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계속하겠습니다
하기 힘드신 분은 오줌을 싸서 독기를 빼주세요
그럼 아마 좀 다를 거라생각합니다
*자기책임입니다
*자기책임입니다
졸업하고 가업을 잇는다던이야기는, 그 때부터 단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서로 다른 지역으로 뿔뿔이흩어졌고 앞으로 절대로 서로 얼굴보는일 없도록, 만약 만나더라도 모르는체 해야만 합니다
나는, 1년 늦게 린현에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지난날은 잊은채 자신의 생활에 몰두했습니다.
머리카락은 짧게 잘랐습니다
이발소에서 「빡빡머리」를 부탁할 때, 나는 신관님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오늘 올지 내일 올지...하다보니 어느세 긴 3년이 지났습니다.
그 후, 한번 더 재수를 하고 다른 현의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조금 마음을 놓고 추석에 귀성한 것이 그게 잘못이었습니다
원래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할아버지는는 그 해 신정때 돌아가셨습니다
갑작스런 일이었지만 부모님도적어도 고인이 처음 맞는 첫 제사 정도는 집에오라고 전화로 말했습니다
그래선 안되는것었습니다
역의 매점에서 신문을 사려고 갔는데 중학생때의 여자친구가 판매원이었습니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엉엉 울기 시작하고, B와 D가 죽었다는 것을 알려줬습니다
B는 졸업 후 얼마안되서 하숙집의 자기 방에서 두문불출하고 목을 맸다고 합니다
방은 덧문과 커텐을 닫아놓고 온 방안의 문이란 문을 다 봉인한채, 한술 더 떠 자신의 머리카락을 그 위에 한가닥 한가닥 꼼꼼하게 붙여놓았다는 것입니다
납으로 자신의 귀와 눈꺼풀을 꿰메려고 한 자국이 있었지만, 끝까지 하지 못 하고 자살했다고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자기책임*
D는 17살 여름에 시코쿠까지 도망쳤다고 하는데 마츠야마의 근교의 마을에서, 팬티 한장만 입고 히쭉 히쭉 웃으며 걷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D의 후두부는 쥐가 파먹은 것처럼 머리카락이 뽑혀있었답니다
D의 눈꺼플은 절대 감을 수 없도록 스스로 칼로 잘라내려고 한 자국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만큼 중학생 시절의 인간 관계를 저주했던 적이 없습니다
B와 D의 말로 같은건 지금 나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즉,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나 혼자 밖에 남지않았다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책임*
가슴을 강하게 단단히 조일 수 있는 감각으로 집에 돌아오니,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중에야 안 것입니다만, 저의 고향은 불길한 일이 있었던 집은, 본가라고 해도 고인을 처음 맞는 제사는 나라에 있는 절에서 지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나는 끌려온것이었던겁니다
*자기책임*
그리고 3일
나는 39도 이상의 열이 계속 되어, 집에서 드러누워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나는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이불을 깔아놓고 흰 옷을 입고 누워 물을 마시면서 자고 있었습니다.
3일째의 새벽의 밤
꿈에 A가 보였습니다
A는 뼈와 가죽밖에 남지않은 모습이 되어, 거무스름해졌었고, 눈은 흰자위뿐이었습니다.
「너 한 명 남았네」
「응」
「너도 여기에 와」
「싫어」
「C가 보고 싶어해」
「싫다고」
「너가 안오면 C는 매일 괴롭힘을 당해. 거꾸로 매달려서 양말을 입에 물린채로 얻어 맞는다고. 불쌍하잖아?」
「거짓말하지마 지옥이 그렇게 만만할리가 없어」
「하하하 지옥인가? 지옥이란건 말야....」
거기서 눈이 떠졌습니다
내가 숨쉴때마다 목에서 히익히익소리가 나고 있었습니다
머리맡을 보자 할아버지의 위패에 금이 가 있었습니다.
*자기 책임*
나는 생각해봤습니다
'그것'의 이야기를 나 말고도 많은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그것'이 나를 찾아내서
내가 빙의 될 확률은 낮아지는 것이 아닐까?
여기까지의 장문 매우 미안했습니다만, 허접한 글이라 읽으신 분들은 기억에남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읽으 신분들 미안합니다
개에게 물렸다고 생각해 주세요.
자신의 생존 확률을 높이고 싶으면 이 글을 조금이라도 많은 분들이 볼 수있게 퍼트리는 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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