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이 여객기 티켓이라는 놈의 가격은 지나치다고 생각해, 그렇지?


사실 내 친척동생이 스튜어디스를 하는데, 아니 뭐 자랑은 아니고.. 


그래서 이쪽의 구린내나는 일을 좀 알고 있어"


"....."


"비행기 연료가 뭔줄 아나? 왕복일 경우에는 AV가스를 쓰거든. 아 참 AV가스는 최고급휘발유라고


말할 수 있구, 헌데 이놈의 가격이 장난이 아니거든. 원유를 정제해서 얻는 얘들 중에서 가장 가격이 비싸.


미국이나 영국이 이 가스를 쓰는데, 혹시 우리와 티켓 가격을 비교해 본 적 있나?"


"......"


"그래, 그거거든. 터무니 없이 싸단 말야, 택시값이나 배삯과 비교해도 결코 많지 않아


헌데 우리나라 한번 보라구, 서민들은 웬만한 결심 아니면 외국 나가기도 힘들거든...


그러면 우리나라 비행기 연료가 AV가스냐... 그것도 아니야, 그보다 질이 훨 떨어지는 JP유를 쓴단 말야


연료는 질이 낮고 운임료는 턱없이 비싸고.. 물론 연료는 아무거나 쓴다고 치자, 그런거야 주인 마음이니.


사실 비행기 연료는 굳이 휘발유쪽을 쓸 필요는 없거든, 경유쪽을 써도 끄떡이 없어. 왜 그런지 아나?"


"....."


인천발 뉴욕행 항공기인 KE81 기내에서 여승무원 둘의 표정이 마침내 사라졌다.


직업 특유의 인내심과 습관처럼 훈련된 미소는 성형중독자의 그것처럼 어색하게 변했으며,


종래에는 그것마저 사라지고 싸늘한 무표정이 자리를 잡았다.


저 사람은 착석한 후로 잠시도 입을 쉬지 않았다. 말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이라지만, 가능하다면


바늘로 입을 꿰매놓고 싶었다.


마음속에서 아홉번째로 입을 꿰맸을 때,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그녀는 천성이 착했고, 결코 모진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살의에 잠시 반성을 했다.


그녀의 시선이 수다를 떨어대는 남성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폈다.


머리는 어깨까지 길러 하나로 묶었고, 옷은 저급 개량한복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별 특징이 없이 평범했는데, 많이 보면 30대 후반으로 보였다.


다시 그녀의 시선이 옆으로 이동했다. 사실 그녀보다는 직접 듣는 저 사람이 더욱 힘들것이다.


남자의 옆좌석에는 갈색의 야구모자를 눌러 쓴 젊은 사내 한명이 눈을 감고 있었다.


막 군대를 제대했거나, 그즈음의 나이로 보였다. 모자로 가려져 잘 보이진 않았지만


희끄무레한 피부에 오똑한 콧날은 꽤나 호남형임을 짐작케 했다.


"저기요.."


멍하니 바라보던 스튜어디스의 얼굴이 황급히 돌아갔다.


사내가 별안간 눈을 뜨고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네.네 손님, 무슨 불편한 곳이 있으십니까"


표정을 가다듬고 그녀가 사내에게로 걸어갔다.


"혹시..."


사내는 모자를 벗고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젊은 남자의 강렬한 눈빛에 그녀의 심장박동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아..'


그녀의 예상을 웃돌았다. 사내는 선이 무척 고운 미남이었고, 야수같은 박력을 가지고 있었다.


"....."


그녀가 멍한 얼굴로 사내를 바라 보았다. 잠시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채 본능에 이끌렸다.


"혹시..."


사내가 재차 말을 꺼내며, 옆쪽을 훽 째려 보았다. 


"이 곳에 귀마개가 있습니까?"


"네? 귀..귀마개요? "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곳에 귀마개가 있었던가?. 골똘히 생각에 빠진 그녀의 옆으로 또 다른 승무원이


다가왔다.


"여기 귀마개 있습니다, 손님. 또 불편한 사항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사내가 여자의 손에서 냉큼 귀마개를 낚아채 갔다.


"미스터 권도 한번 생각해 보게나, 글쎄 내 말이 틀린가?


셰브론 사의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따지고 보면 차별이거든..


왜냐하면..."


옆자리에 앉은 남자의 화제는 이제 석유회사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김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좀 졸리군요"


귀마개를 잽싸게 꽂은 그가 모자를 푹 눌러 썼다.


옆에서 무슨 말이 들려 왔지만, 그것은 아득한 곳에서 울리는 메아리 같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에 그가 전신을 릴렉스 하게 풀었다. 노곤하게 밀려오는 피로감이


묘한 쾌감으로 변했다.



비행기는 여섯시간을 더 날아간 뒤 뉴욕 JFK공항에 착륙했다.


비행기가 멈추자 두 사내가 자리서 일어났다.


"와우, 드디어 뉴욕이군"


긴머리의 남자가 창밖을 보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으드득"


야구모자의 사내는 굳었던 몸을 활짝 폈다.


전신에서 근육이 힘껏 확장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나갑시다, 김선생님"


기내의 사람들이 안내방송에 따라 하나 둘 움직이고 있었다.


입구에서 승무원들이 인사를 했다.


"편안한 여행 되셨습니까? 저희XX항공에서는 여러분들의 쾌적한 여행을 위해 언제나 노력하겠습니다"


"고마웠어요"


그가 웃으며 귀마개를 돌려 주었다.


스튜어디스는 아쉬운 듯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사내는 서둘러 내려버렸다.


"후욱"


바닥을 내려서자 사내가 힘껏 공기를 들이 마셨다.


차가운 뉴욕의 공기에 폐가 서늘해졌다. 지금은 밤이었지만, 공항은 온갖 조명들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공항을 빠져나온 둘은 일렬로 늘어선 택시로 다가갔다.


"Whats your destination?"


"몬텔리가 lake"


택시기사의 얼굴이 잠시 굳었지만, 이내 택시는 출발했다.


사내는 꽤나 유창한 영어로 기사와 얘기를 나누는 반면, 긴머리의 남자는 시종 침묵으로 일관했다.


"어학은 필수 코스인데, 안 거치셨어도 괜찮나요?"


"영어는 내가 사탄 다음으로 싫어하는 거야"


"김선생님이 능력에 비해 외국으로 못 나간게 그것 때문이었군요"


"얼마든지 놀려라, 단단히 기억해 둘테니"


"농담입니다, 하핫"


택시는 커다란 키의 나무들 사이로 난 길을 달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반짝 거리는 무언가가 드러났다.


"저 곳이 몬테리가 호수입니다"


택시기사가 백미러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렇군요"


사내는 달빛에 반짝이는 호수의 풍경에 시선을 고정했다.


호수가 다가오면서 나무는 사라졌고, 마침내 택시가 멈추었다.


"헌데 손님들도 거기 가려고 오신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못 들어 갈텐데요, 철통경비예요 그곳은"


"우린 일반인이 아니거든요"


사내가 달러를 지불하고,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둘이 차에서 내리자. 택시는 곧 되돌아 가버렸다.


잠시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긴머리의 남자가 팔을 잡았다.


"가자"


둘은 서쪽으로 난 오솔길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숲은 적막했고, 가끔 짐승들의 움직임에 잎들만 조금씩 흔들릴 뿐이었다.


오솔길이 끝나고 거대한 건물이 나타났다.


지붕에는 정교하게 새겨진 악마의 동상이 죽음의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악마의 벌어진 입안은 깊고 어두웠다. 악마의 눈은 불길이 이는 듯 했고, 푸르스름한 피부거죽은


생생한 악마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내었다. 


사내가 오른손을 들어 모자를 벗었다.


기분좋은 긴장감에 약간 손이 떨렸다.


저택의 입구에는 여러대의 경찰차량과 함께 경찰관들이 부산하게 움직임이고 있었다.


입구의 철문은 열려 있었지만, 노란색 끈이 출입을 가로막으며 가로로 늘어져 있었다.


김선생이 조용히 짐가방을 열었다. 그 광경을 잠시 바라본 사내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규칙적인 호흡의 끝에는 언제나 비릿한 냄새가 나는 듯 했다.


비계덩어리를 물었을 때의 느낌이랄까.. 느끼하기도 하고 찝찝하기도 한 기분에 사내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호흡이 끝나자 사내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한가닥 총명한 기운이 눈에서 흘러나왔다. 옆에서 김선생이 묵주를 쥐고 부적을 정성스레 펼치고 있었다.


사내의 영안이 뜨였다. 영안을 통해 바라 본 저택의 모습은 오금이 저릴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온갖 귀신과 악령들이 겹겹이 저택을 둘러싸여 울부짖고 있었다. 풍겨져 나오는 끈적한 귀기에 사내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들이 다가가자, 경찰관들이 제지했다.


"이곳은 관광지가 아니오"


김선생과 사내가 동시에 신분증을 펼쳤다.


"앗, AR 소속이셨군요.. 들어가 보십시오, 이미 다른팀들은 모두 들어갔습니다"


Anti Ruiners... 은빛의 큼지막한 글자가 신비롭게 빛나고 있었다.


"유치하게시리, 이름이 이게 뭐냐"


"소설속에 나오는 거래요, 그 분 마음이죠 뭐"


문을 통과한 그들이 어둠속으로 녹아들 듯 사라졌다.


"이런 어둠이라니.. 이건 마치 블랙홀 속 같군요"


"블랙홀에 가 보았나?"


"그럴리가 있나요, 듣기에 그곳은 상상할 수 없는 어둠속이라는데 이곳과 비슷하잖아요"


"그것도 그렇군"


김선생이 손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끈적한 어둠은 그들을 감싸고 돌았으나, 둘은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돌계단을 오르자 방대한 넓이의 정원이 나타났는데, 휑하니 아무것도 없었다.


"쉬식쉬식.."


별안간 뒤쪽에서 풀잎이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네는 내 부적을 본 적이 없지?"


"한 번 보죠"


"화르륵"


김선생의 손에서 두장의 부적이 무섭게 휘둘러졌다.


부적중 한장이 무섭게 타올랐고, 그것은 뒤쪽의 한 물체에 정확히 부딪혔다.


"쉬쉬쉬식"


희끄무레하게 생긴 물체는 불길에 휩싸인채 김선생에게로 달려왔다.


"잘가라고"


뒤이어 날아간 또 한장의 부적이 정확히 물체의 중앙에 파고들었다.


"퍼엉"


순식간에 물체가 폭발했다.


사방으로 파편이 튀자 사내의 얼굴에 불만이 나타났다.


"두번 볼 것은 못 되겠군요"


"그럼 자네가 하지 그랬나? 나도 한번 구경해 보고 싶어


술법같은게 아니라 타격으로 제압한다지?"


"흐흐.."


"영력이 전신에 퍼지게 만들기는 불가능 할텐데, 어떻게 한건지 가르쳐 줄 수 있나?"


"그거 뿐이라서요"


"응?"


사내의 몸이 정면으로 쏘아져 나갔다.


"전 평범한 사람이라서 영안 띄우는 것도 힘들었거든요"


정면에 무서운 표정의 여자 하나가 웃으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치고박는 걸로 하는 거죠"


사내의 손에서 희미한 빛이 일었다.


"오오.."


김선생이 진정으로 대단하다는 듯 감탄성을 내뱉었다.


"이렇게요.."


사내의 빛나는 주먹이 여인의 전신에 내려 꽂혔고, 여인은 곧 희미하게 변하더니 결국 사라졌다.


"여기가 문인가?"


김선생이 겉이 뜯겨나간 판자문 앞으로 다가갔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장내가 드러났다.


"헛"


드러난 광경은 지옥을 방불케 했다. 시뻘건 피가 천장서 흘러 내렸고, 계단은 기괴하게 웃고 있는 악령들로 넘쳐


났다.


알몸의 여자 하나가 자신의 눈알을 뽑아냈다. 눈알에 연결된 길쭉한 신경들이 함께 떨어져 나왔다.


"휘익"


여자는 눈알을 문을 연 두사람에게로 던졌고, 사내가 기겁을 하며 피했다.


"둥실"


여자의 몸이 거꾸로 뒤집히면서 공중으로 떠올랐다.


여자는 다리를 휘저으며 발버둥 쳤지만, 공중에서 무언가에 결박당한 채 정지해 있었다.


여인이 다리를 저을때 마다 허벅지 사이로 민망한 부분이 드러났다.


"찌익"


한순간 빛이 번뜩였고 여인의 몸이 사타구니를 시작으로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후두둑"


순식간에 시뻘건 내장 덩어리들이 쏟아져 내렸고, 여인의 끔찍한 단면이 비스듬히 쓰러졌다.


"지각하셨군"


금발의 장신사내 한명이 기형적으로 생긴 검 하나를 든 채 다가왔다.


"이름이 뭐죠?"


김선생이 얼굴에 화색이 돌아 대답했다. 아는 영어가 나왔기 때문이다.


"마..마이 네임이즈.. 김 동수.."


김선생이 옆에 선 젊은 사내를 다시 가리켰다.


"음..음.. 디스 네임..이..즈 .."


"됐어요"


사내가 슬며시 웃으며 칼을 든 남자를 올려다 보았다.


아무말 없이 다시 주위를 돌러보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총 일곱명이군요, 당신들은 미국지부 소속이죠?"


"영국이랑 일본도 있습니다. 당신들이 한국서 온 사람들이군요"


"맞습니다"


"와우, 그 분도 오셨나요?"


"아뇨, 저희가 감당하지 못할 때 온다고 하셨어요"


"그렇군요"


금발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 이름은 알렉스 입니다, 피터 알렉슨"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그 순간 바닥에서 머리통이 솟았다. 곧이어 손바닥이 솟아나와 사내의 발목을 쥐었다.


사내의 한쪽발이 희미한 빛을 냄과 동시에 슬며시 위로 들려졌다.


"빠직"


영력이 깃든 발이 사정없이 머리통에 내리찍혔다.


"제 이름은 혁수.. 권혁수 입니다"


사내의 전신에서 폭발할 듯 빛이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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