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도쿄에서 살고있지만, 내가 어렸을 적 살던 곳은 평범하기 그지 없는 지루한 산촌이었다.
도쿄의 아파트에서 오랜만에 큰 규모로 집안 청소를 하다 어렸을 적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초등학생 때의 것이었다.
일기는 선생님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쓴 탓인지, 죄다 의미 없는 글들 뿐이었다.
가령, 오늘은 날씨가 맑았다. 친구들과 축구를 했다. 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 오늘은 고등어 구이였다. 같은 내용들 뿐이었다.
오랫동안 묵혀놓았던 일기장 속에서 무언가 어렸을 때의 추억을 느껴보려 했던 나는 적지 않게 실망했다.
그런데 일기장을 계속 넘기다, 악몽같았던 일이 다시 떠올라버렸다.
그것은, 내가 그 산촌을 떠나 도쿄로 이사를 온 이유이기도 했다. 지금은 직장에 다니는 나이이기에 사회 생활에 치어 기억을 잊어버렸지만,
일기장을 보니 그 때의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1983년 5월 7일
오늘은 날씨가 맑았다. 아침에 히지키니모노(해조류 반찬의 일종)가 또 나왔다. 어머니에게 잔뜩 불평을 했다.
밥을 먹고 나가서 축구를 했다. 타나카는 정말 축구를 못하는 것 같다. 날이 어두워져서 집에 왔다.
역시나 히지키니모노였다. 정말 먹기 싫다.
1983년 5월 8일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했다. 사토우는 정말로 숨바꼭질을 할 때마다 찾아내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공사장 바닥에 쭈그려 숨어있는 사토우를 겨우 찾아내자 7시 정도가 되는 것 같았다. 날이 어두워져서 집에 왔다.
오늘은 너무 뛰어 놀아서 졸린다.
1983년 7월 4일
이사 가기 싫다. 아니, 무서워서 이사를 가고 싶지만 가기 싫다. 친구들과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니 아쉽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굉장히 완고하셔서 곧 이사를 가야 할 분위기다.
주변에 있는 조그마한 규모의 도시와 도쿄 중 고민하는 것 같다. 도쿄에는 친척 집이 있어서 도쿄에 조그마한 집이라도 구하기
전 까지는 친척 집에 얹혀 산다는 것 같은데, 타카하시는 명절 때 만날 때마다 날 괴롭히기 때문에 친척 집에 있고 싶지 않다.
고민이다.
5월 8일과 7월 4일 사이에 일기가 비어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났더니, 마을이 난리가 나 있었다. 사토우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굉장히 작은 규모의 산 마을이었기 때문에, 사토우가 이상해진 건 온 마을에 삽시간에 퍼졌다.
사토우는 학교도 가지 않고 히죽히죽 거리며 바닥을 기어다녔다.
뭐랄까, 그 때를 떠올려 보면 얼굴은 웃고 있지만 왠지 그 속에는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 기분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가면을 쓴 희극 배우같았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사토우가 걱정되서 "왜그러는거야?" 하며 사토우 쪽으로 가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붙잡아서 할 수 없었다. 사토우는 원인모를 병세가 회복되지 않으면 다음 날 큰 도시에 있는 병원에 갈 예정이었지만
밤에 잠들고 나서 아침에 눈을 뜨지 못했다. 그렇게 사토우가 죽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뒤에는, 타나카가 똑같은 증세를 보였다. 히죽히죽 거리며 바닥을 빙빙 돌며 기어다니는데,
일본어라고 볼 수 없는 이상한 말을 지껄이며 입에 거품까지 물었던 것 같다. 타나카는 아버지가 없는 집안이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급히 타나카를 차에 태워 병원으로 가려 했지만, 타나카가 발작하는 증세까지 보이며 완강히 저항했기 때문에 결국
병원으로 옮기지 못했고, 타나카는 밤새도록 쿵-쿵-쿵-쿵 방바닥을 기어다니더니 역시 죽어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공장에 책임을 돌렸다. 미나마타에서 오염된 물고기를 잡아먹었던 사람들이
이유 없는 통증을 호소하며 죽었던 것처럼, 공장에서 무언가 폐수를 흘러보내고 있기 때문에 그 물을 마신 사람들, 그 중에서도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이 죽었을 거라고 추측했던 것 같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를 듣진 못했지만,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그랬던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은 종종 뉴스에서 보던 것 처럼 나무 팻말에 "악덕 공장 폐업하라!" 같은
문구를 써서 시위를 했던 것 같은데, 머지 않아 그 공장에서는 유해할만한 폐수를 흘려보내지 않으며, 마을과 직결되는 강에
공장 폐수가 흐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오히려 전세가 역전되어 마을 사람들이 공장 측에 미안하다며 몇 번이나
허리를 굽신거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던 중, 다른 여자 아이 한 명이 또 죽었다. 사실 이 아이는 우리 마을에 이사온 지 얼마 안되서 미안하지만,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아무튼, 이 아이까지 총 세 명이나 이유 없이 죽어버리니 마을은 패닉이 됬고, 결국 꽤 멀리 있는 절에 가서 스님까지 모셔왔다.
하지만 첩첩산중으로, 스님도 그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다. 마을의 기운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들 패닉상태가 되어있었을 때, 마을 사람들이 나에게 평소 생활을 그대로 재현해보라고 했다. 나와 정말 친했었던 타나카와
사토우가 죽었기 때문에, 나와 무언가 연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평소처럼 밥을 먹고, 매일같이 축구를 하던 공사장으로 왔다.
그리고 곧, 아이들이 죽었던 이유가 밝혀졌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그건 공사장 때문이었다.
마을에서 아이들 걸음으로는 꽤 먼 곳에 공사장 하나가 있었다. 어렸을 때라 어려운 어휘같은 건 기억이 잘 안나지만, 아무튼 무언가
산촌에 있는 걸 개발하겠다는 명목으로 한 회사가 마을 근처에 공장을 세우던 터였다. 공장은 부도를 당했는 지 어쨌는 지 공장을 짓다 말고
떠나버렸고 뼈대도 채 세워지지 못한 건물만 휑하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산촌 마을에서 축구를 할 만큼 평평한 지형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이 없는 그 공사장 터에서 놀곤 했다.
스님은 그 공사장 터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공사장 이곳 저곳을 파헤쳤다. 그러자 형태를 알 수 없는 뼈와 조각해 놓은
돌 부스러기들이 나왔다. 어머니가 보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뼈는 볼 수 없었지만, 돌 부스러기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지장보살을 조각해놓았던
것이 부서져 있었던 형태 같다. 스님 말로는, 먼 옛날부터 마을에서 무언가를 단단히 봉인해 놓았는데, 공사를 하면서 그것을 부숴버렸다는
것 같았다.
그 공사장 터에서 조금만 더 가면 낡은 제단이 하나 있는데, 무엇을 위한 제단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워낙 오래 전부터 무관리로 방치되어
온 제단이었던데다, 산업화가 계속되면서 사람들도 점점 미신따위에 관심이 없어졌기 때문에 버려졌는데, 사실 누구의 집에서도 보살피지 않는,
하지만 보통 제단이라기엔 규모가 큰 그 제단은 기이했다.
스님의 추측으로는, 과거에 마을에 누군가 큰 원한을 가지고 죽어 마을 사람들을 해했던 것 같고, 마을 사람들이 그 혼을 봉인해 놓고 제단을
세워 위로를 했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사토우가 1983년 5월 8일, 숨바꼭질을 했던 그 날 공사장 바닥에 쭈그려 앉아 만지작 거리던 것이 붉은색 천이었다는 게 어렴풋이
생각났고, 그것은 아마 지장보살 돌조각을 이루고 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나카도 평소에 축구를 못해 공을 이상한 방향으로
차버리는 방향에 자주 공사장 건물 안까지 들어가서 공을 주워오곤 했었다.
스님은, 이것은 너무 오래된 것이라 더이상 봉인하거나 다른 차선책을 찾기 힘들다고 말하며 돌아가버렸고, 부모님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여
도쿄로 이사했던 것이다. 지금은 그 마을이 어떻게 되었을 지 모르겠다. 인터넷 상에 떠도는 속 후련하게 결말이 나는 보통의 괴담들과는
달리 그 마을에서의 이야기는 누구도 진상을 알지 못하는 것이었기에, 그렇게 끝나버렸다.
사실 그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었던 촌장 가족은 무언가 알고 있는 눈치였던 것 같지만, 마을 사람들이 뭔가 물어보자 큰 소리로 화를 내며
모르는 일이라 잡아 떼버렸고, 그 이후론 영영 뭍혀버린 일이 되었다.
병신아그래서그일이뭔데 말을꺼내다말어
ㅋㅋㅋㅋㅋㅋ
재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