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월에 태자 해명이 옛 도읍(서기 3년에 고려는 졸본에서 국내로 천도하였다)에 있었는데 힘이 세고 무용을 좋아하였으므로 황룡국의 왕이 그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 강한 활을 선물로 주었다. 해명은 그 사신이 보는 앞에서 활을 당겨 부러뜨리며 “내가 힘 세기 때문이 아니라 활이 강하지 못한 탓이다.”고 말하였다. 황룡국왕이 그 말을 듣고 몹시 불쾌하게 생각했다. 왕도 그 말을 듣고 크게 화를 내더니 황룡국왕에게 “해명이 자식으로서 불효하니 과인을 위해서 그를 죽여 줄 것을 청합니다.”고 말하였다. 3월에 황룡국왕이 사신을 해명에게 보내 만나기를 청하였으므로, 태자가 가려고 하자 어떤 사람이 “지금 이웃나라가 이유없이 만나기를 청하니 그 저의가 의심스럽습니다.”고 하며 만류하였다. 태자는 “하늘이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는데 황룡국왕인들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 하고는 마침내 갔다. 황룡국왕이 처음 그를 죽이려 하였으나 그를 보고는 감히 해치지 못하고 예를 갖추어 보냈다.
214 이름:이름없음 :2010/10/10(일) 08:33:15.25 ID:bfC4+02NgEQ 009년 유리명왕(28년)
3월에 왕이 해명에게 사람을 보내어 “내가 천도한 것은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튼튼하게 하려는 것이다. 너는 나를 따르지 않고 힘 센 것을 믿고 이웃나라와 원한을 맺었으니, 자식된 도리가 이럴 수 있느냐?”고 하였다. 그리고 칼을 주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였다. 태자가 곧 자살하려고 하자 어느 사람이 말리며 “대왕의 맏아들이 이미 죽어 태자께서 마땅히 뒤를 이어야 하는데, 어찌 왕이 그런 태자에게 자살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의 숙임수 같습니다.”고 하였다. 그러나 태자는 “지난번 황룡국왕이 강한 활을 보냈을 때, 나는 그것이 우리 나라를 가볍게 본 것이라 생각하여 활을 당겨 부러뜨려서 보복한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지금 부왕께서 나를 불효하다고 하여 칼을 주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니 아버지의 명령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마침내 벌판으로 가서 창을 땅에 꼽고 말을 타고 달려 찔려 죽었다. 그때 나이가 21세였다.
215 이름:이름없음 :2010/10/10(일) 08:33:56.45 ID:bfC4+02NgEQ 032년 대무신왕(15년)
4월에 왕자 호동이 옥저로 놀러 갔을 때 낙랑왕 최리가 나왔다가 그를 보고서 묻기를 “그대의 안색을 보니 비상한 사람이구나. 어찌 북국 신왕의 아들이 아니겠는냐?” 하고는 마침내 함께 돌아와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후 에 호동은 귀국하여 몰래 사람을 보내 최씨 딸에게 말하였다. “만약 너의 나라의 무기고에 들어가 북과 뿔피리를 찢고 부수면 내가 예로써 맞이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거절할 것이다.” 이에 앞서 낙랑에는 북과 뿔피리가 있어서 적의 군사가 침입하면 저절로 울었으므로 명령을 내려 격파하였다. 이리하여 최씨 딸이 날 선 칼을 가지고 몰래 창고에 들어가 북과 뿔피리의 주둥이를 찢고 호동에게 알렸다.
호동은 왕에게 권하여 낙랑을 치게 하였다. 최리는 북과 뿔피리가 울리지 않았으므로 대비하지 않다가, 우리 군사가 갑자기 성 밑에 다다른 연후에 북과 뿔피리가 모두 부서진 것을 알고 마침내 딸을 죽이고는 나와서 항복하였다.
호동은 왕의 둘째 부인인 갈사왕의 손녀가 낳은 사람이다. 얼굴 모습이 아름다워 왕이 심히 사랑하여 호동이라고 이름지었다.
첫 째 왕비는 태자가 될까 염려하여 왕에게 “호동이 저를 예로써 대접하지 않으니 아마 저에게 음행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고 참언하였다. 왕은 “당신은 남의 아이라고 해서 미워하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왕비는 왕이 믿지 않는 것을 알고, 화가 장차 자신에게 미칠까 염려하여 울면서 “청컨대 대왕께서는 몰래 살펴주십시요. 만약 이런 일이 없다면 첩이 스스로 죄를 받겠습니다.”고 고하였다. 이리하여 왕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호동에게 죄주려 하였다.
어떤 사람이 호동에게 “당신은 왜 스스로 변명하지 않느냐?” 하고 물으니 호동이 대답하였다. “내가 만약 변명을 하면 이것은 어머니의 악함을 드러내어 왕께 근심을 끼치는 것이니, 어떻게 효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칼에 엎어져 죽었다.
216 이름:이름없음 :2010/10/10(일) 08:34:11.80 ID:bfC4+02NgEQ 이 사건에 대해서는 김부식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남겼다.
"이제 왕이 참소하는 말을 믿고 사랑하는 아들을 죄없이 죽였으니, 그가 어질지 못한 것은 족히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호동도 죄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꾸지람을 들을 때에는 마땅히 순이 고수에게 하듯이 하여, 회초리는 맞고 몽둥이면 달아나서, 아버지가 불의에 빠지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호동이 이렇게 할 줄 모르고 마땅하지 않은 데서 죽었으니, 작은 일을 삼가는 데 집착하여 대의에 어두웠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공자 신생에게 비유할 만하다."
상당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 아비를 자식을 죽인 죄인으로 만드는 것은 효도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죽으라는 아비의 명령은 따르지 않는 것이 바로 효도다.
그 런데 호동의 자살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배신이다. 자신에게 딸을 시집보내며 호의를 베풀어준 낙랑국왕을 배신한 행위나 자신을 사랑하던 낙랑공주를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는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매우 추하다. 그의 얼굴은 아름다웠다고 하는데 마음은 그렇지 못했던거 같다.
217 이름:이름없음 :2010/10/10(일) 08:36:09.51 ID:bfC4+02NgEQ -34 조금은 이상한 이야기.
이래저래 말들이 많은 부분입니다. 중국에서는 고려를 신라,왜,백제에 비해
나쁘게 평가하고 있는 글이 많습니다. 그 예를 보겟습니다
약간 신기한 이야기.
218 이름:이름없음 :2010/10/10(일) 08:36:24.87 ID:bfC4+02NgEQ 0554 위서(魏書 北齊·魏收) 列傳
其俗淫,好歌舞,夜則男女群聚而戲,無貴賤之節,然潔淨自喜。其王好治宮室。
그 풍속은 음란하다. 노래와 춤을 좋아한다. 밤이 되면 사내와 계집이 무리로 모여 즐기는데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 깨끗하면 스스로 좋아한다. 임금은 궁궐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0636 양서(梁書 唐·姚思廉) 列傳 諸夷
人性凶急,喜寇抄。
사람들은 성품이 흉악하고 급해 훔치거나 노략질하는 것을 좋아한다.
0659 남사(南史 唐·李延壽) 列傳 夷貊下
人性凶急,喜寇鈔。
사람들은 성품이 흉악하고 급해 훔치거나 노략질하는 것을 좋아한다.
0945 구당서(舊唐書 後晉·劉昫等) 東夷
其俗多淫祀,事靈星神、日神、可汗神、箕子神。
풍속은 음란하고 제사를 지내는 일이 많아 영성신, 일신, 가한신 그리고 기자신을 섬긴다.
1060 신당서(新唐書 宋·歐陽修、宋祁) 東夷
俗多淫祠,禮靈星及日、箕子、可汗等神。
풍속은 음란하고 제사가 많아 영성 및 해, 기자 그리고 가한 등의 신에게 제사를 올린다.
219 이름:이름없음 :2010/10/10(일) 08:36:44.47 ID:bfC4+02NgEQ '음란'하다는 의미가 어떻게 쓰였길래.. 잔뜩..
220 이름:이름없음 :2010/10/10(일) 08:39:54.89 ID:bfC4+02NgEQ 오늘도 짧게 마치겠습니다. 언제 돌아올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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