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강원도의 한 마을에 들렀다. 사방에 대나무가 우거져 마을은 언뜻 보기에 요새 같았다.

아직은 꽃샘추위가 매서웠다. 동네 입구에 있던 마을 경로당에는 제법 많은 노인들이 추위를 피해 모여앉아 있었다. 나는 슈퍼에서 사온 음료수를 하나씩 돌리며 그들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그들에게서는 한결같이 흙내음이 났다. 아무리 나이를 먹고 기력이 쇠하여도 그들의 삶은 흙과 떼어놓을래야 때어낼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명 있었다. 그는 묘한 향을 풍기며 대나무 줄기를 가져다가 바구니를 엮고 있었다. 다른 노인들과는 달리, 그는 일평생 대나무를 엮어온 죽공이었다.

기나긴 대화 끝에 섬뜩한 이야기 하나를 들을 수 있었다. 무섭다기보다는 끔찍했고, 괴담에서나 들을 법한 괴이한 이야기였다.

몇십 년 전의 일이었다. 그 당시에도 마을 근처에는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다. 농사일을 할 수 없는 한겨울에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대나무를 가져다가 죽세공품을 만들어 5일장에 내다 팔곤 했다.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쓸만한 대나무를 찾아 자주 숲을 찾았다. 질 좋은 대나무는 겉면에 윤기가 흘렀고, 두드려보면 단단한 소리가 났다. 그러나 그런 대나무는 정말 드물었다. 한 번 찾으려고 마음먹고 들어가면 저녁이 다 되어야 숲을 나오곤 했다.

그해 여름이었다. 한 달 전에 베어놓았던 대나무를 모두 써버린 터라, 노인은 평소처럼 대숲을 거닐며 질 좋은 대나무를 찾았다. 고작 한 달이 흘렀을 뿐인데 못 보던 대나무가 사방에 즐비했다.

한여름인데도 숲은 싸늘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서늘하다 못해 음산하기까지 했고, 댓잎이 우거져 햇볕조차 들지 않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지만, 노인은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숲을 거닐었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숲의 끝에 다다른 노인은 어떤 대나무 앞에 멈춰섰다. 참으로 아름다운 대나무였다. 온몸이 황혼에 젖어 발그스레 광택이 흘렀고, 두드려보았을 때 되돌아오는 소리와 손끝에 느껴지는 그 탄력이 보통 대나무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는 드디어 자신이 간절히 찾아다니던 최고의 재료를 발견한 것이다.

노인은 대톱을 꺼냈다. 혹여 누가 먼저 채가기라도 할까 봐 허둥지둥 밑동에 톱을 가져다댔다.

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이 여느 대나무와는 달랐다. 훨씬 단단하고 이상하리만치 무거웠다. 노인은 조급하게 톱질을 이어갔다. 그 커다란 대나무가 우수수 하는 소리를 내며 크게 울렁였다.

톱이 절반 정도 잠겨 들어갔을 때였다. 노인은 뭔가 이상한 것을 맞았다. 손끝에 찍어보니 색이 어둡고 축축하고 끈적했으며, 상상조차 못할 고약한 냄새가 골을 찔렀다.

대나무에서 이런 게 떨어진다는 말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노인은 문득 불길한 생각이 떠올라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대나무에 꿰인 송장이었다.

온몸이 부풀고 검게 썩어들어가 얼굴을 보고도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별할 수 없었고, 대나무가 흔들릴 때마다 흐물흐물한 사지를 흔들고 있었다.

노인은 눈앞이 아찔하여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가 맞은 것은 송장 구멍에서 흘러나온 추깃물이었던 것이다.

마을이 발칵 뒤집어졌다. 그녀는 한 달 전,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던 옆동네 처녀였다.

여러 소문이 돌았다. 어머니가 부패한 송장으로 돌아온 자신의 딸을 보고는 직접 두 눈으로 봐야겠다며 천을 벗겼다가 그 자리에서 졸도했다든지, 넝마가 된 치맛자락을 보고서야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알았다든지 하는 흉흉한 소문이었다.

부패가 심한데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누가 여인을 죽였는지는 끝내 밝히지 못했다. 그러나 노인은 어째서 송장이 대나무 위에 걸려있는지는 짐작 가는 데가 있다고 했다.

그는 여인이 묻힐 당시에는 아마 땅에 아무것도 나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새순이 자라기 시작했고, 그것이 송장을 꿰뚫고 자란 것이라고 보았다.

그 대나무는 당장에 뽑아 태워버렸고, 2미터 가까이 흙을 파서 제초제를 부어버렸다.

그 이후 그 근처에는 한동안 아무것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대숲의 대나무는 뿌리가 한 덩어리와도 같으니, 결국 그 대숲 전체가 송장을 잡아먹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뒤, 그에게서 대나무 펜 하나를 받았다. 표면이 반들거리고 잡히는 느낌이 참 좋았다. 설마 그 대나무로 만든 것 아니냐는 농담에 그는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 즉시 그런 실없는 말을 한 것을 후회했다.

마을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대숲을 들렀다. 울창한 댓잎에 하늘이 가려져 사방에 어둑한 그림자가 가득했다. 과연, 머리 위에 뭔가 있어도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했다.

들어간 것은 입구뿐이었다. 더 이상은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곧바로 발길을 돌렸다. 이 넓은 대숲에서 언제, 어디서, 무엇이 떨어질지 몰랐으므로.