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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천이란 곳에 보광사라는 절이 있었다. 여기에 대선사란 존칭을 받는 중이 있었다. 그 중은 이 고을의 원님인 안공을 자주 찾아 다녔다. 이 고을에는 원 이외에는 말벗이 될 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고, 또한 원도 더불어 말할만하다고 여겨서 후하게 대접하였다.
그러나 이 중에 대해서 하나의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즉 마을의 어느 여인을 아내로 삼고 있으며 남의 눈을 피해 서로 왕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허. 그렇다면 파계승이 아닌가."
원은 이렇게 생각하며 다음 번에 찾아왔을 때에는 다른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중은 여전히 잘생겼고 학식이 깊어 다른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동안에도 세속적인 때가 묻어 보이진 않았다.
"그런 사람이 파계했을 까닭이 있나?"
의심스러워진 원님은 수하에 있는 아전을 불렀다.
"여봐라. 너는 보광사의 대선사를 알겠구나?"
"예."
새삼스럽게 말을 끌어내는 것이 의아하다는 듯, 아전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 대선사가 아내를 가지고 있다니 과연 그러하냐?"
"예."
"이상한 노릇이다. 어디 아는 대로 말해 보아라!"
"예. 이 마을에 있는 여인을 아내로 삼고 있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밤이면 어둠을 타고 여인의 집으로 오기도 하며 혹은 여인이 절로 올라가서 다음날 내려오기도 합니다."
"과연, 그렇지?"
"예. 서로 왕래하는 것을 본 사람이 그렇다 하옵고 또 여인의 집에서 둘이 앉아 있는 것을 본 사람도 한둘이 아닙니다."
"알았다!"
그 후에 원은 중이 찾아왔을 때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다가 문득 이렇게 물었다.
"불문에 있는 사람이 아내를 가지고 있다면 이것에 대해 대선사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
중은 얼굴이 붉어졌을 따름이요. 대답이 없었다.
"세상에 떠돌고 있는 풍문을 대선사는 아시오?"
"....."
중은 역시 말이 없었다. 소문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안 원은 이맛살이 찌푸려졌고 입맛이 쓰게 느껴졌다. 그 후로 원은 중을 뜨악하게 여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중은 여전히 드문드문 찾아왔고, 그 넓은 학식을 보여 주었다. 더불어 이야기할 수 있었기에 원은 파계한 것을 더 추궁하지 않고 이럭저럭 대하였다.
그러던 차에 중이 죽었다. 중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더욱 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다. 즉 중이 죽어서 뱀이 되어 그 아내를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금도 그 여인의 방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뱀은 낮에는 자그마한 단지 속에 들어가 있지만 밤이 되면 나와서 여인의 온몸을 휘감고 머리를 여인의 가슴에 기대어 올려 놓으며 꼬리 근처에 있는 혹은 마치 사나이의 생식기 같아서 여인과 교합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소문을 들은 원은 눈살을 찌푸리고 혀를 찼다.
"살아 있을 때 파계하였다는 것도 용납되지 않거늘 죽어서까지 이게 무슨 추태일꼬?"
원은 즉시 여인을 데려도게 하였다. 여인은 원 앞에 이르러 공손히 꿇어 앉아 고개를 숙였다.
"물어 볼 일이 있으니 숨기지 말고 대답하여라."
"예."
"너는 죽은 보광사의 중의 아내라고 하는데 과연 그리하냐?"
"예."
여인의 고개는 더욱 수그러졌다.
"그 중이 죽은 뒤에도 뱀이 되어서 너에게 와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하냐?"
"예."
여인은 얼마 만에야 가느다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어떻게 그 뱀이 죽은 중이 화한 것인 줄 알았느냐?"
"대선사님께서는 생시에 언제까지나 저를 버리지 않고 같이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는 일이 있으면 뱀이 되어서라도 제 옆에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뱀이 처음 들어왔을 땐 놀랐사오나, 혹시나 하여서 `대선사님` 하고 부르니 뱀은 고개를 끄덕끄덕하였습니다."
"흠. 밤에는 같이 잔다지?"
"예."
원은 차마 더 물어 볼 수가 없어서 혀를 찼다.
"낮에는 단지 속에 들어가있다니 그 단지를 가져오너라!"
여인은 황망히 집으로 돌아가서 단지를 가져왔다. 원은 단지를 뜰에 놓게 하고 점잖게 불렀다.
"대선사!"
속에 들었던 뱀은 고개를 쳐들고 단지 밖을 내다보았고, 원은 벽력같이 꾸짖었다.
"불문에 있는 몸이 파계한 것도 용납을 못하겠거늘 죽어서까지도 여색을 잊지 못하여 뱀이 되었으니 불도를 닦는 몸이 이럴 수가 있는가?"
뱀은 놀라서 고개를 움츠리고 단지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원은 여인에게 한 계교를 가르쳐 주었고, 여인은 그것에 따랐다.
"대선사님!"
방 안에 앉아 있던 여인이 다정스럽게 불렀다. 뱀은 곧 고개를 내밀었다.
"대선사님을 위하여 새로 집을 만들었으니 그리로 옮기 십시오. 단지에서야 어디 편안히 계실 수 있겠어요?"
여인은 자그마한 궤를 단지 옆에 가져다 놓았다. 뱀은 고개를 돌려 궤를 바라보았다. 여인이 치맛자락을 궤 안에 펴니 뱀은 단지에서 나와서 궤로 들어가 도시리고 있었다.
"됐어."
방문 밖에 숨어서 동정을 살피괴 있던 건장한 포리들이 달려들어서 궤의 뚜껑에다 사정 없이 못을 박아 밀폐해 버렸다.
"됐어! 이제야 나오려고...."
"음탕한 파계승도 이제 운수가 다 된 거야...."
포리들은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궤를 들고 원에게로 갔다. 원은 보광사의 중들을 불러다가 장사 지내는 절차를 밟게 하였다. 명정에는 대선사의 이름을 쓰고 뱀이 든 궤를 만들게 하였으며 여러 중들이 염불을 외며 길을 떠났다. 강에 이르러 뱀이 든 궤를 물에 띄워 내려 보내게 하였다. 강가에 섰던 여러 중들은 끊임없이 염불을 외웠다. 궤는 둥둥 떠내려가 사라져 버렸고 그 여인 앞에 다시 뱀이 나타나는 일은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