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異魚島):제주도 서쪽 바다에 위치해 있는, 예로부터 고기잡이에 나선 선원들이 거센 풍랑이
칠때면 어김없이 모습이 보였다고 전해지는 전설이 있는 섬.



김비서가 다음으로 찾은 곳은 인근에서 용하기로 소문난 무당집이었다. 무당집의 외관은 전통 가옥으로 깔끔해 보였다. 담장 너머로는 세월을 짐작할수 없는 오래된 나무가지가 난잡하게 뻣어있었고, 몇년간 손질이 되지 않은 것 같은 색동무니의 깃발들이 가지에 걸려 의미없이 휘날렸다.

왠지 모르게 안으로 발을 디디기가 꺼림찍 했다. 토속신앙을 비록 믿지는 않지만, 괜히 근처에 어슬렁 거리다 귀신에라도 씌일거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무당은 이번 계획에서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었다. 따라서 김비서는 불길한 마음을 제쳐두고 문을 통과해 안마당으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케케묵은 냄새가 올라왔고, 걸을때마다 죽은 나뭇가지가 연신 푸석거렸다. 잠깐동안 걸어가자 곧 실내로 향하는 정문이 보였다. 김비서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반응이 없는거 같아 김비서는 다시 한번 더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갑자기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그곳에는 왠 무녀복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김비서는 그 여자를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무녀복을 입은 여자는 다소 싸늘한 인상이었다. 본래 그렇진 않았겠지만, 얼굴에 살이 없어서 광대뼈가 약간 돌출되어 보였고 피부가 창백한 것이 마치 귀신같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못난 얼굴은 아니였다. 무녀복을 입고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아서 그렇지 어느정도는 매력적인 얼굴상이라고 생각했다.

'무당이라고 하기엔 조금 젊어보이는데..'

아무리 높게 봐도, 이 여자는 30대 초반을 넘기지 않아 보였다. 보통 용한 무당들은 대부분 40~50대가 많았기에, 김비서는 의아함을 감출수 없었지만,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꺼냈다.

"저.. 무당님 이십니까?"

무녀복의 여자는 조용히 김비서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안에 계세요."

'무당이 아니였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김비서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를 따라 들어가자, 마침내 김비서는 무당을 볼 수 있었다. 머리가 잔뜩 쇠었고, 연신 무언가를 중얼거리는게 정상은 아닌거처럼 보였다. 김비서가 다가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무당이 고개를 질렀다.

"이 놈!!!!!! 네놈이 제정신이 아니로구나!"

무당의 목소리가 내부를 쩌렁쩌렁 울렸다. 노인의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커서 김비서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무당이 말을 이었다.

"이어도로 들어가려고 하는게지?"

갑자기 들린 차분한 목소리에, 김비서는 마음을 추스리고 무당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자신이 말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미리 했지만, 김비서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자신들이 들어와서 이어도 개발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져 있었고, 용하다는 무당들이 미리 뒷조사를 해 놓은 뒤 사기를 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아마 저 여자가 정보통이겠지'

김비서는 무녀복의 여자를 힐끗 보았다. 그 때,무당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틀렸어... 네놈들은.."

"저.. 무당님 잠깐 제 이야기좀 들어보시겠습니까?"

무당은 말이 없이 김비서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김비서는 침묵은 긍정이라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무당님. 이번에 저희와 이어도에 함께 가주십시오. 별건 아닙니다. 평소 하시는대로 가서 굿 한번만 해주시면 됩니다. 사례는 정말 두둑하게 드리겠습니다."

이번일은 김비서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사실은 정말로 무당이 이어도로 가서 귀신들을 쫓아주기를 바라는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귀신은 믿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은 달랐다. 만약 이번에 용하기로 소문난 무당이 가서 굿을 하는 장면을 방송으로 찍어 지역방송으로 내보낼수만 있다면, 흉흉한 민심을 다스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무당이 진짜건, 가짜건, 그런건 애시당초 중요하지도 않았다. 약간의 편집만 잘 가미하면, 지역민들을 안심시키는데 톡톡히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갑자기 무당의 눈에 핏대가 서기 시작했다.

"아... 아무도... 살.. 아.. 날수 없..다.. 아... 무. 도... 살.."

무당은 어떤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비로소 전하고자 하는 바는 한마디라는 것을 알아냈다.

'아무도 살 수 없다..'

김비서는 무당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갑자기 옆에 가만히 앉아있던 무녀복의 여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죄송해요. 무당님이 지금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네요."

"괜찮습니다. 그쪽분께서 사과할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무당님하곤 어떤 관계십니까?"

"어머님 이에요."

김비서의 눈이 갑자기 반짝였다.

"그렇다면 혹시.. 그쪽분도 무당이신가요?"

"네. 보시다시피, 어머니의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요. 어머니께서 물러나시게 되면, 이제 제가 이곳의 맡을 생각이에요."

"그렇다면 굿 하실줄 아시죠?"

그러자 무녀복의 무당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굿 못하는 무당 봤어요?"

김비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직 나이도 젊은 여자가 무당이라고 나서는게 뭔가 수상하긴 했지만, 애시당초 진짜건, 가짜건, 그런건 중요하지도 않았다.
비록 용하다는 그 무당은 아니지만, 방송으로 포장해서 내 보내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김비서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벌써부터 그의 머리에 계획이 줄줄 떠올랐다.

"저.. 사례는 두둑히 드리겠습니다. 무당님 대신, 저희좀 도와주십시오."

무녀복의 여자는 잠깐 고민하는것 같았다. 김비서는 이 젊은 무당이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확신했다. 김비서는 수년간 김주완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무언가를 바라고 있는 사람들, 야망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숨은 꿍꿍이가 있는 사람들.. 그 덕분에 김비서는 사람을 파악하는데 능했다. 이 젊은 무당은 이런 기회를 그냥 차버릴 만큼 어리석어 보이지는 않았다.

"뭐.. 좋아요. 제가 할수 있는 만큼 해보도록 할게요."

김비서는 속으로 웃었다. 역시 자신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사실 김비서는 젊은 무당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말하는 태도나, 행동거지가 마치 자기가 뭐라도 되는 마냥 행동하는 것이 건방져 보였다. 딱히 제대로 무당일을 배운거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부모의 명성을 이용해서 사람들 등쳐먹으려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그런 내색을 할 수는 없었기에 김비서는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그럼.. 지금 저희 개발팀을 뵈러 와 주실수 있겠습니까? 함께 모여서 이야기 해보도록 합시다."

"지금요? 어머니 혼자 두긴 좀 그런데.."

"설마 무슨일이야 있겠습니까? 귀신도 쫓는 용하신 분인데.."

무녀복의 여자는 망설이는 듯 했으나, 고개를 끄덕이며 김비서를 따랐다. 김비서는 어찌됬건 일이 잘 풀렸기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밖으로 나가려던 김비서는 고개를 돌려 무당을 힐끗 바라보았다. 무당은 허공을 바라보며 연신 이상한 소리만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무당과 눈이 마주쳤다. 무당은 핏대선 눈으로 김비서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김비서는 소름이 쫙 돋는것을 느끼며, 얼른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