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막바지임ㅎㅎ
| 10. 불타는 세상(3) 해일은 배영환을 들쳐 업고 나머지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옷으로 만든 횟불을 손에 들었다. 제일 먼저 창고문을 박차고 나간 사람은 역시 혜경이었다. 그녀는 창고 밖에서 기다리다 달겨드는 짐승들에게 횟불을 휘둘러 댔다. 짐승들과 살인마들이 그녀의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뒤늦게 창고를 뛰쳐나온 해일은 그 광경을 보고 마음이 다급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마음과는 달리 그녀에겐 조금도 접근하기 어려웠다. 그의 주위에도 그녀 못지 않게 많은 수의 짐승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잠시 후 해일의 주위로 나머지 일행들이 모여 들었다. 그들은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불덩어리처럼 빙 둘러 서서 횟불을 휘둘렀다. 하지만 혜경은 오히려 그들로부터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김감독이 소리쳤다. "닥치는대로 불을 질러! 집이고, 나무고, 들판이고 모두 눈에 보이는대로 불을 질르라고, 어서!" 모두가 김감독의 말대로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악마의 숨결처럼 불길이 솟아 올랐다. 짐승들은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불길이 솟아 오르자 주위는 어듬이 걷히고 대낮처럼 환해졌다. 불 길에 살인자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들 구국 결사대들의 모습은 실종 당시와 조금도 변하지 않았을법한 모습이었다. 그들에게선 아무런 느낌도 감정도 전해지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엔 어떠한 표정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그때 뒷쪽에서 김감독의 외침이 들려왔다. "정PD! 윤형사, 윤형사가 위험해!" 그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옆을 돌아보니 불길 속에서 한떼의 짐승들과 살인마들이 혜경을 둘러싸고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이미 그녀의 모습은 지치고 힘겨워 보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절망적인 사실은 그녀는 나머지 일행들과 불길에 의해 완전히 고립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흩어졌던 짐승들과 살인마들이 약속이나 한듯 모두 그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해일은 몇번이나 불길속을 뚫어보려 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해일이 악을 쓰며 소리쳤다. "윤형사! 윤혜경... 윤혜경.... 윤혜경!" 그러나 그녀의 모습은 서서히 불길과 무리들 사이로 묻혀 가고 있었다. 참기 어려운 아픔과 절망이 해일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그는 마치 울부짓듯 혜경의 이름을 불러댔다. 마침내 혜경의 모습은 완전히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해일은 넋나간 사람처럼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불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사방으로 번지고 있었고 짐승들이 미쳐 날뛰는 모습이 아득하게 눈에 들어왔다. 불길은 해일의 주위로도 서서히 조여들고 있었다. 남은 일행들도 불길을 피해 발버둥을 쳤지만 해일은 그들의 행동이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목촌리 어디를 가든 뜨거운 불길을 피할 수는 없었다. 완전한 화염에 쌓인 목촌리가 자신의 최후를 맞이 하려는듯 마지막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칠흙같던 밤하늘도 어느새 거대한 불기둥으로 붉게 물들고 있었고 눈에 보이는 세상 모든 것이 불타고 있었다. 해일은 그 아름답기조차 한 불의 향연을 바라보며 자신의 운명도 더이상 행운이 따르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이미 얼굴은 뜨거운 열기로 바싹 달아 올라 있었고 불길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러나 물 먹은 스폰지처럼 한없이 무겁게 가라앉는 육체와는 달리 정신은 오히려 그 어느때보다 또렷해지고 있었다. 그의 볼에 눈물이 흘렀다. 같이 했던 스텝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간 사라졌다. 불길의 정도로 봐서 김감독과 강은영, 배영환조차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그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김한수가 처음 자신을 편집실로 불렀을때의 일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그의 두려운 눈길도 함께 기억해 냈다. 다음으로 그의 의식에 마지막으로 떠오른 얼굴은 바로 윤혜경이었다. 그녀는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녀에게 생각이 미치자 밑도 끝도 없는 공허함이 그의 가슴을 서늘하게 찾아 들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혜경은 생각보다 훨씬 많이 해일의 가슴에 들어와 있었다. 그건 해일 본인조차 전혀 의식하지 못한 감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와 눈빛이 마주칠때면 예외없이 두근거리던 자신의 뜨거운 심장을 기억하고 있었다. 좀 더 좋은 시간에 그녀를 만났다면 그들의 만남은 상당히 다른 형태를 띌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얼마후면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테니까. 이제 불길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열기로 다가서 있었다. 해일은 반듯하게 그 자리에 누웠다. 유난히 별이 많은 밤이었다. 자신의 몸이 불탄다는 예감을 느끼며 막 눈을 감을 때였다. 그것은 '쩍!'하고 천지가 둘로 갈라지는 듯한 소리였다. 온세상을 뒤흔들고도 남음이 있을 그 엄청난 소리에 해일은 번쩍하고 눈을 떴다. 거센 기운이 어딘가로 불길을 빨아 들이고 있었다. 힘을 받은 불길은 더욱 맹렬한 속도로 모든 것을 태우기 시작했다. 빨려 들어가는 것은 불길만이 아니었다. 불길을 피하며 날뛰던 짐승과 살인마들에게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들의 몸은 기이하게 뒤틀리고 길게 늘어져 불길과 함께 어느 한 방향을 향해 빨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진공 청소기 속으로 빨려드는 것 같은 기이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천지가 뒤바뀌는 것 같은 엄청난 굉음에 해일은 자신의 귀를 틀어막으며 그 자리에 뒹굴렀다. 굉음만으로도 온 머리가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엄청난 압력이 자신의 내부에서 분출되고 있었다. 그리고 압력은 어느 한 방향으로 불균형하게 솟구쳐 오르더니 마침내 그의 온몸을 뒤틀어 놓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 잠시후 그는 자신의 세포 하나 하나가 짐승들의 그것처럼 느슨하게 늘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세포들 각자는 어딘가로 끌려가려는 강한 힘을 받기 시작했으며 그의 의식조차도 조그만 파편으로 조각 나 한 방향으로 빠르게 끌려 가기 시작했다. 빠르게 돌아가는 영화의 필림처럼 의식의 파편들이 그의 의식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완전히 분해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그 엄청난 기운과 기세에 온몸이 부서져 흩어진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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