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현관문을 열었다. 나의 집이다.
들어서는 순간 집에 도착하였다는 안도감이 몸의 긴장을 풀었고
신발을 벗은 뒤 자연스레 현관 오른쪽에 바로 위치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선 순간 늘 지내던 내방이 익숙함보단 낯설음으로 다가왔고,
그 이유는 다름아닌 방의 구조와 물건들이 뒤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구조와 물건은 바뀌었으나 왜 바뀌었는지 대한 영문은 전혀 모른채
다시 내 방을 나섰다.
다른 장소의 변경도 존재하는지 확인을 위한 발걸음이었다.
꿈속의 속도는 빠르기도 또 느리기도 하는 법.
부모님의 방인 안방과 하나뿐인 여동생의 방인 작은방을
확인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늦은 시각, 안방에서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혼자서 고생하며 우리를 키워오신 어머니가,
작은방에서는 오늘도 밖에서 열심히 뛰어놀고 들어온 내 여동생이 편안히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빠른 행동이었다.
아니, 무언가 확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자체가 없이 자연스레 집안을 둘러
방을 옮겨갔다.
평범한 집이다.
현관 바로 옆에 위치한 내방을 위시해 건너편에 위치한 안방과 작은방사이에는
화장실이 있었고, 그 맞은편으로는 주방이 있었다.
동생방으로 향했다. 문은 열어둔 채로.
생소한 광경을 예상하였지만 예상과 달리 동생의 방은 내가 알던 그대로였다.
동생이 쓰는 책상, 동생의 침대, 작은 장농과 그 옆에 위치한 작은 화장대, 정리가 되지 않은 채
널부러진 옷가지들..
익숙한 광경은 곧 안정을 주었고, 긴장되던 어깨를 풀어주었다.
걸음을 돌려 동생의 방을 나가려던 순간
눈앞의 존재는 내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아니 얼어붙게 만들었다는게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땅에 붙어버린 발..
눈앞에 존재는 내가 알던 구조가 변경이 되었다거나 하는 따위에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가족이 아닌, 친구도 아닌,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뒷모습이
음산히 변한 내 집의 냉장고 문을 열어젖히고 있었던 것이다.
크지 않은 키에 떡벌어진 어깨는 그의 성별을 바로 가늠케 해주었고
눈앞에 존재의 성별을 확인하는 순간,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물리적 힘의 충돌을 생각하니 긴장은 배가 되었다.
그렇게 동생의 방을 나서려던 몇초간의 찰나의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분명 사람이었고, 남자였으나 있어야 할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머리였다.
떡벌어진 어깨 위에 있어야할 머리.
아, 그것을 이제야 눈치채다니.
내겐 사람의 머리보다 내 방의 침대와 책상이 더 중요했단 말인가.
숨죽이며 자책을 하는 동안 적개심으로 변한 내 의심이 얼어붙은 발만큼이나 닫혀있던 내 입을 열어주었다.
"너 뭐야 이 개새끼야"
자연스러웠다. 또 위압감도 있었다.
소리친 나도 움츠려들만큼 웅장하고 큰 욕설이었다.
그렇게 나조차도 몰랐던 나의 박력에 내심 혼자 자랑스러워 하던 그 순간
머리없는 정체모를 그 남자의 시선이 나를 돌아봤다.
그 시선이 내 몸의 긴장을 공포와 두려움으로 바꾸는 것은 냉장고 문을 여는 것보다 쉬워보였다.
온몸의 소름을 경험했다.
머리가 없는데도 그가 나를 돌아보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어느 새 몸을 돌려 내게 다가오는 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저항을 해야했다. 아니 저항을 위한 위협을 해야했다.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그래야 이 지독하고 거대한 공포를 조금이나마 떨어뜨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허나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소용이 없었다.
자랑스러워 하던 웅장한 욕설은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몸안에서 방황한채 길을 잃었고,
내 수족은 태산같이 거대한 그의 위엄에 결박당한 채 달려들지도, 도망치지도 못한 채
이름모를 불청객의 심판을 초연히 기다리고 있었다.
늘 그렇듯 꿈속의 속도는 느리기도 또 빠르기도 하는 법.
그가 발걸음을 하나 씩 옮길 때 마치 시계의 시침이 한개씩 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 더딘 시간과는 정반대로 나의 공포감은 배가 되었다.
그 순간이었다.
만근같던 내 발이 중력을 거부하며 힘차게 솟았고 약진했다.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 순간 시공간은 변했으며 그 악몽같은, 아니 그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 방이었다. 구조와 공간이 바뀐 내 방이 아닌, 그자리에 있어야할 침대가 그자리에 있은채 그 위에서
노곤히 잠들어 있는 나를 느꼈다. 눈은 아직 감은 채로.
꿈이었다. 지독한 악몽이었다. 현실로 돌아온 나는 마지막으로 꾼 악몽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안날정도로
마치 첫경험같이 지독한 악몽을 꾸었던 것이다. 소름의 여진이 아직 존재했다.
악몽의 정리보다 급한 건 갈증이었다.
목아래는 이미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는 상태였다. 수분의 섭취가 이 모든 공포와 긴장을 날려줄 것만 같았다.
우선 필요한건 시각의 회복이었다. 뇌가 명령하는 행동들을 몸이 수행하는데 어쩐지 시간이 걸리는 것만 같았다.
물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이 우선 눈을 떠야한다는 생각이라니..
그것을 알아차리게 된 이유는 눈이 뇌의 명령을 거부하였기 때문이었다.
눈이 떠지지 않았다. 몸의 신경과 촉각은 현실에 있는게 분명했지만 시각은 아직 돌아온 게 아닌 듯했다.
그 순간,
그가 나타났다. 아직 끝이 아니라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보고 있었고, 그 거대한 어깨가 내 눈앞에서 현실의 나를
지옥불구덩이로 끌어 내리려 하고 있었다.
머리없는 존재의 시선은 섬뜩했다. 느껴본적이 없는 공포를 체험했다.
몸의 감각은 현실에 있었으나, 시각과 생각은 아직 악몽 속 내 보금자리에 그대로 놓여있었던 것이다.
포기라는 생각조차 할 여유도 없는 그 상황에 이성적 판단은 사치였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얼어붙은 팔,다리는 장소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악몽의 쇠사슬에 단단히 포박당한 상태였다.
가위였다.
이 머리없는 사내는 귀신이나 악령, 악마 따위의 존재가 아니였다.
내겐 그저 그건 공포 그 자체였다.
발버둥쳤다.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아, 현실의 나는 얼마나 현명했던가.
이 내가 고작 꿈하나에 목매여 갈 곳잃고 방황하는 존재였단 말인가.
끝은 허무했다.
본래 꿈이라는 것은 자신의 정체가 발각된 순간 모습을 감추는 법이기에
끝없을 것 같은 그 지독했던 악몽은 약간의 잔상만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땀과 공포로 젖어있는 허벅지를 더듬는 것을 시작으로 손의 움직임을 확인하였다.
촉감을 확인했다.
눈꺼풀이 오랜만에 눈썹과 만나게 되었다. 마치 처음만나는 것처럼 오랜 시간이 지난 것만 같았다.
바위보다 무겁던 눈꺼풀은 깃털처럼 가벼이 본래의 역할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돌아온 것이다.
벽을 향해 돌아서 자고 있던 나는 아직 남아있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갈증이었다.
부엌으로 가 물을 마시는 일을 일이라 말 할수 있을까?
하지만 곧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아직 나는 잠들었던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아직 남아있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고개를 돌린 순간 어쩐지 그가 있을것만 같은 압박.
현실의 경계의 들어선 이성의 내겐 그것은 공포감보단 압박이라고 하는것이 더 적당해보였다.
그 압박은 수없이 행하던 내 평범한 일상의 일을 방해했고, 그 일은 다름아닌 부엌으로 가야하는 것이었다.
벽을 향한 시선을 천장으로 옮겼다.
천장에서 다시 닫혀있는 내 방문으로 옮겼다. 꽤 긴 시간이 걸린 듯 했다.
이미 말라붙어 형체를 잃은 땀과 심해진 갈증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시선이 제 할 일을 끝내자 행동으로 옮기기 까지는 그보다 더한 시간이 필요했다.
갈증은 여전했지만 그것이 신중한 결정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이제 문은 열릴 것이고, 수없이 열고 닫혔던 내 방문은 현실을 확인시켜줄 것이다.
현실. 꿈이 아닌, 악몽이 아닌 현실.
내게 필요한 것은 수분이 아닌 현실이었다.
이 불안과 공포를 모두 깨끗이 씻혀줄 현실의 아늑함이 수분보다 더 간절한 것이었다.
문을 여는데 망설임은 없었다.
악몽을 깬 뒤 꽤 시간이 지난 지금에 오니 어느새 나는 호기심이 공포를 덮을 수 있는 평범한 현실의 나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아직 해가 익숙하지 않을 새벽인 듯 했다.
늘 똑같은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향했다. 망설임은 없었다. 잠버릇이 안좋은 아버지가 이불을 걷어찬 채 주무시고 계셨다.
허나 갈증의 해소가 우선이기에 물을 마신 뒤 방으로 돌아가며 이불을 다시 덮어드리기로 생각했다.
냉장고 문앞에 섰다. 싱크대와 붙어있는 냉장고.
악몽 속 정체모를 남자에게 더럽혀져 순결을 잃을 뻔 했던 냉장고.
우리 집 냉장고. 현실의 냉장고였다.
내 컵을 꺼내 냉장고 옆 싱크대에 조그맣게 붙어있는 냉수기에 컵을 올리려 하다 행동을 멈췄다.
한,두컵으로는 가시지 않을 갈증이였다.
내겐 상이 필요했다.
지독한 악몽의 전투에서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싸우고 버티어 살아남은 내게 줄 포상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망설임은 없었다.
냉장고 속 생수병에는 한 손으로 들기에 약간은 부담이 될 정도의 양이 들어있었다.
벌컥벌컥 마셨다.
수분에 당분이 들어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병을 입에서 떼지 않은 채로
잠시 필요한 산소를 마신 뒤 다시 수분을 섭취했다.
그제서야 모든 현실의 감각이 제자리를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늘상 있는 일이었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새벽에 잠시 목이 말라 잠이 깨 부엌으로 물을 마시러 나온 여느때와 다를 바 없는
내가 되어 있었고, 비현실적인 악몽에 허덕여 방황하는 나는 오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두 손으로 마시던 생수병은 어느새 한손으로도 무게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줄어있었고
가져온 물 한컵에 담을 수 있을 정도의 양만을 남긴 채, 그 숭고한 작업을 마칠 수가 있었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남아있는 생수병의 물을 컵에 옮기던 나는 그 때야 아버지를 떠올렸다.
이 한겨울에 이불도 걷어찬 채 널부러져 혼자 거실 쇼파에서 주무시고 계신 아버지.
불쌍한 어머니.
얼른 이불을 덮어드려야지.
불쌍한..
응? 불쌍한 어머니... 주무시고 계신건 아버지였는데 어쩐지 나는 어머니가 떠올랐다.
안방에서 홀로 주무시고 계실 어머니.
잠버릇이 좋지 않은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는 행동거지가 단정하셨다.
그 단정한 품행은 잠자리까지 그대로 이어졌고
단칸방에서 온 가족이 함께 잠을 자던 옛날, 어머니는 늘 아버지가 걷어 차버린
이불을 새벽마다 한숨을 쉬며 덮어주던 기억이 내 머리를 스쳤다.
그렇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오래였다.
아직 내가 다 자라기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내 추억과 그리움속에 있어야할 존재이지
이 집에 그가 있어야할 공간은 존재 하지 않았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간신히 현실로 돌아온 내 오감은 그 지독하고 처절한 배반의 상황을 부정했고 거부했다.
허나 잊고있던 내 호기심은 그 배신의 감정을 아랑곳없이 시선을 거실로 옮겼고
익숙한 그가 익숙한 나의 소파에서 익숙히 나와 눈을 마주보았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끝없는 절망을 느꼈다.
그 순간 섬광이 일어난 듯 하였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아직 아침이 되기 조금 전이었다.
눈은 안정을 요구하는 듯 쉴새 없이 위아래로 움직였으며, 땀에 젖은 손바닥은
그보다 약간은 덜한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망설임은 없었다.
허나 나는 시간을 믿을 수 없었다.
아직 내 방문은 닫혀있었기 때문이다.
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