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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숨죽여 그 장면만을 지켜보던 먹구름은 지상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가만 두고볼 수 없었던 것인지, 굵은 빗줄기를 떨구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이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썹에 맺혀있던 작은 물방울들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흘러내리다가 눈꼬리에 맺혔다.

소녀는 꺾여있던 목을 완전히 비틀어,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에 맺힌 물방울을 털기 위해 온 몸을 흔들던 소녀는, 문득 땅에 가득 고인 물웅덩이를 바라보았다.

지난 시간동안 거울에서도, 다른 물 웅덩이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이 더러운 웅덩이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먼지가 가득한 더러운 머리칼, 구완와사라도 걸린 것인지 여기저기가 뒤틀린 얼굴, 제멋대로 꺾인 팔.

이 모든것들이 사후 처음으로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이렇게 자신의 모습이 추악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고개를 들자 뿌드득하는 소리가 다시금 고막 안에서부터 울려왔다.

옛 교사와 이름모를 청년은 눈을 꼭 감고 그대로 빗방울을 맞고 있었다.

소녀는 천천히 교사에게 다가갔다.

입에 물고있던 손가방과 검은 천을 바닥에 곱게 내려놓고 싶었지만 허리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온 몸의 근육이 그녀의 통제 밖으로 벗어난 상태였다.

비참했다.

이런 꼴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빗방울이 대신 뜨거운 눈물이 그녀의 눈가로부터 흘러내렸다.

누가 보더라도 그녀의 눈에서 떨어지는 방울들이 눈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선혈, 7월의 장미보다 새빨간 피눈물이었다.

작은 손가방과 검은 천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손가방 속에 담겨있던 작은 다이어리가 굴러떨어져 교사의 앞으로 굴러갔다.

교사는 그 소리에 문득 눈을 뜨고, 자신에게 주어진 망자의 유품을 조심스레 거두어들였다.

소녀는 그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

이제 되었다. 라는 생각이 든 동시에 그녀의 목 뒤에서 무언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껏 자신을 팽팽하게 끌어당기면서도 결코 넘어지지 않게 떠받쳐주던 무엇인가가 일순간 사라졌다.

간신히 땅바닥을 짚던 다리가 꺾이며 뒤로 무너지는 소녀에게, 앞으로 다시는 이 몸을 일으킬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허나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선 어떤 후회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걸로 자신의 마음이 전달되었다면, 더 이상 학교에 미련은 없었다.

그저 저 앞에 서있는 청년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었으나, 말이 제대로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소녀는 온 힘을 끌어모아 입을 열었다.

뜻밖에 몇 년동안 듣지 못했던 자신의 목소리가 성대로부터 온전하게 터져나왔다.

 

 

 

“고마워요.”

 

 

 

 

 

빗방울이 옷에 스며들어 몸 안에 흐르기 시작했으나, 이혜자는 더욱 몸을 웅크리고 다이어리에 물 한방울 묻지 않도록 그것을 감쌌다.

떨리는 손으로 열어본 다이어리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어린 소녀의 당찬 유언이 빼곡이 적혀있었다.

주변의 사람들 때문에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니, 자기 몫까지 열심히 살아달라는 당돌한 유언이었다.

지난 몇 년동안 깨닫지 못했던 소녀의 진심을, 이혜자는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여태껏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응어리졌던 죄책감, 후회감, 소녀에 대한 이유모를 고마움이 한데 섞여 통곡으로 흘러나왔다.

아아아아 하는 울음소리가 멈출때까지, 하늘은 그녀와 함께 울어주었다.

 

 

 

 

벤치에 앉아있던 국문학생은 그저 멍한 표정으로 땅에 굴러다니는 국화꽃과 손가방, 정문으로 향해있는 아이의 발자국을 주시했다.

아이가 뒤로 넘어진 것 같은 흔적이 남아있었고, 그 흔적은 정문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혜자가 검은 천으로 곱게 감쌌던 국화꽃은 땅에 떨어졌음에도 진흙 하나 묻어있지 않았으며 오히려 빛줄기 하나 없는 어두운 학교에서 은은히 빛나는 듯 했다.

그는 어렵사리 일어나 땅바닥에 무릎꿇은 이혜자를 일으켜 세웠다.

다이어리에 적힌 내용이 무엇인지, 왜 소녀가 자신들에게 손 하나 대지 않았는지, 그는 묻지 않았다.

그저 눈물에 잠긴 이 학교를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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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의 이름은 '학교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며

 

1~5 의 제목은 '벌떡소녀' 입니다.

 

다음은 '암실 속의 무언가'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