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가까워졌을 즈음, 우리는 친한 친구 다섯명이서 바다에 여행을 가는 계획을 세웠다.
이것저것 계획을 세우다가, 이왕 할 거면 바닷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자는 의견이 나오게 되었다.
사정이 있어서 도저히 방학동안 시간을 못 만든 둘을 빼고, 방학동안 특별한 계획이 없었던 A와 B, 나까지 세 명이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하였다.
우리 셋이서 바다근처의 여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머지 두명이 우리가 일하는 곳에 며칠 묵으러 오면 되겠다며 대충 계획을 세웠다.
*주: 일본의 여관은 한국과 달리 호텔급의 고급 숙박시설이다.
일할 곳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자, 곧 성수기 철이라 그런지 꽤 많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모집 하고 있었고, 친구들끼리 같이 와도 좋다는 곳도 많았다.
우리는 여관에서 일을 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너무 규모가 크지 않고, 그냥 보기에 깨끗해 보이는 곳으로 골랐다.
그렇다, 그냥 만만 해 보이는 곳으로 골랐다.
게다가, 그 여관의 근처 바닷가는 그 동네에서 헌팅의 명소로 꼽힌다는 스페셜 옵션까지 따라 왔다.
절대 먼저 헌팅의 명소를 찾고, 그 바닷가 근처의 여관에 검색 된 여관이 저 여관이었기 때문에 고른 것이 아니다...
...맞다...
여관에 전화를 걸어서 아르바이트 모집 하는 광고를 보았다고 신청을 하자, 흔쾌히 3명 다 꼭 와 달라고 하였고, 내가 중간에 친구들이 오기 때문에 이틀정도 일을 빼 달라고 부탁을 하자,
"그만큼 열심히 일 해야 한다."
라는 말뿐, 별다른 조건없이 정말 시원시원하게 일이 진행 되었다.
얼마 후, 방학이 시작하고, 어영부영 지내다 보니 아르바이트가 시작 하는 날이 되었다.
우리는 타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뭔가 모를 긴장감과 기대감으로 한껏 가슴을 부풀어 올라 있었고, 여행하는 기분으로 기차를 몇 번 갈아타고, 버스를 두어번 갈아타자, 한달남짓여 동안 먹고 자면서 일을 할 여관이 보였다.
'여관' 이라기 보다는 '민박' 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릴만한 집이었다.
하지만 사진보다 조금 허름할 뿐, 꽤 큰 2층짜리 건물이었고, 우리는 그 평범한 시골 가정집같은 분위기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열려있던 현관을 열고 조심스레
"실례합니다. 오늘부터 일 할 아르바이트생입니다."
라고 말하자, 곧 우리 또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나와서, 미소를 가득담은 얼굴로 반겨 주었다.
벌써부터, 머나먼 객지까지 일하러 오기를 잘했다 라는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왔다.
소녀는 여관에는 객실이 4개, 식사할때 쓰는 넓은 연회실 가운데에 하나, 종업원용 방이 2개로 총7개의 방이 있다는 설명을 하면서, 우리를 연회실로 안내 해 주었다.
소녀는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였고 곧 시원한 보리차 세잔을 가져다 주었다.
시골에 사는 여자애 특유의 풋풋한 매력을 가진 이 소녀는 자신을 '미사키' 라고 소개했다.
미사키의 소개가 끝나고 조금 뻘쭘한 분위기가 흐를때쯤, 젊었을때는 꽤 아름다웠을 얼굴을 한 붙임성 좋게 생긴 아주머니가 들어왔고, 자신이 이 여관의 여주인 '마키코' 라고 소개했다.
여기에는 없지만 마키코 아주머니의 남편과 우리까지 총6명이 힘을 합쳐 일을 할 것이라며, 아르바이트 기간동안 잘 부탁한다고 하였다.
어느 정도 자기소개가 끝나고, 마키코 아주머니는 객실은 연회실을 나가서 복도를 오른쪽으로 가면 두 개씩 복도 양쪽에 있는데, 우리가 잘 방은 왼쪽 복도 끝에 있는 종업원용 방이라며, 가서 짐 정리도 하면서 조금 쉬라고 하였다.
...음?
"2층은 안 쓰세요?"
짐을 들고 나가던 중에 내가 물었다.
"응, 2층은 지금 안 쓰고 있어."
아주머니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하였고 아직 성수기가 아니라서 닫아둔 모양이라고 멋대로 생각하곤 방을 나왔다.
우리가 묵을 방으로 와서, 짐을 풀고 창 밖의 풍경을 보자 정말 기분이 편안해졌다.
앞으로 펼쳐질 한여름의 모험을 기대하면서 그날이 지났다.
그렇게 우리의 아르바이트 생활이 시작 되었다.
처음 배우는 일을 하루종일 하다보니 실수한 일도 힘든일도 무지 많았지만, 미사키와 아주머니, 아저씨까지 우리에게 너무 잘 해주니 힘든 줄을 몰랐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어느날...
일을 끝내고 마루에 앉아서 우리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야, 금방 있으면 사람들이 몰려 들텐데, 일도 많아지겠지? 2층도 개방 하려나?"
A가 말했다.
"안할껄? 2층이 주인집 아니야?"
당연한걸 묻냐는 투로 B가 말했다.
A와 나는 금시초문 이었기 때문에 몹시 놀라며 니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되물었고, B는 그것도 모르고 일주일이나 일을 하고 있었냐는듯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면서 대답했다.
"아니, 아주머니가 매일 쟁반위에 밥 차려서 2층으로 가지고 올라가잖아. 한번도 못 봤냐?"
A와 나는 동시에 "응" 이라고 대답했다.
B는 일을 할때는 바보같이 한구멍만 파지 말고 주위도 좀 둘러보면서 하라며 핀잔을 주었고, 우리는 그런가? 하고 생각하면서 넘어갔다.
여하튼, 2층에 관해 이상한 일이 더 있으면 서로 보고 하기로 하고는 곧 그런 이야기를 한 사실조차도 잊어버렸다.
다음날.
B가 급히 우리를 불렀다.
우리는 할말이 있으면 지가 올 것이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B의 '뭔가 재밌는 일을 숨기고 있는 얼굴' 에 못 이겨서 B가 있는 마당으로 나갔다.
"어제 아주머니가 밥 차려서 2층에 올라간다는 이야기 했잖아? 그래서 오늘은 내가 끝까지 지켜봤거든. 항상 아주머니가 계단으로 들어가는것만 보고 말았지만, 이번엔 다시 내려올때까지 기다려 봤어."
B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참고로, 이 여관은 건물이 약간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집 안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없고, 일단 현관을 통해서 밖으로 나온 다음에, 건물 옆으로 돌아가서 작은 문을 열면 그 안에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이 있는 구조였다.
설명이 복잡하다면 미안할뿐, 알아서 이해해 주길 바란다.
물론 우리는 그 문 안쪽이나 계단을 본적은 없지만, B는 그날 계단이 있는 그 문이 보이는 곳에 숨어서 지켜보았던 모양이었다.
"올라가더니 5분정도 되니까 내려오던데?"
B의 너무나도 담백한 대답에 약간 김이 샜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항상 우리랑 같이 밥 먹잖아? 그런데도 쟁반에 밥을 가지고 2층으로 간다는건 2층에 누군가 살고 있다는 뜻 아니야?"
우리가 김이 새든 말든, B는 쉬지않고 이야기를 계속했고 우리도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다.
"이상하긴 해도, 아픈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
A가 말했다.
"응,응.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5분만에 밥을 다 먹는다는건 꽤 건강한거 아니야? 뭐... 이상한 일 있으면 서로 보고 하기로 했으니까 난 지금 보고 한거고."
왠지 잘난척 하는듯한 B에게 약간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그날 B가 본건 조금 이상한것 같기도 했다.
2층엔 뭐가 있는걸까...
그 다음날, 최대한 일을 빨리 끝낸 우리 셋은, 약간 늦은 오후쯤 현관 앞에 모였다.
역시 호기심 이라는것은 인간에게 있어 활력소가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간판 뒤에 숨어서 아주머니가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
잠시후, 쟁반에 밥을 가지고 나오는 주인아주머니가 보였고, 아니나 다를까 현관을 나와서 건물 옆쪽으로 걸어가더니, 건물 측면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사라졌다.
B의 말처럼, 5분쯤 있으니 아주머니는 빈 그릇을 쟁반위에 가지고 내려왔고, 우리를 못 본채로 현관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빠르네. 도대체 누가 있는걸까?" A가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몰라, 보러 갈래?"
B가 혹시라도 아주머니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면서 현관쪽을 살피며 말했다.
"난 좀 무서운데..."
"응...나도..."
나는 A와 B의 전혀 남자답지 못한 한심한 대화를 못 들은척 하고, 둘의 팔을 잡아 끌으면서 말했다.
"우선 가 보자!"
못이긴척 끌려온 A와 B까지 우리셋은 낡은 문 앞까지 와서 문을 둘러싸고 서 있었다.
A와 B는 문에 손을 댈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분위기라서, 내가 문 손잡이를 잡았다.
혹시 잠겨있진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손잡이를 돌렸는데, 당연하다는듯이 손잡이가 돌아갔다.
낡은 문이 열리는 특유의 기분나쁜 소리와 함께 계단으로 통하는 문이 수 센치 정도 열렸다.
"욱!!"
열린 사이로 계단쪽을 살펴보던 B는 갑자기 코를 잡고 문에서 멀어졌다.
"냄새 안나냐?"
이상하다는듯 쳐다보는 우리에게 B가 말했다.
A와 나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는데, 유독 B만이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 하는것 같았다.
"너, 우리 겁주려고 일부러 그러는거지?"
A가 약간 짜증을 내면서 B에게 핀잔을 주었다.
"아니, 진짜 냄새난다니까? 문좀 더 열어봐." B는 정색을 하며 억울하다는듯이 말했다.
나는 살짝 무서운 감도 없잖아 있었지만, 눈을 딱 감고 문을 확 열었다.
약간의 먼지가 일어났고 바깥과 약간 다른 온도의 공기가 퍼져 나오는것 같았다.
"먼지 냄새밖에 안 나잖아!"
나는 B를 째려보며 말했고, B는 정말이라며, 아까는 진짜 뭔가가 썩은 냄새가 났었다고 끝까지 잡아 뗐다.
우리가 아니라고 우길 수도 없는 일이라, 그냥 넘어가고 계단 속에 집중했다.
몹시 좁은 계단.
성인 남자 어깨넓이 보다 약간 넓어보이는 넓이에 계단 양쪽은 벽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사람 한명이 겨우 오르내릴만한 넓이였다.
전깃불 같은것도 보이지 않았고, 밖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겨우 계단 위쪽까지 보이는 정도 였다.
계단 끝에는 1미터 남짓해 보이는 공간이 있는것 같았고, 그 끝에 문이 하나 붙어 있었다.
"이거 올라가더라도 한명 밖에 못 올라가겠네."
내가 말했다.
"아니지, 아니지, 안올라갈꺼야!"
"절대 안가!"
A와 B는 동시에 팔을 휘휘 내 저었다.
"니들이 그럼 그렇지. 그럼 내가 갈게." 나는 둘을 한심하다는듯이 쳐다보면서 말했다.
마치 복사해서 붙여넣은것 처럼 둘이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A와 B를 향해 말을 계속했다.
"응, 나 이런거 한번 호기심 생기면 잠이 안 오거든. 결국 못자서 밤중에 혼자서 와 버리는 타입이야. 밤에 오느니, 니들이라도 있을때 지금 갔다 와 버리지 뭐."
말도 안되는 이유였지만, 그때는 아직 공포심보다는 호기심이 더 앞섰고, A와 B에게 혹시 나한테 무슨일이 생기거나 했을때는 절대 나만 놔두고 도망가거나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리고 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바깥의 빛에만 의지 하는 지라, 안쪽은 생각보다 어두컴컴 했고, 한발짝 한발짝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끼익...끼익...
낡은 나무에서 나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걸을때마다 양쪽 어깨에 닿는, 나를 감싸고 있는 좁디 좁은 벽도 기분나빴다.
반이 넘게 올라서 계단 위쪽이 보일락 말락 할때쯤, 갑자기 뭔지 모를 공포감에 휩쌓여 뒤를 돌아보았다.
A와 B는 이쪽을 보고 있었고, 엄지손가락을 올리고 있었다.
'이상무' 라는 의미인것 같았다.
나는 약간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빠지직...빠지직...
끼익 거리는 소리는 언젠가부터 오래된 나무가 썩어서 바스러지는 소리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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