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황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옷을 벗고 나신을 그 인형에 조심스레 겹쳤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대고 사랑스럽게 그녀를 불렀다.
마치 신성한 의식처럼. 그렇게 한시간여를 보내던 그는 전화벨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영화에 쓰이는 더미(가짜 인체 인형)를 만드는 직업을 갖고 있다. 여전히 공포영화계에서는 비싼 그래픽으로 승부하기보다는 자연스럽고 촬영하기 좋은 그러면서도 저렴한 인체모형을 쓰고 있었다. 그는 일찍부터 이 일을 시작해 경력을 쌓았기 때문에 서른 중반의 적은 나이에도 인정을 받을 수 있었고 뛰어난 실력으로 몇가지 재료만으로도 진짜같은 더미를 만들 수 있었다.
그의 집은 진짜같이 생긴 가짜 손과 가짜 발, 절단된 반신, 눈이 없는 얼굴 등 기괴한 모형들이 잔뜩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김작가님. 이번에는 이런 디자인으로 세 구 정도 만들어주세요."
전화를 건 것은 좀비가 나오는 공포영화를 새로 찍는다는 영화제작소의 피디였다. 그가 부탁한 것은 반쯤 썩은 좀비의 전신 세 구였다.
"아. 이건 시간이 꽤 걸릴거 같은데. 이가격으로는 도저히 안돼고 말이야."
"저희 사정좀 봐주세요. 업계 사정 아시잖아요. 배우 캐스팅하고 나니 다른쪽에 예산들이 다 팍 깎였어요."
"그래도 그건 다른 문제지. 시나리오좀 줘봐."
돈을 적게 주더라도 그는 시나리오를 받아보고 내용이 마음에 들면 흔쾌히 일을 해주기도 했다. 프로듀서는 시나리오를 내밀었다.
"내용은 대충 좀비가 살아나서 한 여자랑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에요. 어찌보면 흔하죠?"
"흔한게 아니라 어떤 영화랑 판박이인걸."
"하지만 분위기라거나 그 사이의 에피소드같은건 달라요. 전체적으로 무겁고 슬프고 결말도..."
주절주절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시나리오를 계속 넘겼다. 그리고 그냥 넘겨버렸던 캐스팅 목록을 펼쳤다.
"주연 여배우가 김선희에요. 최근 뜨는 앤데 캐스팅하느라 죽는줄 알았어요. 연기도 별로면서."
"이 일 해주겠네."
"네?"
"일 하겠다고. 자네가 부른 금액으로. 오케이?"
"네...네. 감사합니다."
프로듀서는 문밖을 나가면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인사를 마치고 들어온 그는 작업장으로 달려갔다. 작업장의 책꽂이 한 켠을 누르자 비밀의 공간이 열렸다. 그는 환희에 찬 얼굴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김작가님 계세요?"
한달여가 지나고 영화 스텝들이 그의 작업장을 찾았다. 집은 고요했다. 마치 그들을 기다렸다는 듯 쪽지가 문사이에서 툭 떨어졌다. 열쇠는 우편함에 있으니 문단속 잘 하고 가져가라는 내용이었다. 이미 입금도 되었겠다 시간에 쫓겼던 그들은 더미 세 구를 가지고 나갔다. 평소보다 조금 무거운 듯 한 느낌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촬영은 순조로웠다. 이번에 촬영할 것은 좀비들이 죽어있는 무덤가에서 자기가 사랑하는 좀비를 찾기 위해 뛰어다니는 장면이었다. 여배우 김선희는 전문가답게 열연을 펼쳤다. 김작가가 만든 세 구의 시체가 긴히 쓰이고 있었다. 네 번째 자리에는 남자 주인공이 좀비분장을 하고 누워있었다. 여주인공이 다가오면 그녀를 잡고 일어나야 했다. 사람들은 모두 긴장했다.
첫번째, 두번째 시체를 지나고 자기가 사랑하는 좀비가 아닌 것을 확인하자 일어나지 못하게 가슴에 말뚝을 박았다. 어차피 정교하게 만들어진 더미였으므로 문제는 없었다. 세번째 시체도 확인하고 가슴에 말뚝을 박으려 했다. 그런데
시체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꺄악."
촬영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두컴컴한 무덤가에서 반쯤 썩은 시체가, 아니 일단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었던 그것이 움직여 여배우를 잡은 것이다. 멀찍이서 모니터로 지켜보던 감독도 눈을 의심했다. 여자 스텝들의 비명소리가 가득했다. 피디가 나서서 사람들에게 지시했다.
"저 인형을 잡아. 저거 누군지 알 것 같으니까. 겁내지 말고. 우리가 아는 사람이야."
여배우 김선희를 잡고 끌고가려던 그 인형은 남자들에게 저지당했다. 여배우는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잡힌 손목과 팔에 손자국이 나 있었다.
"저거 김작가일거요. 집에 없을때부터 알아봤지. 시체로 변신해서까지 여배우를 만나고 싶었나?"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그가 남자들에게 붙잡혀있는 더미에게 다가갔다. 피로 얼룩지고 눈알이 반쯤 흐르고 있는 징그러운 얼굴 피부에 손을 갖다대려 했다.
와그작 -
으아악.
그 좀비가 손을 물었다. 피디의 손은 그 좀비의 입안에서 이미 절단되어 있었다. 다시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 좀비는 자신을 잡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발버둥쳤다. 몸의 껍질이 벗겨지고 있었다. 마치 매미의 허물처럼 갈라진 그 틈에서는 흰 피부의 여자가 나왔다.
김선희의 얼굴을 쏙 빼닮은.
그 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팔을 잡고 있던 남자 스텝의 팔과 옆구리를 물었다. 또한 여배우 김선희의 눈을 손톱으로 찌르고 손가락으로 쑤셨다. 순식간에 네명정도가 그 여자에게 처참하게 당했다. 그들은 살점이 뜯긴 채 괴로워했다. 사람들은 영화 장비를 버려두고 도망쳤다. 아무런 표정이 없는 그 인형은 도망치는 사람들을 초점없이 바라보았다.
다음날 낮에 경찰들이 수사를 하러 문제의 장소로 모였다. 폴리스라인 안에는 세구의 시체가 있었다.
하나는 여배우 김선희. 또 하나는 심하게 목를 물려 그자리에서 죽은 스텝 한 명. 그리고 또 한명은.
심장에 말뚝이 박힌 채 죽은 더미 제작의 대가였다.
"김작가님은 평소에도 김선희씨를 좋아했었던 것 같습니다."
손에 깁스를 한 피디가 말했다.
"감시가 소흘한 틈을 타 좀비분장을 지우고 김선희씨를 납치하고, 그사이 자기가 숨겨온 가짜 김선희 인형을 방치한다. 사람들이 당황한 사이 그는 김선희씨를 데리고 유유히 빠져나갈 생각이었겠죠."
피디의 추리를 들으며 경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비분장을 한 상태로 오랫동안 참기는 어려울테니 수면제같은걸 먹었을수도 있겠네요. 그렇지 않고서야 말뚝을 박기 전에 깨지 않을리가 없으니."
경찰이 말했다.
"그럼 그 여자는 어떻게 된 걸까요?"
"글쎄요. 악령이라도 씌인게 아닐까요? 아니면 실제 사람을 공격한 건 짐승인데 우리가 공포에 휩쌓여 착각했다거나."
"하지만 그 여자 더미가 없다는건 스스로 이동했다는 뜻이겠지요."
"그렇겠...군요."
"이런 생각은 어떤가요? 그는 김선희를 사랑해서 납치같은걸 하려고 이런일을 벌인게 아닙니다. 그는 인형이 살아날 걸 알고있었어요. 예를 들어 피를 봐야 그 인형이 살아난다거나. 종교적인 이유로 그랬다면요?"
"그럼 뭐. 처키의 탄생인거죠."
그들은 마주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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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시리즈 연재를 할 수 있을까. 손 가는대로 쓴 글이야. [i]
재밌다..
F
재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