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옷을 세탁할 때마다 섬유유연제를 들이붓는다. 남에게 악취를 풍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나 자신도 냄새에 예민해서 그렇다. 향수를 쓰지 않는 대신 옷에 향을 묻히는 기분으로 십년 째 그렇게 살고 있다. 옷장을 열면 익숙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울 정도다. 그런데 그 옷장에 이질적인 향이 섞인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른다. 심증은 가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가 다 그렇듯 물증이 없다.
3년 전에 친구 조모의 장례식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서울로 올라와 살다보면 옛 친구들이 그리워 친구와 관련된 장례식에는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고 조모의 얼굴도 가물가물했지만, 나는 어쨌든 장례식장에 갔다. 얼굴을 보고도 그분을 떠올리지 못할 것 같았는데, 영정사진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모든 게 떠올랐다. 워낙 그 때의 기억이 인상적이라 잊을 수가 없었다.
8년 전이었나, 아마 여름날이었을 것이다. 나는 시골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그분이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인사하려 몸을 일으켰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녀는 자기 몸보다 훨씬 큰 노란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입에는 새빨간 립스틱을 마구 그어놓은 상태였다. 뭘 입에 넣고 씹고 있는지 말라빠진 볼이 연신 흐물거렸다. 그 모습이 괴기스러워 시선을 옮겼는데, 다리가 보였다. 커다란 원피스 아래에 드러난 맨다리가 마치 젓가락 같았다. 바짝 마른 노인이 그러고 다닌다면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당장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를 모셔가게 했다.
노파는 중간에 버스를 타려 했지만, 내가 어떻게든 막았다. 무슨 폭포에 간다고 한 것 같은데 발음이 좋지 않아 무슨 폭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잠시 멈춘 버스 운전사도 그녀의 행색을 흘끔 보고 곧바로 버스를 출발시켰다. 그때 노인이 내게 쏟아낸 욕은 마치 젊은 사람이 내뱉는 것과 비슷했다. 친구의 손에 끌려가면서도 그녀는 표독스러운 눈매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 이후로 노파를 다시 만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때의 기억만큼은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여하튼 장례식장에서 간단히 식사를 한 뒤, 나는 곧장 집으로 되돌아갔다. 시골집에 살았다면 어머니께서 소금을 끼얹어주었겠지만, 혼자 살고 있을 때라 나는 소금을 뿌려야한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나는 양복을 벗어 옷장에 걸었다. 그냥 자기는 찜찜해 한 번 샤워한 다음 곧바로 잠에 들었다.
묘한 일은 바로 다음날 아침에 벌어졌다. 샤워를 하고 옷장을 열었는데, 지금껏 맡아본 적 없는 이상한 냄새가 났다. 향이라고 해야 할지, 냄새라고 해야 할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한 것이었다. 꼭 펄펄 끓인 진한 설탕물에 장미 즙을 풀어놓은 것 같은 향이었다. 아무리 싸구려 향수라도 그런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걸려있는 모든 옷에서 그 냄새가 똑같이 났다. 화가 났지만 난 아무거나 집어입고 일단 밖으로 나왔다.
볼일을 보고 집에 돌아온 뒤, 나는 옷장에 걸린 옷을 전부 세탁기에 밀어 넣었다. 빨 수 없는 옷은 한숨을 푹 쉬며 세탁소에 맡겼다. 장례식에 입고 갔던 양복에서 특히 그 냄새가 심했다.
한 번 세탁기에 돌리니 냄새는 순식간에 빠졌다. 나는 말린 옷을 다시 옷장에 걸어놓았다. 그렇게 며칠 동안은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나 세탁소에서 양복을 받아 걸어놓은 바로 다음날, 옷장에서 또 그 냄새가 났다. 물론 예전처럼 진한 것은 아니었다. 섬유유연제 냄새와 반쯤 섞여 희미하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이러라고 돈을 내서 맡긴 게 아니었다. 난 화가 뻗쳐 세탁소에 항의 전화를 넣었다. 주인은 드라이클리닝을 하면 보통 냄새가 빠지기 마련이라고 변명하며 어쨌든 자기 잘못은 아니지만 다음에 한 벌 무료로 해주겠다고 답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잠시 화를 가라앉혔다. 가만 생각해보니 대체 어디서 그 향이 묻어왔는지 알 길이 없었다. 차 시트에 그런 냄새가 남아있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장례식장에는 퀴퀴한 향냄새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오싹했다. 장례식장에 다녀온 뒤 소금을 뿌리지 않았다는 것도 그 때가 돼서야 떠올랐다. 미신을 신봉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찜찜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작은 접시에 소금을 조금 담아 옷장 속에 넣어두었다.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그렇게 하면 현실적으로도 냄새가 줄어들 것 같았고, 만약 귀신이 붙어온 거라면 귀신도 쫓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날 밤, 나는 이상한 꿈을 꿨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옆을 흘긋 보니 그 노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사방이 어두웠는데 언뜻 보이는 볼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꿈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곧바로 다른 꿈이 이어 붙었다. 활짝 열린 옷장 속에 노파의 영정사진이 꼭 신주단지 모시듯 들어앉아 있었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옷장을 열어 그 안을 확인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희미하게 남아있던 냄새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애써 소금이 냄새를 흡수했다고 생각하며 소금이 담긴 접시를 물에 씻어버렸다. 그러나 며칠 뒤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봐도 소금으로 냄새를 없앴다는 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의 일을 다시 되돌아보게 된 계기가 바로 작년이었다. 학술회에 참석하며 노교수들의 잡일을 맡아 했는데, 나이 지긋한 여교수 한 명이 발표 전에 껌을 하나 씹어야한다고 했다. 근처 슈퍼에서 하나 사드리겠다고 하니, ‘이브’껌을 사달라고 했다. 나는 곧바로 그 껌을 사서 발표회장으로 되돌아갔다. 그녀에게 껌을 건네주고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펼치는데, 내 손에서 섬뜩한 향이 났다. 그때 맡았던 바로 그 향이었다. 들쩍지근한 싸구려 장미향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평소 같으면 녹음하는 동시에 발표 내용을 타이핑했겠지만, 난 그날 30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한 번도 산 적 없고 주머니에 넣은 적도 없는 그 껌 냄새가 어떻게 옷장에 스며들었는지, 어째서 노파의 꿈을 꾸었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그 집을 떠난 지금, 난 그곳의 붙박이장에 여전히 그 냄새가 남아있을지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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