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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운동장으로 걸어갈 필요도 없었다.

단순히 검은 덩어리라고 생각했던 그것은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내 쪽을 돌아보았다.

달빛이 워낙 밝은 터라 나는 그녀의 얼굴 형태까지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할머니라 부를 순 없지만, 얼굴에 난 잔주름이 그녀가 결코 젊진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윗옷부터 치마까지 전부 검은색으로 차려입은 그 모습은 당장 누군가를 길동무로 삼아 황천길로 내려갈 것 같은 저승사자와도 같았다.

나는 먼발치에서 그녀의 존재를 파악했고, 그녀 또한 나를 파악했다.

그녀는 검은천으로 감싼 무언가를 주섬주섬 바닥에 내려 놓더니, 몇미터 떨어진 벤치에 앉았다.

나에 대한 일말의 의문도 품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은 모두 마쳤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는 그녀가 달관한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있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녀의 신분을 어렵사리 기억해냈다.

 

‘이혜자 선생님?’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중학교로 도덕 교사로 건너왔던 그녀였다.

윤리를 가르치다가 순수하지 못한 고등학생들에 대해 회의를 느낀 것인지, 아니면 역풍을 맞아 중학교로 내려간 것인지 알 길은 없으나 인사발령을 본인이 원한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해, 그녀는 그것을 증명하듯 자진퇴임했다.

중학교 1학년때 그녀의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거침없는 언사로 학생들의 마음을 뒤흔들기도 했으나, 항상 그 목적은 같았다.

자신이 가르치는 모든 학생들이 도덕적으로 살았으면, 인간답게 살아줬으면.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전해지지 않았고 자신의 부정적인 태도만을 학생들의 기억에 남기고 말았다.

그녀는 마치 새끼 고슴도치와 같았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려 다가갈수록, 온기는 커녕 날카로운 가시만이 서로를 다치게 한다.

다 큰 고슴도치라면 애초에 몸을 비빈다거나 하는 행동을 하지 않겠지만, 새끼들은 어째서 어미가 자신을 피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가 과연 나를 기억해줄까, 몇 년전에 만났던 학생을 반겨줄 수 있을까?

막연한 기대감이 마음 깊은 곳에서 풍선처럼 크기를 키워갔다.

먼 옛날 이야기처럼 희미해진 학창시절의 추억을 나눠줄 사람이 필요했다.

하나, 둘, 셋. 총 12계단을 내려가, 체육 시간에 서로 차지하려 다퉜던 벤치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녀는 분명 내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구태여 막지는 않았다.

팔을 뻗으면 그녀의 어깨에 닿을 거리에 서자, 비로소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표정이 불현듯 풀리고, 그녀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너 이름이 뭐니?”

 

“정재오입니다.”

 

“내 수업을 들었었니?”

 

“네. 중학교 1학년때...”

 

그녀는 더 이상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저 두 눈을 내게 맞추고, 자신의 추억 속을 헤맸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그녀의 입이 그믐달처럼 휘었다.

나는 적잖이 놀랐으나 굳이 그 표정을 드러내진 않았다.

평소같았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만 까딱했을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드러내고 있었다.

 

“언제 졸업했지? 대학교는?”

 

“네.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준비하고 있어요.”

 

“박사... 대단하다...”

 

그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렸다.

 

“학교가 다시 보고싶었구나?”

 

“그렇기도 하고... 학교괴담을 채록하기 위해서 왔어요.”

 

“...괴담?”

 

순간적으로 나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표정이 돌을 빠뜨린 수면처럼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건 왜 찾으러 다니는건데?”

 

“구전되는 이야기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고,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에요.”

 

“으응.”

 

그녀는 더 이상 괴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화제를 전환하려는 듯, 그녀는 내게 앉을 것을 권했다.

 

“여기 앉아라.”

 

“네.”

 

조심스럽게 벤치에 앉아, 그녀쪽으로 살짝 몸을 돌렸다.

학창시절의 추억을 조금 더 나누고 싶었는데, 뜻밖에 그녀쪽에서 먼저 민감한 이야기를 꺼내왔다.

 

“괴담같은건 조사하지 않는게 좋아.”

 

“네?”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괴담이 지닌 참 의의를 이 사람도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을 열고 반박하려던 찰나 그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귀신같은걸 조사하러 다니고 그러면 안좋기 때문이야.”

 

“... 저희 국문학과는 이야기들을 무조건 거짓으로 결정짓고 봐요. 민담, 전설, 신화의 진실성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이야기가 담은 참 의의를 알아야 하는거죠.”

 

“그렇지. 네 말이 맞지만... 그렇지가 않아.”

 

그녀는 초조한듯 연신 초라한 손을 비볐다.

그녀가 귀신같은 존재를 믿는다면 그것에 대해서 더 이상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종교와 관련된 다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념보다도 무서운 것이 종교에 관한 전쟁이니까.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는 유교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선생이, 이런 괴력난신을 믿고 있다는 것은 넌센스였다.

 

“다른 이야기는 몰라도, 그 이야기만큼은... 정말이야.”

 

“이야기...라뇨?”

 

“그 이야기는... 내가 만든거니까... 어쩌면 너도 알고있을지 몰라. 그 이야기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음성 메모함에서 녹음 버튼을 누른 뒤, 그녀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이야기해주시면 안될까요?”

 

“아냐. 하지 않는 것이 좋겠어.”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대화를 끊었다.

산벌레 우는 소리와 개구리 합창소리만이 한산한 학교를 채웠다.

 

 

 

 

....

 

 

 

 

 

 

 

그 느낌은 대체 무슨 느낌이었을까

얼음 덩어리로 맨 등을 직격당했을때의 느낌이라고 하면 얼추 들어맞을 것이다.

그 한기는 점점 팔, 목, 얼굴로 기어올라왔고, 이내 온몸을 꽁꽁 얼렸다.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몰랐다. 막연한 공포가 돌처럼 온몸을 감싸왔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그녀는 내 등 뒤를 주시하고 있었다.

입을 반쯤 벌리고, 아아아아 하는 비명같은 신음소리를 흘리며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고개를 움직이자, 관절이 뚜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지 말아라!”

 

그 외침을 들었을때는, 이미 늦었다.

운동장 한가운데에 서있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고개는 반쯤 뒤로 젖히고, 두 팔은 그저 늘어뜨리기만 했으며 두 다리는 기묘하게 꺾여있었다.

고개가 뒤로 넘어가 있었으나, 잔뜩 내리깐 시뻘건 눈동자가 그녀가 우리를 보고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것을 눈물이 흘러내리고 나서야 깨달았고, 코에 콧물이 차오르는것을 알아채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울고 있단걸 알았다.

울음에 젖은 목소리가 천천히 목울대를 타고 올라왔다.

그저 그 기괴한 모습을 보며, 우는 것 밖엔 할 수 없었다.

움직이지 않는 몸이 미웠고, 밤 늦게 나가는걸 말리지 않은 할아버지가 미웠다.

그녀는 이내 온 몸을 흔들거리며 땅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입으로 물어올렸다.

그리곤 45도로 꺾인 두 다리를 꺼떡거리면서 학교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어, 이아이에오, 어애임...”

 

뚜둑 우두둑 우두두둑

 

뼈가 부딪치는 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그녀의 모습도 사라졌다.

몸이 풀린 것은 한순간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마치 폐인처럼 의자에 기대어 있었다.

여름 공기가 피부를 감싸고 한없이 차갑기만 했던 피부는 어느새 온기를 되찾았다.

얼어붙은 표정으로 앉아있던 교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괴물이 학교로 들어가고 나서 한참 뒤에서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

 

“저게... 니가 찾아다니는 괴담이야... 벌떡귀신 말이야.”

 

난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입안 가득 고여있던 침을 한번 삼키고나서, 나는 간신히 입을 열어 말했다.

 

“대체 학교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