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00년. 우리 증조 할머니 돌아가셨던 날이야.
당시에 난 멋모르는 초딩 시절이었어.
밖에서 놀고 있는데 해질녘쯤 동생이 날 찾아왔어.
"행님, 할매가 집에 들어오란다."
"아 왜! 안간다. 더 놀끼다."
"학장 가야 된단다."
"왜?"
"아 몰라 빨리 오란다."
학장은 부산의 지명, 학장동을 뜻하는데, 작은 할머니댁이었고,
작은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셨던 어머니(나한텐 증조할머니)를 모시고 살았어.
나는 연산동이란 곳에 살고 있었는데,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나
특별히 경조사 있는 날 아니면 학장 쪽으로 넘어갈 일이 그리 많지 않았어.
근데 설도 아니고, 추석도 아니고, 경조사 있다는 말도 없었고,
갑작스럽게 거길 간다는 거지. 거기 가면 어른들한테 항상 용돈 탔던 기억이 있어서
어린 마음에 바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지.
집에 갔더니 나와 할머니 댁에서
같이 살았던 삼촌이 양복을 챙겨 입고 있었고,
할머니도 뭔가 차려입고 계셨는데,
몸 동작이 굉장히 분주했어.
평소에 못 보던 모습이었지만,
나는 용돈 받아 뭐할까 그런 생각에만 부풀어 있었고,
별 다른 생각은 안했던 것 같아.
삼촌한테 "학장 왜 가는데?" 물어보니까
"그런게 있다." 짧게 대답해서 더 물어보지도 않았어.
그러고는 차를 타고 그쪽 방향으로 가는데,
평소보다 가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길래 잠깐 잠이 들었는데,
낯선 곳에 도착한 거야. 차에서 내리고 보니까
병원 건물이야. 동아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왔어.
그래서 '아... 증조 할머니께서 돌아가셨겠구나...' 하고 감이 왔지.
들어가서 영정 사진을 뵙기 전까지는 담담했어.
근데 들어가서 사진 속 얼굴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
초 3이던 어린 동생도 내가 우니까 따라서 울더라고.
할머니, 삼촌이야 말 할 것도 없었고....
울다가 보니까 배도 고프고 해서,
장례식장 음식 나온거 먹고 있다가 주위를 둘러보게 됐는데,
증조 할머니 영정 사진 양 옆으로 화환이 있었는데,
거기에 어떤 할아버지가 서서 화환 꽃잎을 막 뜯고 있는 걸 봤어.
나는 왜 저러는지 이해를 못하겠는데,
주변에 어른들은 아무 말도 안하고, 그쪽에 시선조차 안주고 있어.
그래서 나는 밥 먹다 말고 일어나서 가족들이 쉬는 방으로 들어갔어.
거기서 아빠가 눈 붙이고 계셔서 깨웠는데, "어떤 미친 할배가
우리 할매 꽃 다 뜯고 있다." 일러주니까 "누가?"하면서 몸을 일으키고 나가셨어.
나도 뒤따라 나왔는데, 아빠가 "어데? 누가" 하기에
그쪽을 가리켰는데, 그 할아버지가 사라지고 없는 거야.
뭐지 싶어서 바닥을 봤더니 뜯어진 꽃잎들이 흩어져 있어서
아빠한테 "저 봐라. 꽃잎 다 떨어져있다 아이가?"하니까
화가 나셔갖고는 "어떤 미친 놈이고?"하면서 그 주변에 앉아서
음식 먹던 사람들한테, "혹시 요 있던 사람 못봤습니까?"하니까
아무도 못 봤다고 하는 거야. 아빠도, 나도 갸우뚱했지.
그 많은 조문객들 중에 나만 봤다는게 말이 되냐고...
뭐... 그냥 그런갑다하고 넘어갔긴 했는데,
그 계속 묘한 그 기분은 사라지질 않더라고.
그러다가 새벽이 되서 졸음도 쏟아지고 그래서
집안 어른들이 나랑 동생, 그리고 나랑 나이가 비슷한 또래의 친척들 모아서
"오늘은 할머니를 기리는 마음에서 지내시던 방에서 하루 묵기로 하자."하고,
각자 집으로 가지 않고, 학장동으로 갔어. 삼촌이 데려다 주시고 오기로 하셨고,
다들 차에 타는데, 동생도 그렇고, 다들 금방 잠이 들더라고.
나는 꽃을 뜯던 그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 못들고 있었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구덕터널인데, 여튼 학장동 가는 길목에 터널을 하나 지났어.
잠이 들듯 말듯 몽롱한데, 터널 중간쯤 갔을 때,
측면에서 아지랑이처럼 하얗게 일렁이는 사람 형체를 봤어.
새벽이라 차가 속도를 내서 달려서 그 형체를 정확하게 보진 못했는데,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듯한 형상으로 팔을 흔들고 있었어.
순간 소름이 돋아서 잠이 확 깨서 뒤돌아보는데 아무 것도 없었어.
그때 당시에 내가 디아블로2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던 땐데,
디아블로2에 액트 4에서 이주얼이라는 퀘스트 캐릭터가
천사가 된 모습이 나오거든. 그게 딱 연상이 되네. 투명한(?) 흰색이랄까...
나 어렸을 땐 토요미스테리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런걸 재미있게 보던 나였는데 그날은 그게 뭐라고
뭔가 두려운 느낌 같은게 엄습하더라고...
오늘 나 왜 이러지하면서 식은 땀이 막 나는데,
그냥 애써 헛 것을 봤겠지 외면하고, 합리화했어...
그러다가 집에 도착했고, 소금을 밟고 들어가는 의식(?)을 하고,
증조 할머니가 지내시던 방에 어린 애들을 재우고,
삼촌이 나가셨는데, 나는 웬지 모르게 그날 깊게 잠에 못들었어.
여름인데 갑자기 이불이 덜 덮힌 쪽에 한기가 돋길래
뒤를 돌아보는데, 갑자기 창문 바깥으로 뭔 형체가 쓱 하고 지나가.
너무 무서웠는데, 사람이 한번 궁금하게 되면 계속 확인하고 싶어지잖아.
그래서 창문에서 시선을 안떼고 계속 응시하고 있었어.
난 온 몸에 이미 식은 땀이 나있었고, 최대한 숨 죽인 상태로
꽤 긴 시간동안 그 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한곳만 쳐다봤어.
어차피 이 방에 나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명 있는데,
뭐가 튀어나오면 확 소리 질러서 애들 다 깨우면 된다고 생각했지.
근데 뭐가 나오진 않았어. 피곤했긴 피곤했었나봐.
난 그 상태로 긴장이 풀려서 다시 선잠이 들었었지.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방바닥 아래서 빈 목재 탁상을 치는 듯한
소리가 똑똑똑똑똑 똑똑똑똑똑 규칙적으로 들리는 거야.
그 소리에 깜짝 놀래서 잠이 깼는데, 애들은 다 곤히 자더라고.
아니 아파트 11층 방바닥에서 왠 그런 소리가 나냐고....
아씨 진짜 오늘 이상하네 싶은데, 뭔가 내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나.
뭐 공중에 갑자기 확 뜨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그 바이킹 탈 때 뭔가 쏠리는 그 느낌 있잖아?
그래갖고 옆으로 몸을 돌리는데, 매트리스가 살짝 공중에 떠있는 거야.
이런걸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라고 하던가?
영화 같은 데서는 막 방안이 온통 뒤집히고, 휘날리고 난리나던데
내가 겪었던 건 그런건 아니었고, 그냥 내 몸이 붕 뜨는 느낌과 동시에
매트리스가 들어올려졌어. 떴다는게 착각이 아니란걸 느낀 건
위 아래로 엄청 작은 폭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방바닥에서 자고 있던 애들 실루엣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니까 확신할 수 있었어.
어둠 속이었지만, 달빛이 비쳐서 어느 정도 육안 식별이 가능했거든.
너무 무서워서 소리도 못 지르겠고, 그냥 나는 그대로 이불 덮어쓰고,
옆에 자고 있던 동생한테 착 달라붙어서 오돌오돌 떨고 있었어.
그러다가 지쳐서 잠이 든 것 같은데, 그때는 깊게 잠이 들었지.
조금 늦은 아침에 인기척 때문에 일어나서 보니까 방에 애들이 다 나가고 없어.
어디선가 애들 소리가 나길래 복도로 나가서 아래를 내다봤는데,
애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고, 그 쪽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처음 보는 애가 세발 자전거 타고 혼자서 놀고 있더라고.
누군진 모르겠지만 동떨어져서 놀고 있는 모습이 괜히 신경이 가더라고.
엘리베이터타고 내려와서 애들 쪽으로 가려는데,
세발 자전거 타고 놀던 애가 갑자기 내 쪽으로 오다가
무심하게 날 스쳐가더니 아파트로 다시 들어가는거야.
나는 같이 놀자고 하려고 따라갔는데, 내가 숱기가 없어서
엘리베이터에 탄 동안 아무 말을 못 걸었어.
띵!
세발자전거가 내린 층은 10층.
문이 열리니까 향 냄새랑 제사 때 그 튀김하는
기름 냄새가 섞여서 확 들어오더라?
이유도 없어. 그냥 나도 모르게 걔를 뒤따라서 내렸는데,
걔 가는 곳으로 따라갈수록 그 냄새가 강해지더라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복도에 들어서서
걔가 어디로 들어가나 먼 발치서 보고 있었는데,
그 집 앞에 보니까 흰 종이에다가 제사 음식 부분 부분
덜어내고, 잘라낸거 그 음식물들이 놓여있더라고.
그래서 확실히 제사를 지내다보다 알았고,
걔 집 쪽으로 가서 집안을 들여다봤는데,
거기서 진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이 아파트(학장동 목화아파트)가 현관에서
거실이 들여다보이는 구조인데,
상 위에 올려진 영정 사진을 보는데,
다름 아니라 어제 장례식장에서 화환을 뜯고 있던 그 할아버지 얼굴인거야....
와... ㅅㅂ... 놀래갖고, 나도 모르게 뛰게 되더라.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갈까 했는데 혹시 귀신 나올까봐 타지도 못하고,
그냥 그대로 11층을 계단으로 쭉 내려와서 애들 있는 쪽으로 갔어.
진짜 이걸 말해주고 싶은데, 웬지 그냥 말문이 막혀서 말도 안나오는 거야.
애들이 볼 때 내가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서 이상하니까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는데,
그냥 고개만 도리도리할 수 있었음... 소리를 낼 수 없다는게 뭔지 알겠더라...
어제 그 창문을 슥 지나간건 뭐며, 똑똑똑똑똑 소리는 뭐며, 매트리스 떠오른건 뭐며...
난 그날 하루종일 체한 느낌으로 있다가 웬지 나만의 비밀로 간직해야될 것 같아서
말 안하고 있다가 나중에 한참 지나고 나서 아빠한테 털어놓았는데,
이 얘기 들으니까 아빠 입도 떡 벌어지더라.
"아무 일 없었으니까 됐다. 잊어버려라. 세상엔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있는 기다." 해서
그냥 적응하고 지나치긴 했는데, 이 기억이 과연 사라지겠냐....
16년 이상 세월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모르겠다. 내가 직접 겪은 경험담이라서 그런지 여태껏
저때보다 소름 돋고, 무서운 적은 없었다.
그 뒤로도 이상하고, 기이한 경험을 많이 했지만,
내가 직접 겪은 걸로는 이 때가 첫경험이었고,
가장 기억에 각인되어있다....
인터넷 보면 별로 공포 같지도 않은 공포 얘기들 뿐이라 한번 올려본다.
보일러 켰는데 춥다....
이렇게 오싹한 한기가 느껴지면
옆에 그 당사자가 와있다거나
뭔가 기가 허약해졌을 때
영이 주변에 붙는다는 얘기도 있던데,
몸이 차가워져서 이만 이불 속으로 들어가야겠다.
여튼 그 아파트 이름은 목화 아파트였고,
내가 있었던 방은 11층, 그 할아버지 제사 지내던 집은 10층,
하도 오래 되서 동까진 기억이 잘 안나는데,
언덕 위에 위치한 아파트였고, 106동이었나 105동이었나
여튼 거의 끝에 위치한 동이었다.
지금은 작은 할머니댁은 그 근처에 금강 아파트란 곳으로 이사가서
그 아파트에 올라갈 일은 없지만, 기억만으로도 여전히 소름 돋는다...
재밌게 잘 봤다
ㅁ 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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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할배 완전 나쁜할배네
할배 어그로잘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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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6년전에는 목화아파트가 아이고 도개공아파트다. 어그로끌지마라 처맞는다
할배새끼 분명히 베충이었을 듯 ㅉㅉ - dc App
울할미집하고 가깝네... 목화아파트 좀 가면 5층짜리 연립주택이 내 할미 집인데 예전에 어떤 형이 개구리 잡자고 가자고 했는데 무서워서 안갔던 기억이...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