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안녕, 비냄새가 너무 강렬해서 쉽게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밤이야. 한 두편씩 주변에서 들은 무서운 이야기들을 타이핑해서 올려보면
재밌을 것 같아서 이렇게 글을 쓴다.

오늘 이야기는 내가 겪었던 이야기다. 거짓말이라고 할 사람들도 있고, 비웃을 사람들도 있겠지만 용기를 내어 글을 써본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탄다. 오늘 날씨 굉장히 좋았지? 다들 덥다고 겉옷을 벗고 다니는데도 난 추웠다. 아무래도 난 한국에 걸맞는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좀 더 열대우림같은 곳에서 살도록 설계된 걸지도 모르지.
그런데, 이렇게 추운 날에도 난 주머니 속에 손을 넣는 것을 꺼린다. 왜냐고? 생각해 봐.
겨울 옷에 달린 주머니 안에는 대게 동전이나 열쇠, 지갑, 카드나 라이터, 혹은 다른 잡다한 것들이 가득 들어있기 마련이야.
그래서 그것들 중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는 오직 주머니 안에 손을 넣고 손 끝의 감각에 의지해서 찾을 수밖에 없지.

상상이 됐지? 힘들다면 당장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어 봐. 자, 조금 더 상상을 넓혀보자.


그 주머니 안에 혹시 네가 모르는 어떤 것이 들어있던 적은 없었어?
 예를 들어서 옷이 해진 틈새에서 비져나온 머리카락이나 실뭉치, 이상한 솜덩어리같은 잡다한 것들 말이야. 주머니 안에 손을 넣고서 이리저리 헤집다가 어, 이건 뭐지? 하는 게 있던 적은 없어? 영수증이나 종이같은 어떤 것이 쑤셔박혀져 있던 적은?


2년 전 쯤의 무시무시하게 추운 겨울이었다. 나는 그 무렵에 두꺼운 반코트를 입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것은 오직 주머니가 많아서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당시 지갑이 없었던 나는 항상 영수증이며 종이 쪼가리나 열쇠, 작은 인형 같은 것들을 주머니 속에 잔뜩 쑤셔넣고 다녔기에
그 반코트의 주머니가 크고 많다는 것은 나에게 커다란 매력으로 작용했다. 물론 따뜻했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래서 나는 가방도 필요없이 핸드폰과 카드들을 모조리 코트주머니와 안주머니에 넣고 아르바이트를 가곤 했다.

그 당시 나는 (현재는 w 호텔로 바뀐) 코엑스의 c 호텔에서 장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호텔 알바라서 언제나 옷에 음식물이 많이 묻고 짬냄새가 배곤 했다.
원래 옷을 험하게 입는 나였지만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거의 한 시간 정도를 전철을 타고 가야 했었는데, 알 사람은 알겠지만
삼성동의 전철은 사람은 무시무시하게 많이 탄다. 특히 돈과 노력으로 자기 자신을 포장한 잘 꾸민 여자들이 전철 안에서 날 흘끔거리는 것을
견디는 것은 아직 정신이 덜 여문 나에게는 크나큰 고통이었다. 
결국 매일 그런 꼴을 견디다 못한 나는 호텔의 샤워장 옆에 있는 사물함을 돈을 내고 빌려서 그 안에 코트를 걸어두게 되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다가 나는 내 사물함의 문이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없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어쩐지 찝찝해서 나는 평소보다 빨리 옷을 챙겨입고 코트를 걸치고 호텔의 주차장으로 빠져나왔다.
 아무생각 없이 주머니 속에 두 손을 쑤셔넣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그날따라 어쩐지 등골이 쌔했다. 꼭 등골에 버석거리는 얼음물을 뿌린 것처럼,
아니면 혈관 속에 얼음조각이 꽉 막혀서 피가 흐르는 것을 방해하기라도 하는 듯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하고
 손 끝에서부터 피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날씨가 춥구나, 생각한 나는 부르르 떨면서 집으로 향했다. 밤 11시 쯤이던가, 집 앞 계단을 올라가는데,
평소에는 불이 환히 켜지던 계단에 불이 하나도 켜지지않아서 나는 기분이 점점 더 안좋아졌다. 
집주인한테 말해서 전구를 갈아달라고 해야겠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보이네.... 투덜거리며 집 대문 앞에 도착한 나는
손을 주머니 안에 넣어 열쇠를 찾아 더듬거렸다. 주머니 안이 이상하게 차갑고 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바로 눈 앞의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었고 핸드폰으로 불을 켜서 주머니 안을 뒤져 볼 생각도 하지 않았기에
나는 한참을 주머니 속을 더듬거리다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물건이 손 끝에 걸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어쩐지 살갗에 달라붙는 느낌이었는데 매우 싸늘하고 이상하게 축축했다.
나는 엄지와 검지로 그것을 붙잡아 만지작거려 보았다. 납작한 반들반들한 부분이 느껴지고 기분나쁘게 물컹거린다.
 순간 이거 지우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딘가 느낌이 이상했다. 지우개라고 하기엔 너무...
아니, 지우개의 느낌이 아니었다. 지우개를 주머니 안에 넣었던 기억도 없었고. 이거 뭐지?
나는 조금 꺼림칙한 것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별 생각없이 그것을 꽉 붙잡아 주머니 밖으로 확 꺼내었다.

그리고 나는 숨이 넘어갈 듯 놀라 뒤로 주저앉았다. 


내 손에 의해 밖으로 끌려나온 것은....... 아직도 팔꿈치 아래 부분이 코트의 주머니 속에 담겨져 있는 푸르스름한 손이었다.

나는 그 때서야 깨달았다.

내가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린 차갑고 물컹거리는 것은 어느 누군가의.... 손이었던 것이다.

반들반들한 플라스틱같은 손톱과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기이할 정도로 차가운 피부,
그 속의 굳은 근육을 내가 만지작거렸다고 생각하니 미칠듯한 공포감이 찾아왔다.
나는 숨조차 멎은 채로 그것을 쳐다보다가 그제서야 생각난 듯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그것은 누가 끌어당기듯 주머니 안으로 화악 도망쳐 들어갔다.


나는 주머니 안에 손을 다시 넣을 용기가 전혀 나지 않았기 코트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코트의 주머니는 무언가가 가득 들어찬 듯 불룩했고 나는 밤새 옷을 현관 앞에 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는 끝이다. 나는 그 코트를 아직도 가지고 있지만 입지는 않는다.
다만 이처럼 비가 오는 밤 어느 누군가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말해주고 싶을 때 그 코트를 보면서 기억을 구성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