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진-짜 안녕이다! 거지같은 고시원!"


5년. 남자는 참으로 긴 세월을 고시원에서 살았다.

입구에서부터 퀭한 정신들이 떠도는 냄새, 더 이상 낡을 수 없을 정도로 초췌한 싸구려 나무 문, 마치 도둑질 트레이닝이라도 시키는 듯 누가 언제 훔쳐가도 이상하지 않을 공용 냉장고의 반찬, 시도때도 없이 막혀서 타인의 변을 억지로 보는게 늘상인 더러운 화장실은 뭐, 말할 것도 없고.

 

그렇다. 남자는 드디어 이사를 간다. 적은 수입이나마 스스로의 힘으로 착실히 돈을 모아, 고시원 그 불쾌함의 핵을 뚫고 나오게 되었다는 지금의 현실이 남자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을 선사했다.

 

사실 남자가 계약한 맨션은 실로 시설이 좋지 않았다. 후미진 위치에, 오래된 건물이었고, 따로 좋은 옵션이 붙어 나온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은 불평불만이 많으면서도, 또 그러므로 감사하기에 최적화된 동물이라고 하더라. 지긋지긋하게 긴 장마 후에 비추는 아주 여린 햇빛에도 바삐 바깥에 나갈 채비를 하는 것이 인간이고, 장시간의 주린 배에 빵 한 조각만 들어차도 천상의 맛을 느끼는 혀를 가진 것 또한 인간이다. 그런 맥락으로, 반십년 세월동안 고시원에서 겪은 구질구질함이야말로 그 남자의 만족의 역치를 한껏 낮춰 주었던 것이다.

 

심지어 남자는 이삿짐을 싸지도 않았다.


고시원의 케케묵은 기억을 모조리 버리고 싶었던 까닭이다. 그 곳은 남자에게 인생의 오점이자 증오의 공간이었다. 감옥이었고 지옥이었으며 자신의 발목에 억세게도 엉킨 족쇄의 일종이라며 항상 진저리를 쳐 왔다. 몇 달 전, 친구가 너 외롭지는 않냐며 호의로 선뜻 만들어줬던 소개팅 자리, 여자가 "어디 사세요?" 라고 아무런 의도도 없이 물었을 때, 괜시리 얼굴이 화끈해져서 "저-기 저쪽 골목 돌아가서 사거리에..." 하며 허둥지둥 둘러대던 과거의 자신이 문득 오버랩되었다. 별 것 아닌 에피소드라도 남자에게 그 때의 자괴감은 잊기 힘든 트라우마로 남았다.

 

"낄낄낄,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그렇기에 남자는 더욱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더랬다. 사는 곳이 바뀐다라는 단순한 사실조차 그에겐 신분 상승과도 다를 바 없는 일이라고 여겨졌었다.
그렇게 과거의 수치와 미래의 기대로 가득찬 생각들이 길 위로 떠돌고, 그 자조의 길을 걷던 오랜 걸음도 결국엔 목적지에 닿았다.

 

남자가 계약한 맨션 앞, 그는 새삼스레 위아래로 눈을 굴려서 길거리 여자를 훑듯, 건물의 자태를 한참동안 음미했다.

 

"아 진짜 너무 좋다. 유럽의 고성이라도 그냥 확 사버린 기분이네. 캬. 역시 사람은 자기 집이 있어야지."

 

얼마간의 감상이 끝나고,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남자는 맨션의 계단을 단숨에 뛰어올라가 문을 열어제꼈다.

302호. 열쇠는 미리 받아두었다.
정오의 넘치는 햇살에 이젠 온전히 그 남자의 것이 될 방이 눈부시게 빛났다.

 

"이야, 이것 봐라!!"

 

"그래, 문이 철문이어야지 딱이지! 좋고, 캬 방 깔끔한거 봐. 우와 창문 넓은거 완전 대박이네!"

 

세간도 없는 텅 빈 방안에서 남자의 감탄이 일순간 분주했다. 키도 안맞는 작은 침대와 겨우 몸뚱이 하나도 뒤척이기 힘들었던 고시원 쪽방에 익숙한 몸이, 움직일 동선을 갖게 되었다. 남자는 마치 동물원의 사자를 처음 야생에 풀어놓은 것 마냥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다만 해왔던 몸짓이 아닌지라 이내 어색해졌기 때문에, 그 서성임이 멈추어버리는 데에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얼떨떨한 공백이 생기자, 문득 잊고 있던 관습이 갑자기 남자의 머리에 꽂혀왔다.

 

"아 맞다, 그래도 여기 왔으니까 뭐 이웃한테 떡이라도 돌려야하나?"

 

우습게도, 이런 혼잣말을 할 때 조차 남자는 결코 '이사'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삶을 개척했다는 투였다. 그러니 그가 새 터전의 사람들을 만나서 잘 보이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것도 어찌 보면 이치에 맞는 논리였다. 그런데 그 와중에,

 

꼬르륵-

 

사실, 아침부터 기대에 차서 하도 정신없이 움직이느냐고 간단한 요기도 하지 못한 남자였다. 배고픔을 인식하게 되자 일단은 시장기를 가셔야겠다는 아주 본능적인 욕구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에이 귀찮네. 일단 나가서 뭐 먹을거나 사온다음에 생각해야겠다."

 

남자는 터덜터덜 방문을 나서서 계단을 밟았다. 그 와중에도 나름의 안목으로 스캔하는 맨션의 구석구석. 입구에 다다르자 세입자들의 소식이 담겼을 우편함이 보였다. 이젠 내 소식도 담기겠지- 라며 여운이 가시지 않은 흥분으로 미소했다.

 

한 걸음 더 걸었다. 남자의 다음 시선엔 투박하지만 차가운 콘크리트에 밀착되어 있는 맨션, 세대수의 전력량계가 들어왔다.

 

"여기가 전기 얼마나 썼는지 보는데구만. 난 129네. 여름이라 선풍기 풀가동좀 하려고 했는데 좀 아껴써야겠지. 하도 절전 절전 하니까."

 

남자는 중얼거리면서도 다른 세대수의 계기판을 의도치 않게 염탐했다. 사람의 시야는 생각보다 넓다던데, 그래 옆집. 303호의 전력량. 9989. 네자리.

 

"허.. 이사람 전기세 무지 많이 내겠네. 쓴거 봐라. 돈 많나보다"

 

남자는 무의미한 감상을 던졌다. 계기판의 숫자가 높은 것에 놀라긴 했지만 뭐 높을 수도 있는 거지. 여름인데. 라며 다시 발을 돌리려는 그 순간에,

303호의 전력량계가 미친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계기판의 최대 수치 9999를 가뿐히 찍고, 다시 0000. 0100, 0400, 1500…


"이..이거.. 뭐.. 뭐지?"

 

놀람이 내뱉어지는 순간에도, 3863, 5671, 6628… 숫자는 질주했다.


남자는 살면서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변동하는 카운터를 일찍이 본 일이 없다. 경악과 당혹감이 피어올랐다.

 

남자는 어느새 배가 고프다는 것도 잊었다. 영문모를 숫자의 움직임은 한참 동안 그를 홀렸다. 남자는 영혼도 없이 우두커니 서서 풀린 동공으로 기계처럼 서 있었다. 오히려 생명이 없는 이 괴기한 수치기록판만이 세상에 어떠한 생명체보다도 더 역동적으로 춤을 출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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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개 1편이애여 2편을보고시프시면 http://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112550 여기루 아서 바주샘^ㅅ^;;;;;;;;;;;;;;;;; 채찍질도 화녕화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