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테잎속의 비밀(2)
사내 하나가 몸을 뒤로 돌리려 하자 목소리는 더욱 강경하게 나왔다.
"등짝에 구멍나기 싫으면 고개 돌리지 않는게 좋을거야.
얌전히 총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두 손을 머리에 얹으라구....."
사내들이 어쩔 수 없이 시키는대로 하자 목소리가 이번에는 해일과 혜경쪽을 향해 소리쳤다.
"앞에 두 사람 천천히 뒤로 돌아!"
잔뜩 긴장한채 뒤로 돌던 혜경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난데없이 나타난 사내는 바로 박호철 순경이었던 것이다.
혜경이 뭐라고 말하려 하자 박호철이 눈을 찡긋하며 조용하라며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그리곤 땅에 있던 끈을 집어 던지며 말했다.
"거기 앉아 있는 두 사람 묶어!"
혜경과 해일이 빙긋 한번 웃곤 주저앉은 장과장과 박수사관을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혜경이 소리쳤다.
"자, 이젠 뭘 하면 되죠?"
그러자 박호철이 특유의 앳띤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뭘하긴요, 바닦에 권총 들고 달아나야죠!"
혜경이 반갑게 그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사실 저도 처음부터 이 사람들이 좀 이상하더라구요.
이 두사람 말고 또 한사람 있었잖아요. 감색 양복 입은 사람.... 그 사람이 줄곧 저를 감시하질 않겠어요?
그래서 잔뜩 몸을 사리고 있는데 윤형사님과 정PD님이 이 두사람과 마을을 벗어나는걸 봤는데
뭔가 낌새가 수상쩍어서 유심히 보니까 이 두사람한테 잡혀 가는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저를 감시하던 사내한테 소변 좀 보고 온다고 하곤 줄행랑을 쳐서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죠"
혜경이 놀랍다는듯 박호철의 어깨를 툭툭 쳤다.
"박순경, 항상 어린애 같기만 하더니 지금 보니까 그게 아닌데?"
말을 마친 혜경이 허탈하게 주저앉은 두 사람을 향해 돌아섰다.
"자, 장과장님, 이제 당신들이 누군지 한번 말을 해 보실까요? 그리고 우리를 어디로, 왜 데려갈 셈이었죠?"
장수사관이 조금도 굽히는 기색없이 대답했다.
"우린 당신들을 보호하려는 것 뿐이었소.
다소 절차상에 무리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런 소리 말아요,
우리도 자신의 몸 하나 지킬 정도의 여력은 있으니까
어설프게 우릴 보호하느니 어쩌니 하는 소리는 집어 치워요. 엉뚱한 소리 말고 내 질문에나 대답해요"
"그럴 필요 없어요. 그들은 K기관 정보원들이예요"
박호철이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신분증 두개를 꺼내들곤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제가 미리 와서 그들의 차를 조사해 봤거든요"
해일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K기관 정보원이 왜 우릴?"
혜경이 장과장의 안주머니에서 촬영테잎을 꺼내들고 윽박질렀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예요, 그렇죠?
당신들은 처음부터 이번 사건에 대해 뭔가 알고 있었던 거죠, 안그래요?"
"우리도 아직 분명하게 아는건 아무것도 없소.
단지 이번 사건이 우리의 능력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초자연적인 어떤 현상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 밖엔....."
"초자연적인 현상? 설마 당신도 우릴 습격한 그것들이
귀신이니 유령이니 하는 것들의 짓이라고 말하려는건 아니겠죠?"
"물론 그건 아니오. 하지만 당신들이 당한 일이 현실에선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며 지극히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이오.
우리에게 협조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앞으로 단 몇 일도 버티기 힘들 것이오.
그곳을 다녀온 모든 사람들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당신들도 잘 알텐데?"
그의 말에 세사람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해일이 침울하게 물었다.
"그럼, 당신들이 뭘 할 수 있다는거죠?"
"우선은 그 초자연적인 현상이 어떤 것인지 좀 더 명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당신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는 면밀하게 관찰해야만 합니다"
그러자 혜경이 냉소적으로 쏘아붙였다.
"결국 우릴 실험대상으로 쓰겠단 얘기군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변명하지 말아요. 그렇다고 당신들이 현재 우릴 구할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현재로선 그렇지만....."
"그렇다면 혹시.... 병원으로 간 김익재 감독이나 배영환, 강은영씨도?"
그는 잠시 생각하는듯 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렇소. 그 분들은 이미 우리의 보호하에 안전하게 있소"
해일과 혜경의 이에서 동시에 신음이 터져 나왔다.
박호철이 끼어들었다.
"이제부터 우린 어쩌죠? 저들의 말을 믿어야 할까요?"
다시 장수사관의 얘기가 이어졌다.
"현재 우리 기관에선 이번 사건을 위해
저명한 물리학 박사를 비롯, 많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특별한 기구를 만들었소.
그들이 당신들을 위험에서 구할 수 있을거요.
만약 지금 당신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이 자리를 이탈한다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 질 것이오"
혜경이 결심이 선 듯 두사람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우린 당신네들의 보호같은 건 필요없어요. 그리고 당신들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접근하는 방법부터가 틀렸어요.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당신들을 신뢰할 수가 없고..... 그리고 지금 당신들이 데리고 있는 사람들 당장 풀어주는게 좋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우린 이 사실을 온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릴 테니까. 그렇게 되면 당신들도 여간 곤란한게 아닐껄?"
"멍청한 짓 말아요. 그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오. 당신들은 이번 사건의 핵심을 아직 파악조차 못하고 있소"
그러자 혜경이 승용차에 올라타며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건 우리 관심사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끔찍한 악몽에서 어떻게 깨어 나느냐 하는 것이니까"
* * *
통제실에는 병실 마다 은밀하게 설치된 두개의 카메라를 통해 병실 내부의 모든 상황을 여섯개의 모니터가 낱낱이 보여주고 있었다.
배영환이 벌서 5분이 넘게 병실의 방문을 두들겨대며 소릴 지르고 있었다.
"이 자식들아, 우릴 내보내 줘!
우리가 뭘 잘못 했다고 이렇게 가둬 놓은 거야! 당장 우릴 내보내 달란 말이야!"
그러나 번번히 되돌아 오는 것은 공허한 그의 메아리뿐이었다.
참다못한 김감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 둬! 그래봐야 소용없어!"
"그럼, 이대로 주저앉아 있잔 말씀이세요?"
김익재 촬영감독이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둔 배영환에게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아무래도 놈들이 우릴 관찰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뭐라구요?"
배영환이 방안을 한바퀴 둘러 보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카메라 같은건 보이지 않잖아요?"
"카메라쯤 숨기는건 일도 아니야.
중요한건 그게 아니고 대체 저들이 누구이며 우리를 왜 이리 데리고 왔는가 하는거야"
"아무래도 간밤에 저희가 당한 일과 관련이 있겠죠. 전 불안해서 아주 죽을 지경이예요.
산넘어 산이라더니.."
"은영씨는 어때?
아까부터 구석에 주저앉아 아무말도 없잖아. 한번 가봐"
"여러모로 충격이 컸던 것 같아요.
개자식들 어떤 자식들이 사람을 이렇게 함부로 감금을 하는지....
만약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이것들을 그냥...."
"쓸데없는 소리말고 은영씨한테나 가봐.
과연 무사히 이곳을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내 예감에 여긴 보통 곳이 아냐"
배영환이 자신의 우측에 있는 강은영의 방을 향해 다가갔다.
그들의 사이에도 투명한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녀는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은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선 더이상 예전의 밝고 활기에 넘치던 모습을 찾아볼 순 없었다.
그는 주위의 눈치를 살피곤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
"강은영? 괜찮아?"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무릅 사이에 묻은채 아무 말이 없었다.
"강은영, 이런 때일수록 기운을 내야지! 은영씨, 내 말 듣는거야?"
그제서야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배영환을 돌아 보았다.
파리한 그녀의 얼굴이 그의 마음을 뭉클하고 저리게 만들었다.
"선배,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거죠? 이게 뭐예요?
마치 무슨 동물 실험실에 갇힌 것 처럼..... 우린 결국 모두 죽을 거예요. 마을 주민들도 그랬고,
구반장님도 그랬잖아요"
"바보같이 우리가 죽긴 왜 죽어?
아직 시집, 장가도 못 갔는데...."
"이 판국에 지금 그런게 다 무슨 소용이예요?
그렇게 장가가고 싶은 사람이 뭐 하느라 아직 노총각이예요?"
"장가는 뭐 아무나 가나?
나같이 고리타분하고 구시대 사람을 누구 좋다고 하겠어?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데....."
"선배가 뭐가..... 어떻다고 그래요? 그만하면.... 인정 많고, 사람 착하고.....
뭐 결혼이 별건가요? 서로 마음 맞으면 대충 살면 되지"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 은영씨는 왜 아직 결혼 않했어? 이제 결혼할 나이 됐잖아! 주위에 남자도 많던데....."
"저요? 후후.... 남자가 많으면 뭐해요?
다들 친구고 동료고 그런 사람들이지 정작 애인은 없어요.
오히려 저 같이 겉보기에 번지르한 애들이 사실은 실속이 없다구요"
강은영은 짐짓 풀이 죽은 목소리로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그러한 모습은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도도해 보이던 평소 그녀에게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또한 그는 예전에 그녀에게서 전혀 느끼지 못했던 쓸쓸함이나 외로움 같은 자신에게나 어울릴 것 같은 그런 감정들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그녀의 모습은 뜻밖에 그에게 상당한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그는 이번이 아니면 앞으로 영원히 자신의 본래 마음을 그녀에게 털어 놓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으..... 은영씨, 있잖아.... 나 어때?"
배영환의 더듬거리는 말투에 강은영이 의아한 얼굴로 돌아 보았다.
"뭐.... 가요?"
"나.... 어떠냐구? 그러니깐..... 은영씨가 보기에 내가 어떠냐구.
객관적으로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구
바로 강은영씨가 보기에 나라는 남자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거야"
강은영은 갑작스런 배영환의 얘기에 그 의미를 알아내느라 애쓰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가 그의 말의 진정한 의미를 눈치채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굴에 나타난 그녀의 당혹스런 표정만으로도 그는 그것을 충분히 예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녀답지 않게 몹시 덤벙대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이 배영환에겐 십년도 더 되는듯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선배 지금 저한테..... 프로포..... 즈 하는 거죠?"
배영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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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ㅎㅎ회사와서 올립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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