심하게 괴롭혔고, 나중에는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는지, 이질수 스스로 애꿎은 민가의 재물을 범죄와 연루된 것이라고 몰아 붙이며 약탈하며 다니게 된다. 결국 나중에는 온양 인근 사람들이 짐을 싸서 피난을 떠날 준비를 하기에 이른다.

이질수가 가두어 두고 고문했던 사람들 중에 살아 남았던 사람들은, 이 사건을 서울 조정에서 직접 관할하게 되면서 대부분 죄가 없는 것으로 풀려나게 된다. 이후 조정에서는 온양 일대의 민심이 흉흉해진것을 바로 잡기 위해 특별히 승지를 파견하여 상황을 추스리게 하였다. 한편 모든 사건의 중심이었던 이질수는 1609년 1월 3일 지평이었던 한찬남(韓纘男)의 건의로, 파직되어 자리에서 쫓겨 나게 된다.


191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27:12.24 ID:Fs1bJ+NIsI+ -29 노비라는 이름의 물건

조선시대에는 종, 곧 "노비"라는 신분이 있었다. 종은 주인의 소유물로 취급되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주인을 섬기고 복종해야 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물론 종도 사람이었기 때문에 종이라고 해도 함부로 죽이면 큰 죄로 처벌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종이 주인을 배반하는데 대해 주인이 처벌을 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고, 종종 도가 지나치게 주인이 종을 처벌하는 일들이 문제가 되었다.


1488년. 세력가였던 유하(柳河)의 아들 중에 유효손(柳孝孫)은 자신의 종이었던 효양(孝養)과 강제로 동침하려 하였다. 효양은 유효손을 계속해서 거부하며 피했다. 이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유효손은 이것은 종이 주인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그에 대한 처벌을 가하기 위해 효양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유효손은 먼저 효양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꺾어 부러뜨려서 효양에게 고통을 주었다. 그 뒤에 불에 달군 쇠를 가져 와서, 효양의 몸 구석구석에 있는 힘줄들을 뜨겁게 지졌다. 이것은 앞으로는 함부로 반항하지 말고 도망치지 말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효손은 더이상 달아나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로 송곳으로 효양의 발 뒤꿈치에 구멍을 뚫어 버린 뒤에, 거기에 끈을 꿰어 효양을 묶어 놓았다.

이 사건은 효양의 숙부인 마미치(馬未致)가 삼사에 고발함에 따라 조정에 알려졌다. 조정의 처벌은 유효손의 집안에 있는 모든 효양의 가족들을 유효손으로 부터 빼앗는 것이었으며, 더이상 종이 아닌 신분으로 고치는 것이었다. 자신이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된 효양은 유효손이 붙잡혀서 고문 받으며 조사 받는 곳에 직접 기어나와서는 유효손의 얼굴을 보고 강간범이라고계속 해서 욕을 했고, 유효손은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