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을 순회하며 노인들로부터 옛 이야기를 청취하는 것이 한 때의 일이었다. 그들과의 대화를 녹음하고 같은 구간을 몇 번씩 반복하며 텍스트로 받아 적었던 기억이 바로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마을 어귀에 있는 바위에 얽힌 이야기, 장승에 얽힌 이야기, 오래 전에 일어난 기묘한 이야기. 늘어놓고 보니 많은 것 같지만 결과적으론 대동소이했다. 나는 그걸 ‘이야기소’라고 부른다. 과정이 조금씩 달라도 대개의 결말은 권선징악이었다. 우리나라에 콩쥐팥쥐가 있고 지구 저 반대편에는 신데렐라가 있는 것처럼, 대부분의 이야기는 닮아있었다. 가끔 결말이 다를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극히 예외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몇몇 노인이 늘어놓는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와 닮은 구석도 없었고, 결말도 종잡을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는 대개 그 노인이 살면서 겪은 기묘한 실화 중 하나인 경우가 많았다.
오늘은 그 기묘한 실화 중 두 개를 풀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마석 경로당의 노인에게서 들었던 것이다. 들은 것을 그대로 전하기에는 실감이 나질 않고, 이야기를 재구성했다고 보면 된다.
노인은 할 일이 없을 때마다 계곡에 나가 팔뚝만한 그물을 쳤다. 옆에 앉아서 가만히 그물을 보고 있자면 작은 물고기가 걸리기도 했고, 물살을 타고 이동하던 가재가 잡히기도 했다. 노인은 그것들을 보이는 족족 잡아 바로 옆에 있는 주머니에 넣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물만 쳐놓는다고 물고기가 많이 잡힐 리가 없었다. 한 시간 넘게 있도록 기껏 서너 마리 건지면 잘 잡은 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은 한밤중에 집을 나섰다. 계곡을 향해 느긋하게 걷는데 그날따라 사방이 어두웠다. 비가 오려는 것도 아니고 초승달이 뜬 것도 아니었다. 기이한 일이었지만 그는 별 생각 없이 계곡으로 향했다. 물살은 잔잔했고 마을은 고요했다. 거기까지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하리만치 많은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기 시작했다. 노인은 기뻐하며 물고기를 건져 주머니에 담았다. 그런데 건져낸 물고기의 상태가 하나같이 전부 이상했다. 펄떡거리지도 않았고, 눈을 새파랗게 뜬 채 미동도 없었다. 손가락으로 쿡 찔렀을 때 미약하게 몸을 떠는 걸로 봐서는 죽은 것도 아니었다. 노인은 그제야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계곡 저편으로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돌끼리 부딪쳐 으깨지는 둔탁한 소리였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들려오던 소리가 조금씩 크게 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가 다가오는 소리였다. 소리가 한 번 들릴 때마다 떠내려온 작은 물고기가 뭉텅이져 그물에 걸렸다. 노인은 바로 그 때 물고기가 기절한 채 떠내려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평소 같으면 다른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는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따라 사방이 어둡고 고요했기 때문에 노인은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그물과 주머니를 갈무리하던 그 때, 노인은 난데없이 등골에 소름이 돋아 고개를 들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아름드리나무 그림자 속에서 거짓말같이 시뻘건 눈이 번뜩거리고 있었단다. 눈알 말고는 모든 것이 검었는데, 검은 형체는 인간과 닮아있었다고 한다. 크기는 어린아이 정도로 그리 크지는 않았는데도 보자마자 오금이 저려왔단다.
노인은 주머니와 그물을 그대로 놔두고 단숨에 마을까지 도망쳤다. 다음날 아침 친구 몇 명을 데리고 가보니, 그물과 주머니 둘 중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한다. 계곡의 상류 쪽에는 으깨진 돌이 많았는데, 그 중에는 한 아름 될 법한 바위도 있었단다. 이야기를 마친 노인은 눈이 빨갛고 아이만큼 작은데, 큰 바위를 들 만한 짐승이 대체 뭐가 있겠느냐 되레 물어왔다. 짚이는 데가 없지는 않았다. 곰이 아니었겠느냐 되묻자, 노인은 절대 곰은 아니었다고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그건 곰이었겠거니 싶지만, 노인의 말대로 곰이 아니었다면 그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두 번째 이야기는 남양주의 경로당에서 들은 것이다. 텍스트만으로는 진위가 의심스럽지만, 여러 노인들이 직접 겪었다고 증언한 탓에 전체적으로는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다.
어느 날, 밭일을 하던 노인이 고된 일에 지쳐 나무 그늘에 누워 잠들었다. 노인은 잠에 들자마자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이 묘하다. 노인은 눈을 뜬 순간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을 보았다. 그녀는 불러도 대답이 없었고, 고개를 돌려 얼굴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오로지 뒷모습만을 보이고 있었는데, 그녀는 흐릿한 길을 앞서 걸으며 따라올 것을 청했다. 노인은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여인을 따라갔다.
발치에 자갈이 걸리는 거친 길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족히 한 시간은 걸은 것 같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먼지가 풀썩풀썩 이는 흙길이 나왔다. 노인은 그래도 군말없이 걸었다. 처음 따라오라는 말을 한 이후로 여인은 끝까지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이상했지만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안개 덮인 강 하나가 나왔다. 나무다리처럼 어설픈 돌다리가 있었는데, 여인은 겁도 없이 다리를 타기 시작했다. 노인 역시 그녀의 뒤를 따랐다. 한여름인데도 온몸이 떨리고 오한이 들었다. 분명 앞으로 나아가는데 걷는 느낌이 나지 않았고, 숫제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고 한다.
다리를 절반쯤 건넜을 때, 노인은 잠에서 깼다. 추위는 순식간에 가셨다. 잠에서 깨자마자 금세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리라 여겼는데 삼십분도 지나지 않았다.
그는 저 너머 밭에 있는 노인들에게 가서 조금 전의 꿈을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꿈이라 치부했지만, 몇 명은 그 다리를 건넜으면 분명 좋지 않은 일이 생겼으리라 예상했다고 한다.
그날 저녁, 노인들은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들었다. 그 날 한낮에 아이들이 여우 하나를 돌팔매질해서 죽였다는 것이다. 마을 어귀의 바위 위에서 어느 곳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던지는 돌에도 꿈쩍 않고 앉아 있다가 우연히 커다란 돌 하나를 머리에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한다. 대충 시간을 따져보니 노인이 잠에서 깨어난 시간과 거의 비슷했다.
다른 노인들도 적극적으로 맞장구를 치며 무서운 일이라 손사래 쳤지만, 정작 일을 당한 노인은 죽은 여우가 수컷이었다는 게 제일 무서웠다고 담담히 덧붙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꿈 속의 여인이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그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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