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죽음의 마을(5)








구반장은 혜경에게 호되게 당한 그날 이후 혜경이 하는 일에 거의 간섭하지 않았다.







그리고 꼭 필요한 말 외에는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법도 없었다.



구반장의 그런 태도가 혜경에게 다소 부담이 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 해결이 되리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한 두사람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 사이에서 오히려 가장 불편한 사람은 바로 박호철 순경이었다.




하루종일 두사람의 눈치만 살피던 그가 크게 기지개를 키곤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만 퇴근들 않하세요?

벌써 11시가 다 되어 가는데....\"






그러나 두사람중 누구도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는 사람이 없자



그는 머쓱하게 창문을 내다보며 다시 중얼거렸다.












\"정말, 징그럽게 오는구만.

비가 이런 식으로 몇 일만 더 내리면 우리 군은 아주 물바다가 되겠는데요?





아참, 그나저나 오늘 서울에서 방송국 다큐맨터리 제작팀이

  목촌리 332번지에서 무슨 촬영을 한다고 하던데 비가 이렇게 와서 제대로 촬영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러자 그의 말에 혜경과 구반장 두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구반장이었다.








\"이봐, 박순경,

방금 뭐라고 했어?\"








뜻하지 않은 구반장의 반문에 박호철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 슨 소리요?\"



\"방금 무슨 다큐맨터리팀이 어쩌고 그랬잖아!\"







\"아...예, 그 얘기요? 아까 낮에 행정과장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서울에서 온 방송국 사람들이

오늘밤 이번에 살인사건이 일어난 332번지에서 촬영을 하기 위해 허가를 내달라고 해서 내 주었다고. 뭐라더라?







그 곳에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밝힌데나? 하여간 방송 만드는 놈들......\"








그러나 박호철의 얘기는 더이상 입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구반장이 갑자기 책상을 내리치며 소릴 질렀기 때문이다.






\"그걸 이제 얘기하면 어떻게!\"




갑작스런 고함 소리에 박호철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을때 구반장이 다시 소리쳤다.




\"이런 미친 놈들, 죽고 싶어 환장을 했나? 모두 몇 명이래?\"



\"그.... 그건 잘.....\"










박호철의 말에 구반장이 무너지듯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돌연한 구반장의 행동에 어리둥절 하기로 치자면 박호철보단 혜경쪽이 더 했다.



  다큐맨터리 팀이 332번지에서 촬영을 한다는 박호철의 얘기를 듣고 놀란 것은 오히려 혜경이었다.

아직 사건이 완전히 해결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 곳을 취재했던 기자들이 모두 끔찍한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바로 오늘만 해도 이번 살인사건 취재를 했던 기자와 카메라맨이

모두 같은 방법으로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시경으로부터 전해 들은 그녀였다.



그런데 구반장이 저렇게 펄쩍 뛰는 것은 그녀로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332번지 일이라면 무조건 빠지려고만 하던 구반장이 아니던가.









그녀는 구반장의 진의를 파악하려는듯 그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그는 몹시 불안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서성거렸다. 뭔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게 틀림없었다.







그녀가 이 곳 H군에 배치를 받은 이후 처음 보는 구반장의 모습이기도 했다.

갑자기 구반장이 소리쳤다.










\"지금 출동할 수 있는 인원이 우리 셋 뿐인가?\"






박호철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는 다시 실내를 서성이기 시작했다.

시종 손을 마주 비벼대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질 못하던 구반장이





마침내 어떤 결심이 선 듯 박호철과 혜경을 보곤 무겁게 입을 열었다.

혜경은 지금 그의 표정이 몹시 낯설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사람 다 당장 나하고 같이 목촌리로 출동할 준비해.

그리고 무기고에서 M16 소총, 권총, 실탄.... 또 뭐가 있지? 하여튼 있는대로 모두 챙겨, 어서!\"










구반장의 말에 혜경과 박호철 두사람은 동시에 놀라서 입을 벌였다.










\"네? 반장님 방금....\"



\"내말 안들려? 어서 서두르란 말야, 시간이 없어! 어서!\"








갑자기 목촌리로 출동하자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인데 무기까지 챙기라니.

혜경은 구반장이 지금 어떻게 된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구반장의 표정은 긴지하고 잔뜩 긴장되어 있었다.

구반장의 지시대로 세사람이 무기를 챙겨 목촌리로 출발한 것은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세사람 모두 실탄이 장전된 권총을 한 자루씩 차고 있었고 구반장은 M16 소총까지 곧추세워 들고 있었다.







박호철은 운전하는데 여간 애를 먹는 눈치가 아니었다.

칠흙같은 어둠에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물때문에 승용차의 시야는 불과 10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윈도 부러쉬를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빗물을 감당하진 못했다.









차안에서 구반장은 한마디도 말이 없었다.





그는 눈을 감은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박호철이 운전을 하며 연신 룸미러로 구반장의 안색을 살피곤 혜경과 눈이 마추졌지만 영문을 모르긴 두사람 다 마찬가지였다.

무거운 침묵을 먼저 깨뜨린 것은 혜경이었다.










\"저기, 반장님! 저희도 도대체 무슨 일인지나 알고 가야죠.

이렇게 무작정 갈 순 없잖아요\"






그러나 구반장은 여전히 눈을 감은채 아무 말이 없었다.

참지 못한 혜경이 다시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 구반장이 눈을 떴다.








\"윤형사, 332번지 흉가에 대한 수사는 잘 진행되나?\"



\"네?\"



\"수사에 진전이 있냐고....\"



\"뭐, 아직은..... 하지만 몇가지 사실들을 알아내긴 했어요.

그 흉가를 중심으로 한 목촌리 마을의 내력에 대한 것들인데.....\"



\"그럼, 이번 같은 살인사건이 처음이 아니란 것도 알아냈겠구만!\"



\"그럼, 반장님도 알고 계셨어요?\"



\"윤형사는 귀신의 존재를 믿어?\"



\"귀.... 귀신요?\"



\"그래, 귀신!\"



\"그.... 글쎄요\"








\"우린 지금 귀신과 싸우러 가는거야\"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혜경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곤 구반장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틀림없는 구반장이었지만 그의 눈은 평소 그의 눈빛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광기와 형언키 어려운 공포, 그리고 그 너머로 얼핏 보이는 죽음의 그림자.



그런 것들이 그의 눈엔 진하게 베어 있었다.

혜경은 지금 구반장의 눈빛과 비슷한 눈빛을 어디선가 보았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그건 바로 목촌리 주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던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