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 못할 보물을 끌어안지 마라.


그 끝은 파멸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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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의 한 양로원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당신의 몸 하나 감당 못할 90세 노인이 비몽사몽한 가운데 첫 운을 뗐고, 곁에 있던 다른 노인들이 양말을 기우듯 이야기를 덧붙여가며 완성한 것이다. 초장부터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대강 예상은 했다만, 그 예상이 들어맞았을 때의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벌써 80년도 전의 일이다. 이야기를 전해준 90세 노인은 당시 7살 어린아이였다. 당시 마을은 발에 채이는 게 화석일 정도로 화석이 많았다고 한다. 물고기 화석에 조개 화석, 운이 좋으면 공룡알 화석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어린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성인조차도 그 돌덩이의 가치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노인의 친구 한 명은 유독 그 돌덩이들을 소중하게 여겼다. 거적을 갖다 걸쳐놓은 아지트에 모아놓은 화석을 숨겨놓고, 이따금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별난 녀석이라 생각하면서도 화석을 주우면 그 아이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무리의 일본인들이 마을을 찾았다. 마을 곳곳 수탈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온갖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고, 그들의 추악한 손길은 심지어 어린아이들에게까지 미쳤다. 하나같이 안경을 쓰고 가르마를 빗어 넘긴 일본인들은 모여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화석을 보여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민나, 코레오 못테 코이. 미루꾸 카라멜 아게루카라.’


(모두 이걸 가져와라. 밀크 카라멜 줄 테니까)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고작 돌덩이 하나에 카라멜을 준다니, 일본놈들이 드디어 돌아버렸구나 싶었다. 아이들은 발에 채이는 화석을 가져다 그들에게 가져다주었다. 그 양이 어찌나 많았는지 밀크 카라멜 수십 통이 금세 동나버릴 정도였다. 그러나 화석을 좋아하던 그 아이만큼은 절대 자신의 화석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모아놓은 화석을 품에 안은 채 그저 멀거니 아이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들은 아이가 품고 있던 화석을 강제로 빼앗아갔다. 그리고는 고작 카라멜 두 통을 억지로 쥐어주며 곧장 자리를 떴다. 함께 있던 아이들은 그 정도면 많이 받았다며 부러워했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악을 쓰고 울며불며 그들을 따라갔다. 눈이 벌겋게 물들고 목이 쉴 정도로 울어댔다.


친구들이 붙잡아 말리려 했지만, 그는 끝끝내 일본인들을 따라갔다. ‘카에시테, 카에시테.’ (돌려줘, 돌려줘) 하고 울부짖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야말로 섬뜩한 정적이었다. 멀거니 서있던 아이들은 이상해하면서도 곧장 마을로 되돌아갔다.


그날 저녁,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눈이 뒤집혀 자식을 찾으러 다녔다. 그러나 마을 어디에서도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싶어 아이가 자주 다니던 아지트에도 가보았지만, 아이는 그곳에도 없었다. 아이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애지중지 모아놓았던 화석들 역시 감쪽같이 사라져있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노인은 낮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친구의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단신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자식과 마찬가지로 돌아오지 못했다.


참으로 기묘한 일이었다. 하루아침에 자식과 남편을 모조리 잃어버린 아낙이 길가에 나앉아 통곡하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분개하는데도 그 누구도 그들을 찾으려들지 않았다. 어느 순간, 그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게 되었다. 마치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져버린 그들처럼.


그로부터 5년 뒤, 마을에 큰물이 졌다. 계곡 근처 땅이 씻겨나가 벌건 속을 드러냈다. 돌다리가 잠겨 급한대로 나무다리를 놓았고, 마을사람들은 그 나무다리로 계곡을 건넜다.


노인 역시 그 다리로 길을 건넜다. 친구들과 함께 다리를 건너던 중, 그는 벌건 진흙 사이에 새하얀 뭔가가 떠올라있는 것을 보았다. 정말 이상하리만치 희어 자기도 모르게 눈길이 갔다고 한다.


그는 친구들을 불러 뭔가에 홀린 듯 그곳으로 향했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비로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어른의 두개골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땅을 파내니, 성인 남성의 유골이 나왔다. 뼈 이곳저곳이 바스러져 온전히 남은 것은 두개골뿐이었다.


그 곁에는 아이의 유골이 마치 화석처럼 색이 바랜 채 남아있었다. 분명 같은 곳에, 같은 시간 동안 묻혔을 것인데, 어째서 아이의 유골만 그렇게 되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비록 유골의 신분을 확인할 길은 일절 없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5년 전에 사라진 부자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유골을 모아 장례를 치렀다. 화병이 들어 죽은 아내의 유골까지, 한 가족이 드디어 한 데 모였다.


이야기를 마치며, 노인은 멍하니 창가를 내다보았다. 얼마 전만 해도 자기가 그 아이를 꽉 붙잡고 있었어야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를 잃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치고는 말투가 지나치게 담담했다.


다른 노인들은 별일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물을 찍어내더니만, 오늘은 왜 이렇게 담담하느냐며 지나가듯 한 마디씩 물었다. 노인은 끝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녹음 자료를 한창 글로 옮기던 중, 노인의 부고 소식을 접했다. 이야기를 들은 지 불과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그제야 그가 달관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그는 얼마 안 가 잃어버린 친구와 함께 하게 되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