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랑거리는 종소리가 석양에 잠긴 고등학교로부터 들려왔다.
학교에 남아 악기들을 정리하던 중학생은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보았다.
7시 30분.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으나,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왠지 학교에 자신만 남은 것 같아 묘하게 두려웠던 것이다.
아이는 트럼펫 피스톤을 윤활유에 적셔 밀어넣은 뒤 뚜껑을 잠갔다.
관악부를 지휘하던 선생님이 모처럼 학교에 들를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온 이후로, 학생들은 자신들의 실력을 관리하고 악기를 닦는데 여념이 없었다.
아이는 모든 악기들이 제자리에 놓인 것을 확인하고 관악부의 문을 걸어잠갔다.
둘 넷 다섯 여덟 열, 열두계단을 지나 2-2 팻말이 걸린 교실로 들어갔다.
바둑판처럼 가지런히 6개씩 5줄로 놓인 책상 한가운데에 악보 하나가 놓여있었다.
아이는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악보를 집어들었다.
혹시 챙기지 못한 것은 없을까 골똘히 고민하던 아이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1층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뒷문으로 빠져나가려던 찰나 지나가는 바람처럼 희미한, 하지만 확실히 감지할 수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려줘.”
학교에서 수도 없이 들었던 단어였다.
서로 장난치며 웃다가 자주 튀어나오는, 이제는 일상적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흔한 단어였다.
허나 지금 들려온 목소리는 그 단어의 본래 의미가 뇌 속 깊이 파고들 정도로 절박했다.
어째서 그런 목소리가 들려 온 것인지 판단할 틈도 없이, 아이는 고개를 휙 돌렸다.
등 뒤에 존재하는 것이라곤 1층 계단에 마련된 지하 창고밖에 없었다.
늘 보던 그대로의 창고였다.
단 한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평소에 먼지를 한가득 뒤집어쓴 채로 녹슬어 있던 자물쇠가 사라져 있었다는 것이다.
‘지하창고 문을 열어선 안돼.’
‘왜?’
‘거기 귀신이 갇혀있어서 그래.’
‘거짓말!’
웃으면서 나누던 친구와의 대화가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그곳으로부터 들려온 목소리는 너무도 절박해서, 그것이 귀신의 부름이라도 아이는 문을 열고 싶었다.
아이는 작은 팔을 뻗어 창고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덜컥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창고 문이 열렸다.
어둠 한 가운데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구야?”
목에선 당당한 목소리 대신, 잔뜩 겁을 집어먹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야...?”
아까와는 달리 쥐어짜는 듯한 음성이 암실 안쪽으로부터 흘러나왔다.
“...”
아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교복을 입은 작은 여자아이 하나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기아에 시들린것 처럼 몸에 옷과 가죽만 걸친 듯한 공포스러운 몰골이었다.
아이는 황급히 몸을 돌려 다리를 뻗었다.
하체는 앞으로 나아가려 했으나, 상체가 이미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의 몸은 저항하나 하지 못한 채 천천히 암실 속으로 잠겨들어갔다.
쾅
문이 닫혔다.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5분 정도 지나서, 창고의 문이 다시 열렸다.
끌려들어갔던 아이가 입을 벌린 채 튕겨나왔다.
“물...물...”
아이는 미친듯이 운동장으로 달려나갔다.
운동장에 설치된 수도꼭지에 입을 가져다 댄 채, 콰르륵 쏟아져 나오는 물을 한없이 들이켰다.
마침 운동장으로 들어오던 세단이 그 모습을 보고 우뚝 멈췄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 한명이 뛰어나와 아이를 수도꼭지로부터 떼어냈다.
“컥 컥”
쩍쩍 갈라진 목에서 수돗물이 분수처럼 터져나왔다.
미지근한 물이 남성의 옷을 적셨으나, 그의 시선은 아이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창고, 창고에...”
끄르륵 거리면서도 아이는 눈을 부릅 뜬 채 말을 이어나갔다.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아이를 안고 있던 전직 관악부 교사는, 고개를 돌려 학교를 바라보았다.
주홍빛 석양으로 온 몸을 물들인 학교는 피를 한 양동이 뒤집어쓴 아이와도 같았다.
안겨있던 아이가 다시 한번 물을 토해냈다.
그와 동시에 짤랑거리는 종소리가 피로 물든 중학교로부터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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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가요 ㅎ
언제 돌아오시나요ㅠㅠ
꿀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