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경기도의 경로당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내게 쓴 메일함을 뒤져봐도 작업 내용을 찾을 수가 없어 정확히 어디의 경로당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만큼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하필 그 날 늦봄비가 온 탓에 노인들 모두 모를 심으러 나가 있었고, 경로당에는 다리가 불편한 노인 한 명밖에 없었다. 노인은 겉보기에는 깐깐해보였지만 이런 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주었고, 덕분에 꽤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 필자는 노인에게 들었던 이야기 중에서 조금 섬뜩한 것 하나를 풀어보고자 한다.

그 마을은 정월 초하룻날마다 작은 잔치를 벌였다. 아이들은 집안일을 도울 필요 없이 친구들과 놀았고, 어른들은 술로 목을 적시며 추위를 달랬다고 한다. 그렇게 잔치가 무르익었을 쯤이면 마을 무당이 내려와 놀이를 했는데, 그게 바로 복숭아 가지 놀이였다. 당집 뒤에 있는 복숭아 가지 하나를 잘라 정화수에 하루 정도 담가놓은 뒤, 여자아이에게 쥐게 하는 놀이였다. 그걸 쥔 아이를 한가운데에 세워놓고 하얀 천으로 눈을 가린 뒤, 굿하듯 꽹과리를 치며 빙빙 돌리면 어느 순간 아이가 달리기 시작한다고 한다. 아이는 귀신이 붙은 사람에게 다가가 들고 있는 가지로 몸을 치는데, 그러면 가벼운 잡귀가 떨어져나간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리 큰 의미가 있는 놀이는 아니었다. 굿을 하기에는 돈이 없으니 적은 돈으로 가벼운 여흥을 즐기기 위한 놀이였다. 그러나 그 해의 놀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 해의 놀이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평소에는 자기가 먼저 마을에 내려와 놀이 준비를 하던 무당이 놀이는 하지 않겠다고 전한 것이다. 무당은 마을 어른들이 돈을 조금 더 얹어주겠다며 설득하고 나서야 겨우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은 돈을 더 받아내려는 수작이라 여겼었다고 한다.

며칠 뒤, 평소처럼 잔치가 벌어졌다. 별일 없이 낮이 지나 밤이 되었을 때, 마을 아이들은 공터로 모였다. 무당은 미적거리며 복숭아가지와 꽹과리를 들고 왔다. 마을 사람들이 한 데 모여 구경하는 가운데, 떡집 딸이 나서서 가지를 들었다고 한다.

평소처럼 안대를 씌우고 꽹과리를 울리는 가운데, 떡집 딸이 잠깐 앞으로 걷는가 싶더니 난데없이 뒤로 돌았다. 가만히 서있어야 할 무당은 이상하게도 빙빙 돌고 있었는데, 떡집 딸은 무당이 밟았던 땅을 그대로 밟으며 무당을 따라갔다고 한다. 무당의 걸음이 빨라질수록 아이의 발걸음도 빨라졌고, 술래잡기 같은 기묘한 광경이 한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웃음을 멈추고 두 여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분명 안대로 눈을 가렸으니 일부러 무당을 따라가는 것도 아니었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섭고 기이한 일이었다. 한동안 빙빙 돌던 무당이 자포자기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섰는데, 아이가 순식간에 무당에게 달려가 그녀를 가지로 두드렸다.

이야기해준 노인 역시 그 광경을 고스란히 보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가만히 떠올려보면, 독기를 품은 무당의 매서운 눈매가 가슴을 쿡 찌른다고 말했다. 당시 근처에 서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사람까지도 웃음을 그치고 슬그머니 물러났다. 대놓고 말을 꺼내진 못했지만 떡집 딸이 무당을 두드린 게 무슨 뜻인지 다들 잘 알고 있었다.

그 이후로 당집의 손님이 끊겼다고 한다. 마을 사람에게 제대로 모습을 보이지 않던 무당은 어느 순간 잡다한 도구들을 챙겨 마을을 떠났고, 무당이 머물던 초가집은 흉가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마을 아이들이 당집 뒤에 있는 복숭아나무를 찾아갔다. 주인 없는 열매라도 따먹을 생각으로 간 것이었다. 그러나 나무는 이미 시들어 아무것도 열려있지 않았단다.

실망하며 흉가를 나서던 아이들은 문득 당집 뒷마당을 돌아보았는데, 그곳에 둥글게 부풀어오른 땅이 있었다. 아이들은 뭔가 돈이라도 숨겨놓았나 싶어 그 땅을 파보았는데, 돈은커녕 종을 알아볼 수 없는 동물 뼈가 수북하게 나오는 바람에 기함을 하며 다들 도망쳐버렸다고 한다.

노인은 이야기를 끝맺으며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무당에게 잡귀가 들면 행동거지가 이상해지고 헛소리를 반복하다가 종국에는 미쳐버리고 만다는데, 그 무당 역시 그렇게 된 것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다른 노인들의 추가 증언을 듣지 못해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노인이 가리킨 손가락 끝에 걸려있었던 시든 복숭아나무를 떠올려보면 정말 있었던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