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는, 당연하게도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아케미 쨩이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나는 한심한 소리를 지르며 땅바닥에 주저 앉았다.
아케미쨩은 그 모습이 재미있었던 듯 나를 내려다보며 쿡쿡 웃었다.
그녀의 웃는 얼굴이 너무나도 예뻐서 오히려 더 쓸데없이 오싹했다.
한심한 꼴로 주저 앉아있는 주제에 나는 짐짓 강한 척 말했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어떻게 따라온거야!!!"
"왜냐면 OO군 바지 주머니 안에 내가 들어있거든. 그러니까 아케미는 어디있는지 다 알아."


아케미쨩은 쿡쿡 웃으며 말했다.
무슨소리야....미친거 아냐?
나는 이제까지 흔히 말하는 [미치광이]를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 나를 내려다 보며 아케미쨩은 말했다.


"엉덩이 쪽 주머니에 들어있어."


거스르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조심조심 허리를 들어 주머니 안을 확인했다.
그러자 가느다랗고 긴 것이 손에 잡혔다.
건전지인가?
꺼내어 가로등의 어슴프레한 불빛 아래 비춰본 그것은 사람 손가락처럼 보였다.


"아아아아아아악!!!!!!!!!!!!!!!!!!!!!!!!!!!!"



나는 또 한심한 비명을 지르며 그 것을 땅에 집어 던졌다.
던져버리고 깨닫긴 했지만 만져본 감촉으로 미루어 봤을때 그것은 사람의 손이 아닌 마네킹 손가락이었다.
아케미쨩은 빙그레 웃으며 손가락을 주워 내 주머니에 다시 넣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다시 [나]를 버리면 죽여버릴거야."


나는 무슨말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사건에 머리가 백지장이 되어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이 사람은 정상이 아니야. 빨리 뭐라도 하지 않으면 난 죽을거야.
하지만 머릿속은 패닉 상태 그 자체였고 터무니 없는 이 상황에서 도저히 냉정하게 사고하기가 어려웠다.


"이런데서 이야기하지 말고 OO군네 집에 가자."


아케미쨩은 내 팔을 한손으로 잡고 일으켰다.
일단 말해두지만 내 키는 175cm에 몸무게는 72kg이다.
여자아이가 한손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을만한 체형이 아닌 것이다.
도저히 10대 소녀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무서운 힘이었다.


아케미쨩은 어안이 벙벙해 있는 나를 끌고 내 아파트가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미 내가 사는 곳까지 파악한 모양이었다.




일전에 전차 안에서 들었던 그 딸깍 딸깍하는 플라스틱같이 가볍고 딱딱한 것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딸깍거리는 소리는 분명 아케미쨩이 걸을때마다 나는 소리였다.
기쁜 듯 방싯방싯 웃는 아케미쨩은 내 팔을 꽉 잡고 도무지 놔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집에 도착할때까지 어떻게든 이 장소를 벗어날 방도가 없을까 머리를 쥐어짰다.
그닥 좋은 방법도 딱히 생각나지 않았고, 말그대로 [괴력녀]인 아케미쨩을 뿌리치는 일 따위는 불가능했다.
나는 별다른 해결책도 없이 어느덧 집에 도착했다.













아케미쨩은 내 방을 즐거운 듯 물색하기 시작했다.


"남자애 방이라 그런지 역시 지저분하네."


그녀는 내 방을 구경했지만 나는 내정신이 아니었다.
지금은 기분이 좋은 것같았지만 언제 또 빈정이 상해서 돌변한지 몰랐다.
상대방은 정신병자인 것이다.
또 그녀를 화나게 하면 아마 나는 죽을지도 몰라.


"방 어질러져있으니까 아케미가 정리해줄게."


이 상황만 두고 보면 꿈의 시츄에이션이다.
사귄지 얼마 안된 여자친구를 처음으로 내 방에 초대한 것 같은 상황.
하지만 내 방에 있는 것은 커다란 중화용 칼을 가방속에 숨기고 있는 미치광이고, 나는 그 미치광이에게 포획된 가련한 먹잇감일 뿐이다.














아케미쨩은 딸깍 딸깍 소리를 내며 방 구석부터 무작위로 쌓아둔 잡지와 교과서, 만화책들을 종류별로 나누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방해가 된다는 듯 머리카락을 대충 그러모아 쓸어올렸다.

그 때 나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보았다.
묶어서 드러난 아케미쨩의 목에 희미한 선이 있었다.

그 선은 목 뒤에 까지 이어져 딱 목덜미 정 중앙 부분에서 뚜렷해졌다.
마치 [제대로 닫혀지지 않은] 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아케미쨩이 움직일 때마다 그 덜 잠긴 것 같은 부분에서 딸깍 딸깍 소리가 났다.
순간적으로 아케미쨩의 목덜미에서 [이음새] 비슷한 것이 보였다.


뭐지? 내 눈앞에 있는 이 존재는?
나는 아케미쨩을 그저 미치광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인간이 아닌 그 무언가 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대해 고려하기 시작했다.


아케미쨩은 내가 그녀의 목덜미를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인지 "부끄럽잖아." 하고 수줍게 웃더니 다시금 방 정리를 시작했다.

그때, 선반 위에 올려두었던 교과서와 사전들이 아케미쨩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아야!!!!"


퍽하는 소리가 난 후 아케미쨩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머쓱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 모습이 이상했다.

목덜미의 선이 확연하게 돌아가서 어긋나있었다.
아케미쨩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목을 원래대로 돌리고 책과 잡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완전 패닉상태였다.


저것은 뭐지.
내가 지금 뭘본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