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죽음의 마을(4)



해일이 광에서 나와 대청마루까지 뛰어가는 사이

갑자기 눈이 부실 정도의 시퍼런 섬광과 함께 엄청난 천둥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산중에서 듣는 천둥소리는 도시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것은 사람의 가슴을 절로 서늘하게 만드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대청마루까지 뛰어가는 단 몇 초간 해일의 온몸은 순식간에 흠뻑 젖어 버렸다.
대청마루엔 김감독과 박희철이 렌턴 불빛에 의지해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김감독님, 카메라를 이쪽 광에다 셋팅해 주셔야 겠는데요?\"




\"안 그래도 그럴 작정이요. 그건 그렇고 광에는 뭐 이상한거 없어요?\"





\"예, 지금봐선 별로 특별한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그동안 해 왔던대로 전체적인 스케치부터 해주세요. 그리고 포인트를 잡아서 집중적으로 좀 잡아 주시고....

근데 다른 스텝들은 다들 어디 갔죠?\"




그때 어둠속에서 스크립터 김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PD님, 이리 좀 와 보세요\"





김혜진은 이영우, 그리고 기공 전문가 오세창, 무속인 이정란과 함께 왼편 끝방에 있었다.

오세창은 손에 나침반 같은 쇠붙이를 들고 집 주변의 수맥(水脈)을 측정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침이 크게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 곳은 집이 들어설 자리가 아닙니다. 지금 이 집은 호수에 떠 있는 것과 마찬가지 형상을 하고 있어요\"





\"호수에 집이 떠 있다구요?\"





\"네, 대부분의 흉가나 터가 좋지 않은 집을 가 보면 흔히 물이 흐르는 위에 집을 짓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수맥이 인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 사람이 기(氣)를 제대로 펴고 살기가 힘들죠.


그래서 병에도 걸리고 마음이 심약해져 헛것을 보기도 하는데

이곳은 물이 흐르는 정도가 아니라 그 넓이나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물이 이 집터 아래에 가득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집이라면 아마 그동안 액운이 끊이지 않았을 겁니다\"






이번엔 이정란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얼굴은 몹시 긴장되고 상기되어 있었다.






\"저기를 좀 보세요\"





그녀는 렌턴으로 방문 위쪽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거기엔 대나무 가지가 기묘한 모양으로 꽂혀 있었다.





\"대나무 아닙니까?\"





\"그래요, 대나무죠. 저건 귀신을 쫓을때 주로 사용하던 비법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이 집안 전체가 온통 귀신을 쫓기 위한 비방들로 가득합니다.

대청마루 쪽에 다듬이 돌을 엎어 놓은 것 하며, 광에 적토로 벽을 발라 놓은 것,
그리고 이리 나와 보세요\"





그녀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해일을 방밖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그녀는 렌턴을 빗줄기가 내리치는 마당에 비추었다.






\"저기 마당에 흥건한 물들이 보이죠? 모두 붉은색이예요\"





\"그럼, 마당의 흙들도 광의 것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적토란 말입니까?\"






\"그래요, 마당의 흙도 광과 마찬가지로 온통 적토로 되어 있어요.

예전부터 귀신을 쫓기 위한 대표적인 비방이

대문에 피를 칠하거나 아니면 저렇게 적토를 발라 놓는 것인데 이 집은 온통 적토로 가득 차 있어요.


그리고 이 집이 온통 검게 그을린 것도 제가 보기엔 단순한 화재때문이 아닙니다.
귀신을 쫓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질렀을 가능성이 큽니다\"






계속되는 이정란의 목소리는 상당히 들떠 있었다.






\"이 집안엔 온통 악한 기운이 가득해요. 집안 전체가 악귀들로 둘러 쌓인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험한 곳을 많이 다녔지만 이번처럼 기운이 강한 곳은 처음이예요.


이따 자정이 지나면 제가 이 집안에 있는 귀신들을 한번 불러내 보도록 하죠. 도대체 이 집안에 가득한 귀신들이 어떤 원귀들인지\"





이정란은 그 어느 때보다 힘주어 말했고 해일은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흉가에 가지 말라던 김한수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때 어둠속에서 또 하나의 렌턴 불빛이 더듬거리며 일행들을 향해 다가왔다.
배영환과 강은영이었다. 배영환이 말했다.






\"이거 도대체 전기가 없으니까 여간 불편한게 아닌데요? 정PD님 카메라를 어디에 셋팅하죠?\"





\"적외선 카메라는 저기 마당쪽에 좀 셋팅해 주세요.\"





그러자 배영환이 무슨 소리냐는듯 마당쪽으로 렌턴을 비추었다.

앞도 제대로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는 마당에는
아무리 살펴도 카메라와 몸을 숨길만한 엄페물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저기.... 저 마당에 카메라를 셋팅하란 말씀이세요?\"




\"좀 무리긴 하겠지만 그렇게 좀 해주세요.
마당쪽에서 이 집안 전경과 내부를 잡아 주셔야 합니다\"




\"우와 난 죽었네. 저런 빗속에선 우의를 입어도 아무 소용 없는데....\"






배영환은 울상을 지으며 렌턴으로 연신 마당을 이리저리 비추었다.

그런데 렌턴을 비추던 배영환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저.... 저게 뭐죠?\"



모두의 시선이 배영환이 가리키는 마당으로 쏠렸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내리쏟는 빗줄기 속에서 분명 뭔가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모두가 긴장한채 그 곳을 주시했다.




어둠속인데다 비까지 퍼부어서 렌턴 불빛만으로는 언뜻 무엇인지 쉽게 분간하기 어려웠다.
잠시후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이영우가 먼저 소리 쳤다.






\"사..... 사람 아니예요?\"



\"뭐, 사람?\"



이영우의 말은 사실이었다. 조그만 우산으로 가까스로 비를 피하며 마당으로 들어서는 이들은 분명 사람이었다.

모두 세명이었고 그것도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마당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곤 이쪽을 노려보며 유령처럼 꼼짝않고 서 있었다.









\"저 사람들 뭐하는거야? 우리한테 무슨 할 말이 있나 본데?\"




이영우의 말에 이정란이 덧붙였다.







\"우리한테 별로 좋은 얘길하러 온 사람들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러자 배영환이 소리쳤다.





\"거기 누구요? 무슨 일이요?\"






그러나 그들은 대답이 없었다.
대신 그들은 조심스럽게 마당을 가로질러 다가왔다.

예상대로 다가온 그들은 모두 나이가 예순은 넘어 보이는 노인들이었고 하나같이 얼굴에 핏기라곤 없어 보이는 창백한 표정이었다.
게다가 불빛에 드러난 그들의 얼굴엔 이유를 짐작키 어려운 적개심까지 드러나 있었다.


노인들은 대청마루 바로 밑에와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스텝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며 그들을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을때 노인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뜻밖의 얘기였다.







\"당장 여기서들 나가!\"





스텝들이 모두 노인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질 못해 어리둥절 하는 사이 노인의 두번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리고 두번째 목소리는 처음보다 훨씬 크고 분명했다.




\"여기서들 당장 나가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