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또다른 악몽(1)
스텝들의 주위로 안개가 다가오기 시작했고 해일의 다들 이 곳을 떠나야 한다는 외침과 함께 스텝들은 저마다고개쪽을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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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모든 스텝들이 떠나고 난 텅빈 마당 폭우속에 혼자 넋을 잃고 앉아있는 김혜진을 비추고 있었다.
그녀의 주위로 점차 푸른 안개가 그 농도를 짙게 하며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녀는 광쪽으로 시선을 못 박은채 움직일줄 몰랐다. 카메라 속으로 해일이 다시 나타났고
혜진을 데려가려 애쓰는 그의 표정엔 공포와 조급함이 한데 어울려 모니터를 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안타까움을 더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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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광에서부터 푸른 섬광들이 어슬렁거리며 기어나오기 시작하고
진흙탕 속에서 혜진을 질질 끌다시피하며 테려가던 해일이 그녀의 손을 놓고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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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를 바라보는 해일의 눈시울이 다시 붉게 젖어 들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로 이번 촬영에 참가한 여학생입니다. 이제 갓 스물을 넘겼을 뿐인데....."
화면에는 뒷모습만 보아도 확연히
그 두려움을 짐작할 수 있을만큼 김혜진의 몸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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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주위를 느릿하게 잔인한 짐승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 짐승들의 틈 사이로 죽창을 들고 있는 살인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일이 울분을 삼키며 낮게 응얼거렸다.
"놈들이 짐승들을 통제하는 것 같아요"
살인마들은 김혜진의 앞에 다가와 그녀를 찬찬히 살펴본 다음
주위를 한 번 크게 둘러보곤 자신들의 손에 들린 죽창을 높이 치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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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이 더욱 으르렁거렸고 그들은 지체없이 죽창을 김혜진의 가슴팍에 내리 꽂았다.
처참한 비명소리가 날카롭게 어둠을 갈랐고 놈들의 죽창은 계속해서 무차별적으로 그녀를 향해 내리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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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그들이 다시 뒤로 물러나며 이상한 휘파람 소리 같은 것을 내자 짐승들이 기다렸다는듯 그녀에게 달겨 들었다.
해일은 그곳에서 발작적으로 테잎을 정지시켰다.
그의 볼은 어느새 뜨거운 눈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해일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여기 까집니다. 그 날 그 집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화면이 정지되었음에도 혜경과 박호철은 한참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박호철이 중간 중간에 큰 한숨을 몇 번 내쉰게 고작이었다.
시간은 벌써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혜경이 다시 테잎을 앞으로 되감으며 말했다.
"짐승들이 안개와 함께 나타나던 장면을 한번 더 봤으면 좋겠어요"
해일이 다시 테잎을 재생시켰다.
푸른빛이 도는 안개가 마당에 주저앉은 스텝들을 둘러싸며 다가오는 장면이었다. 혜경이 소리쳤다.
"이걸봐요,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녀의 말에 해일과 박호철이 눈을 크게 뜨고 화면을 들여다 봤다.
"여길 자세히 보면 전체적인 배경이 뭔가 이중으로 층이 져 있는 것 같지 않냐구요?"
박호철이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층이 져요? 글쎄, 저는 잘 모르겠는데....."
그러자 해일의 눈빛이 반짝하고 빛나는가 싶더니 그다 다시 테잎을 되감아서 그 부분에서 재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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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흥분하여 소리쳤다.
"맞아요, 층이 져 있어요. 정지화면에선 명확히 보이질 않았는데
테잎을 재생시키니까 훨씬 명확하게 보이는군요. 마치 두개의 서로 다른 배경이 겹쳐지는 것 같아요. 세상에, 이럴 수가....."
박호철이 여전히 알 수 없다는듯 시큰둥하게 말했다.
"저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혜경이 화면을 짚어가며 그에게 설명조로 말했다.
"박순경, 이 화면을 자세히 보라구. 안개 뒤에 뭔가 한겹 씌워져 있는 것처럼 뿌연 뭔가가 보이지?
그렇지, 여기 이 흉가를 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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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흉가와 거의 겹쳐져 있지만
실은 조금 다른 또다른 흉가가 실제의 흉가 위에 교묘하게 겹쳐져 있는 듯한 흐릿한 화면을 보란 말야"
그제야 박호철이 이제 알겠다는듯 소리쳤다.
"어? 정말 그러네? 보여요, 보여!"
"집뿐만이 아니야. 전체 배경이 모두 그렇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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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 옆에 숲이며 나무들도 자세히 보면 하나같이 이중으로 겹쳐진 것처럼 현실의 배경 너머로 또 다른 배경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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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것들이 실제의 배경과 거의 유사하지만 조금씩 다르다구!"
혜경은 마치 강의를 하듯 흥분된 목소리로 화면의 구석 구석을 짚어가며 박호철에게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먼저 이 흉가도 그래.
두개의 겹쳐진 배경이 거의 일치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점이 있어.
실제 흉가가몹시 낡고 황폐한 반면 뒤쪽에 숨겨진 흉가는 훨씬 정돈되고 완전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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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주위의 숲과 나무들도 어떤 것은 실제 나무보다 작은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실제 배경에는 존재하지 않는데 버젓이 존재하는 나무도 있단 말야!"
박호철의 동공이 잔뜩 커졌다.
"이게 대체 뭘 의미하는 거죠?"
이번엔 해일이 나섰다.
"확실치는 않지만
제가 보기에 이 두 개의 배경은 엄밀히 말해서 같은 배경입니다"
혜경이 의미심장한 눈길로 해일을 바라보며 그의 다음 얘기를 기다렸다.
해일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같은 배경이 이렇게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실제의 흉가 뒤에 숨겨져 있는 흐린 배경속의 또 다른 흉가는 실제 흉가의 과거라고 생각됩니다"
박호철이 소리쳤다.
"과..... 과거라구요?"
"그래요, 과거!
실제의 흉가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흉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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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동안 허물어지고 마모된 결과가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바로 이 실제의 흉가란 말입니다.
이를테면 우린 지금 저 흉가의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보고 있단 말입니다."
"저...... 전 도무지 무슨 말인지....."
박호철이 인상을 찌푸리며 난색을 표명하는 것과는 달리
혜경은 환한 미소로 해일의 말에 대답했다.
"정PD님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제 생각에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린 지금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는 말도 안되는 화면을 보고 있는 거예요.
흉가만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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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를 중심으로 한 주위의 모든 배경이 현재와 과거가 함께 공존하고 있어요. 갑자기 나타난 그 이상한 안개와 함께....
대체 이게 무얼 의미하는 거죠? 그리고 이것들이 갑자기 나타난 그 짐승들과 살인마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해일과 혜경이 화면속에 빠져 심각한 고민에 휩싸여 있을때 박호철이 중얼거렸다.
"정PD님, 어디 불 난거 아니예요? 어디서 연기가 이렇게 들어오지?"
그의 말에 해일이 화면에서 시선을 떼곤 바닥을 보았다.
무심코 바닥을 내려보던 해일이 불에 데인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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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돌연한 행동에 혜경과 박호철이 눈을 크게 떴다. 해일의 굳어진 얼굴에서 다소 떨리는 음성이 새어나왔다.
"이건 연기가 아니예요. 안개예요, 푸른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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