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 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의 석연치 않은 태도는
그녀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을 뿐 아직까지 뚜렷한 실마리 하나 잡지 못한 혜경이었다.
단서를 못 잡고 헤매긴 서울에서 내려왔던 시경 수사팀들도 마찬가진 것 같았다.
가끔씩 전화를 해선 이미 보내준 사진 자료들을 다시 한번 보내 달라거나 사건 현장 부근에 늑대과에 속하는 짐승의 서식 여부에 대한 자료 조사
요청 정도였다.
그들은 아무래도 피살자 세명의 원한 관계에 의한 계획된 살인으로 초점을 맞추고
그들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이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분명히 달랐다.
그녀가 조사해본 바 로는 최근 5년간 목촌리 부근에서 야생 늑대가 발견 되었다는 보고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설혹 원한 관계에 의한 살인이라 하더라도 흉기가 죽창이라는 점이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금방 남의 눈에 띌 수도 있고 소지하기도 불편할 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죽이기에도 그것은 적당한 무기가 아니었다.
분명 거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맴돌았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가 어떤 식으로든 마을 사람들과 관계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일단 한가지 생각에 빠지면 헤어나질 못하는 그녀였다.
그녀는 식사도 하는둥 마는둥 하며 숟가락을 놓았다.
그러자 그녀의 앞에서 식사를 하던 구반장이 놀란 토끼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윤형사가 밥을 다 마다 하고? 최근에 무슨 충격 받은 일 있어?\"
\"네?\"
\"아니, 내 말은 식사때 마다 꼬박 꼬박 두 그릇은 싹싹 비우던 자기가 밥을 남기길래 혹시 누구한테 충격받고 그 뭐냐,
남들이 하는 다이어트라도 하나 해서?\"
\"나참, 기가 막혀서.... 반장님은 왜 저만 보면 그렇게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세요?\"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라니? 내가 언제 자기 못 잡아 먹어서 안달 했다고 그래?
사실 솔직히 말해서 자기가 결코 날씬한 편은 아니잖아.
그래서 밥을 안 먹길래 다이어트 하냐고 물은건데.... 그게 뭐 그렇게 잘못 한 건가? 이봐 박순경, 뭐라고 말 좀 해봐! 내가 실수한 거야?\"
구반장은 짐짓 정색을 하며 옆에 있던 박순경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걸 왜 저한테 물어 보세요? 전 아무 소리도 못 들었습니다\"
\"됐어요, 제가 참죠. 하지만 반장님, 그러시는거 아니예요\"
\"내가 뭘 어쨌다고 자꾸 그래? 자기 정말 성격 이상하네?\"
그때 그들 사이에 식당 아줌마가 끼어 들었다.
\"오늘 또 싸워요?
하여튼 어떻게 반장님 하고 윤형사는 하루도 안 빼고 그렇게 티격 태격이예요, 그래?
그건, 그렇고 그 뭐냐.... 목촌리 살인사건은 어떻게 범인은 잡았어요?\"
그러자 구반장이 갑자기 탁하고 숟가락을 내려 놓곤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줌마! 경찰도 사람이요, 사람! 남 식사하는데 꼭 그런걸 물어야 겠수? 아줌마는 밥 먹는데 똥 얘기하면 기분 좋아요? 그게 그렇게 궁금하면
우리 윤형사한테 물어봐요. 살인사건 아니면 상대 안 하는 형사니까\"
구반장의 가시박힌 말에 혜경은 가슴이 뜨끔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요 몇 일 관내의 다른 일들을 소홀히 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그녀의 행동을 구반장이 모를 리 없었다. 다만 모른 척 하고 넘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별로 좋지도 않은 상황에서 주책맞은 아줌마가 일부러 그 얘길 꺼내니 여간 난처한게 아니었다.
\"아이구, 반장님두, 별것 다 갖고 토라지실까? 에게 식사도 벌써 다 하셨네, 뭐. 근데, 이번 사건 정말 윤형사 담당이야?\"
\"아.... 아니예요. 아줌마! 제가 무슨.....\"
\"하긴, 서울에서 형사들이 내려 왔었다며? 어떤 미친 놈이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하긴 옛날부터 목촌리 그 곳이 터가 센 곳이었지.
반장님도 잘 아실걸요?
해방전엔 그 곳이 왜 전염병 환자들 격리하던 곳이었다잖아요. 그러더니 6. 25땐 빨갱이들 내려와서 반동분자들 공개 처형한다면서
죄 없는 마을 사람들 수 없이 끌어내선 죽창인가 뭔가로 마구 찔러 죽이는 바람에 얼마나 사람이 많이 죽었어요?\"
그때 혜경의 의식 속을 번개처럼 파고 드는 단어가 있었다. 그녀가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아줌마! 방금 죽창이라고 하셨어요?\"
\"아이구, 깜짝이야. 갑자기 왜 그래, 윤형사?\"
6.25, 공비, 죽창. 그녀는 갑자기 눈앞이 트이는 것 같았다.
자신이 왜 바보같이 한번도 그 생각을 못 했는지 이상하기까지 했다.
죽창이란 것이 지금은 몹시 낯설지만 불과 40여년전에는 한때 그것이 가장 무섭고 두려운 무기였던 적이 있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장님, 저 먼저 일어설께요\"
\"밥 먹다 말고 갑자기 어디 가는 거야? 만약 오후에 또 자리 비우면 그땐 정말 가만 안 있을거야! 알았지?\"
구반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녀의 귀엔 더이상 구반장의 목소리가 들려 오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엔 이미 목촌리, 6. 25, 죽창, 공비, 공개 처형..... 그런 단어들로 가득 차 있었다.
* * *
해일이 김한수의 아내인 지윤으로부터 급히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오늘 아침이었다.
그는 김한수가 그녀와 결혼하기 전부터 지윤과는 아는 사이였다. 그녀는 김한수의 학과 후배였고,
따라서 해일의 후배이기도 했다.
하지만 집들이나 동문회 같은 특별한 행사때 김한수와 같이 그녀를 몇 번 만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따로 만나는 것은 결혼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남편에겐 둘이 만나는 것을 비밀로 해 달라는 당부를 따로 남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뭔가 좋지 않은 일일 것 이라는 예감만이 막연하게 그의 머리를 떠돌 뿐 특별히 추측될만한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이틀전 새벽에 걸려온 그의 전화가 조금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감기에 걸렸다고 해서 당시엔 별 신경 않쓰고 그냥 넘겼지만
아침에 그녀의 전화를 받고 나선 자꾸만 그때의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커피숍은 한산한 편이었다.
그는 일부러 20분 정도 일찍 나와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정확히 약속시간에 맞추어 나타났다.
해일은 그녀를 보는 순간 자신이 생각한 이상으로 그들 부부 사이에 뭔가 불길한 일이 있다는 것을 그는 직감할 수 있었다.
화장기 하나 없는 그녀의 얼굴은 몹시 초췌했으며
서둘러 나왔는지 옷차림 역시 예전의 그녀와 달리 별로 신경을 쓴 기색이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해일의 앞에 마주 앉은 그녀의 모습은불안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녀는 몹시 망설이며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제수씨!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돕겠습니다. 편하게 얘기하세요\"
그러자 마침내 그녀는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바쁘신데 이렇게 만나자고 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긴 해야 겠는데 마땅한 사람이 떠오르질 않더군요. 만나자고 한 건 다름이 아니라....
요즘.... 그 이한테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요\"
\"이... 상 한 일이라니요?\"
\"글쎄, 어디서 부터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지만 요즘 그 사람, 뭔가에 홀렸는지 예전의 그 이가 아니예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 때부터예요. 강원도에 살인사건인가, 취재를 갔다 온 그 다음부터....\"
그녀는 감정이 복받치는지 거기서 말을 끊곤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다음부터 이어진 그녀의 얘기들은 김한수를 잘 알고 있는 해일로선
도저히 받아 들이기 어려운 이상한 얘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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