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십년간 수십그루의 나무들이 온전하게 그 자리를 지켜왔던 오솔길을 지나, 꽃들이 수줍게 고개 내밀고 앉아있는 갈림길을 따라가면 내가 6년의 시간을 보낸 그리운 학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두메산골의 학교라지만 이 지역의 학교는 이곳 하나뿐이라 매년 수백명의 학생들이 다녀가는 것이다.
숨을 들이마시면 마치 푸른 바람이라도 코에 들어오는 듯 산뜻한 환경 속에 있는 학교지만, 도시의 여타 학교와 다를 바 없이 어두운 구석도 자리잡고 있었다.
중, 고등학교가 겹쳐있는 바람에 고등학생의 관여도 심심찮게 일어났으며, 도시에서 찾아온 부유한 학생들이 소외되어 살아가기도 했다.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도 이 산골에서는 빛 바랜지 오래이며, 도시의 문물은 이 아름다운 학교마저 위협하고 있었다.
나는 10년 전 이곳에서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서울권 대학의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처음엔 단순히 국어가 만만했기 때문에 지원했으나, 고전문학을 공부하며 구시대 문학에 눈을 뜨게 되었다.
신화는 허구이지만 허구가 아니며, 신성하면서도 철학적이다.
처음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신화의 본질을 들여다본 적 없기에 그저 고개를 저으며 웃을 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전국 각지에 널린 여러 이야기를 녹취하고, 그 참뜻을 찾아가던 중 문득 ‘학교 괴담’이 떠올랐다. 고등학교에는 이런 괴담이 존재하지 않지만, 중학교와 초등학교에는 학교에 대한 괴담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화장지 귀신 때문에 가지 못하고 끙끙 앓는 순수한 아이들은 괴담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우리의 괴담이 일본의 것과 지나치게 흡사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유관순 동상이 움직인다는 이야기는 일본에 이미 존재하던 것이었고, 이른바 분신사바도 일본에서 전래된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현실을 개탄하기위해, 또한 박사논문을 후회 없이 쓰기 위해 지금 내 모교를 찾아왔다.
산매미가 위협하듯 울어대는 텅 빈 교정에, 나는 첫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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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 없이 큰 운동장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커다란 운동장을 죽을둥 살둥 달리며 2등 도장을 받았던 추억이 새삼스레 기억의 저편에서 의식을 두드려온다.
한번 기억의 문이 열리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걷잡을 수 없다. 운동회에서 어느 편이 이기고, 어느 편이 졌는지, 이어달리기에서 누구 때문에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는지. 소소한 기억들이 한꺼번에 거품 일듯 몰려들어왔다.
행복한 추억이 있으면 반대의 경우도 있는 법, 중학교때 들었던 그리 좋지 않았던 이야기마저 떠올랐다.
아마 학교에서 했던 합숙행사 때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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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차례야.”
“나 아는거 아무것도 없는데.”
할 이야기가 없다며 뒤로 빠지려는 남학생을 옆에 앉아있던 학생들이 웃으며 한가운데로 끌어당겼다.
“모르는게 어딨냐? 그냥 아무거나 하나 하면 되는거지!”
“기억이 안난다니까?”
나는 연이어 들려오는 괴담을 듣고싶지 않아서 베개로 귀를 꼭 막고 있었다.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는 소리에 살며시 귀에 댔던 베개를 내려놓고, 혹여 귀신이 들어올라 교실의 문을 단단히 닫았다.
이제 아이들이 가운데에 놓인 위험천만한 촛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으면 하는 생각밖엔 없었다.
“아, 이제 생각날것 같애!”
“해봐!”
“하나도 안무서운데.”
“아이 그냥 좀 해보라니까!”
“그러니까 아마 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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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세월이 오래된 학교에는 불미스런 일이 한둘씩 있기 마련이다.
이 청정한 자연속에 덩그러니 놓인 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생이었던 학생 한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고등학교가 아닌 중학교 운동장에서.
한동안 경찰들이 학교를 어슬렁거렸고, 중학생들은 멍하니 울타리가 쳐진 운동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학생의 대인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그녀의 성적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들은 이것이 성적을 비관한 자살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이렇게 학교의 분위기가 흉흉한 와중에도, 중학생들은 아직 죽음의 개념이 확실하게 자리잡히지 않아서 그런지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게 무서워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한 학생은 한동안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활기차고 인기있던 남학생이 어째서 결석하는 걸까?
선생님에게 물어도 선생님은 되려 수업진도를 묻거나 갑자기 주의를 돌리는 행동 따위로 학생들의 질문을 원천봉쇄할 뿐이었다.
2주정도가 지났을까, 드디어 그 학생이 교실로 돌아왔다.
갑작스레 돌아온 그 학생에게 엄청난 관심이 몰리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마치 따돌림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학생들은 그 아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왜 여태까지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 어디가 아픈거야?
일상적인 질문이었으나, 그 아이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한참 뒤, 그는 덜덜 떨리는 입술을 열고 개미만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학교에 남아서 학급 문고를 꾸미고 있었어.”
몇몇 학생이 뒤를 돌아보았다.
확실히, 학급문고는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밤이 늦어서... 이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런데?”
“계속 말해봐!”
아아, 이때부터 학생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 아이가 자살학생과 관련있다는 것을.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는거야... 나는 깜짝 놀라서... 고개만 내밀고 복도를 봤어... 훌쩍훌쩍 울면서 고등학교 누나가 걸어가고 있었어.”
“고등학교 언니인줄은 어떻게 알은거야?”
“키가 크고... 너희는 보면 알잖아.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알았으니까 계속 말해봐!”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들려서 다시 학급문고를 꾸미기 시작했어... 그런데... 그 사건이 일어났어. 퍽 하고... 창문을 봤더니 그 누나가......”
아무도 아이의 이야기를 방해할 생각이 없었다. 그 아이가 다시 입을 열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피, 피투성이로... 누워있어서 노,놀라서 봤는데... 벌떡 일어났어!”
“꺄아악!”
여학생 몇 명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질렀다.
아이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일어나서 앉아서... 계속 가만히 있다가 다시 뒤로쓰러졌어... 눈에 피가...”
"그만 이야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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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우는 학생 주위에 서있던 학생들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따라 울기 시작했다.
대낮에 갑자기 들려온 울음소리에, 다른반의 학생들이 눈을 크게 뜨고 아이들이 어째서 울고있는지 물었다.
그 이야기는 점점 커졌으나, 그 구조가 상당히 단순했기에 상당히 온전하게 전승되었다.
그 이후로 자살한 여학생은, 중학생들에게 ‘벌떡소녀’ 라는 불명예스런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 소녀는 밤마다 중학교에 남아있는 학생들에게 그 모습을 보인다고 하며, 그렇기에 밤 늦게 학교에 남아있다간 어느새 앉아서 피맺힌 눈으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녀를 볼 수 있다는 괴담이었다.
그해는 교사 한명이 퇴직하고, 다른 교사가 들어왔던 해였지 아마.
모여서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은 역시 한번 들었던 이야기라며 불평했지만,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에 그만큼 충격도 컸다.
지금생각하면 단순히 한 학생의 자살 해프닝이지만, 중학교 시절에는 정말 무서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벌떡 소녀라니, 이름을 그렇게 짓는것 부터가 고인 능멸이 아닌가.
나는 닫힌 정문을 열고 낡은 교사 안으로 들어왔다.
밤공기가 찬데도 숨이 차올랐고, 땀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커다란 운동장을 어떻게 이렇게 빨리 건너온건지...
어디 앉을 곳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바로 앞의 교실이 열려있다는걸 깨달았다.
나는 교실에 들어가서 뒤에 놓인 의자에 주저앉았다.
2가 궁금해!!
와 흡입력 대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