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이 깜깜해져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B 어디있냐 라고 불러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멈춰서 있자, 이번엔 A가 내 손을 잡아 끌었다.
A는 손이 벽에 닿자 그대로 벽을따라서 걷기 시작했고, 구석이 나오면 또 그 벽을따라 걸었다.
그렇게 하던중, A가 걸음을 멈추더니 내 팔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는 그 손으로 부들부들 떨고있는 사람의 감촉을 느끼게 해 주었다.
B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이건 정말 B일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잘 생각해 보면 A도 그랬다.
'계속 옆에 있었지만, 아까부터 내 팔을 잡고 있었던건 정말 A일까?'
그렇게 내가 반쯤 패닉상태에 접어들고 있을대, A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따라가보니, 정말 조금이지만, 벽이 살짝 뜯어진곳을 손으로 젖혀서 뜯어내자, 틈이 있었고 그곳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을 보고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구원을 받은 기분이었다.
조금이나마 빛이 들어오자 희믜하게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A는 반대편 손으로 B의 팔을 잡고 있었고, 희미하게 보인 B의 얼굴은 땀과 눈물로 방금 폭우를 맞은 사람처럼 심하게 젖어있었다.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들었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주위는 거짓말처럼 고요햇고, 먼 곳에서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한참을 그 달빛 아래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남자끼리라서 약간 창피하지만 우리는 셋이서 손을 맞잡고 둥글게 앉아 있기로 하였다.
그렇게 있는가 가장 안심이 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그 약간의 달빛이 서로가 그곳에 있다는걸 보여주었기 때문에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안정되었다.
그렇게 한참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A가 용변이 마려운 모양이었다.
스님에게 받은 포대를 들고 조심스럽게 일어나는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우리와 약간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고는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A의 소변보는 소리를 듣고 뭔가 긴장이 풀리면서 B와 나는 마주보고 씨익 웃기까지 했다.
그때였다.
"B야 거기있어?"
한참을 인간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던 우리는, 갑자기 문쪽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온 몸에서 핏기가 가시는걸 느꼈다.
미사키의 목소리엿다.
"주먹밥 만들어 왔어."
이쪽의 정황을 살피는 듯이, 조심스럽게 물어오는것 같았다.
스님이 아침까지 아무도 이곳에 올 사람은 없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전에, 우리는 미사키가 아니란걸 확신했다.
적막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인간미는 전혀 없고, 전화의 자동음성시스템같은 맹목적인 단어의 나열일 뿐이었다.
B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
한참을 침묵하더니, 돌연 고장난 레코드처럼 무의미한 반복만이 있었다.
"주먹밥 만들어왔어."
"어서오세요!"
"주먹밥 만들어왔어."
"어서오세요!"
"B야. 거기 있어?"
"어서오세요!"
"B야. 거기 있어?"
"B야. 거기 있어?"
"어서오세요!"
"주먹밥 만들어 왓어."
내가 잘 아는 사람의 목소리가 생기없는 톤으로 맹목적인 반복을 하자, 미쳐버릴것만 같았다.
무서웠다.
그렇게 귀엽기만 하던 미사키의 목소리가 뇌를 녹여버리는것 같은 기분이였다.
절대로 미사키가 아니었다.
어느샌가 A는 우리의 곁으로 돌아와서 나와 B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팔이 저릴정도로 꽉 잡고 있는걸 보니 A에게도 미사키의 목소리가 들리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꽉 잡은채로 별당의 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새에도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B야. 거기 있어?"
"어서 오세요."
"주먹밥 만들어 왔어."
그리고는 별당의 나무 문짝이 덜그럭 덜그럭 소리를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문 건너편에 있는 '그것'은 지금 문을 열려고 하는걸까.
나는 혹시라도 문이 열리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고민했다.
'전속력으로 도망가자. 스님은 본당에 있는다고 했으니, 본당까지 도망가서... 아니, 본당은 또 어딘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문으로는 도망을 못 갈텐데, 일단은 방구석에 숨어 있어야 하나?'
도망을 가야한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갑자기...
쾅!!!!!!!!!쾅!!!!!!!!!쾅!!!!!!!!!!
"B야, 거기 있어?"
쾅!!!!!!!!!쾅!!!!!!!!!쾅!!!!!!!!!!
"어서오세요!"
쾅!!!!!!!!!쾅!!!!!!!!!쾅!!!!!!!!!!
"주먹밥 만들어 왔어."
쾅!!!!!!!!!쾅!!!!!!!!!쾅!!!!!!!!!!
문밖의 '그것'은 아예 몸으로 문을 들이받고 있는것 같았다.
그 '맹목적인 소리'를 계속 내면서,
금방이라도 부서질것만 같은 비루한 나무 문짝은 다행히 열리지 않았고, '그것'은 몸으로 문을
부수려는 시도를 멈췄다.
하지만 몇초 후, 약간 왼쪽으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이번엔 벽에 몸을 부딪히기 시작했다.
몇번 부딪히고는, 또 한번 쉬었다가, 또 조금 이동하고, 또 부딪히고... 그것을 계속 반복했다.
'뭘 하는걸까...'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나는 곧 깨달았다.
우리가 있는 벽의 틈... '그것'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또 구토가 나올것만 같았다.
'혹시 틈새로 '그것'이 우리를 볼 수 있다면...?'
'혹시 틈새로 우리가 '그것'을 봐 버린다면...?'
그렇게 생각하니 안절부절 못하다가, 우리는 어느샌가 별당의 중앙까지 옮겨왔다.
'그것'은 이동하고 있었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내 심장소리 조차도 시끄럽다고 생각했다.
'그것'에게 들키면 안된다!
아니, 이곳에 있는건 이미 알고 있는지도!?
나는 공포로 턱이 떨려서 이빨이 부딪히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빨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아까 우리가 있었던 벽쪽에서 '그것'의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쪽을 봐 버렸다.
눈이 어둠에 적응이 되어서 인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버려서 인지, 그 좁은 틈새로도 바깥이 보였고, 나는 '그것'을 보았다.
새카만 얼굴에, 흰자 밖에 보이지 않는 가늘게 찢어진 눈
그리고, 몸을 부딪혀서 난다고 생각했던 그 소리는, '그것'이 머리로 들이 받고 있었던 소리였다.
천천히 머리를 한껏 뒤로 젖히고.. 엄청난 힘으로 벽을 들이 받고 있었다.
부딪히는 순간에도 뜬채로 있는 그 흰자에서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가위에 눌린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입에서 위장에서 넘어왔을 위액의 쓴내가 났다.
그런 힘으로 머리를 들이 받으면서도 '그것'은 담담하게 미사키의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곧 또 왼쪽으로 이동해서 그짓을 반복했다.
틈새에서 사라진 후에도 그것의 잔상이 계속 선명하게 눈앞에 보였다.
그 후에도 '그것'이 얼마동안 거기에 있었는지는 모른다.
나는 잔상과 현실의 구별이 가지 않았고 몸은 굳은채로 눈도 깜빡하지 못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
그것'이 사라지고 난 후 A가 다시 빛이 있던 곳으로 가려고 나를 끌었을때, 내가 죽어 버린줄로 착각할 정도로 몸이 경직 해 있었고, B는 B대로 이를 악물다 못해 잇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한다.
A는 역시 소리만 들렸고, '그것'의 모습은 보질 못한것 같았다.
'그것'덕분에 우리의 긴장의 끈은 끊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긴장의 막을 친 몸은 따라오질 못했고, 우리는 고개를 떨구고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B의 바지에는 소변이 흘러 나오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게 밤이 길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내가 본것과 들은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잊지 못할것 같았다.
별당 벽의 자잘한 틈새까지도 광선과 같은 빛이 새어 들어왔고, 아침이 온것을 알았다.
새의 울음소리가 심장을 쑤시는것 같았다.
이곳에서 나가서 앞으로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침이 왔지만, 셋중에 단 한명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겨우 정신줄을 잡고 앉아 있었더니,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아침햇살과 함께 문앞에 스님이 서 있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스님이 말했다.
그때 스님의 눈은 평생 잊지 못할정도로 따뜻한 눈이었다.
나는 긴장의 끈이 풀렸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스님은 땀과 오줌범벅이 된 우리를 하나하나 껴안아 주었고, 스님의 법복에서 나는 은은한 향내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다른 젊은 스님들의 부축을 받아서, 어제 올라왔던 돌계단을 내려갔고, 어제 보았던 큰 절이 보였다.
절 안에서 비명소리인지 가축을 잡는 소리인지 분간이 안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스님을 처음 만났던 그 집에 도착해서 현관에 들어갈때 A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아까 그 비명소리, 여관 아주머니 목소리 아니야?"
설마하고 생각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여자의 비명소리 같기도 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것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눈과 눈 사이에 점이 있던 그 여자가 옷과 수건을 가져왔고, 매우 불쾌하단 표정으로 씻으라고 했다.
욕실은 크지 않았지만, 우리는 셋이 함께 씻었다.
갑자기 혼자가 되는게 무서웠다
씻고 나오자, 이불이 퍼져 있었다.
"우선 잠을 좀 청하세요."
스님이 말했다.
우리는 대답할 겨를도 없이 누웠고, 그대로 기절한듯이 잠이 들었다.
잠이 들면서 잠시 생각을 했다.
별당을 나오면서 나는 B에게 물었었다.
"B, 이젠 안보이지?"
"응, 이젠 안보인다... 살았다..."
B는 안도하며 확실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렇다.
우리는 살아남았다.
잠에서 깬 우리는 스님에게 모든것을 들었다.
내가 본것, B가 본것, A가 들은것이 무엇인지를 듣고, 우리는 그곳에서 도망칠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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