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서는 여름마다 참외가 열린다. 장마가 길어진 여름은 참외가 물을 머금어 영 밍밍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여름에는 꿀처럼 달았다. 잘 자란 시골 참외는 시중의 것과는 다르게 어른 주먹만 했다.
어릴 적에는 자주 참외 서리를 다녔다. 기실 서리라기보다는 그냥 어른들이 눈감아주는 관례에 가까웠다. 개울가에서 흙을 털어 꼭지를 이빨로 떼어 먹는 참외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그러나 우리 무리 중에서도 도를 넘어선 아이가 몇 명 있었다. 군것질용도로 하나씩 따먹는 게 아니라, 바구니에 꽉 채울 정도로 따가는 놈이 꼭 있었다. 밭의 참외를 싸그리 털어가는 일이 잦아지자, 어른들은 더 이상 서리를 용납하지 않았다. 한 두개 따먹으러 온 아이들도 붙잡아다 망신을 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서리 모임은 유야무야 흩어지고 말았다.
나는 그게 너무 아쉬웠다. 먹을 과일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서리를 하지 못한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학교를 마치고 한밤중에 몰래 모여 두근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과일을 털어가는 데에는 묘한 쾌감이 있었다. 가슴이 옴질거리고, 어른들을 속여 넘겼다는 자랑스러움이 들 때가 많았다. 나만 아쉬운 게 아니었다. 내 또래 아이들이라면 다들 아쉬워했다. 그래도 어른들이 결정한 일에는 더 이상 우리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참외 철이 끝나갈 무렵, 반 친구 하나가 솔깃한 소식을 전했다. 개울가 폐가 근처에 애기 머리만한 참외가 넝쿨져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왜 아무도 안 따갔나 의심했겠지만, 어릴 적에는 거기까지 생각이 닿질 못했다. 그저 폐가가 옆에 있으니 흉흉해서 아무도 안 따갔구나 싶었다. 함께 서리 다니던 친구들은 한밤중에 그 폐가에 가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다. 밭주인이 없는 이상 이미 서리라고 볼 수는 없지만, 난 호기롭게 수락했다. 거절했다가는 쫄보라고 손가락질 당할 것만 같아서 그랬다.
약속 시간은 밤 11시 반이었다. 12시까지 폐가를 둘러보고, 참외를 따서 집에 돌아갈 계획이었다. 집을 나서는데 그날따라 밤하늘이 어두웠다. 한창 장마철이라 비구름이 가득해 달빛 한 점 없었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겨우 약속장소로 갔다. 모이기로 한 인원은 다섯이었다. 그런데 약속 장소에는 두 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셋 중 폐가에 들어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싸리문이 바람에 휩쓸려 저 혼자 열렸다 닫혔다 하는데, 감히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밤공기는 어찌나 차던지 머리칼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평소 같으면 어둠에 눈이 익어 어렴풋이 보일 것들이 그 날따라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여러 요인이 겹친 결과 우리는 그냥 참외나 따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저마다 큰 바구니 하나씩을 가져왔기에 눈치 볼 필요 없이 넝쿨째 뽑아갈 수 있었다.
넝쿨이 어디 있는지도 잘 보이지 않아 몇 번 더듬은 끝에, 난 겨우 넝쿨 뿌리를 잡았다. 비를 맞으며 넝쿨을 당기는데 이상하게 잘 뽑히지 않았다. 옆의 친구들은 당기다 지쳐 손으로 흙을 파가며 참외를 따고 있었다.
난 몸을 젖혀가며 다시 힘을 줬다. 두어 번 반복하자 그 많은 참외들이 우수수 딸려 나왔다. 난 미리 준비한 바구니에 뽑힌 참외들을 쑤셔 넣었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대여섯은 돼보였다.
바구니가 꽉 차도록 모은 뒤, 나는 곧장 그곳을 나서려 했다. 그러나 아이 하나가 여기서 하나 까먹고 가는 게 어떻냐고 물었다. 무섭긴 했지만, 솔직히 방금 딴 참외가 얼마나 맛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조심스레 개울가로 내려가 참외 하나를 씻었다. 꼭지를 물어 딴 다음에 안의 씨를 맛보았는데, 세상에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과장 좀 보태 설탕에 절여놓은 것처럼 달콤했다. 과육은 아삭거리고 달콤한데다 크기까지 하니, 이렇게 좋은 참외가 없었다.
난 가족들에게 나눠줄 생각으로 하나를 다 먹자마자 집으로 향했다. 내가 나갔다 온다는 걸 알고 계셨던 어머니는 마루의 전등불을 미리 켜놓으신 상태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마루에 바구니를 놓은 순간, 난 그대로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누런 참외들 사이로 작은 해골 하나가 섞여있었다. 아래 턱은 없었다. 삼각형으로 뻥 뚫린 코 부근에 누런 참외가 비쳐 보였다.
내가 그 때 비명을 질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집안 어른들이 달려와 바구니 속에 든 해골을 보고 비명을 질러댔던 건 확실하게 기억난다. 어머니는 그걸 보자마자 이걸 어디서 가져왔냐고 다그쳤고, 난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폐가 옆 개울가에서 따왔다고, 딸 때는 몰랐는데 대체 왜 이게 있는지 모르겠다고.
어머니는 그것만으로도 짚이는 구석이 있으신 모양이었다. 불안한 표정을 지우지는 못하셨지만, 일단 들어가 몸을 닦으라고 하셨다. 나는 그날 날밤을 지샜다. 속이 울렁거렸지만 토하지는 않았다. 대체 그 얕은 밭에 어떻게 해골이 있었는지, 또 왜 그렇게 작았는지가 의문이었다. 다음날 부모님께 여쭤봐도 시원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친구들한테 절대 말하고 다니지 말고 입단속 잘 하라는 협박성 훈계만 들었다. 그 다음에는 이야기를 꺼내기만 해도 호되게 혼이 났기 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그 이유를 듣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식후 참외가 나왔다. 불현 듯 그 때의 일이 떠오른 나는 약주를 걸치신 아버지께 다시 한 번 물었다. 그 폐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거기서 해골이 나온 것인지, 짚이는 곳이 있으시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의외로 흔쾌히 대답해주셨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미친 여자가 하나씩 있었단다. 본래 그 폐가는 미친 여자가 거주하던 곳이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폐가에는 밤마다 군인들이 들락거렸다고 한다. 홀쭉한 몸으로 꽃을 세던 미친 여자가 어느 순간부터 배가 부른 채 돌아다니더니, 다시 홀쭉한 몸이 되어 마을을 돌아다니기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보고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엮이는 것 자체가 불길한 일이었기에 그저 쉬쉬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자가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배가 부른 채 음식점 앞을 서성거리던 게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그 여자가 낳은 애가 거기 묻혀있는 것 아니겠냐고 하셨다.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하고 잊어버리라고 덧붙이셨다. 그러나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그 일을 잊을 수 없다.
이야 무섭네요 잘봣습니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