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상가주택에서 살기 전, 우리 가족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외할머니께서 사주신 소중한 집이었다. 별다른 일이 없는 이상 그곳에서 평생을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인생은 녹록치 않았다. 여러 금전적 사정이 겹친 끝에 어머니는 28평짜리 아파트를 전세 내놓으셨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장 살 곳도 없을 텐데, 그런 결단을 내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아기였던 시절 부모님은 외할머니가 내어주신 상가주택 2층에 사셨다. 아파트로 이사 가며 그 집도 전세를 내놓았는데, 거기 살던 가족이 일찍 방을 빼기로 결정한 덕에 우리 가족이 그곳에 들어가 살 수 있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었지만, 거기에는 안타까운 사정이 있었다. 16평 세 칸짜리 작은 집에서 살던 부부는 아들 하나가 있었다. 내 또래였다고 한다. 그 아들이 폐렴으로 죽으며 부부도 갈라서게 된 것이었다.
그들이 짐을 실어 떠났을 때, 나는 부모님과 함께 텅 비어버린 흉물스러운 집을 찾아갔었다. 벽지가 벗겨져 녹이 진 것처럼 사방에 얼룩이 가득했고, 작은 침대 하나가 작은 방에 여전히 남아있었다. 시트도 벗기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파란 바탕에 하얀 스누피가 그려진 침대였다. 한 눈에 보아도 죽은 아이가 쓰던 침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얀 스누피 위로 분홍색 약 자국이 남아있었다. 당시에는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몰라 부모님께 이건 내가 쓰면 좋겠다고 했다가 괜히 꿀밤을 얻어맞았었다. 어째서 부부가 그 침대를 놔두고 갔는지는 모르지만, 부모님은 그걸 집밖으로 빼내어 불태우셨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창고로 써왔던 다락방을 개조해 방으로 만들자고 제안하셨다. 그런데, 그 다락방에도 죽은 아이가 쓰던 장난감이 박스에 담겨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불길해하셨지만 할머니께서는 그런 걸 일일이 따지면 쓸 방 하나 없다며 끝내 계단을 만들어주셨다. 나는 그곳을 내방으로 삼았다. 부모님도 더욱 불길한 방을 나한테 줄 수는 없으니 차라리 그 방을 옷방으로 만들자고 하셨다. 원체 작은 방이라 창고 용도로만 써도 충분했다.
그렇게 몇 년을 살았다. 죽은 아이의 원혼 같은 건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19살, 그러니까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그 일이 벌어졌다. 당시 나는 주말에 입고 나갈 옷을 고르기 위해 옷방에서 옷을 고르고 있었다. 11시경이라 사방이 어두웠는데, 갑자기 전등불이 꺼졌다. 깜박거리는 전조도 없이 갑자기 꺼진 것이 이상했지만, 나는 침착하게 스위치를 껐다 켰다. 불은 금세 다시 들어왔다.
그런데, 옷걸이 옆에 이상한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 세로로 길쭉한 타원형의 그림자였는데, 바닥에 붙어있지 않고 벽에 붕 떠있었다. 처음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가끔 눈이 갈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 다리미판 그림자인 줄 알았는데 근처에 그런 것은 없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아무런 물건도 없는데 그런 그림자가 있다는 것 자체가 기이한 일이었다.
옷을 고르고 불을 끈 뒤 방을 나서는데,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그 그림자가 뒤늦게 마음에 걸렸다. 나는 다시 확인해볼 요량으로 불을 켰다. 그림자가 비쳤던 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일이 벌어진 이후로 한동안 부모님과 함께 잠을 잤다. 몇 년 전의 일이 자꾸 되살아나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감수성도 예민할 시기라 귀신을 쉽게 믿었던 때이기도 했다. 나는 두 달이 지나서야 다락방에서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비슷한 일이 한여름에 다시 벌어지고 말았다. 한밤중이었다. 모기가 귓가에 윙윙거려 짜증을 부리며 일어났는데, 불을 키려 일어나기는 귀찮았다. 나는 핸드폰 라이트를 켜고 모기를 찾았다. 평소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구석구석을 살피던 중, 나는 계단 난간이 있는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사다리처럼 늘어선 난간 뒤에 검은 그림자가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의 그림자가 자로 그은 듯 직선이었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에 둥근 그림자가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개나. 나는 보고 믿을 수가 없어 곧바로 이불을 뒤집어썼다. 얼마나 무서웠던지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불 바로 옆에 귀신이 보일까 무서워 온몸을 이불로 꽁꽁 감싼 뒤, 나는 울먹이며 아래층에 있는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두 분 다 받지 않아 나중에는 집 전화까지 걸었다.
새벽에 다락방에 올라오신 부모님은 이상한 그림자가 있었다는 말에 적잖이 당황하셨고, 불을 끄고 조금 전처럼 핸드폰 불빛을 켜보라 하셨다. 나는 그대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둥근 그림자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마저도 난간 끝에 붙은 동그란 장식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부모님은 보지 못했지만, 나는 분명히 보았다. 본 것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나는 울다시피 하며 부모님께 억울함을 토로했고, 부모님은 사실 여부를 떠나 무서워서 잠을 자지 못한다면 내려와서 자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때부터 수능을 볼 때까지 나는 아랫방에서만 잤다.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까지, 난 그 때의 그림자를 본 적이 없다. 무서움을 얼마간 떨쳐내고 다시 다락방으로 돌아와 컴퓨터로 글을 쓰지만, 절대 불을 끄지는 않는다.
항상잘보그잇음 - dc App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내일 새벽중으로 다시 한 편 업로드 됩니다.
재밌어요 ! 담담하게 풀어내는 어조가 더욱 이야기의 분위기를 오싹하게 만들어주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