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나온 태몽

 

내 태몽에는 뱀이 있었다. 사실 태몽이라 보기에도 애매했는데, 동물들이 나왔다는 이유로 할머니께서 태몽이라 단정 지으셨다고 한다.

태몽의 내용은 이렇다. 어머니께서 길을 걸으시는데, 미친개 한 마리가 쫓아왔다고 한다. 눈이 빨갛고 크기가 어마무시하게 커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앞에 방 하나가 보여 그곳으로 들어가셨단다. 그런데 그곳에는 구렁이 하나가 있었다. 구렁이는 어머니를 본체만체 하며 똬리를 틀고 있었는데, 어머니를 따라 들어온 개를 보자마자 용수철처럼 튕겨나가며 개를 쫓아버렸다고 한다. 방 안에 남아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머니를 뒤에 남겨둔 채 개를 따라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태몽이라기보다는 개꿈에 가깝다. 그 당시에도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성장하면서 겪는 일을 봐오신 어머니는 그게 개꿈이 아니라 태몽이 확실하다는 신념을 얻게 되셨다. 그 이유를 물으니 어머니는 몇 가지 근거를 말씀하셨다.

첫째로 내가 이상하리만치 뱀을 자주 봤다는 것이다. 난 3살 때 어머니의 등에 업힌 채, 담에 붙어있던 구렁이를 처음 보았다. 그 이후로도 나이를 먹을 때마다 일 년에 한 번씩은 무조건 뱀을 보았다. 수십 명의 등산객이 지나가면서도 보지 못했던 뱀을 내가 찾아냈고, 마당에서 물놀이를 하다가도 옆집의 뱀을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킨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애가 지렁이를 보고 뱀이라 했겠거니 싶었던 가족들도 내가 뱀이라 외치면 혼비백산해서 뛰어나올 지경이었다고 한다.

둘째로 가족 중 유일하게 나만 뱀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 다른 아이들이 뱀이 기어 다니는 것을 보고 기겁하는 와중에 나는 ‘입이 강아지 같다’면서 좋아했다고 한다. 나이를 먹은 지금 보아도 딱히 혐오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반면 개나 고양이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개한테 물린 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개만 보면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온몸이 굳을 정도다.

세 번째로 양손 새끼손가락에 마디가 하나씩 더 있다는 것인데, 엄밀히 말하면 주름이 하나 더 있을 뿐이지만 이것 역시 왠지 뱀과 관련된 것 아니냐고 되레 내게 물으신다.

마지막 이유는 내가 백사를 잡아온 적 있다는 것이다. 곤충을 잡으러 나갔다가 어른 손바닥만한 백사를 잡아오자, 온 집안이 뒤집어졌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도 이게 상서로운 것인지 불길한 것인지 모르셨단다. 잡은 뱀은 주변 사람들과의 상의 끝에 있던 곳에 되돌려놓았는데, 나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서럽게 울었었다고 한다.

다른 집에서는 어머니가 자식을 나무랄 때 ‘내가 저걸 낳고 미역국을 먹었느냐’며 한탄한다고 한다. 그러나 난 그런 말보다는 ‘내가 뱀 새끼를 깠다’는 한탄을 들으며 자랐다.

외갓집에 있던 커다란 구렁이와 내 이름을 지어주신 스님이 뱀이 나무를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이름에 오동나무 오(梧)를 넣은 것도 생각하면, 정말 나한테 뱀 귀신이라도 붙은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자동 등

 

사람이 지나가면 자동으로 켜지는 등. 옛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쓰려다가 그 이름도 몰라서 검색해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예전의 글에서 필자의 집이 상가주택이라는 것을 밝힌 적 있었을 것이다. 1층 식당 입구에는 자동 등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외조부의 댁은 가게 열 걸음 바로 옆에 있었다. 그 때 기이한 일이 벌어진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외조부 댁에서는 드물게 고조할아버지의 제사까지 치른다. 다른 집안에서는 대개 2대까지 제사를 지내지만, 외갓집이 종가인 탓에 3대까지 제사를 치르게 된 것이다. 그나마도 5대까지 치르다가 어느 순간부터 3대까지로 줄어든 것이라 한다.

그러니까 10년 전이었나, 그 때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제사를 치르고 있었다. 대문과 집문을 열어놓고 10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옆 가게의 자동 등이 난데없이 켜지는 것이 아닌가. 창가로 확인해보았지만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둡게 불이 꺼진 가게를 자동 등이 으스스하게 비추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벌레가 꼬여서 그랬으리라 생각했지만, 날이 날인만큼 불안해하는 가족이 몇몇 있었다.

5분이 지나도 자동 등은 꺼지지 않았다. 그 때 가게에 달려있는 자동 등은 사람이 서있기만 하면 계속 켜지는 모델이었다. 삼촌은 아예 창가에 붙어 언제 등이 꺼지나 보고만 있었고, 어머니와 이모들은 할아버지가 저기 서계신 거 아니냐며 불안에 떨었다.

할머니는 그 때까지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그렇다고 신경을 안 쓰시는 것도 아니었다. 한복 고름을 쥐어 비틀며 멀거니 자동 등을 바라보고 계셨다. 

아무도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갑자기 일어나셨다. 그대로 열린 문을 향해 가시더니, 문에 달린 부착식 모기장을 여셨다. 그게 끝이었다.

묘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 등은 꺼졌다. 우리 가족은 그제야 올해 처음으로 모기장을 달아놓았다는 걸 깨달았다. 제사 중에 모기나 나방 같은 벌레가 자주 들어와 끝봄무렵 달아놓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제사를 마친 뒤 고조할아버지에 대해 ‘뭐 하나 일이 생기면 남이 해줄 때까지 진득하게 앉아계시던 분’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 이후로 외갓집에서는 제삿날 모기장을 치지 않는다. 10년 넘도록 제삿날마다 입구에 모기향을 피워놓고, 그분이 오시기만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