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춘향이 놀이>는 사춘기의 소녀들이 주로 즐겼다는 내용이 남아있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진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유추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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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소년층은 아직 이성적 능력이 부족하여 초자연적 능력에 기대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놀이에서 귀신에게 바라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2. 감수성이 예민하여 자신이 실제로 귀신들렸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 춘향이 놀이는 여성의 전유물이었으며 분신사바 또한 여성이 주로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위자보드>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위자보드>는 남녀노소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유행하였고, 진실성이 의심되는 후기들이 넘쳐났다.

이러한 사태가 생긴 이유는 초자연적 능력을 믿는다기보다 자신의 담력을 과시하여 관심을끌기 위해 라고 생각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바로 나홀로 숨바꼭질이다. 2012년에 이러한 유사 강령술이 붐을 일으킨 뒤, 다수의 학생들이 이를 실행하고 동영상을 남기기까지 했다.

개중에는 관심을 받고 싶어서 거짓으로 영상을 조작했다.’ 라고 자백한 학생도 있었다.

 

 

 

 

3.3 형식적 변화가 이루어졌다.

 

<분신사바>에서 쓰이는 주문들은 일본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이 대부분이다.

굳이 일본어를 유추하자면 비슷한 의미를 지닌 일본어로 해석할 수 있으나, 주문 자체는 엉터리인 셈이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놀이를 하다가 콧쿠리상을 부르는 대신에 큐피트를 부르기도 하는 등, 이상한 주문들이 쓰였다.

이것을 토대로 추론하자면 당시의 십대들은 간절함만 있으면 콧쿠리 상을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여 큰 골격만 남겨두고 세세한 내용을 바꾸었을 것이라고 본다.

무당들과는 달리 청소년들은 주술에 있어서 형식보다는 간절함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형식의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

 

 

4. 춘향이 놀이의 고유 특성

 

4.1 의식의 맥락은 비슷하나, 지역마다 전승 방법이 다르다.

 

경기도,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에 이르기까지 <춘향이 놀이>는 전국적으로 퍼진 놀이였다.

지역에 따라 나무 방망이를 들거나, 그렇지 않으면 나무 막대기를 들고, 심하면 아예 합장하는 것만으로도 의식이 진행되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콧쿠리 상>이 변형되기는 했으나, 지역마다 방법이 다르게 전승되지는 않았다.

<위자보드> 또한 14세기 이후로 일관된 틀을 가지고 전승된 것을 고려하면, <춘향이 놀이>의 이러한 특성은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원인은 당시 의식에 필요한 여러 물건을 동원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춘향이 놀이>는 명절에 혼기가 찬 처녀들이 모여서 하는 놀이였다. 신내림을 일종의 저주라고 생각하는 한국의 풍토상, 강령술을 하다가 들키면 부모에게 된통 혼이 날 것은 당연했다.

따라서 <춘향이 놀이>는 지역에 따라 별도의 준비물이 필요 없는 간략한 방법으로 바뀌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콧쿠리 상> 전승이 한국에 넘어와서 민망할 정도로 간소화된 사례에 비교해보면,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 문자를 대입해야하는 <콧쿠리 상> 전승 재료들을 한국어로 로컬라이징할 여력이 안되었기에 부득이하게 방법이 간소화 된 것처럼, <춘향이 놀이>도 이러한 이유로 간소화 되었을 것이다.

 

4.2 특정 대상층이 행하였다.

 

<위자보드><콧쿠리 상> 놀이는 남녀노소 연령층에 제한이 없이 행해지는 놀이였다.

하지만 <춘향이 놀이>청소년’ ‘여성층에서만 유행하였다.

현대에 와서 <분신사바>가 청소년층이 행하는 놀이가 되기는 하였으나, 여성층에게 한정된다는 특징은 춘향이 놀이만이 지닌 특징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사춘기 여성들의 가사노동과 출가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여성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역시 시집에 관한 문제였고, 좋은 집으로 시집가기 위해서는 숙련된 일 솜씨가 필요했다. 어머니가 하는 일을 따라하며 어린나이에 가사노동에 심하게 노출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스트레스도 점점 커져만 갔을 것이다.

이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것이 바로 <춘향이 놀이>였다. <춘향이 놀이>는 명절날에 같은 고충을 가진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조금이라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라앉힐 수 있도록 점을 쳐주는 역할도 담당했다. 무당을 고용해서 사주를 받을 돈이 없으니, 아쉬운대로 친구 한명을 무당으로 대신 세웠을 것이다.

<춘향이 놀이>가 측정 대상에게만 유행한 것은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5. 어째서 전승이 중단되었는가?

 

<춘향이 놀이>1950년대부터 사라지기 시작하여, 1960년대에는 완전히 전승이 중단되었다.

유일하게 가사가 전부 남아있는 <경상북도 안동><춘향이 놀이>를 제외하면 가사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형편이다.

<위자보드>14세기부터 지금까지, <분신사바>19세기부터 현재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에 비교하면 다소 이상하게 느껴질 만 하다.

 

전승이 끊긴것에 대한 추론은 이러하다

 

 

<춘향이 놀이>의 최면 효과가 너무 컸다.

 

<분신사바><위자보드>가 일종의 자기최면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춘향이 놀이>의 경우 외부적 자극으로 인해서 최면효과가 벌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최면은 시각적, 청각적인 자극을 통한 암시를 주는 것으로 이루어지는데, 시각을 차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근거로 보통 최면에서 시술자는 피시술자의 눈을 감긴다.

<춘향이 놀이>도 마찬가지다. 술래의 눈을 감기고, 주변에서 주문을 외우면 감수성 약한 여성들이 나는 귀신에 들렸다라는 최면 효과를 받았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춤을 추던 술래가 발작을 일으키며 날뛰기도 하고, 실제로 미쳐버리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건은 어른들이 놀이에 대해 거부감이 들도록 유도했을 것이고, 그에 따라 놀이를 금지하는 불문율이 생겨났을 것이다. 신내림을 터부시하는 한국의 풍토도 이러한 규칙 제정에 일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술래가 미쳤다는 소문은 전국으로 퍼져나갔을 것이고, 결국은 이를 제지하기 위한 성인들에 의해 전승이 중단된 것이 아닐까 추론한다.

 

2. <춘향이 놀이>는 별도의 도구가 필요없었다.

 

<위자보드>는 여러 문자가 적힌 나무 판으로 하는 놀이였으며, <콧쿠리 상> 또한 특정한 도구를 필요로 했다.

더군다나 이러한 놀이의 도구들은 강령의 의지만 있다면 어떻게 운용하는지 단박에 파악할 수 있는 모양새를 띄고 있다.

허나 춘향이 놀이의 경우 전승 방법이 단순했기에 별도의 도구가 필요하지 않은 편이었다.

기껏해야 방망이 정도가 필요했는데, 이런 방망이를 보고 <춘향이 놀이>를 완전히 기억해낼 순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구전으로만 전승되는 것에 한계가 있었으며, 놀이를 연상할만한 도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러한 악재가 겹쳐서 <춘향이 놀이>가 전승되지 못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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