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는 빛 한 점 없었다. 아신당의 마지막 무당 아현은 그 날도 온몸을 뒤틀며 괴로움에 신음했다. 명치가 죄어왔다. 목구멍으로 심장이 밀려나올 것만 같았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혼절할 것도 같았다. 괴로운 숨소리는 거칠어져만 가는데, 그녀를 구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현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집었다. 바닥에 억눌린 숨통이 쌔액쌔액 거리며 가는 숨을 내뿜었다. 더 이상 잘 수가 없었다. 아현은 힘겹게 눈을 뜨고 텁텁한 눈을 끔벅였다. 땀에 젖은 앞머리가 눈을 덮어 방을 제대로 둘러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을 뻗어 머리맡에 놓인 스탠드에 불을 당겼다. 따뜻한 노란 불빛이 스탠드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아현은 그것이 모두 핏빛으로만 보였다.

고개를 돌리니 그제야 익숙한 방의 모습이 보였다. 녹슨 미용도구들이 서랍 속에서 스탠드 빛을 받아 날카롭게 번뜩였다. 때 묻은 곰인형 뒤에는 무당 방울이 있었고, 손톱깎이 아래에는 싯누런 괴황지가 겹겹이 들어앉아 있었다.

아현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러나 한 줌도 안 되는 침을 삼켜봐야 갈증을 풀 수는 없었다. 그녀는 문득 고개를 돌려 문가를 바라보았다. 물 한 잔이라도 마시면 몸이 나아질까 싶어 마악 몸을 일으키려던 찰나였다. 아현은 반쯤 몸을 일으킨 채 엉거주춤 무언가를 주시했다. 누렇게 떠오른 벽지에 시커먼 무언가가 우뚝 솟아 있었다. 하룻밤 만에 곰팡이가 생겼는가? 먹물이 주욱 튀었나?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그녀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벽에 떠오른 그것은 곰팡이도 아니었고, 먹물도 아니었다. 누가 보아도 그림자의 형상이었다.

그러나 방 안에 그림자를 만들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다못해 촛대 하나라도 있었다면 애써 못 본 체 넘어가기라도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벽 앞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아현은 새삼스레 이불을 잡아당겼다. 무겁고 뜨겁기까지 한 이불을 이마까지 뒤집어쓴 채, 그녀는 오들오들 떨었다. 한두 번 본 그림자가 아니었지만, 언제 보더라도 귓불까지 싸하게 소름이 돋아 오르는 광경이었다.

아현은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매일 밤마다 뭔가가 그녀를 찾아왔다.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볼 뿐, 직접 그녀를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무당이면서도 귀신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이렇게 치명적이었다. 서투른 손짓으로 물리쳐보려 해도 그것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상으로 받아들이기엔 그것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아현은 눈을 감았다. 바라보고 있어봐야 부질없는 망상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그것을 외면하기 위해 스탠드를 켜둔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 때, 난데없이 들려온 노인의 추잡한 비명소리가 아현을 흔들어 깨웠다. 반쯤 잠에 들려던 그녀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이불을 걷어차고 단숨에 몸을 일으켰다.

 

“할아버지!”

 

아현은 치맛자락을 붙잡고 문을 향해 내달렸다. 문풍지 두 장과 나무틀로 만들어진 허술한 문은 손만 대면 열릴 정도로 가벼웠다. 그러나 어찌 된 것일인지 미닫이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두 손으로 문을 붙잡고 온몸을 뒤로 젖혀보아도 굳게 닫힌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아현은 울부짖으며 문을 잡아당겼다. 유일한 가족인 조부마저 실종된다면 그녀를 지탱해줄 사람은 정말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 이 99칸짜리 넓은 당집에 그녀 혼자만 남게 되는 것이다.

하늘이 무심하게도, 아현의 기도는 헛된 바람으로 끝났다. 문밖에서 날카롭게 울린 비명소리는 이내 가래 끓는 더러운 소음으로 바뀌었다. 그르르륵 하는 목소리마저 잦아들자, 이번엔 더욱 괴이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두 발을 질질 끄는 듯한 소음이었다. 눈물을 쏟아내던 아현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내뺐다. 문을 걸어 잠근 뒤, 도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발소리는 복도를 타고 아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사악 사악 하고 칼을 가는 듯한 소리였다. 걷는다기보다는 미끄러져 오는 것만 같았다. 심장을 옥죄는 듯한 통증은 이미 사라졌지만, 이번에는 가슴이 너무 뛰었다. 쿵쾅대는 심장을 도저히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아현은 이불 속에서 엄지를 입에 물었다. 하얗게 물든 손가락에서 시뻘건 핏방울이 맺혀 나왔다.

발소리는 그녀의 방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는 한동안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벌떡대던 심장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건만, 아현은 슬그머니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호기심은 항상 공포를 이겼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싶어 배길 수 없을 때면 그녀는 끝내 고개를 들어 바깥을 내다볼 수밖에 없었다.

누런 문풍지에 익숙한 그림자가 비쳐 보였다. 조부의 그림자임이 분명했다. 움찔거리는 듯, 아닌 듯, 미묘하게 일렁이는 그림자로는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 할아버지?”

 

아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답 대신 기이한 행동이 되돌아왔다. 멀거니 서있던 그림자가 서서히 손을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팔을 한껏 뒤로 젖혔다. 차마 그 모습을 지켜볼 수가 없어, 아현은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검은 음영이 기분 나쁜 호를 그리며 문을 내리찍었다. 그러나 아현이 예상한 것 만큼의 소음은 없었다. 단지 한번 노크를 한 정도의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종이에 떨어지는 듯한 우스운 소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맹렬히 팔을 휘두르는 그림자의 형상도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아현은 울먹이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조부의그림자는 처음 손을 휘둘렀던 때와 같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잠잠해졌다. 처음 방 앞에 서 있었던 때와 같이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우드득

 

끔찍한 소리가 울렸다. 바깥으로 손을 뻗으면 시뻘건 핏방울이 묻어나올 것만 같았다. 아현은 숨을 멈추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목을 비트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는 반대로 고개를 돌렸다. 언뜻 비친 그림자만으로도 고개가 완전히 뒤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현은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처음 얼마간은 신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불현듯 눈물이 솟구쳤다. 그녀가 잠긴 신음을 내며 자신의 가슴을 내리칠 때, 그림자는 서서히 복도 저편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무릎 아래부터는 바깥쪽으로 반쯤 꺾여 있었고, 부러진 목은 뒤로 축 늘어져 있었다. 몸의 균형을 잡아주던 두 팔이 의미 없이 좌우로 흔들거렸다. 당장에라도 넘어질듯 위태롭게 일렁이던 그림자는 용케 복도 밖으로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