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유령(2)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그녀는 검은 물살 속으로 휩쓸렸다.

+



+

눈앞에 구반장과 박호철이 놀라는 모습이 보였지만 손을 뻗치기엔 먼 거리였다.



\"윤형사!\"



구반장이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지만 빗소리와 그녀를 덮치는 검은 물살 때문에

그녀는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



빠른 속도로 아래로 떠내려 간다는 생각과 끊임없이 입안으로 몰려드는 검은 물이 그녀의 의식을 둔화시키고 있었다.

+

+

+



헤엄을 쳐보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강한 물살은 몸의 균형을 잡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차츰 몸에 힘이 빠져나가고 의식이 흐려지면서 그녀는 죽음이란 단어를 자연스레 떠올렸다.





그때 그녀는 누군가 자신의 몸을 붙잡는 손길을 느꼈다.

그녀는 그것이 현실의 일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더 이상 아래로 떠내려가지 않았다.





그때 그녀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끌어올려, 어서!\"



구반장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최대한 의식을 가다듬어 고개를 돌렸다.

한 손으론 나뭇가지를 붙잡고 한손으로 자신을 붙잡은채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구반장의 힘겨운 얼굴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

+



+

물 밖에선 박호철이 몸이 반쯤 물에 잠긴채 그녀를 끌어 올리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







얼마간의 사력을 다한 사투끝에 혜경이 가까스로 끌어올려지고

구반장이 비틀거리며 물에서 기어 나왔다.



+

구반장은 나오자마자 혜경의 옆에 나란히 쓰러지듯 드러누워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혜경은 기침을 심하게 했다.

계속해서 구역질이 나와서 그녀는 속이 몹시 쓰라렸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박호철의 걱정스런 얼굴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리곤 옆을 돌아 보았다.



+

+

그녀보다 더 지친 모습의 구반장이 꼼짝도 하지 않고 곁에 누워 있었다.

그는 혜경이 정신을 차린 한참 후에도 그대로 그렇게 누워 있었다.




* * *



해일이 쓰러질듯 고개를 넘었을때 그 아래에는 나머지 스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고개를 넘어선 후에야 해일과 혜진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

+



+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오던 길을 되돌아 갈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해일은 무너지듯 쓰러졌다. 해일을 부축한 사람은 이정우였다. 그는 두려운 눈길로 물었다.






\"혜.....진이는요?\"



해일이 고개를 떨구었다. 이정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물었다.



\"설마?\"






해일이 곤혹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김혜진은 이정우와 가장 가까웠다.

이정우는 마치 김혜진을 돌보지 못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는 듯 괴로워했다.

+

+

김감독이 끼어 들었다. 그는 비교적 안정되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그것들이 다 무엇 이었습니까?\"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것들은..... 광에서 나왔어요\"



\"광에서요?\"



\"그들이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광에서 퍼런 광채를 번득이며 기어 나오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요, 처음 보는 짐승들이었어요.



늑대 같기도 하고..... 그리고 그들 속에 누군가가 있었어요\"



\"누.... 누군가라니?\"



\"틀림없이 사람이었어요.

놈들은 긴 막대기 같은 것을 들고 있었는데 그 놈들이..... 그것으로.....



혜진이를 향해 내리 쳤어요. 몇번 더.... 참혹하게 내리치곤..... 짐승들이......\"






어느 누구도 더이상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

+

+

+

+

+



대신 그들의 얼굴엔 더욱 분명한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들의 모습에서 해일은 이번 일이 바로 자신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생각때문에 견딜 수 없이 마음이 아팠다.

+

+

+



그러나 한편으론 남아있는 사람들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한 사명감이 그를 압박해 들어왔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끔찍한 짐승들과 낯 모르는 살인마가 잠시후면 자신이 넘어온 바로 그 고개에 얼굴을 내밀 것이다.






\"다들 마음을 단단히 먹읍시다.

이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무엇인진 아직 알 수 없지만 일단은 어서 이 곳을 벗어나야 해요, 마을로 가서 도움을 청합시다.

+





그 사람들은 뭔가 알고 있을 겁니다. 어서 서둘러요!\"




스텝들은 다시 앞쪽에 보이는 불빛을 향해 허우적거리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해일은 맨 뒤에 쳐져 계속 뒤를 돌아보며 걸었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그 끔찍한 짐승들의 날카로운 이빨이 등줄기를 꿰뚫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

+

렌턴 하나도 들고 나온 사람이 없어 앞장 서 걷는 김감독은 계속해서 바닥을 나 뒹굴렀다.

+

+

마을까지만 가면 무슨 수가 생길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그들에게 힘을 불어 넣었다.

+



마침내 마을로 들어서자 첫번째 집의 마당으로 김감독과 배영환이 뛰어 들어가 마구 소리를 질렀다.

그 집엔 다행히 불이 밝혀져 있었다.

+





스텝들의 얼굴에 다소 안도의 표정이 떠올랐다.






\"아무도 안 계세요, 좀 도와 주세요! 아무도 안 계세요?\"




그러나 안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강은영이 소리쳤다.




\"방문을 열어봐요, 불은 켜져 있잖아요!\"








김감독이 방으로 다가가 방문을 왈칵 잡아 제꼈다. 그러나 방안은 텅 비어 있었다.










\"없어, 아무도 없어!\"



\"그.... 그럼, 어서 다음 집으로 가봐요, 어서!\"



\"다들 나누어서 사람들을 찾아 봅시다. 저기도 불켜진 집이 한 집 있잖아요\"




우왕 좌왕하며 스텝들이 삼삼오오 흩어져 소리를 질러대며 사람들을 찾았지만

+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 사람도 보이질 않고 집들은 하나같이 텅비어 있었다.





스텝들의 얼굴에 다시 초조함과 불안함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불행히도 그들의 등뒤 어둠속에서 다시 짐승들의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놈들이 왔어!\"






누군가가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거기도 아무도 없어?

이게 어떻게 된거야!\"






두서없는 외침들이 어둠속에서 터져 나왔고 짐승들의 소리는 더욱 가까워 졌다.






\"잠깐, 이리들 와봐요, 어서!\"




겁에 질려 소리친 사람은 오세창이었다. 스텝들이 정신없이 그 곳으로 몰려 들었다.

+

+

+



+

그가 가리킨 곳은 어느 집의 커다란 창고였다.



나무 문짝이 든든하게 잠겨있는 그 창고를 문틈으로 들여다 보던 김감독이 \'헉\'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물러섰다.

해일이 앞으로 나서 안을 들여다 보았다.

+

+

놀랍게도 그 안에는 어둠속에 웅크린 마을 주민들의 겁에 질린 눈동자가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아까 그들을 찾아와 호통을 치던 노인들 세사람도 함께 있었다.

해일이 문짝을 힘껏 걷어차며 소리쳤다.



\"이봐요, 문 좀 열어주세요, 좀 도와 주세요!\"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번엔 김감독이 더욱 세게 문짝을 걷어차며 소리를 질렀다.








\"제발, 문 좀 열어 주시오, 짐승들이.... 짐승들이 온다구!\"



그때 등뒤에서 스텝들이 비명을 지르며 악을 썼다.



\"악!\"



\"와....왔어, 놈들이 왔다구!\"



\"으으...... 저것들이 다 뭐야?\"








강은영이 찢어지는 비명을 질러댔고 촬영보 박희철도 사시나무 떨듯 부들 부들 떨었다.



과연 마당 바로 앞에는 흠뻑 비에 젖은 검은털에 눈에선 시퍼런 광채를 내뿜는 짐승들 수 십마리가

  탐욕스런 이빨을 드러낸 채 금방이라도 스텝들을 향해 으르렁대며 다가오고 있었다.








\"도.... 도대체 저것들이 어디서 나타난거야!\"



\"설마, 우리가 꿈을 꾸는건 아니겠지?\"






참다 못한 박희철이 창고문을 정신없이 두드리며 악을 써댔다.






\"문 열어, 이 새 끼 들아! 문 열란 말이야!\"






이번엔 스텝들이 모두 달겨들어 문에 몸을 부딪히며 절박하게 소리를 질러댔다.



마치 그곳이 생사의 경계선이나 되는 것처럼.








\"제발 문 좀 열어 주시오, 제발!\"



그러나 문은 꼼짝도 하지 않고,

+

+

+

짐승들은 바로 코 앞까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