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의 얼굴에 감탄의 빛이 새어 나왔다.


"대단하군요, 영력을 몸 전체로 두를 수가 있다니."


알렉스는 신기한 듯 혁수의 몸을 이곳 저곳 만지작 거렸다.


"한국서 오신 분들?"


계단 아래쪽에서 약간 서투른 영어가 들려왔다.


혁수가 시선을 돌리자, 푸근한 인상의 사십대로 보이는 스님 한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 분은 중국지부서 오신 첸 스님입니다"


알렉스가 스님에게 손짓했다.


"니 하오 마"


스님이 포권자세를 취하자 혁수도 엉겹결에 따라했다.


"호오, 이 빛은 뭐죠?"


스님이 혁수의 몸을 둘러싼 빛을 신기해 했다.


"영력을 체외로 방출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럴 수도 있나 보군요"


"에헴"


옆에서 잔기침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고개를 돌린 스님이 어색하게 서 있는 김선생을 발견했다.


"이게 누구신가, 김선사도 오셨구려.."


"니 하오 마"


이미 안면이 있던 두 사람이 반갑게 얼싸 안았다. 만면에 웃음이 가득해진 첸 스님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래, 영어는 좀 늘었는가?"


"에헴"


김선생은 첸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멀뚱히 서 있던 혁수에게 넌지시 신호를 보냈다.


"아, 김선생은 영어를 포기하셨습니다"


"뭐? 으하하"


첸과 알렉스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다소 민망해진 김선생이 연거푸 헛기침을 내뱉았다.


"그런데 다들 언제 오셨습니까?"


혁수가 장내를 돌아보며 스치듯 물었다.


"나랑 첸 스님은 한시간도 안됐어요, 와보니 저 분들이 있더라구요"


알렉스의 대답에 혁수가 나머지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넓다란 돌기둥 쪽에서 검은색 도복을 입은 여자 하나가 허공에 손을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깔끔한 단발머리의 그녀는 동양인이었는데, 주위에 악귀들이 감히 접근을 못하고 있었다.


계단 중앙에는 깨끗한 신부옷을 입은 남자 두명이 이러지러 쫓아 다니고 있었는데, 뭔가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이마 중앙에 초록색 쇠못을 박은 덩치좋은 괴물 하나가 신부하나를 열심히 쫓고 있었다.


젊은 신부는 괴물에게서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고 있었는데,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 있었다.


"루시안님"


괴물의 뒤를 나머지 희끗희끗한 머리의 중년신부 하나가 따라가고 있었는데,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으윽"


루시안으로 불린 청년이 두리번 거리다가 일행을 발견했다.


"도와주시오"


혁수가 나서려는 찰나에 부적 한장이 쏜살같이 날아갔다.


"헉.헉"


부적은 괴물의 가슴부위에 부딪혔고, 괴물은 그 자리에 멈춰섰다.


뒤따라오던 중년 신부의 손에서 은색 십자가가 빠르게 빠져나왔다.


"치칭"


괴물의 등에 박힌 십자가에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렸다.


"두둑"


괴물의 배와 옆구리, 그리고 가슴쪽에서 길쭉한 꼬챙이들이 튀어 나왔다.


괴물은 순식간에 쓰러졌고, 중년의 신부가 거칠게 십자가를 빼내었다.


"루시안님, 괜찮으십니까"


신부는 곧 앞쪽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젊은 신부에게 다가갔다.


"저는 괜찮아요, 하엘 주교님"


안쓰럽게 청년을 바라보던 신부가 일행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신부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반백의 머리는 깔끔하게 뒤로 넘겨져 있었고


약간 내려간 눈꼬리가 성격이 무척 좋을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거 못난 모습을 보여서, 부끄럽습니다"


"아니예요, 주교님.. 다 저 때문인걸요"


루시안으로 불린 젊은 신부가 손사를 치며 부정했다.


"AR 분들 이시죠? 반갑습니다, 저희는 로마에서 왔습니다"


"로마? 그럼 AR소속이 아니시군요"


알렉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저희는 교황청 소속입니다"


"그렇군요, 피터 알렉스입니다"


"이쪽은 첸 스님, 그리고 이 두분은 한국서 오신 김선생과 미스터권입니다"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알렉스가 일행을 소개하자, 이번엔 하엘주교가 자신들을 소개했다.


"저는 교황청에서 엑소시즘 관련 대외부서에 있는 하엘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루시안.. 페드릭 루시안 신부님입니다"


하엘이 젊은청년을 소개했다.


"쿠쿵"


별안간 2층에서 문짝이 떨어져 내렸다.


떨어진 문짝이 바닥과 부딪히면서 고여있던 피가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뭐야"


"윽"


일행이 재빨리 피했지만, 몇몇의 옷에 핏방울이 묻는 것을 피할 순 없었다.


"그대가 페드릭 이라고?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2층의 떨어진 문 안쪽에서 세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묵중한 발소리와 함께 은색 갑옷을 투구까지 착용한 기사 두명이 나왔고, 그 뒤를 가벼운 체인래더를


가슴에 부착한 인물 하나가 걸어나왔다.


마지막에 나온 인물의 입에서 다시 말이 흘러 나왔다.


"페드릭 루시안이면, 교황청 최후의 보루로 알고 있는데 잘못 알려진 것인가?"


남자의 싸늘한 시선이 일행을 향했다.


아무 특징없는 얼굴 위로 짙은 웨이브의 갈색머리가 드리워져 있었다.


셋은 계단으로 향했는데, 그들이 등장하자 악귀들이 서서히 몰려 들었다.


"치이익"


두 기사가 단단한 재질의 흑색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중세시대에 쓰였던 바스타드류의 커다란 검이었다.


"교황청 최후의 보루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페드릭 루시안 인것은 맞습니다"


루시안의 대답에 남자의 얼굴에 옅은 조소가 피어 올랐다.


"이깟 애송이가 무엇이 두려운가, 소문이 와전 됐구나"


남자의 얼굴에서 잔인한 살기가 일었다.


사뭇 달라진 기세에 앞에 있던 두명의 기사가 계단을 빠르게 내질러 갔다.


"찌익"


"으르르.."


둘의 검이 수직으로 들려진다 싶더니, 사정없이 악귀들을 쓸어갔다.


악귀들의 수는 대단히 많았는데, 원망에 찬 눈빛으로 기사를 애워쌌다.


"비켜라"


남자가 짜증이 섞인 음성과 동시에 계단을 빠르게 내려오기 시작했다.


"우아아아"


남자의 짜증에 두 기사가 미친듯이 검을 휘두르며 앞을 뚫어 나갔다.


거대한 검들은 무차별적으로 악귀들의 몸을 도륙내었고, 자리가 비워지면 기사들이 돌진해 나갔다.


"퍼억"


악귀들은 온 몸으로 기사들에게 부딪혔지만, 갑옷을 뚫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페드릭, 한번 보자꾸나.. 알량한 그 능력을"


두 기사가 뚫어놓은 길 사이로 남자가 순식간에 빠져나왔다.


"헉"


혁수의 전신이 반사적으로 움찔 거렸다.


'이 사람, 강하다'


혁수가 살며시 손으로 힘을 모았다.


알렉스가 기다란 장검을 긴장한 듯 굳게 쥐었고, 그 뒤에서 김선생이 부적뭉치를 꺼내고 있었다.


"뒤로 피하시지요"


하엘주교가 십자가를 꼿꼿히 세운 채 일행의 선두로 나갔다.


"흠"


루시안의 얼굴에서 한가닥 살기가 피어 올랐으나, 그것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죄송합니다"


루시안은 묵묵히 뒤로 물러섰다.


곧 어마어마한 기의 폭풍이 몰아쳤다.


남자가 검집에서 검 하나를 뽑았는데, 등대불처럼 한줄기 빛이 주욱 뿜어져 나왔다.


검끝에서 밀려나온 빛은 지름 일센치도 되지 않는 크기 였지만, 순식간에 그 주변 공기가 타 들어갔다.


"미친"


알렉스가 황급히 검으로 몸을 막았고, 하엘 주교가 십자가를 내민 채 바닥으로 엎드렸다.


얼이 빠진 채 멍하니 서 있던 혁수를, 김선생이 황급히 밀쳐서 넘어뜨렸다.


"슈욱"


빛은 일행 중앙을 통과해 뒤쪽으로 주욱 밀려나갔다.


"이제 알겠군, 당신은.."


하엘 주교가 헝크러진 머리를 바로 잡으며 일어섰다.


"당신은.."


루시안이 하엘주교의 말을 중간에 받았다.


"템플나이츠.."


남자의 눈이 흥미를 잃은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챙"


거칠게 검을 도로 꽂아 넣은 남자가 이제 막 정리를 끝낸 계단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 기사의 발 아래로 수많은 악귀들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고, 기사들은 지친 듯 주저앉아 있었다.


"애송이들, 경고하는데 이곳 아미티빌에서 내 눈에 거슬리지 말도록 해라"


남자가 한심스런 눈으로 기사를 내려다 보았다.


"쯧쯧"


잠시 혀를 차던 남자가 계단을 올라갔다.


"레오나르.. 그 년은 내 것이니 건들지 말도록... 물론 그럴 능력도 없겠지만"


남자는 문이 날라가 뻥뚫린 2층의 한 방으로 사라졌다.


"젠장, 뭔 놈이 저렇게 쎄지"


알렉스가 투덜거리며 혁수에게 다가왔다.


"괜찮아요?"


알렉스가 나자빠진 혁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혁수는 정신이 나간 듯 멍하니 있었는데, 반응이 없자 알렉스가 무안한 듯 손을 집어 넣었다.


"누구죠?"


힘없이 고개를 돌린 혁수가 물었다.


"템플나이츠.. 다른 말로 템플기사단이라고 합니다"


하엘주교가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계단쪽에서 쉬던 두 기사가 남자가 사라진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일곱명의 팀플기사단 중 하나입니다, 저 기사둘은 아마 호위병인 것 같군요"


"저렇게 강한 사람이 존재 할 수 있나요?"


"글쎄요"


하엘주교가 김선생을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놀란 것 같군요, 하지만 저 정도 실력자는 드물지만 분명 존재합니다"


하엘주교가 김선생에게 어색한 발음으로 입을 열었다.


"키, 키원?"


"혁수군, 내가 보기에도 저자는 강하지만 구부장님의 윗전이라고 보기는 어려운걸"


혁수의 시선이 김선생을 향했다.


"왜 저를 이곳으로 보낸거죠? 전 도움이 안될 것 같아요, 자신감 완전 상실입니다.."


"Snap out of it (기운 내세요)"


루시안이 밝게 웃으며 혁수에게 다가왔다.


"이긍, 제가 어리광을 부렸네요"


혁수는 마음을 추스리고 일어섰다. 억지로 웃었지만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이제 아미티빌에 온 목적을 달성해야죠"


알렉스가 짐짓 유쾌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2층은 템플인지 뭔지 있으니까, 우리는 지하쪽을 살펴보는게 어떨까요?"


첸 스님이 왼편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윗쪽에 구슬세개가 새겨진 문이 하나 있었다.


"저희는 여러분들과 소속이 다르니 따로 행동할까 합니다"


하엘주교의 말에 알렉스가 고개를 저었다.


"같이 갑시다, 어차피 주교님도 마녀 때문에 오신 것 같으니"


"그럽시다"


"그래요"


혁수와 첸 스님이 동시에 찬성을 했다.


"그럼 그렇게 하십시다"


하엘주교와 루시안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 고"


알렉스가 먼저 문으로 다가가자, 나머지가 뒤를 따라갔다.


알렉스가 문 손잡이를 돌리려는 순간, 뒤에서 루시안이 외쳤다.


"헌데, 저 여자분은 어쩌죠?"


모두의 시선이 멀찍히 떨어진 기둥쪽을 향했다.


단발머리의 여인 한명이 불편한 자세를 취한 채 한발로 서 있었다.


"무슨 요가동작 같은데.."


혁수가 천천히 여인에게로 걸어갔다.


여인은 검은색 도복이 타이트하게 매어져 있었는데, 가까이 갈수록 여인의 용모가 드러났다.


잡티없는 하얀 피부에 유난히 새까만 머리카락이 꽤나 미인이었다.


"저기요"


혁수의 손이 여인의 어깨로 다가갔다.


"스윽"


여인의 눈이 갑자기 떠지고, 혁수의 몸이 반탄력으로 뒤로 날라갔다.


"털썩"


저만치 날아가 바닥에 쳐박힌 혁수가 볼썽사납게 드러누웠다.


"何の仕業だ(난노 시와자다)?"


- 무슨 짓이야? -


여인의 앙칼진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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