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잡초가 무성하여 모기들이 몰려오는 고등학교.
봄, 가을에는 싸늘한 바람만이 몇차례 휩쓸고, 겨울엔 조용히 눈에 묻히는 이 학교에는 알 수 없는 출처의 괴담들만 무성하다.
소문에 따르면 사망자의 수만 한 손가락이 넘어가는 학교는 잘도 폐교되지 않고 버젓이 학생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어쩌면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로 여겨지기 때문일까
이 지역에서 홀로 살아남은 이 학교는, 전교생들이 자살하지 않고서야 폐교될 것 같진 않다.
그들이 죽은 이유를 안다면 이렇게 운영될 순 없을텐데. 라고 지나가듯 이야기하면, 나라고 그 이유를 알겠냐고 묻는사람이 많았다.
그럴 때는 그냥 웃으며 응답하지 않았다.
말해봐야 믿을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거짓말 할 수도 없으니까.


3년간의 세월을 보내며 있을 수 없는 일도 겪었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몇명을 구했다.
그때의 기억을 적어놓은 메모를 바탕으로 나의 경험을 옮겨적도록 하겠다.
지금 다시 생각하면 눈물이 나려 하는 그때 그 고등학교 시절로 다시 회귀하자.

 

1장_ 서현


학교에 막 입학했던 그해 겨울.
우수한 중학교 성적을 토대로 학생들 앞에서 대표 선서를 할 때 까지만 해도, 내 미래는 언뜻 밝아보였다.
기대해왔던 동아리 활동과 심화반의 엘리트 생활이 베를짜듯 머릿속에서 엮여졌다.
신문부와 심화반 모두를 감당할 수 있겠냐는 주변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난 신문부에 입부 신청서를 넣었다.
그리고, 아직은 쌀쌀한 오전의 옥상에서 따뜻한 코코아 한잔을 마시며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하자는 결의를 다졌다.
좋은 대학을 편하게 가려는 이기심은 그때부터 시작되었고, 그러한 이기심은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고도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중학교의 찬란한 기억들이 머릿속에 맴돌았고, 그때로 회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자각몽에 심취하여 꿈속으로 도피생활을 계속했다.
꿈 속에서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었다. 인기있는 신문부 작가. 잘 놀고 공부도 잘하는 만능 심화반 학생. 선생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지역의 인재.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남루한 잠옷을 입은 평범한 학생이 남아있었다.
아직 나가지 못한 학습진도와 신문부원들의 원고 재촉, 과외선생들의 끊임없는 구박은 나를 점점 잠 속으로 내몰았다.
그때문에 학급에서 잠민서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얻었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잠을 자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으니까.


높은곳에서 낮은곳까지 단번에 떨어지지는 않는법.
성적이 최상위권에서 중상위까지 곤두박질 쳤을 때, 신문부원 하나가 내게 접근했다.
학교에 떠도는 괴담을 가져다가 마치 정말 있었던 일처럼 글을 쓰자.
대강 공포스러운 외형을 지닌 것처럼 꾸미고, 그 모습에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 정도로 쓰면 신문부의 인기가 늘어날 것이다.
이 아이도 꿈만 꾸는구나.
단박에 거절하려는 생각으로 피식 웃으면서 그 아이를 마주보았다.
되지도 않는 상상 그만하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 눈동자를 바라보니, 함부로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무 의욕 없는 나와는 달리, 생기있게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마치 4월달의 나처럼 빛나는 그 모습에,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잠시 뒤, 그 아이가 가져다준 자료를 슬쩍 살펴보았다.
옥상에서 자살한 학생이 있었다는 메모와 그 방식이 상당히 특이했던 점. 하지만 그 방식이 무엇이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몰래 오려온 그 학생의 사진.
1972년도의 수학여행 앨범에서 가져왔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정도로 세련된 여학생이었다.
자살 장소는 옥상이 맞는데, 우리가 평소에 상상하는 자살 방법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 방법이 뭔지는 모르니까 될 수 있는한 잔혹하게 쓰자는 말에 불편한 기분으로 고개를 저었다.
죽은 사람을 욕보이는것도 정도가 있다.
내 생각을 말하고 완고하게 거절했다.
그럼 내 마음대로 써달라는 말을 듣고서야 그 자료들을 내 가방속에 우겨넣었다.

 


컴퓨터를 켜고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할지 곰곰히 고민하다가, 켜놓은채로 침대에 누워 잠들어버렸다.
중학교때 글쓰는게 취미일 정도였는데 지금은 첫 문장을 엮어내는것도 힘들었다.
애초에 옥상에 올라가는 동기도 제대로 정의할 수가 없었다.
담력훈련? 그건 너무 작위적이다. 자살? 내 이름까지 드러나는데 그렇게 글을 쓸 순 없었다.
결국 며칠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고민만 했다.
공부를 하는것도 아니고, 이렇다 할 글을 쓰는것도 아니었다.
글쓰기를 부탁한 아이에게 계속 문자가 도착할때마다 짧은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과외 선생도 요즘 무슨 생각 하냐고 계속 추궁할 정도에 이르렀다.
나에겐 뭔가 새로운 활기가 필요했다.


어느날 밤,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가는 10시 40분에 남몰래 옥상으로 올라갔다.
귀신이 있을거란 기대는 추호도 하지 않았다.
단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될 영감을 받을 것 같아서였다.
옥상에 올라가보니 여태까지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것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고등학교 3학년생들이 이용하는 건물은 어느 반 하나 빼놓지 않고 불이 켜져있었다.
2학년생의 건물은 그것보다 훨씬 듬성듬성하게 불이 켜있었다.
우리 건물은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적어도 제일 불이 적게 켜져있을게 분명했다.
'1995년 기증' 이라는 낡아빠진 스티커가 붙여진 벤치에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분위기상 만월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약간 깎여나간 달이었다.
구름 몇쪽이 달 옆을 비껴나가자, 밝은 빛이 내 눈 속에 오롯이 들어앉았다.
마치 꿈을 꾸는듯한 기분으로 달을 쳐다보다가, 왠지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율학습 시간에 한숨도 자지 않았서 그런걸까?
아니면 평소에 잠을 많이 자서 그런가..
몽롱한 기분으로 중얼거리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깜빡 잠들어버렸다.

 

 


난데없이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렸다.
지금 타종한걸로 봐선 야자가 모두 끝난 11시임이 틀림없었다.
그래도 종소리에 맞춰서 일어난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깜짝야!"
"어?"

왠 비명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황급히 몸을 돌려보니, 내 또래 여학생이 서있었다.
구름이 어느새 다시 달을 가려버려서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사복을 입고있는걸로 봐선 아무래도 고등학교 3학년생이 아닌가 싶었다.
고3은 비교적 복장규제가 덜하니까 말이다.
일단 내가 1학년생인 만큼 보험드는 셈 치고 꾸벅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넌 왜 이런데서 잠을 자고 난리냐?"

그녀는 어이없다는듯 고개를 젓다가 내 옆으로 타박타박 걸어와 앉았다.
아무래도 같은 여자다보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달을 바라보는것이 조금 안쓰러워 보여서, 그냥 멀거니 뒤에 서있었다. 여전히 그녀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헌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나야 동기가 있으니까 올라온 것이지만, 이 선배는 왜 온걸까?
혹시 자살을 생각한걸까 싶었지만 행동거지를 보아하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뒤돌아서는 찰나, 뒤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넌 여기 왜올라왔어?"
"네?"

아까보다 한풀 꺾인 목소리였다.
괴담취재라고 해야할지 그냥 답답해서 그랬다고 해야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전 그냥 신문 기삿거리가 안떠올라서요..."
"신문부? 용케 합격했네?"
"그냥 쉽게 들어갔는데요."

그녀는 신문부 위상이 얼마나 떨어졌나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입부 신청서를 낼 때 경쟁률이 1.2:1이었으니 말이다.

"신문부 많이 죽었다. 그지?"
"네..."

그녀는 한참 뭔가를 꼼지락 거리더니, 시키지도 않은 말을 주워섬겼다.

"난 그냥 너무 답답해서 있는거야. 어디 가야할지도 모르겠고,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그러세요?"

한창 수시 준비할때다. 입시준비가 제대로 안된 학생들은 이때쯤이면 벼락을 맞는다고 선생님이 강조하곤 했다.
그러니까 내신도 잘 준비해놓아야 하는거다.
난 딱히 내세울 것도 없는데, 어떻해야할까.
나름의 위로를 해주기 위해서, 나는 조심스럽게 내 이야기를 꺼냈다.

"전 이 학교 들어올때만 해도 1등으로 들어왔는데 지금은 형편없어요. 중위권정도? 그러다보니 만날 잠만 자고요... 숙제도 과제도 아무것도 하는게 없어요."

"왜?"

무심하게 묻는 목소리를 듣자 조금 감정이 상했다.
내가 더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줄 알았는데, 그런게 아니었나보다.
거기서 말하는걸 멈췄어야 했는데, 다시 입을 열어 내가 얼마나 비참한지 강조했다.

"그냥 잠에서 안깨어났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사는게 힘든데 어떻게 맨정신으로 살아요?"

"..."

선배는 고갤 푹 숙이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이렇게 있는것도 너무 힘들다. 어떻게 맨정신으로 있냐..."

그 말을 끝으로, 선배는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잠깐 목이 비틀거리더니 정확히 직각으로 목이 꺾였다.
우드득 하는 소리가 여과없이 귀에 들어왔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분명히 목이 꺾이는 소리다. 잘못 들었을 리가 없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마침 구름이 달빛을 제대로 가리지 못해서, 밝은 달이 옥상 위의 것들을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완전히 그녀 앞으로 걸어가고 나서야 그녀의 앞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나도모르게 목에서 아아아 하는 비명소리가 천천히 올라왔다.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돌렸다.
얼굴을 다시 보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구역질이 날것 같았다.
입에서 꾸역꾸역 쏟아져나오는 흰 알약들.
까뒤집은 눈에서 천천히 흘러나오는 희뿌연 눈물들.
수면제라고 깨닫자 마자 그녀의 입에서 게거품이 터져나왔다.


"내...가..."

화들짝 놀라 앞을 돌아보았다.
그녀가 내쪽으로 고개를 꺾었다.
이제 목은 더이상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꺾여있었다.


"힘...들..."


게거품이 가디건을 타고 배까지 흘러내리고, 눈알은 불쑥 튀어나와있었다.
체액이 나오지 않는 구멍이 없을정도로 엉망진창인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몰골이었음에도 난 그 얼굴을 기억해냈다.
1972년 앨범에 담겨있던 그 여자.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땅이 꺼져라 비명을 질러댔다.
옥상에서 이런식으로 죽었기 때문에 특이한 죽음이었던 걸까
머릿속이 아득해지고,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까 잠을잤던 옥상이었다.
아직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아까 봤던 시체가 자꾸 눈에 어른거렸고, 비명을 지르며 단숨에 옥상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이 경험 이후로,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원고도 마감하지 못했고, 한동안 깊은 생각만 하며 보냈다.
내가 그런 꿈을 꾼 이유가 그 선배 귀신때문일지, 아니면 내 자의식이 내게 보내는 경고때문일까.
1주일동안 그런 고민을 하다가, 난 결론을 내렸다.
어느쪽이 진실이던 간에 그 꿈은 나에게 있어서 경고였다는 것.


더이상 현실도피를 하지 말라는 그런 메시지였을 것이다.

 

 

 

2장 - 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