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18평짜리 조그만 아파트고 방은 안방이랑 거실 부엌 화장실 이렇게밖에 없고
거실에는 매트리스가 있고 거기서 나랑 형이 같이 잠을 잤다.
그리고 매트리스 앞에는 책상이랑 의자가 있고 컴터가 있었다. 대부분 동생들이 그렇듯이 컴퓨터는 형 차지였고 나는 매트리스에 누워있었다. 형이 폭군인게 아니라 내 순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때 아마 무슨 책을 보고 있었는데 내용은 기억이 안난다. 확실한건 어느순간 내가 눈을 감고 조용히 상념에 빠졌다는거다.
미리 말해두지만 난 절대 잠들거나 꿈을 꾼게 아니었다. 세상에 한 며칠 못 잔게 아닌 다음에야 눈감고 2~3초만에 잠드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그 때 눈을 감고 무슨 생각을 하려했는지는 모르겠다. 중요한건 그냥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조선시대 병사 두명이 떠올랐다는거다. 손에 잡힐듯이, 사진처럼선명하게.
조선시대 병사 두명은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 적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쫓기고 있었고 곧 붙잡혀 죽게될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쭈그리면 간신히 몸을 숨길 수 있는 정도의 바위에 웅크리고는 죽음을 기다리면 벌벌떨었다. 한 사람은 활을 들었고 한 사람은 창을 가지고 있었다.
옷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선시대 포졸과 같았고 얼굴은 생각속이라는걸 감안해도 너무 검었다. 흑인같은게 아니라 얼굴이 그냥 어둠이었다.
돌연 죽음을 각오한듯 둘 중에 창을 든 자가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서 최후의 싸움을 하려했지만
바위밖으로 몸을 드러내자마자 화살에 대여섯대를 맞아 죽어버렸다. 활을 든 병사는 그 모습을 보고는 더욱 겁에질려 어쩔줄도 모르고 벌벌떨기만 하다가
뒤쫓아온 적병에게 칼로 무참히 난도질 당했다. 적은 붉은옷을 입은 사람들이고 마찬가지로 얼굴에는 암흑만이 있었다.
두 사람의 몸에서는 피가 흘러 바닥을 적셨다. 바위뒤에서 살고싶어서 벌벌떨던 그 사람들은 이제 그야말로 미동조차 없다. 기절이나 의식불명이 아니라 결국 무참히 죽은것이다. 적들은 그 시체따위는 조금도 신경쓰지않고 떠난지 오래다.
여기까지 생각하고나니 갑자기 너무 슬퍼졌다. 슬픔이 마구 북받쳐 올라왔다. 전쟁의 참상인것이다. 두 사람이 그토록 살고싶어했지만 그렇게나 허무하고 잔혹한 죽음을 맞이한것이다. 나는 더는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눈을 떴다.
여기서부터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데, 분명 생각속의 존재들이었을 그 병사들은 내가 눈을뜨는 즉시 사라져야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누워있는 매트리스와 형이 앉아있는 책상? 즉 나와 형 사이의 공간에 분명히 위치했다. 죽은채 꼼짝않고 누워있을 뿐이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순간 얼이빠졌고 그제서야 애시당초 내가 갑자기 조선시대 전쟁생각을 도대체 왜? 어째서 한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어디에도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 순간 두사람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온몸에서 피를 흘리면서 부러진 화살을 몸에 꽂은채로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한것이다. 틀림없이 죽었음이 분명한 사람들이 서서히 일어나서는 얼굴을 내게로 향했다. 얼굴이 있어야 할 곳에는 여전히 칠흑같은 암흑만이 존재했지만 그 방향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죽음의 원한이 깃든것인지 악의적인 검은 기운이 느껴질만큼 무시무시한 한기를 가진채로.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의 실루엣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놈들은 내게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더 당황스럽게도 그놈들이 다가오면 올 수록 내 몸이 조금씩 굳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손끝과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확 일어설수도 없이 속절없이 누워있다가 한창 게임을 하고있는 형을 발견했다.
손끝과 발, 다리만 움직일 수 없었기에 나는 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가위가 눌리면 말도 못하고 몸도 꼼짝 못하는데, 나는 분명히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때 뭐라고 했는지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형 나 큰일났어. 나 지금 가위에 눌려가는 중이야.
형이 휙 돌아보더니 ? 헛소리하냐? 잠꼬대 하지마라 하고는 다시 게임을 하려고 했다. 나는 다급했지만 이미 목근처가 저릿하면서 말을하기도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형한테 나 지금 장난아니야.. 아니라고.. 나 지금 눈 떠있잖아... 했지만 소리치는게 아니라 속삭이는 정도만이 가능했다. 형은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형에게는 그 두놈이 보이지 않는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예감하기를 그 두놈이 내게 닿는순간 난 죽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할까 하면서 별의 별 생각을 다 했다.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찾을 수 있는 모든 신을 찾고 성스러운 말과 기도 법문 생각나는거는 다 했다. 웃길진 모르겠지만 구라안치고 옛날 태조왕건에서 유행했던 옴마니 반메홈까지 읊어댔으니 얼마나 다급했는지 알만할거다.
이쯤되니 드디어 이게 미쳤거나 뭔가 좆됐구나 싶었는지 형이 나를 거칠게 깨웠다. 정확히는 뺨을 두대 때리면서 아 뭔 개소리해 자꾸? 했다. 형도 뭐가 잘못된건가 무서웠던거 같다.
정말 개같은건 그 두놈은 형이 다가와도 계속 나와 형 사이에 위치했다는거다. 하지만 형이 내 몸을 강제로 움직인 순간, 마치 움직이는 법을 까먹고 있다가 다시 기억이라도 난 것 마냥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두 암흑의 병사들은 순식간에 작아지더니 이윽고 검은 점이 되었고,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몸의 자유를 되찾았다.
나는 형한테 진짜로 방금 좆될뻔했다고만 했다. 진짜로 좆될뻔 했다고. 이 후 사정을 얘기했지만 형은 내가 꿈꾼줄 안다. 나는 다 보고 있었는데.
살면서 눌려본 가위중에는 단연 최악의 케이스였다. 아니 애초에 가위인지도 모르겠다. 꿈도 아닌데 애초에 가위일 수 있나? 뭐 어쨌든 다행히 이후에는 한번도 그런적은 없다. 다들 뜬금없이 이상한 생각이 튀어나오면 꼭 조심들 하길 바란다.
니가 조선 시대에 그 사람들을 죽인 사람이었나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