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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히 백년은 더 되었을성 싶은 검게 불에 그을린 그 흉물스런 집을 아직까지 철거하지 않고 남겨둔 이유가 궁금할 만큼
집은 금방이라도 허물어 질 듯 위태하게 보였다.
집 뒤쪽으로 울창한 산이 바싹 붙어 있었고 마당에는 잡초들이 발디딜 톰 도 없이 자라 있었다.
다른 스텝들이 서둘러 마당으로 들어서서 짐을 풀고 촬영 준비에 분주 했지만
오직 김감독만은 그 집 마당으로 들어서는 것이 선뜻 내키질 않는지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때면 자신은 항상 그 징후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5년전 촬영에서 돌아오다 교통사고를 당한 일이며, 3년전 산악등반 촬영을 갔다가 조난 사고로 두명이 목숨을 잃은 일이며,
바로 작년에는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까지 번번히 어떤 예감을 느끼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스텝들은 여느때와 다름없었다.
지금껏 수많은 흉가를 가보았고 또한 그 곳에서 밤을 지새며 촬영을 했었기 때문에
이 곳이라고 어떤 특별한 감정을 느끼진 못하는 것 같았다.
다만 무속 전문가인 오세창과 이정란은 집의 어떤 기운을 알아 보려는 듯 나름대로 집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해일은 그들에게도 일부러 테잎에 대한 것이나 이곳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또는 김한수나 이창수의 죽음에 대해서 전혀 귀뜸하지 않았다.
주위는 이미 칠흙같은 어둠으로 덮히기 시작했고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해일은 집안을 구석 구석 살펴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허물어 져 내릴 것 같은 집인데 용케 버티고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 볼 때 보다 집안은 훨씬 넓었다.
방은 총 열 한개가 있었고 부엌과 그 옆으로 넓직한 광이 딸려 있었다.
각 방안에는 먼지와 낙엽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는데
맨 끝방 한쪽 구석엔 어떤 짐승이 잠자리를 만들어 놓은 듯
가운데가 움푹하게 패인 나뭇가지들이 수복하게 쌓여 있었다.
집안에서 해일이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은 바로 부엌 옆에 딸려 있는 광이었다.
한쪽 문짝이 무너져 내려
비스듬하게 달린 그 곳은 바로 테잎 속에서 짐승의 귀가 시퍼런 광채를 내뿜고 있던 바로 그 곳이었다.
크게 숨을 한번 들이쉬고 해일이 살짝 문을 밀치자
삐걱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무슨 냄새인지 모를 시큼한 악취가 코를 찔러 왔다.
해일이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어디선가 싸늘한 기운이 목덜미를 지나갔다.
렌턴의 불빛을 구석 구석에 비추며 안을 살폈다.
바닥엔 썩어버린 짚더미가 어지럽게 깔려 있었고 구석엔 주인을 잃은 농기구들이 붉게 녹이 슨 채로 아직도 아무렇게나 굴러 다녔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주위에 벽들이 온통 붉은 적토(赤土)로 발라져 있다는 것이었다.
렌턴 불빛에 비친 벽은 마치 피 빛으로 덮인 토굴 속이라도 들어와 있는 듯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김익재 촬영감독은 대청마루에서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곤혹스럽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촬영보 박희철이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 것은 김감독이 그런 표정을 지을때 마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독님, 어디 불편하세요?\"
그러나 김감독은 대답 대신 먼저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리곤 엉뚱한 얘기로 입을 열었다.
\"얌마, 너 나보고 맨날 신기(神技)가 좀 있다고 했지? 않 좋은 일만 귀신 같이 맞춘다고....\"
\"예, 그랬었죠\"
\"근데, 바로 그 신기가 별로 조짐이 않좋다.
웬지 마음이 안정이 안되고,
아까 이 집에 들어서는데 이상하게 가슴이철렁하고 내려 앉지 뭐냐.
난 말야 평소 내 목숨은 조상님들이 지켜준다고 믿는 사람인데 꼭 내 조상님들이 이 집안에서 빨리 나가라고 호통을 치시는 것 같더란 말이다\"
\"그.... 그럼, 어쩌죠? 감독님 그런 얘기할때 마다 제 가슴은 더 크게 철렁 한다니까요.
그때마다 아주 않 좋은 일이 생겼잖아요\"
\"젠장, 웬지 이번 촬영은 처음부터 내키지가 않더라구. 특히 그 창수놈 얘기 듣고부턴 더더욱.....\"
\"네?\"
\"아무것도 아니다. 어차피 촬영 왔으니까 딴 생각 말고 일이나 하자구\"
강은영은 집안 구석 구석을 둘러보며 쉴새없이 카메라의셔터를 눌러댔고
그때마다 어둠속에서 눈이 부실만큼 밝은 불빛이 번쩍거리며 나타났다 사라졌다.
배영환은 이 집에 들어온 이후 쭉 그런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배영환의 온 신경은 오직 스틸 사진 기사 강은영에게 쏠려 있었다.
그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벌써 2년전의 일이었다.
어찌보면 자유분방하면서도 자기 주장이 강한 전형적인 현대여성의 조건을 두루 갖춘 강은영을 처음 본 순간
배영환은 밑도 끝도 없는 묘한 질투심을 느꼈다.
그는 강은영에 비하면 여전히 19세말의 조선시대에나 맞을 법한 사고와 생활방식을 가진 사내였다.
강은영의 주변에는 언제나 젊고 활기 찬 남자들이 있었다.
그녀는 그들과 함께 있으면 고개를 한껏 제처가며 웃음을 터뜨리는가 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몸을 기대기도 하고 손을 잡기도 했다.
배영환은 그런 그녀가 웬지 못마땅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자신에게 특별히 밉게 보일만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자연 그녀 앞에서 배영환의 심사는 뒤틀릴 수 밖에 없었고 둘은 만나기만 하면 툭닥거렸다.
배영환은 처음 그녀에 대한 자신의 이유없는 미움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최근 그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바로 흔히 남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치명적인 질병임을 알아차리고 그는 몹시 당황했고 극구 자신을 부인했다.
하지만 이미 그는 스스로 벗어날 수 없을만큼 그녀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투덜거리기만 할 순 없다는 것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2년여동안 미움이라고 여겨왔던 자신의 감정을 한순간에 사랑이라 그녀에게 드러내기에는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그러한 이유로 그의 말과 행동은 번번히 마음과는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삐져나왔다.
어둠속에서 한참을 셔터를 눌러대던 강은영이 손을 멈추고 돌아섰다.
\"배선배, 언제까지 제 뒤만 쫓아 다닐 거예요? 저한테 무슨 할 말 있어요? 아님, 할 일이 없어서 그래요?\"
그녀의 갑작스런 공격에 배영환은 마치 자신의 감정을 들키기라도 한듯 당황하면서 그 반작용으로
또다시 후회할 소리를 하고 말았다.
\"착각하지마, 내가 뭐 널 좋아하기라도 해서 따라다니는줄 알아? 아까 정PD가 나한테 붙어 다니라고 그러더라
. 집도 으시시한데 괜히 헛것보고 기절이라도 하면 골치 아프니깐!\"
\"이봐요, 배선배, 제가보기엔 선배가 더 으시시 하네요.
얼굴 밑에 렌턴 좀 치우고 얘기할 수 없어요? 안 그래도 기분이 별론데 거기 그렇게 귀신 같은 얼굴로 따라 다니니까
더 신경이 쓰이잖아요\"
강은영이 핀잔주듯 한마디 쏘아 붙이고 다음 방으로 건너가자 배영환은 맥이 빠지는듯 렌턴을 한대 후려치곤 중얼거렸다.
\"젠장, 별게 다 훼방을 놓는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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