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Fragment-->

이혜자의 교사 인생은 시작부터 순탄치 못했다.

흰 꽃잎 발갛게 물든 벚꽃 떨어질때 즈음 가르친 학생들은 장미처럼 너무나도 연약했다.

공부가 전부는 아니며, 자신만의 꿈을 찾으라는 그녀의 가르침은 이 험난한 세상에서 조각배 하나로 태평양을 건너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지팡하던 아이들은 끝내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지 못했다.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초라한 모습을, 자신의 은사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언제 한번 만나자는 약속도 땅에 떨어져 짓밟힌 벚꽃처럼 썩어갔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때, 이혜자의 마음도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꽃은 금방 떨어지지만 돌은 단단하게 영겁을 버틴다.

지금 당장 꽃을 피우는 것보다 아이들을 돌처럼 강하게 키우고 싶었다.

철 없던 시절엔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던 그녀를, 학생들은 성인이 되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그녀가 짊어진 교사의 의무는 충실하게 수행되고 있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말이다.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이혜자는 수능에 맞춰 아이들을 가르칠 여력이 되지 않았다.

매 해가 달라지며 학생들이 배우는 윤리는 점점 괴이하게 모습을 바꿔갔고, 그녀는 고등학교에 자신의 자리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는 학생을 인성적으로 키우는 것보다 당장 성적을 향상시킬 교사가 필요했다.

행정실에 앉아있는 나이 지긋한 관계자는 그에게 날아온 소속 변경서를 기다렸다는 듯, 한마디 위로 없이 담담히 받아들였다.

자신이 담임을 맡았던 2학년 학생들은 그녀가 중학교로 내려가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기뻐하며 실컷 비웃었다.

이혜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구태여 학생들을 훈계하지는 않았다.

그저 ‘모두 수고했다.’라는 한마디만을 남긴 채, 쓸쓸히 교단에서 물러날 뿐이었다.

 

 

중학교의 학생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천진난만하고 순수했고, 윤리적 가르침을 비교적 잘 받아들였다.

그녀의 몸 안에서 교사로서의 사명감이 고요하지만 은은히, 파랗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밤 늦게까지 교무실에 남아 수업을 준비하던 중, 한명의 학생이 그녀를 찾아왔다.

고등학교 2학년때 자신의 반에서 착실히 공부하던 여학생이었다.

 

“선생님. 제가 요즘 너무 힘들어요.”

 

이혜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힘든지 물어보지 않아도 자신이 그 이유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3학년생이 교사를 찾아오는 일은 단 하나밖에 없다는 선입견을 깨지 못했던 것이다.

 

“너만 힘드니? 다른 애들도 다 너만큼 힘들어 하는데 꾹 참고 공부하는거야. 아직 7월달인데 벌써부터 힘들어하면 어떡하려고?”

 

학생은 대답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살며시 웃는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보였다.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

 

“야간 자율학습 시간은 꼭 채워야 한다. 알았지?”

 

대답 대신 힘없이 문이 닫혔다.

교무실에 혼자 몇 분동안 앉아있던 이혜자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학생이 지었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제대로 교실로 돌아갔는지 설마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아닌지 불현듯 위기감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다급히 정문을 나서던 찰나, 눈 앞에 무언가 둔탁한 것이 떨어졌다.

몇분 전까지만 해도 학생이었던 것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눈은 뜨고 있었다만, 그 초점은 온데간데 없이 눈동자만 달빛을 받아 빛났다.

그 상태로 있었다면 이혜자는 틀림없이 비명을 지르며 혼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실로부터 들려온 남학생의 비명소리가 그녀의 정신을 뒤흔들어 완전히 깨워놓았다.

한참동안 앉아있던 학생의 몸뚱이는 이윽고 뒤로 풀썩 넘어갔다.

 

 

 

 

....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때에, 그녀는 조기 퇴임을 신청했다.

늦은 밤, 누군가가 정문에 앉아있는 괴이한 소녀를 보았다고 수군거렸다.

이혜자는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교내 신문 투고함에 벌떡 소녀 괴담을 곱게 접어 밀어넣었다.

단순히 벌떡 소녀가 나타난다는 사실 이외에도 늦은 밤에 학교를 가선 안된다는 금제를 걸었다.

자신의 과오로 인해 벌어진 사고로 다른 누군가가 폐인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바람대로 새로 다듬어진 괴담은 전교를 휩쓸고,  아무도 밤에 학교를 나오거나 하지 않았다.

 

 

 

땅거미가 거뭇거뭇 지고 그믐달이 떠올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밤에 그녀는 십 수년을 함께해온 자신의 교재와 물건들을 가방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그리운 학교를 돌아보았을 때, 그 소녀가 정문으로부터 무서운 속도로 걸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혜자는 고통섞인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가방을 떨구고 도망쳤다.

 

 

“미안하다! 용서해주렴!”

 

 

“어, 어어어! 어어어어어!”

 

 

소녀는 단지 의미없는 목소리를 되풀이하며 미친듯이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이혜자가 한참 뒤에 등 뒤를 돌아봤을 때, 그녀는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그저 교문에 서서 이혜자를 내려다 보고만 있는 것이다.

 

 

 

 

 

....

 

 

 

 

 

 

 

“매일 밤.... 꿈마다 그 얼굴이 나타나.... 수면제를 복용하고 눈을 감아도, 자꾸 그 모습이 보이니까 어쩔 수가 없어...”

 

이혜자는 연신 눈을 비비며 자신의 감정을 토해냈다.

여태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생판 본적 없는 남에게 드러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럼 저게 선생님 때문에 생긴건가요?”

 

“모두 나 때문에 생긴거나 다름없어... 내가 죽으면... 저 애도 편하게 갈수 있겠지.”

 

평소같으면 그녀가 토해내는 말들을 모두 헛소리로 치부하고 넘어갔을 터였으나 방금 전에 괴이 현상을 내 눈으로 목격했기에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정말 그녀가 이 일의 원인이라면... 정말로 그렇다면....

 

“길동무인가...?”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공포스러운 시선으로 그저 학교 건물을 바라보더니,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사시나무 떨리듯 바들거리는 두 다리가 안쓰러웠으며, 그녀가 어디로 향할지 전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만 희생한다면, 내 안전이 보장될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천천히 잠식해나갔다.

나 살자고 하는 짓이 아니야. 이 학교의 모두를 위한 것이니까, 어쩔 수 없는거야.

 

“어쩔 수 없는거야...”

 

나도 모르게 입으로 연신 그 말만을 되뇌이고 있었다.

그녀가 완전히 몸을 일으켜서, 학교 쪽으로 몸을 돌리던 그 때

 

“으음으...”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았던 그 목소리가 고막 안쪽에서부터 찌르르 울려왔다.

나는 그저 눈을 감고, 그녀가 빨리 교사를 데려가기를 바랬다.

 

정적

 

그저 정적

 

벌레들의 화음은 사라진지 오래

 

물 한방울 지면에 떨어져도 그 소리가 들릴것 같은 적막 속에서,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입으로 수수한 손가방과 검은 천을 문 채로, 벌떡 소녀가 입꼬리를 올리고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저 히죽이며 웃고있는 그녀에게, 교사가 부들부들 몸을 떨며 일갈했다.

 

“저 애는 놔두고 나만 데려가라!”

 

그녀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입꼬리를 축 내리고, 고개를 휘 휘 저었다.

 

까드득 까드득

 

관절 부딪치는 소리가 생생히 들려왔다.

 

틀렸다.

 

그녀는 길동무를 하나라도 더 늘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그저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