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얘기는 다음과 같았다.
김한수가 강원도 H군의 취재를 갔다 와서 밤을 세워 기사를 쓰고 집으로 들어 온 것은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였다고 한다.
그녀가 보기에 김한수는 그날따라 유독 지치고 피곤해 보였으며 집에 들어 오기가 무섭게 쓰러져 깊이 잠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잠든 김한수가 헛소리를 하기 시작한 것은 새벽녘이었다
. 그는 결혼 후 한번도 헛소리나 잠꼬대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힘든 일때문에 몸이 약해져 그런 줄만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김한수의 잠꼬대는 매일 계속 되었고 그 정도도 심해졌다.
그리고 그 잠꼬대의 대부분은 살려 달라는 비명에 가까운 것이었고
급히 잠을 깨우면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서 뭔가를 두려워 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잠꼬대만이 아니었다.
잠을 자지 않을때도 그는 이상하게 불안해 하고 초조해 했다. 그러다 바로 이틀전 해일과 통화를 한 바로 그 날밤엔 절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얼굴로
무섭다는 말과 함께 그녀의 앞에서 울음까지 터뜨렸다는 것이다.
해일은 참담한 기분으로 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토록 활동적이고 자신감에 넘치던 김한수가 그랬다는 것이 그로선 도통 믿기지가 않았다.
\"기가 막히더라구요.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되니까. 하두 답답해서 방송국에 연락해 봤더니
갑자기 휴가를 내겠다고 했다더군요.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대답도 하지 않고. 할 수 없이 전문의의 진단을 한번 받아보자고 했죠. 정PD님도 아시죠?
그 이 친구중에 정신과 전문의로 있는 민병기박사라고......\"
\"민박사요? 예, 압니다\"
\"그랬더니 펄쩍 뛰면서 자기를 무슨 정신병자 취급하냐며
갑자기 집안의 물건을 닥치는대로 부수고..... 마치 딴사람처럼, 너무 무서웠어요.
그 이의 그런 모습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 했었거든요\"
그녀는 더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가 자신에게 테잎을 넘겨줄때만 해도 해일은 그에게서 별다른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러고 보니 이틀전 그의 전화는 예사로운 전화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그의 생각을 지배했다.
그는 분명 그에게 뭔가 말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한참을 흐느끼던 그녀가 간신히 울음을 삭히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죄송해요, 이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괜찮습니다.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제가 놀라는 것이야 뭐 큰일인가요? 다만 그 이가 너무 걱정이 되서.....\"
\"그래서, 그 다음엔 어떻게 됐나요?\"
\"그리곤 바로 어제 아침에 방송국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전화를 받은 그 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더라구요.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이와 함께 H군에 취재 갔던 카메라맨이 갑자기 죽었다는 거예요.
그때 그 이의 표정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지.....
마치 세상이 끝나기라도 한 것 처럼 절망하고 좌절하던 그 표정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한 것 같아요.
온 몸을 부들 부들 떨면서 알아 들을 수도 없는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더니
갑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가 안에서 문을 잠근채 꼼짝도 하지 않는 거예요.
도대체 사람을 그토록 무섭게 만들 수 있는게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였어요.
아무리 문을 열라고 해도 그이는 제 목소리를 듣지도 못하는 양 대답조차 하지 않았어요.
무섭고 두렵긴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우선 방문을 열어야 겠다는 생각에 창고에서 비상키를 찾아서 다시 돌아왔을땐 남편은 이미 나가고 없더군요.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날 저녁이었어요.
어떤 사람들이 자신을 찾으러 올 것이라고 했어요.
그들에게 자신은 미친것이 아니라고 말해달라고 하면서.... 저 보고..... 그동안 고마웠다면서.....
그이의 전화가 끊기고 얼마후 과연 경찰이라는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와 그 이를 찾았어요.
그리곤 그 이가 집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돌아가더군요. 그 후로 지금까지 그 이한테선 아무런 연락도 없는 거예요.
도대체 그 이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불안하고 조마 조마해서 그냥 집에 있을 수가 없었어요.
이제 전 어쩌면 좋죠? 어떡해야 돼죠?\"
그녀는 거의 절망적인눈빛으로 해일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해일이라고 해서 무슨 뾰족한 묘안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도무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김한수의 기이한 행동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그를 찾아 왔다는 경찰들은 누구일까? 그는 지금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를 맴돌았다. 그는 일단 그녀를 최대한 위로하여 돌려 보냈다.
자신이 어떻게든 원인을 알아 볼테니 참고 기다려 보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긴 그녀와 마찬가지인데.
그러나 한가지 그의 마음속에서 내내 떠나지 않는 생각이 한가지 있었다. 그것은 김한수의 기이한 행동과
그가 취재를 갔던 H군의 살인사건이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우선 김한수와 함께 취재를 갔다가 갑자기 죽었다는 카메라맨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보도국에 전화를 걸어 본 결과 그의 이름이 이창수라는 것을 알아냈고 그는 김익재 촬영감독에게 도움을 청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같은 방송국의 카메라맨이니까 서로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때문이었다.
\"뭐? 이창수가 죽었다구?\"
예상대로 김감독은 이창수를 잘 알고 있는 듯 했으며 그의 갑작스런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사람과 잘 아세요?\"
\"잘 알 다 뿐이요? 옛날에 내 밑에서 카메라 배워서 입봉한 녀석인데... 이제 갓 서른밖에 안됐는데 도대체 어쩌다 그렇게 죽었답디까?\"
\"저도 확실한건 잘 모르겠어요.
자신의 집에서 죽어 있는 것을 우연히 그의 집에 들른 친척이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하더군요\"
\"참, 사람 목숨 별거 아니구만. 한 보름전에 만났을때만 해도 멀쩡하던 놈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해일과 김감독이 이창수의 집 앞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경찰들이 \'수사중\' 이라고 쓴 팻말이 달린 노란 띠를 집 주위에 둘루곤 사람들의 집안 출입을 통제한채 삼엄한 경계를 피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며 김감독이 말했다.
\"이거, 그냥 죽은게 아닌 모양인데? 웬 분위기가 이렇게 살벌해?\"
김감독과 해일이 다가가자 근무를 서던 경찰이 앞을 막았다.
\"무슨 일입니까? 여긴 현재 일반인 출입이 금지 된 곳입니다\"
그러자 그 경찰에게 김감독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이보슈, 난 죽은 이창수완 아주 막연한 사인데 도대체 왜 죽었습니까? 죽은 이유나 좀 압시다\"
\"수사상 비밀이라 현재로선 아무것도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아니, 어떻게 죽었는지도 말해 줄 수 없단 말이오?\"
\"그만 물러나세요, 상부에 지십니다\"
경찰이 김감독과 해일을 밀치듯 제지하자 김감독이 화가 난 듯 그의 손을 뿌리치며 거칠게 항의했다.
\"나원 참, 분통 터져서. 무슨 놈의 민주 경찰이 이 따위야.
아끼던 후배가 죽었는데 어떻게, 왜 죽었는지도 알 수가 없단 말야?\"
삿대질까지 해대며 분통을 터뜨리는 김감독을 가까스로 말린 것은 해일이었다.
공연히 소란을 피워봤자 아무것도 얻어질건 없을 것 같았다.
난감한 심정으로 이창수의 집만 먼 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해일을 알아보고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김한수와 보도국에 함께 있는 강상준 기자였다.
잘 알진 못하지만 해일이 김한수와 함께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정PD님, 아니세요?\"
\"아예, 강기자님이시죠?\"
\"근데, 여긴 어쩐 일로......\"
\"예, 뭣 좀 알아볼게 있어서요. 강기자님은 어떻게?\"
\"예, 저는 취재차 조문차, 겸사 겸사 나왔습니다. 저희 보도국에 있던 카메라맨 한 명이 죽었거든요\"
\"사실 저도 이창수라는 사람의 죽음이 궁금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혹시 아는게 있으시면 좀.....\"
\"그 사람과 아시는 사이 셨던가요?\"
그때 김감독이 나섰다.
\"창수와는 제가 잘 압니다. 대체 어떻게 죽었습니까?\"
그러자 강기자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잠시 난색을 표명했다. 이윽고 입을 연 그의 얘기는 뜻밖이었다.
\"사실 저도 같은 직장 동료의 죽음을 취재한다는게 여간 찝찝한게 아닙니다.
근데 이상하게도 취재를 할 수가 없었어요. 경찰 측에서 전혀 접근을 안 시켜 주는 겁니다.
웬만해서 그런 일이 없는데......
현재로선 그의 죽음에 대한 어떠한 정보나 사실도 철저히 차단되고 있어요. 다만 제 정보원을 통해 어렵게 얻은 정보에 의하면
그의 시체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 을 정도로 손상되었다는 거예요\"
\"손상이 됐다구요?\"
해일이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한마디로 무슨 맹수에게 뜯어 먹힌 것 같았대요.
방안이 온통 핏자욱 이었는데 거세게 저항한 흔적도 역력하고..... 하옇튼 너무나 끔찍한 모습이었대요\"
그러자 이번엔 김감독이 큰소리로 말했다.
\"맹수한테 뜯어 먹혀요? 여기 자기 집에서?\"
\"네. 경찰도 그 점을 수상히 여기나 보더라구요.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자신의 집에서.... 때 아닌 맹수라니.
그리고 더욱 이상한 점은 살해된 모습이 이창수가 죽기 전 김한수 기자와 함께 취재를 다녀온
강원도 H군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피살자들의 모습과 너무나 유사했다는 겁니다\"
강기자의 얘기에 해일은 심한 혼란을 느꼈다.
강기자의 얘기를 들으면서 해일 역시 자연스럽게 그 H군 살인사건을 떠올렸던 것이다.
김한수가 너무나 끔찍했다며 치를 떨며 넘겨준 그의 자료들에도
그 피살자들의 시신에 대한 여러 의문점과 묘사들이 자세히 적혀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그 H군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이창수라는 카메라맨과 무슨 관련이 있길래. 그리고 김한수와는 또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의문점은 점점 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번져 가고 있었다.
\"정PD님, 어제, 오늘 사이 혹시 김한수 기자 보지 못 했어요?\"
\"김기자요? 아니요, 왜요?\"
\"뭐, 별건 아니고 경찰에서 김기자를 좀 만났으면 하더라구요.
아무래도 H군에 이창수와 함께 다녀 왔으니까 혹시 짚이는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근데 그 사람 몇일전 휴가 내곤 전혀 연락이 안 되더라구요. 집에 전화해도 전화도 않 받고\"
\"글쎄요, 저도 최근에 김기자를 만나지 못해서. 만약 만나면 그렇게 전하죠\"
강기자가 가고 나자 김감독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이봐요, 정PD. 이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소?
H군 살인사건은 나도 뉴스에서 봤는데 이창수가 그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죽었다니,
이게 말이 되요? 정말 거기 귀신이라도 있는거 아닐까?\"
\"그거야 뭐, 직접 가보면 알겠죠\"
\"난 어째 이번엔 웬지 기분이 뒤숭숭한게.... 아무래도 보험이라도 하나 들어 놓고 가야 할 건가봐?\"
\"김감독님 답지 않게 왜 이러세요? 분명 무슨 곡절이 있을 겁니다\"
말은 쉽게 했지만 해일의 머릿속도 개운치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엔 내내 김한수가 마음에 걸렸다.
이창수의 죽음이 김한수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이 틀림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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