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짧은 단말마가 교실 앞쪽으로부터 터져나왔다.
나는 온갖 공포스런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짧은 고수머리의 학생, 정확히 말하자면 중학생 한명이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었다.
곱게 다린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학생은 돌처럼 굳은채로 내 반응을 살폈다.
대체 학생이 왜 이시간까지 학교에 있는지, 원인모를 화부터 치밀어 올랐다.
마음같아선 크게 호통을 쳐서 내쫓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놀란가슴을 부여잡고 보니 내가 화를 낼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
“누구세요?”
그 학생이 먼저 교실에 흐르는 음산한 침묵을 깨트렸다.
지극히 일상적인 질문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몸을 뒤흔들던 불쾌한 흥분이 가라앉았다.
창가에 스며든 달빛이 학생의 얼굴을 비쳤고, 나는 그제서야 그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앳된 얼굴을 보아하니 중학교 1학년이나 2학년처럼 보이는데, 왜 이런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있는것일까
“나는 이 학교 졸업생이야.”
“졸업생이요?”
아이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어린아이들은 한번 의구심을 품으면 끝이 없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다시 해가 뜨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에도 질문을 하며 터무니없는 논리로 어른에게 덤벼드는 것이다.
내가 이곳의 졸업생이라는 것을 증명할 물건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말로 어떻게든 설명한다한들 이 아이가 제대로 납득할지 장담할 수 조차 없었다.
“그래. 당화중, 당화고 졸업생이야.”
“...거짓말! 형 귀신이지?”
“뭐?”
“그럼 왜 이 시간에 여기있어?”
아이는 주먹을 불끈 쥐고 당차게 소리쳤다.
논리적 비약이 심해도 정도가 있다.
앞뒤 따지지 않고 이 시간에 학교에 있다는 이유로 상대를 귀신으로 단정짓는 저 단순함이 너무나도 싫었다.
저런 엉성한 논리를 일일이 짜맞춘단 것은 마치 간척공사를 한다면서 한줌의 모래를 뿌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맘대로 생각해라. 난 그냥 오랜만에 여기 와보고 싶었던것 뿐이야.”
“...”
나는 아예 의자를 끌어 그 아이에게서 등을 돌려버렸다.
어린 아이를 상대할 여력도, 흥미도 없었다.
“...그럼 형은 지금 뭐하고 있는데?”
나는 대답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들었다.
아까부터 제대로 신호가 터지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신호가 상당히 약해져 있었다.
“왜 아무말도 안해? 귀신 맞지?”
“아 제발 좀.”
“그럼 뭐하는 사람이야?”
“박사님이다 박사님!”
논문 한편만 제대로 작성하면 박사 학위는 따놓은 것이나 다름 없었기에, 나는 당당하게 소리쳤다.
“... 거짓말!”
“믿던지 말던지.”
나는 핸드폰을 끄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박사야?”
아이가 다가오는 소리가 등 뒤에서 선연히 들려왔다.
박사라는 말에 왜이리 흥분하는건지 알 길이 없었으나, 그저 꿈이 교수나 박사가 아닐까 추측할 뿐이었다.
“국문학과.”
“국어?”
“그래. 학교 괴담 녹취좀 하러....”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바로 괴담 녹취.
교사나 다른 학교 관계자 누구도 아닌 학생에게서 괴담을 생생히 전달받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아직 나이도 어린데다 순진하기까지 하니, 음료수 한캔 정도라면 자기가 아는 괴담을 말해줄 법도 했다.
“내가 학교에 있는 괴담을 듣고 그걸 논문으로 써야하거든? 근데 이걸 학교 학생들한테 들어야 하는거야.”
“그래서?”
“네가 괴담을 얘기해주면 좋겠다. 마침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조용하니까, 지금 하면 딱 좋을것 같은데. 어때?”
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뒤, 음성 메모를 남기기 위해 녹음 어플을 켰다.
“싫어.”
“뭐? 아니, 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던 때에 찬물이 끼얹어지면 누구나 화가 나는 법이다.
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이런 어린애한테 거절을 당하다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밤에 무서운 얘기하면 무섭단 말야.”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다툼의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자신의 일에 모욕을 당했다고 느낀 국문학과생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고 싶지 않은 어린 아이의 목소리는 관악기처럼 교내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 불쾌한 소음은 복도, 운동장에서도 선연히 들릴정도로 덩치를 키워갔다.
침묵의 시간은 한순간에 찾아오기 마련, 그들의 다툼은 어느 순간 사그라들었다.
...
발자국 소리다
핸드폰 조명이 깜박거리다가 이내 절전모드로 들어갔다.
한번이라면 착각으로 치부할 수도 있으나, 모래 알갱이 자박자박 밟히는 이 연속적인 소리는 운동장으로부터 들려오는 발소리가 틀림없었다.
“쉿.”
내가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그 아이는 입을 꾹 다물고 바깥만 바라보고 있었다.
자박거리던 발소리는 이내 멈췄다.
...
잠깐
운동장에서 이 교실까지의 거리는 어림잡아 100m. 운동장에서 들리는 발소리가 이 교실까지 들려올 수가 있는건가?
복도에 있는 모래 알갱이를 밟은걸까?
아니 그럴 일은 없다. 모래가 잔뜩 쌓인게 아니라면 이런 소리는 들릴 수가 없다.
“여기 가만히 있어.”
복도 창은 내 키로 닿지 않을정도로 높은 곳에 있었다.
일단 고개를 내밀어 창문을 보기만 한다면, 운동장까지는 한번에 눈에 들어온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고 방금까지 앉아있던 의자를 밟고 일어섰다.
이제 허리를 펴기만 하면 된다.
발자국의 정체를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차마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벌떡 소녀의 피맺힌 눈이 머릿속에서 아귀처럼 다른 생각을 먹어치우며 그 크기를 점점 늘려갔다.
이제 발자국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는 운동장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움직이지 않는걸까?
나는 허리를 완전히 펴고, 운동장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그리고, 새카만 무언가를 보았다.
...
자칭 박사라고 소개했던 그 사람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 듯 눈살을 찡그리더니, 의자에서 내려와 문을 열고 교실을 나갔다.
아이는 무작정 그의 뒤를 쫓았다.
그 사람은 대체 무엇을 본것이길래 저렇게 겁도 없이 나가는 것인지 모른다.
그의 발걸음은 어린 아이가 따라가기엔 턱없이 빨라서, 아이는 발걸음을 빨리할수밖에 없었다.
성미급한 박사님을 따라 정문을 나서기 직전, 아이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뒷통수에 꽂히는 강렬한 시선에, 아이는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본능과 호기심 사이에서 갈등했다.
모든 것이 느리게만 보였다.
박사가 걸어나가는 모습, 주변에서 들려오는 쓰르라미 소리들이 뇌 속에서 느리게 진동했다.
악한것을 해방시킨 것은 판도라의 호기심이라.
아이는 기어이 고개를 돌려 보지말아야 할 것을 마주쳤다.
‘설마... 정말로?’
그 시야의 끝에는, 피에 젖은 눈을 빛내며 연신 몸을 경련하는 한 여학생의 모습이 있었다.
왜 핸드폰을 굳이 아이폰이라하죠? 앱등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