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진상은 이러했다. 신자치의 부인이었던 이씨(李氏)는 도리가 신자치와 동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종 때문에 자신이 신자치에게서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한 이씨는 도리에게 격렬한 질투심과 분노를 느낀다. 이씨는 자신의 친모와 함께 도리를 붙잡고 형벌을 가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도리의 머리카락을 모두 잘라버린 뒤에, 도리에게 죄를 물으면서 수없이 구타하였다. 그리고 쇠를 달구어 우선 가슴과 성기를 지져버린 뒤에, 몸 구석 구석 이곳저곳을 지지면서 고문하여 피부 곳곳이 온전한 곳이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동대문 밖의 산에 내던져 버린 것이다. 그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도리는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자살 조차 할 수 없는 상태로 한참 동안 혼자 미약한 생명을 조금씩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발견되어 세상에 이 끔찍한 일을 알리게 된 것이었다
195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31:12.73 ID:Fs1bJ+NIsI+ 1427년 8월 20일. 거리에서 한 사나이가 알 수 없는 물건을 지고 가는 것이 발견 되었다. 그것은 사람과 비슷한 형상이었으나, 뼈와 가죽만 파리하게 붙은 처참한 모양이었다. 결국 그것은 덕금(德金)이라는 여자로 밝혀졌다. 덕금은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로 재직하고 있는 권채(權採)의 종으로, 권채와 그 일가족을 조사한 결과, 무서운 사실이 밝혀졌다.
권 채는 덕금을 사랑하여 첩으로 삼았는데, 권채의 아내 정씨(鄭氏)는 종인 덕금에게 강렬한 질투와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덕금은 덕금의 할머니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할머니를 찾아 뵈러 집을 잠시 떠날 것을 청했다. 하지만 평소에 덕금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정씨는 덕금이 그 할머니를 찾아가는 것을 허락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덕금은 병에 걸려 죽어가는 자신의 할머니 생각이 너무도 애틋하여, 허락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잠시 집을 떠나게 된다.
덕금이 사라지자 권채는 덕금을 찾게 되었고, 정씨는 권채에게 덕금이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간통하러 간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자 권채는 격렬하게 질투하고 분노하게 되어, 덕금이 돌아오자마자 덕금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고 몽둥이로 덕금을 마구 구타하였다. 권채는 덕금의 왼쪽 발에 족쇄를 채워서 외딴 방에 감금하였다. 이후, 권채 일가는 잔혹하고 변태적으로 덕금을 괴롭히게 된다.
196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31:32.80 ID:Fs1bJ+NIsI+ >>193 ㅋㅋㅋ 옛날부터 꾸준히 모아둔걸 올리는거니까.
197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31:57.39 ID:Fs1bJ+NIsI+ 장씨는 덕금을 바로 칼로 베어 죽이려 했는데, 또다른 여자종인 녹비(祿非)가 칼로 죽인 시신은 소문이 나기 쉽고 금새 누구인지 밝혀낼 수 있으니, 서서히 고문하면서 병들고 굶어 죽도록 하자는 제안을 한다. 장씨는 녹비의 제안을 받아 들여서 감금되어 있는 덕금을 그대로 굶어 죽이기로 한다. 장씨는 덕금이 덕금 자신의 배설물과 함께 비참한 모습으로 족쇄를 차고 방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고, 굶주린 덕금에게 그 오물을 먹으라고 지시한다. 덕금은 오물 사이의 구더기를 보고 질겁하여 격렬히 저항하였는데, 그러자, 장씨는 덕금의 가랑이 사이에 바늘을 찔러 넣으면서 덕금을 괴롭혀서 결국 덕금이 구더기와 오물을 먹게 만든다. 덕금은 그렇게 몇 달 동안이나 갇힌 채 매일 고문 받으면서 서서히 굶어 죽어 갔고, 마침내, 비참한 몰골의 굶어 죽은 시체가 되었다고 보고 걸레처럼 버려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덕금은 발견되던 순간까지 죽지 않은 상태였다. 제정신과 온전한 몸을 유지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부지해 살아 남아 있었던 것이다. 결국 조정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권채와 정씨, 그 밖에 권채 집안의 종들을 모두 조사했으며, 권채의 아내인 정씨가 주범으로 모든 죄의 벌을 받게 된다.
198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32:07.76 ID:Fs1bJ+NIsI+ 권채는 정씨에게 속았을 뿐이며, 덕금의 잔인한 처벌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지지를 얻어 권채는 이후에도 당당하게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실제로 권채는 유능한 학문적 재능을 보였으므로, 많은 저작을 남겼으며, 당시 조정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 받고 있었다. 몇 개월 동안 덕금에 대한 온갖 잔혹한 고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권채는 정말로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기 보다는, 태연자약하게 자신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교묘하게 처신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뛰어난 학식을 자랑한 고아한 양반이었던, 권채는 조선시대 최악으로 손꼽히는 감금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던 것이다. 세상 이치가 허망하게도 권채가 남긴 저작 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것은 인간의 예절과 도리에 대해서 사례를 든 책인 "삼강행실도"의 서문을 쓴 것이다. 덕금은 곧 사망했지만, 후에 권채가 쓴 "삼강행실도"는 우리나라 한문학의 걸작선을 모아 편집한 "동문선"에까지 등재 되어서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199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34:39.25 ID:Fs1bJ+NIsI+ -31 저주술
조선시대에 사람을 저주하는 주술을 시도하는 것은 매우 큰 범죄로 취급되었다. 따지고보면 한낱 허무맹랑한 헛수작에 지나지 않는것이지만, 우선 원칙적으로 국론으로 배척하고 있는 미신을 믿는 것이라는 점에서 죄가 크게 취급 되었다. 게다가 만약 성공하거나 실제로 저주가 위력을 발휘할 경우에는 전혀 원인을 알 수 없이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섭게 여겨졌다. 가장 흔한 저주 방법은 죽은 동물의 시체나 뼈를 저주하고 싶은 사람의 곁에 놓아두는 것이었으며, 그 방식은 주로 무당들이 개발하고 주선하였다. 특히 사람의 뼈나 시체가 효과가 좋은 것으로 소개하는 무당들이 많았으므로, 살인을 하거나 무덤을 파헤쳐서 은밀히 사람 시체를 구해주는 전문적인 업자들이 있기도 했다. 이런 업자들 중에는 1730년 체포된 김이건(金二建) 같은 인물이 유명했다.
저주와 관련된 사건들 중에는 장희빈등이 언급되는 궁중 내부의 저주 사건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가장 악명 높은 사건으로는 1730년 이만혁(李萬爀) 사건을 꼽을만하다.
200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34:52.41 ID:Fs1bJ+NIsI+ 이만혁(李萬爀)은 당진(唐津) 현감(縣監)을 맡고 있는 자였으나, 한 점쟁이가 주장하는 저주 이야기에 심취하게 된다. 이만혁은 자신이 잘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저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저주를 위해 땅에 묻을 특수한 시체를 얻기로 결심하였다. 점쟁이가 알려준 저주 방식을 위해서는 남자 한 사람과 여자 두 사람의 시체를 사용해야 했다. 우선 이만혁은 종이었던 남자 한 사람과 여자 두 사람을 붙잡아 모두 죽을 때까지 구타하여 목숨을 잃게 만들었다. 그리고, 저주를 하기 위해 제작된 쇠로된 조각을 세 구의 시체 입에다 끼워 넣었다. 그리고 가시가 박힌 가시나무를 시체에 박아 넣어 시체 셋이 가시나무에 꽂힌 모양이 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시체를 다리 근처에다가 거꾸로 묻어 놓은 것이다.
이만혁은 시체가 발견되면서 범행이 드러났고, 당진 일대 사람들이 끔찍하게 생각하여 수군거리게 되었다. 당진의 많은 사람들이 겁에 질리게 되면서, 소문이 퍼졌고, 이만혁은 그 처벌로 자리에서 쫓겨났다.
이얍 200!
201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37:40.03 ID:Fs1bJ+NIsI+ -32 조금 기묘한 유괴
조선시대에 정식으로 조정에서 논의된 사건 중에 가장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꼽는다면 1530년대를 무렵에 일어난 어린이에 대한 살인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531년 남대문에서 문안에서는 이상한 자루가 내던져진 채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자루를 열어보니 안에는 10살이 조금 넘은 여자아이가 목이 잘려서 자루속에 담겨 있었다.
발 견된 여자아이의 머리를 보면 귀고리를 한 모습이었다. 조정에서는 이 사건을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했다. 하지만 한성부 판윤 윤은보는 시체를 검사해 본 결과 살인하여 죽은 시체인 것 같지는 않다는 의견을 내세우면서 그냥 땅에 묻어 버릴까 말까 망설이면서 시간을 보냈고, 그러는 사이에 사건은 영원히 잊혀져 버렸다.
1533년 2월 17일. 감사로 재직하고 있던 김귀성(金貴成)의 집이자 무당의 집 뒤의 거리에 5~6세된 여자 어린아이 한 명이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 아이가 발이 잘린 상태였다는 것이다. 아이를 발견한 김귀성은 황급히 아이를 구조하여 관청에 보고했는데, 어린아이는 말을 할 수 있었으므로, 자신의 이름은 "개춘(開春)"이라고 했고, 자신의 오빠가 있는데 그 이름이 "어리가이(於里加伊)"라고 했다. 아이에게 발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그저 "칼로 내 발을 잘라내면서, 죽어라, 죽어라고 했어요"하고 대답했다.
202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37:51.09 ID:Fs1bJ+NIsI+ 조사를 진행하자 한덕(漢德)이라는 종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 한덕은 자신의 주인 집에 가다가 하반신에 동상이 걸린 아이를 발견했는데, 아이가 불쌍해 보이고 마침 자신에게 아이가 없기에 데려가서 보살폈다고 했다. 그러나 한덕의 주인이 더러운 아이를 집안에 들여 놓을 수 없으므로 쫓아내라고 하기에 다시 거리에 버렸다는 것이다. 한덕이 이후의 소식을 들어보니, 그 이웃 중에 궁궐 출신의 어느 집에서 데려갔다가 다시 버렸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그 후에는 김별좌(金別坐)의 종인 연수(連守)가 다시 데려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한덕은 아이가 발이 잘린 이유는 모른다고 말했다.
한편 조사 중에 중덕(仲德)이라는 종이 또다른 주장을 펼쳤다. 발견된 아이는 옥가이(玉加伊)라는 아이로, 바로 자신의 딸이라는 것이었다. 중덕은 지난해 9월 29일에 아이를 잃어버렸는데, 5개월 만에 문득 알 수 없는 아이가 발이 잘린 채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본 즉, 바로 자신의 딸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이 아이는 조사 과정에서 처음으로 아이와 관련된 것으로 밝혀졌던 한덕이 곁에서 보살펴 주고 있었다. 사건의 조사를 담당하던 한성부에서는 다시 한 번 아이에게 직접 도대체 누가 발을 자르며 죽이려 했는지 물었다. 그때 한덕이 아이에게 죽을 먹여주고 있었는데, 아이는 죽을 먹다 말고 죽을 먹여주고 있는 한덕을 바로 가리키면서, "이 여자가 내 발을 잘랐어요"하고 말했다. 아이는 자신이 발을 잘릴 때 털모자를 쓴 사람을 보았다는 말을 했으므로, 한성부에서는 아이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많은 사람들을 각기 털모자를 씌운 모습으로 아이에게 보여주면서 그 때 본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했으나, 아이는 여기에는 실패했다.
203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38:25.65 ID:Fs1bJ+NIsI+ 이후 의금부의 담당자들이었던 유보(柳溥)와 심언경(沈彦慶)이 직접 사건에 대해서 조사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아이에게 무엇으로 발을 잘렸는지 물었고, 아이는 "칼이요." 하고 답했다. 두 사람이 어디서 발을 잘렸는지 묻자 아이는 "방 안에서" 라고 답했다. 언제 발을 잘렸는지 묻자 아이는 "낮에"라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아이 앞에 한덕과 중덕 두 사람을 동시에 데려와서 누가 발을 잘랐는지 물었는데, 그러자 아이는 한덕을 가리키며 "이 사람이에요"하고 답했다. 아이는 "두 손을 묶고, 입을 솜으로 틀어막고 내 발을 잘랐어요"라고 답했다.
아이의 발을 자른 범인은 한덕으로 굳어지는 듯 했으나, 사람들 간에 몇가지 석연찮게 말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고, 무당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라든가, 아이가 동상에 걸려 있어서 발이 썩어서 떨어져 나갔을 가능성이라든가 하는 점들이 의심스러운 점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조정에서는 최고의 의원들에게 아이의 발이 잘린 자리를 관찰하게 하여 썩어서 발이 떨어져 나간 것인지 잘려 나간 것인지 조사하게 하기도 했으나, 어린아이의 말만으로는 큰 죄를 속단할 수 있는 증거로는 부족하다는 쪽으로 맺어졌다. 결국 이 사건은 아이의 말이 나이에 맞지 않게 일관되어 있고 정리정돈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영원히 묻혀 지게 되었다.
204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38:35.71 ID:gxSvQV3fH5Q 200레스 축하해ㅐㅐㅐ
205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39:08.66 ID:Fs1bJ+NIsI+ 이 사건을 계기로 어린아이를 잃어버리거나, 어린아이를 납치하여 산 속에서 몰래 살인해버리거나, 어린아이를 납치한 뒤에 몰래 종으로 삼아 노비로 기르는 사건들이 계속해서 나타난다는 점이 문제거리로 중요하게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 러나 이상한 사건들을 이후에도 벌어졌다. 1546년에는 아직 어린 여자와 두 세살 바기 아기의 시체가 서울 거리에 굴러다니는 것이 발견되었다. 시체는 온몸 이곳저곳이 불로 지진 참혹한 상태였고, 특히 아랫배와 배꼽 주위를 마구 지져 놓은 모양이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시체를 발견한 집에서 다른 곳으로 몰래 시체를 옮겨 놓았다는 정도가 더 조사되었을 뿐, 이후에도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206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40:59.78 ID:Fs1bJ+NIsI+ >>204 고마워요 오늘은 여기서 끝 다음에 오겠습니당.
207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6:42:27.05 ID:+UeA+9eE75o //gerecter.egloos.com/4438550
출처는 여기.
208 이름:이름없음 :2010/10/03(일) 17:48:17.98 ID:sDNdeJj4TuA 계속 보고 있어!!기다릴게
209 이름:이름없음 :2010/10/04(월) 15:45:18.45 ID:HqNqP9lW3lg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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