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한 사람이 지내온 삶을, 자신이 하고싶은 일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전달하기에 A4용지 한 장은 턱 없이 작겠지.
솔직히 얘기하자면 하고싶은게 없다.
딱히 이 회사를 지원하는 특별한 이유도 없다.
하고싶은 일이 없으니 그것을 위해 노력 해 본 적도 당연히 없다.
겨우 그 작은 용지 한 장에 당당히 적을만한 커리어가 하나도 없다는 현실에 나 자신이 한심하여 머리를 책상에다 받았다.
숨을 크게 고르며 평안을 되찾아야지 그러면 어떤 글자라도 쓸 수 있을거야 뭐라도 생각이 나겠지.
나는 쓰레기지만.. 아주 쓰레기는 아니겠지
그래도 서울의 4년제 대학 출신이고 아슬아슬 하지만 어떻게든 졸업은 했으니까..
이것만 잘 쓰면 취업이 될 거야
꿈이란게 있었던 적도 없지만 이루지 못할 꿈만 꾸며 사는 사람들보단 현실적인 내가 조금은 더 우월한 삶을 살겠지,,
이런 저런 자기 위안을 하다 보니
문득 고등학교 때 대입 준비를 위해 쓴 자기소개서가 생각이 났다.
완성본은 잘 동봉해 우편으로 붙였지만 미완성 된 자기 소개서는 남아 있겠지.
그 때는 이 만큼 힘들지 않았었는데.. 내가 어떻게 썻었더라
혹 그것을 보면 나도 잊고있던 내 경력이 내 특기가 내 취미가 기억나지 않을까?..
정말 그 때의 자기소개서를 찾으면 뭐라도 할 수 있을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 구석에서' 김 아무개 ' 내 이름이 적힌 큰 박스를 찾아 꺼냈다.
내 과거에 썻던 모든 물건은 여기에 모아 두었으니 자소서가 남아 있다면 아마 이 곳에 있겠지
상자 안에는 생각보다 꽤 많은 잡화들이 있었다.
좋아하던 교생 선생님이 임기를 마치고 가시던 날 우리 반 전체에 나눠준 네잎클로버 말린것 ..
중 고등학교때 받은 수학 경시대회 상장 들과 어렸을적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동급생에게 주려 했지만 쑥스러움이 많아 미처 전하지 못했던 러브레터
그 간질거리는 추억들을 한장 한장 넘기며 추억에 젖었다 철없이 좋았고 겁없어 행복했던 내 어린시절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수확도 꽤 있었고.. 앞으로 가끔 힘들고 지칠때 상자를 열어 봐야겠다 생각하며 여러번 짐을 옮기고 난 후에야
빛 바랜 얇은 화일 속에서 구겨진 종이 뭉치를 찾았다.
아무것도 없는 흰 종이에 마저 잔뜩 구겼다 편 흔적과 연필을 꾹꾹 눌러 썻다 지운 흔적이 남은걸 보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그 때도 지금처럼 이런 글을쓰는게 힘들었나 보다.
문득 그 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꽉 안아 주고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등 떠밀리듯 어른이 된 나도 이런 것을 쓰는것이 익숙치가 않은데 아직 어리고 미숙한 나는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방금 전 사진을 넘기던 기분 과는 다른 느낌으로 종이를 화일에서 빼 한 장을 넘겼다.
안녕하세요 저는 18살 갑을병정 고등학교에 다니는 김 아무개입니다.
저는 아주 평범하고 화목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무뚝뚝하지만 정이 많고 강직하신 아버지
정이 많고 상냥한 어머니의 슬하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 어릴때 부터 기계와 수학에 관심이 많았고..
부모님의 무한한 애정 속에서 자랐지만 제가 국민학교 6 학년 때 두 분의 사정으로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하지만 외 할머니 께서
여자 혼자의 몸으로 제 살기도 힘든데 어린 새끼까지 먹여 살리는게 얼마나 힘든건지 알기나 하느냐
너는 아직 젊으니 기회가 있다 요즘 세상에 식솔만 붙어있지 않으면 이혼이 무슨 대수냐며 몇 날 몇 일을 어머니를 설득 하셨습니다.
제 앞에서 저를 짐짝 대하듯 얘기 하시는 외할머니의 말이 더 이상 비수가 되지 않았을때 쯤 아버지가 찾아왔습니다.
아마 열 다섯 여름으로 기억합니다.
어른들의 결정에 따라 저는 아버지를 따라 가게 되었고 이혼하기 전 어머니를 포함해서 온 가족이 모여살던 집에서
친할머니와 아버지 저 이렇게 셋이서 생활을 했습니다.
어머니에게서 떨어진 이후로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 받긴했지만.. 몇 개월 못 가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습니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집에 들어오시지 않는 날이 많아서 거의 할머니와 둘이 살았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면 할머니는 늘 주방에서 제 간식을 만들어 주고 계셨습니다.
저희 할머니는 음식 솜씨가 정말 좋았기 때문에 학원 수업이 없는 날엔 학교를 마치면 오락실도 가지 않고 집으로 달려오는게 열 다섯 부터 계속 된 제 일상입니다.
특별 할 일 없는 시간이 지나 저는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중학교 때의 친구들이랑 같은 학교가 되지 못한 저는 학교라는 작은 사회의 부 적응자 였습니다.
하필 그 때 아버지의 사업이 힘들어져 하나 다니던 학원도 못 다니게 돼 친구를 사귀기 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일 주일 정도를 혼자 다니다 어느 날 소심하고 숫기없어 밥도 늘 혼자먹던 제게 이 아무개가 다가와 밥을 같이 먹자고 했습니다.
생각보다 꽤 말이 잘 통했고 곧 이 아무개는 제 절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 아무개는 소히 얘기하는 학교 짱이었습니다.
이 아무개와 다닐때는 모든 친구들이 제 시선을 피하고 우리가 다니는 길에서 아무 말 없이 비켜주니 저는 우쭐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월한 기분 , 더 친해지고싶다 사자의 뒤를 쫓아다니며 썩은 고기나 주워먹는 하이에나라고 해도 아무도 말 걸어주지 않는 언제 잡아 먹힐지 모르는 초식동물 보단
사자의 뒤나 쫓는 하이에나가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아무개와 친구들은 후문 담벼락에서 담배를 피웠고 담배를 피지 않는 저는 선생님들이 오시나 오시지 않나 망을 보아야 했습니다.
저도 그들과 같이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친구에게 담배를 빌려 처음으로 피웠습니다.
눈이 따갑고 코가 매워서 켁켁 거리니 친구들과 이 아무개가 재밌다는듯 웃으며 제 등을 때렸고 저는 솔직히.. 이 아무개 연합에 더 가까워진 기분에 우쭐했습니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고 이 아무개가 " 아지트에 같이 갈래? " 라고 처음으로 권유를 했지만..
제가 학교 마치기 만을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 생각이 들어 거절했습니다.
집으로 바로 뛰어 가면서도 속으로는
" 아이씨.. 그냥 이 아무개 따라 갈 걸 그랬나.. "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새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와 터덜 터덜 걸어 집에 도착한 뒤 힘 없이 현관 문을 열었습니다
집에 들어가니 정말 생각지도 못 했는데 거실에 아버지가 누워 계셨습니다.
유치원 때 그렇게 기다리던 산타 할아버지가 눈 앞에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제 방에 가방을 던져두고 아버지를 부르며 거실로 뛰어갔지만 아버지는 피곤하셨는지 곤히 잠 들어 계셨고
아버지를 깨워야되나 그냥 주무시게 둬야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할머니가 저를 부르셨습니다.
" 김 아무개! 너 할미좀 보자 당장 내 방으로 따라 와. "
할머니의 그런 표정과 목소리는 처음 들어 본 저는 너무 놀라서 잔뜩 긴장한 채로 할머니 방으로 불려 갔습니다.
몇 걸음 채 안돼는 할머니의 방으로 걸어 갈 때 ' 혹시 담배 핀 것이 들킨걸까?.. ' 라는 생각을 했지만.. 역시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눈물이 그렁 그렁하신 눈으로 제 가슴팍을 때리시며
"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어린 것이 벌써부터 담배를 배워왔어! "
" 학교에 공부 하라고 보냈더니 담배를 가르쳐? 네 선생좀 보자! 네 아비가 이런거 알 면 억장이 무너질거여!! "
라고 오열하듯 화를 내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제가 잘못 한 일이지만 그 때는 왜인지 모르게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 할머니가 무슨 상관이야! 내 인생에 간섭하지 마! 할머니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상관 하지마! "
소리를 지르고 제 방에 들려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습니다.
오락실이나 다니던 학원 근처를 어슬렁 거리다 해가 다 지고 나서야 집에 들어가 아버지가 지금은 일어나셨겠지 하고
거실로 가 보니 아버지도 아버지의 짐도 없었습니다.
약간 실망해 제 방으로 돌아가려 거실을 나오니 현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혹 아버지일까 싶어 현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할머니가 서 계셨습니다.
다홍빛의 두꺼운 톱바를 입고 한 손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고 계신 것을 보니 제가 나간 뒤 지금까지 절 찾아 다니신것 같았습니다.
이 추운 날 나뭇가지 같은 바싹 마른 몸으로 뒷짐을 지고 비틀 비틀 거리시며 온 동네를 찾아 다니셨을 할머니 모습이 그려져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제 자신한테도 화가났고 버릇없이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고 나간 못난 손자가 뭐가 좋다고 그렇게 찾아 다니셨는지 할머니가 미웠습니다.
그 날 이후로 할머니와는 급 속도로 서먹해졌고 서로 말 한마디 섞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빠른 속도로 사춘기의 절정에 접어 들었습니다.
이 아무개 친구들과 어울려 학교에선 담배를 피고 학교가 끝나면 술을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가고.
처음 몇 일는 거실에 앉아 계시거나 현관 문을 여는 다홍색 톱바의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일주일이 넘어 갈때 쯤 부터는 제가 집에 들어와도 할머니는 방에서 나오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또 수 일이 지나고
아버지가 집에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니 병원에 입원해야 하신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거실의 시계 초침 소리와 점점 더 잦고 거칠어지는 할머니의 기침소리 만이 전부인 집이 었지만
할머니와 함께 산다는 자체 만으로 덜 외로웠고 나쁜 짓을 하지만 늦게라도 집에 들어오는 이유는 제가 현관문을 열어야지만
비로소 닫히는 할머니 방의 문 서먹한 사이지만 그래도 절 기다려주는 한 사람 할머니 마저 없으면
저는 완전 외톨이라는 생각에 아버지에게 울며 불며 매달렸습니다.
" 이제 할머니 속 안 썩일게요, 제가 잘못했어요 아빠 정말 죄송해요
이제 나쁜 친구들과도 안 어울리고 집에도 일찍 들어올게요 그러니까 제발 할머니 대려가지 마세요. "
뇌를 거치지 않은 말들이 입 밖으로 마주 터져나왔다
눈물 콧물 잔뜩 흘리며 얘기 해 말 보다는 옹알이에 가까운 말을 하며 아버지께 사정했지만 아버지는 할머니를 대려가셨습니다.
저는 할머니 문병을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께서
" 아무개야 할머니는 이미 너무 연로하셔서.. 야무개가 가면 더 힘들어 하실거야
아무개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할머니처럼 연로하신 어르신들은 이제 모든것을 정리하실 마음의 준비가 필요 해
그치만 아무개가 찾아가면 할머니는 쉽게 미음의 정리를 못 하시겠지? " 라고 하셔서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
오랫만입니다 공이갤.
총 2 부 작 입니다.
완결을 염두해 두고 쓰는 글입니다
2부는 내일 쓰겠습니다.
부디 편안한 밤 되소서 : )
진짜 오랜만이다 전에 쓴글 진짜 재밌게 읽었ㅇㅓ - dc App
자주와줘 - dc App
아니 2부 글 어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