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_ 정재오

 

2_재오


가을이 되었다고 밤공기가 퍽 매서워졌다.
가디건을 꼭 여미고 교정을 둘러보았다.
붉은 낙엽들이 맥없이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 사람이 먼저 떠올랐다.
정재오. 영어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필립이었던가.
가을에 지는 낙엽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른 가슴을 안고 떨어진 그 사람이 다시금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때도 지금과 같았다.
나는 춘추교복을 입은 채로 교정을 바삐 드나들었고, 신문부도 간간히 다니던 때였다.
성적은 정상 궤도로 돌아왔고, 남은건 신문부활동 뿐이었다.
지난번에 원고를 부탁했던 아이는 더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내심 온갖 지탄을 들을 것을 각오했건만, 그는 단지 만날때 침묵하는 것으로 질타를 대신했다.

 

신문부원들은 한달에 한번씩 자신만의 독특한 원고를 제출해야한다.
생활 정보나 인터뷰, 아무것이든 상관 없다.
이런 새내기의 원고들은 직속 선배들에게 전달되고 그들의 동의 하에 신문 한켠에 당당히 자리를 차지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직속선배는 없었고, 원고 독촉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나쁘게 말하자면 내 원고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말도 된다.
지금껏 신경도 제대로 쓰지 않은 신문에, 성적을 잡고 나서야 얼굴을 들이민다는건 나로서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내가 원고를 집필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원고 마감 직전에 말없이 내 글을 끼워넣어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글을 예전에 폐를 끼쳤던 아이에게 바치려고 했다.
여기까지 읽으면 짐작했겠지만, 내가 써보려고 했던 글은 괴담장르였다.

 

그러나 막상 괴담을 수집하려 하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고등학교에선 중학교만큼 괴담이 퍼져있지 않았다.
기껏해야 자살했던 학생들의 이야기랄까.
필사적으로 괴담을 조사해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아니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2학년 선배 한분이 유행하는 괴담을 전해주었다.
2학년 8반의 교실에서 사랑을 이루어주는 귀신이 있다는 소문이란다.
이건 괴담이라기보단 미담이 아니냐고 묻자,그는 조금 목소리를 낮춰서 대답했다.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것은 당연하거니와, 교실에서 이상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예컨데 전등이 떨어진다거나, 선풍기가 갑자기 돌아가는 등 마치 주술자를 쫓아내려는 것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이건 뭔가 진실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미 예전에 경험한 바가 있어서인지도 몰랐다.


자습시간에 계속 고민하다가, 결국 확인 방문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새삼스레 내 짝사랑이 시작될 수는 없는 법.
난 당돌하게 '공고문'을 2학년 건물에 붙였다.

'짝사랑을 이루어준다는 귀신을 함께 찾아가볼 분 구합니다. 010-####-####'

더이상의 정보는 기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재빨리 그 공고문을 떼어버렸다.
그리고 며칠동안 단지 기다렸다.
화요일, 수요일,목요일, 금요일
금요일이 되는 날, 거짓말처럼 문자 한통이 날아왔다.

'같이 가준다면 갈 용의 있어요.'

흥분한 나머지 여러번 문자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이 사람이 교칙을 위반할 정도로 대담한 사람일까?
아니,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정도는 당연히 어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토요일날 11시 가능하세요? 사다리 타야할지도 모르는데요.'
 
왠지는 모르지만, 거의 긍정의 답안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직감은 보기좋게 들어맞았다.

'괜찮아요.'

몇학년인지,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길이 없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일게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따라 괴담을 따라간다.
주변 친구에게 아무말도 못하는 걸로 봐선, 역시 남자인가.
누구든 좋다. 이른바 사랑의 시련을 견디려는 의지가 있다면 틀림없이 불가사의한 귀신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토요일 10시 30분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목도리 하나를 얼굴에 꽁꽁 싸맸다.
수위에게 들키지 않고 그 사람이 올 수 있을까?
문득 걱정되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차에, 투박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인가?
아니, 수위인가?
자리를 피할까 하다가 그냥 우뚝 선 채로 기다렸다.
수위라면 이런 외진곳 까지 올 리가 없다고 애써 생각하면서.


다행히 눈에 들어온 것은,평범한 남학생이었다.
교정 내에서 한번도 본 적 없는걸로 봐선 2학년생이 분명해 보였다.
비로소 안심하고 답답한 목소리를 풀었다.
그리고 사다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긴 말 안할게요. 따라오세요. 문은 잠겨있을 테니까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려는데,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문은 열려있어."

그는 발음이 어려운지, 얼굴을 찡그리고 다시 입에 단어를 되뇌였다.

"미안. 한국어가 익숙치 않아서. 유학다녀왔거든."

"아, 그런가요? "

나름 명문 학교니까 그런 학생은 넘쳐났다.
거의 학년당 10명 정도는 될 정도였으니.

"그런데 문이 어떻게, 열려있긴 하네요?"

"그러게. 나도 뭔가 좀 이상한것 같았는데 창문 밖에 그쪽이 보이더라고."

그쪽? 혹시 나한테 하는 말인가?

"그냥 너라고 부르세요."

"알았어."

그는 별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같이 들어가요. 수위한테 들킬지도 모르니까 빨리빨리 가죠."

"수위가 있긴 있나? 잘 모르겠는데."

대화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이 사람, 너무 어벙하다. 이 모양이면 아무리 귀신이라도 사랑 이뤄주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냥 빨리 확인만 할 생각으로, 정문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말대로 자물쇠는 열려있었다.
조심스레 문을 여는데, 그의 담력이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용케 오셨네요. 보통 무서워서 오려고 하지 않을텐데."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내가 아는 실패한 애들만 해도 몇십명이긴 해."

"진짜 좋아하시나보다."

아무 생각없이 계단을 올라가며 핸드폰 라이트를 켰다.
그제야 계단이 잘 보였다.
5층까지 그냥 올라가기가 어색하고 또 무서운 나머지,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좋아하는분은 선배한테 감정 있어요?"

"아니."

시무룩한 대답이 돌아왔다.
어느정도 예상한 답이긴 했다.
하지만 그런 의례적인 질문이라도 안하면 무서워서 도로 내려갈 것 같았다.
4층까지 왔을 때, 난 발걸음을 멈췄다.
무섭지 않은 척 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앞장서는건 아무래도 너무 무서웠다.

"선배가 먼저 가시면 안될까요?"

"내가?"

한번 되묻더니, 용감하게 내 앞으로 나섰다.
아무래도 이쪽도 괴담을 장난처럼 받아들이는 걸까.
철문이 끼이익거리며 열렸다.
한숨같은 소리가 끝나고, 그가 먼저 문을 나섰다.
고개를 내밀어 컴컴한 교실을 둘러보았다.
2학년 8반 교실은 좌측에 있었다.
선배가 먼저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2학년 8반의 불이 켜졌다.


뭐였지?
일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무의식적으로 괴담이 거짓이라고 믿었기 때문일까.
실제로 기현상을 바라보니까 온몸이 굳어버렸다.
멍청하게 가만히 서있는 사이, 그가 교실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환영하듯 미닫이 문이 열렸다.
본능적으로 위험한 예감이 들었다.
틀림없이 안좋은 일이 벌어진다.
막아야 한다.

하지만 생각뿐,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그는 교실 안쪽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5분정도 지났을까

이상하게도, 호기심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성공한 것일까
괴담과는 달리, 교실에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조심스레 발을 떼어 교실쪽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문은 열린 상태로 그대로 있었고, 불도 켜져있었다.
무서울 것 없다고 생각하며 뒷문으로 다가갔다.

 

파직

 

갑작스러운 암전이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더이상 가면 안되는 경고일까
머릿속이 복잡한 생각으로 터질 것 같았다.
교실에서는 파란 불빛이 비치고, 복도 창 밖으로 달빛처럼 흘러나왔다.
마치 유혹하듯, 불빛은 불규칙하게 일렁거렸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는 채 나는 교실 안을 홀린듯 바라보았다.
가장 잘 보이는 뒷자리에 내가 본 적 없는 남자가 앉아있다.
아까의 그는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급하게 고개를 돌려 창가를 보았지만, 어떤 창도 열려있지않았다.

이 교실엔

저 남자밖에 없다.


   


남자는 휴대전화를 톡 톡 두들기고 있었다.
그것만 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보였다.
그의 곁으로 조용히 다가가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문자 작성란에는 소원을 담은 메세지가 끊임없이 출력되고 있다.
단순하고, 누가 봐도 알 만한 고백 메시지.
남자의 눈엔 아무런 촛점도 잡혀있지 않았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아무런 예고없는 고백이 무엇을 불러올까.
그 공허하고 뜬금없는 행위가 무슨 파장을 일으킬 지, 난 잘 알고 있었다.
그 남자 안에 들어있는 것이 뭔지 알면서도 난 단호하게 핸드폰을 빼앗아 들었다.


"왜,왜, 이 사람 사랑은 들어주려는거에요?"

당당하게 묻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치 좀비처럼 고개를 돌린 그 사람의 얼굴은 조용한 분노가 서려있다.
생령의 의지일지, 사령의 의지일지 나는 잘 모른다.
핸드폰에는 '박지훈'에게  보내려는 메시지가 몆장 가까이 쓰여있었다.
교실 밖으로 뛰쳐 나가려던 순간, 뒷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수술때의 마취 처럼 눈이 저절로 감겼다.

 

 

 


이건 누구의 시야일까.
내 손은 이렇게 곱지 못하다.
게다가, 사람들의 복장도 이상하다.
10년도 전의 교복을 입고 있다.
마주본 남자의 얼굴은 혐오감으로 물들어있다.


"그새끼들 호모새끼잖아."

난 대답할 수 없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됬다.
그러나 의지에 관계없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래서?"

익숙한 목소리다.

"더러운 새끼들. 딱 보면 딱이지"

"그게 안돼나? 미국에선..."

남자는 더이상 들을 가치 없다는 듯 말을 끊어버린다.

"난 그런 새끼들이 제일 더럽더라."

그 가시돋친 말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천천히 어두워졌다.
가슴에 망치를 맞은것처럼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복도였다.
아까 봤던 익숙한 인물이 여학생과 다정하게 대화하고 있다.
내가 저기 있어야 한다는 생각.
당장에 여학생을 치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찼다.
그리고, 열린 복도 창문 사이로 몸의 균형감각이 무너져내렸다.
둔탁한 소리와 아찔한 충격.
어째선지 내 몸은 벌떡 일어난다.

여전히 눈에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
여전히 미소를 띄고 웃는 모습이 허망하게 동공에 맺혔다.
이윽고, 내 시야는 점점 어두워졌다.

 

 

 

"그러니까, 좀 내버려 두란말야."


두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령의 목소리인지, 사령의 목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꿈을 꾸는 기분 속에서, 입을 열었다.


"여긴 한국이에요."

"..."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창가에 앉아있었다.
휴대전화에 메시지 전송 버튼이 어른거렸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해요."

 

여전히 대답없이 서있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있을 수 없는 색깔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파란 불빛에 비친 눈물은 더욱 괴기스럽게 보였다.
핏방울이 휴대전화에 뚝 뚝 떨어졌다.


입을 벙끗거리는데,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입을 크게 벌리더니
간신히 한마디를 내밷었다.  


"고백이라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치 마지막 힘을 쥐어짜듯, 그는 교실 안쪽으로 털썩 쓰러졌다.
휴대전화가 떨어지며, 배터리가 분리되었다.
소원을 담은 메시지는 그가 사라지듯, 함께 사라져버렸다.

 

 

 

 

 

 

 

 

 

'그'가 누구인지는 읽으면서 생각하면 된다.

왜 괴담이 소문만 있고 실제로 들어준 사례는 없었는지도 읽으면 알거고

읽으면서 깊이 생각하면 이 이야기 전체 쉽게 이해 가능함.

반전 소설 써보고 싶었는데 실패한듯.

 

 

 

3장_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